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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6: 11 하나님의 사람 - 딤전 6: 16 오직 그에게만
4.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 ( 6: 11 - 16 )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딤전 6: 11 하나님의 사람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그 곁에 두시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고 그의 일에 쓰시는 자라는 뜻일 것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드셨고 그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
* 엡 2: 10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벧전 2: 9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의 사람'(*, 안드로페 데우)이라는 호칭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이 말은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나 특별한 인물들에게 적용되었다.
(1) 모세
* 신 33: 1 -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다윗
* 대하 8: 14 - 솔로몬이 또 그의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제사장들의 반열을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들에게도 그 직분을 맡겨 매일의 일과대로 찬송하며 제사장들 앞에서 수종들게 하며 또 문지기들에게 그 반열을 따라 각 문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하였음이라.
(3) 선지자들
* 삼상 2: 27 -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 삼상 9: 6 -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4) 엘리야
* 왕하 1: 9 -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5) 하나님의 사자들
* 왕상 12: 22 -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호칭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일반 신자들이나 디모데와 같은 복음 사역자들에게 사용되었다.
* 딤후 3: 17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2] 이것들을 피하고 ... 따르며
'이것들'이란 4-10절에서 언급된 멸망의 요인들을 가리킨다.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한다. 이것들은 경건과 자족함 대신에 돈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돈 사랑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따르며'의 헬라어 '디오케'(*)는 '추구하다'(follow after, KJV)의 뜻으로 '피하고'(*, 퓨게)의 반의어이다.
여기서 바울은 딤후 2: 22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특유의 대조법을 사용하여 권면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 딤후 2: 22 -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3]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열거한다.
(1) 의(義)
'의'(*, 디카이오쉬넨)는 법률 용어로 '공의'(公義)를 뜻한다(Lenski).
(2) 경건(敬虔)
'경건'(*, 유세베이안)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 벧후 1: 3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3) 믿음
'믿음'(*, 피스틴)에 대하여 혹자는 '이것은 주관적인 믿음으로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을 뜻 한다'고 본다(Hendriksen).
그런데 렌스키(Lenski)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즉 기독교에 있어서 '믿음'은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처음에 열거되지 아니하고 세 번째 나온 것으로 보아 이것은 신앙적인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믿고 신뢰하는 하나의 미덕(美德)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가 타당하다. 본 절에서 바울은 일반적인 미덕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덕목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사랑
'사랑'(*, 아가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핵심 요소이다.
* 요일 4: 10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5) 인내(忍耐)
'인내'(*, 휘포모넨)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 살전 1: 3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 살전 5: 14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6) 온유
'온유'(*, 프라위파디안)는 신약성경 중 본 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온순'(meekness, KJV)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가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서 늘 여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 마 11: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고후 10: 1 -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딤전 6: 12 선한 싸움을 싸우라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
1]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싸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니주'(*)는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에서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 애쓰다'의 뜻을 갖는다.
이것과 동족어인 명사 '싸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곤'(*)은 원래 운동 경기를 위한 '집회'를 의미하였는데 이것이 점차 경기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선한 경기에서 경쟁하라." 혹은 "선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라."
결국 이 말은 믿음이라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Simpson).
이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와 같고, 성도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전쟁과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한 풍조와 사탄의 시험과 더불어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불신앙은 큰 원수이다. 싸움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그 길에는 때때로 실패와 낙심과 두려움과 회개의 눈물도 있으나 승리의 기쁨도 있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한다.
2] 영생을 취하라.
'취하라'의 헬라어 '에필라부'(*)는 '꼭 붙잡다'라는 뜻이다(take hold of, NIV).
바울은 '영생을 시합에서 이긴 자가 얻는 상급에 비유하여 그것을 꼭 붙잡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영생'에 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다.
Ⓐ 모든 싸움이 끝나고 죽음 이후에 최종적으로 하늘나라에서 얻게 되는 영광이다(Lenski).
Ⓑ 이것은 믿는 신자가 이미 소유한 것으로서 죽음 이후에 완성된다(Scott).
Ⓒ 여기서의 '영생'은 '끝없는 생명'이란 양적 의미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과 사랑, 평안, 기쁨 등에 함께 참여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을 말한다(Hendriksen).
세 견해는 근본적으로 서로 배치되지 않으며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영생은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로마서 6: 22-23은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나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영생의 소망은 복음 진리의 핵심이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딛 1: 1-3 -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우리 모두는 믿음을 잘 지켜 약속된 영생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에클레데스)에 의한 것이었다.
