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는 본문을 붙들고, [참된 목자] 강해의 첫 번째 시간, **'자기를 위한 삼감(Take Heed to Yourselves)'**이라는 주제로 여러분의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자 합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저와 여러분의 뼈를 깎아내는 거룩한 수술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강단의 위선 경계: 죽은 자가 어찌 생명을 잉태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매 주일 강단에 올라 영원한 생명과 천국, 무서운 지옥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이 두려운 주님의 경고가 오늘 우리의 귓가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강단에서는 천국을 향해 가라고 소리치면서, 정작 목회자 자신의 삶은 세속의 욕망과 지옥을 향해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역의 크기나 교회의 규모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증명해주지 않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대적인 것은 외형적인 사역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엎드려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의 공급과 충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공급과 충만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설교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7)
위대한 사도 바울의 이 탄식과 거룩한 두려움이 오늘 우리 강단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남의 포도원을 가꾸느라 정작 자신의 포도원을 허물어뜨리는 끔찍한 위선에서 돌이키십시오.
2. 구원의 확신과 영적 전투: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자의 비극
형제들이여,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십시오. 당신은 진정으로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편 51:10, 13)
다윗은 자신의 심령이 먼저 정결케 된 후에야 비로소 죄인들에게 주의 도를 가르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가 회심을 설교하는 것만큼 교회에 치명적인 독약은 없습니다. 복음의 영광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가 어찌 영혼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피 토하듯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사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양 떼를 노리기 전에 먼저 목자를 쳐서 흩어버리려 합니다. 강단에 서 있는 우리가 바로 사탄의 제1표적입니다. 우리가 교만에 빠지거나 은밀한 죄에 무너지면, 양 떼는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삼가라'는 말씀은 곧 피 튀기는 영적 전투의 최전선에 서라는 사령관의 명령입니다. 매일 아침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불꽃 같은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벌거벗은 영혼으로 서십시오.
3. 연구와 기도의 일치: 말씀의 방망이로 내 자아를 먼저 부수십시오
우리는 교회를 진리 위에 굳게 세우기 위해 신학을 연구하며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지적인 탁월함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8:1)
차가운 머리만 있고 뜨거운 가슴이 없는 신학은 영혼을 질식시킵니다. 서재에서 얻은 신학적 지식이 교만이 되어 성도들을 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예레미야 23:29)
목회자의 지식은 반드시 무릎의 기도로 녹아들어, 그 진리의 방망이가 양 떼를 치기 전에 **'나 자신의 굳은 자아'**를 먼저 산산조각 내야 합니다. 내 심장을 관통하여 눈물로 흘러나오는 말씀만이 생명력이 있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10)
가르치기 전에 먼저 율법을 '연구'하고, 내 삶에 '준행'한 에스라의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양 떼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십시오. 설교를 작성하며 울고,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무릎으로 먼저 우십시오. 영적 권위는 오직 그 눈물의 지성소에서 탄생합니다.
4. 회개와 거룩한 결단: 심판대 앞에서 결산할 날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제 모든 변명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진실하게 엎드립시다. 시대의 어둠을 탓하지 마십시오. 강단이 살면 교회가 살고, 목회자가 통곡하면 성도들이 회개합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전서 4:16)
자신을 살피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을 결단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강단을 생계 수단으로 여겼던 얄팍함, 영혼보다 성장의 숫자에 마음을 빼앗겼던 우리의 무서운 우상숭배를 철저히 찢어발기며 회개합시다. 우리의 유일한 부르심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목숨 걸고 보살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드로전서 5:2-4)
목자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문을 열고 다시 오시는 그 두렵고 영광스러운 날! 주님은 교회의 크기나 건축물의 화려함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네가 참으로 나를 사랑하여 내 양을 먹였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날에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 오늘 당장 영적인 무덤에서 걸어 나오십시오. 자기를 삼가고, 거룩함으로 옷 입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