'증언 하였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기안'(*)은 세례(침례)를 받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다'의 뜻이다(Robertson, Earle).
바울은 이러한 신앙 고백 앞에 '선한'(*, 칼렌) 곧 '아름다운', '명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당시에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고 있었던 때이므로 그와 같은 신앙 고백은 더욱 가치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딤전 6: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
1]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 구절은 민 16: 22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과 같은 표현으로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 능력을 나타낸다.
* 민 16: 22 - 그 두 사람이 엎드려 이르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이처럼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자주 채택하였다.
* 롬 1: 9 -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 고후 1: 23 -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 빌 1: 8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 살전 2: 5 -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바울이 하나님을 '만물을 살게 하신' 분으로 언급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디모데로 하여금 생명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믿음을 부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Hendriksen).
2]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해야 할 증거와 역사적으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비교하여 디모데에게 엄숙히 권면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선한 증거'란 '고백'을 의미한다는 것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Lenski). 이 고백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메시야(Messiah)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요 18: 36-37 -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그러나 고백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사형을 선고(宣告)할 수 있는 빌라도 앞에서도 꿋꿋하셨던 그리스도의 담대함이었다(Scott).
3] 내가 너를 명하노니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들과 생명 자체의 근원이다. 그는 만물에게 생명을 주셨고 죽은 자들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증거 하셨다.
사도 바울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자신을 밝히 증거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숙히 명하였다.
디모데뿐 아니라, 우리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온전하게 위의 명령들을 지켜야 한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해야 한다.
딤전 6: 14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나타나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파네이아스'(*)는 중요한 인물의 '출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예컨대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Caligula)의 비문에서 그의 출현과 관련해 사용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 절에서는 이 말이 '그리스도의 현현'(the Epiphany),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파루시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명령'(*,엔톨렌)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 이 '명령'은 '예수의 말씀'을 가리킨다(Lenski).
마 28: 20에서 예수께서 '내가 네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라'고 말한 것과 그 외 다른 복음서에서도 같은 말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의 말씀을 의미한다.
* 요 14: 15, 21 -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요 15: 10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디모데가 세례(침례)받을 때 서약한 의무일 것이다(Guthrie, Wordsworth).
Ⓒ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부과된 모든 의무를 말한다(Hendriksen, Scott).
Ⓓ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명령을 가리킨다.
Ⓑ와 Ⓒ의 견해는 일면 타당성을 지니나 전후 문맥상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딤전 6: 15 기약이 이르면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마지막 대사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성경에서 그의 재림은 그의 오심 혹은 그의 나타나심이라고 표현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때 역사의 완성이 있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의인과 악인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의 구원은 영광스런 구원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것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다.
1]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기약'의 헬라어 '이디오이스'(*)는 복수로서 '시간들'(times, KJV)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수로 취급할 수 있는 관용적 용법으로 '때'라고 표현할 수 있다.
* 눅 20: 10 -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 눅 23: 7 -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여기서의 이 '때'는 그분 자신의 때로 아무도 알 수가 없다.
* 행 1: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의 나타나심'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2]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여기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의 '영광송'(doxology)이다.
이 영광송에 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다.
Ⓐ 이것은 유대인의 회당 의식에서 모방한 초대 그리스도인의 찬송이었을 것이다(Scott).
Ⓑ 이것은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 예배에서 하는 신앙 고백을 회상하여 한 말이다(Lock).
Ⓒ 바울 자신의 독자적인 말이다(Guthrie).
Ⓓ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다(Hendriksen, Earle).
특히 헨드릭슨(Hendriksen)은 여기서의 영광송과 유사한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1)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 신 6: 4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시 41: 13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 사 40: 12-31 -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단 4: 35 -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2) 만왕의 왕이시며
* 겔 26: 7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왕들 중의 왕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북쪽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 단 2: 37 - 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 스 7: 12 -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3) 만주의 주시오
* 신 10: 17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시 136: 3 -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 시 36: 9 -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 사 40: 28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 단 4: 34 -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5) 가까이 가지 못한 빛에 거하시고
* 출 24: 17 -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 출 34: 35 -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 시 104: 2 -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6)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 출 33: 20 -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신 4: 12 -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7)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 느 8: 6 -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 시 41: 13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 시 72: 19 -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 시 89: 52 -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하나님을 '복되시고'(*, 마카리오스)로 표현한 것은 오직 본 절과 1: 11에서만 나타난다.
'주권자'(*, 뒤나스테스)는 '통치자'(ruler, NIV)를 뜻하는 말로서 행 8: 27에도 등장하는데 하나님께 적용된 경우는 이곳뿐이다.
* 행 8: 27 -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러나 외경 마카비 하의 3: 24. 12: 15. 15: 27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권자' 앞에 '유일(唯一)'(*, 모노스)이라는 단어가 첨가되어 있는 것은 우상이나 황제 등 지상의 어떠한 권세보다 하나님의 권세가 우월함을 나타낸다(Guthrie, Scott).
3]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이와 유사한 구절이 계 17: 14과 19: 16에서 그리스도께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 계 19: 16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하나의 신(神)으로 숭배하였기에 이러한 표현은 로마의 황제에 대하여 사용하던 문구였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께 적용시킨 것은 황제 숭배에 대한 강한 반발과 직결된다(Hanson).
하나님을 표현하는 이 칭호는 이방 종교에서 온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서 빌려 온 것이다(Hendriksen).
* 신 10: 17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겔 26: 7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왕들 중의 왕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북쪽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 단 2: 37 - 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딤전 6: 16 오직 그에게만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
1]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15절에서는 하나님이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통치자임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본 절에서는 모든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찬미한다.
'죽지 아니함'의 헬라어 '아다나시안'(*)은 부정 접두어 '아'(*)와 '죽음'을 뜻하는 '다나토스'(*)의 합성어로 '불멸'(不滅) 혹은 '불사'(不死)를 뜻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밝힌 말이다(Guthrie).
'오직'(*, 모노스)이라는 말의 첨가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불멸이 있음을 강조한다. 혹자는 이러한 사상을 히브리적인 사고방식이라 한다.
헬라인들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은 본질적으로 영원하여 죽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죽음 이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Hanson).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불멸'에 정확히 상응하는 말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을 헬라 말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다 죽는 존재 혹은 죽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죽지 아니함이 있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 자체이시다.
그는 누구에 의하여 생명을 얻으신 분이 아니시고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은 그가 스스로 계심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살아계시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2]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이것은 시 104: 2의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와 에스겔 선지자가 빛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겔 1: 4)과 비교될 수 있다.
* 겔 1: 4 -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 그것이 그의 거룩이며 그의 영광이다.
그는 이 세상에 거하는 사람들과 질적으로 다르시다. 그는 이 피조세계를 초월해 저 하늘 높이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의 빛은 그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이 세상은 유한적(有限的)이고 불완전하지만, 그는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그의 빛은 또한 그의 도덕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는 도덕적으로도 무한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진실하신 하나님, 곧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분이시다. 사람은 그의 초월하시고 완전하신 영광 앞에 감히 가까이 나아가지 못한다.
3]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이것은 출 33: 20-23과 요 1: 18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와 요 4: 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
헬라 철학에서도 이러한 신(神)의 불가시적(不可視的)개념을 찾아 볼 수 있으나(Hanson), 신약에 언급된 하나님의 불가시적 개념의 연원은 구약 히브리 사상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으신 자이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다.
* 요 4: 24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세상에서 물질들은 대체로 볼 수 있다. 물론, 공기나 전기나 전파같이 볼 수 없는 것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영은 우리가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영은 전기나 전파같이 비인격적인 것이 아니다.
영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영이시다. 그러나 그는 또한 무한하시고 완전한 영이시다. 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람에게 참된 복이요 영원한 생명이다.
4]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대부분의 송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지만 여기서는 '존귀와 권능'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이것은 15절의 '주권자'라는 말과 잘 조화를 이룬다. '아멘'은 영광송의 종결을 나타낸다(1: 17).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자족하는 삶을 살자.
우리는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돈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고 버리고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경건하자.
우리는 그 대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즉 성도다운 경건함과 지식과 도덕적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셋째, 선한 싸움을 싸우자.
우리는 마귀의 시험과 대적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한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져서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과 기도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 영생을 얻자.
우리는 신앙생활의 목표요 우리의 소망인 영생을 반드시 취해야 한다.
영원하신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이 복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의 죄를 다 씻으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로 주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영광스런 새 하늘과 새 땅의 복되고 영원한 삶을 다 받아 누려야 한다. 이것이 모든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표요 복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