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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충단공원의 추억
청담/ 송 일 호
남산 위에 는
KBS 송신탑이 서울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책가방을 둘러멘 까까머리 촌놈
장충단 공원의 나무벤치에 한쪽 발을 올린 체 심호흡을 한다
서울을 잡아야지
내가 서울을 휘어잡을 거야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소롯길을 오른다
5척 단신의 몸에 힘줄이 돋는다
뒤를 따르던 부하 몇 녀석
일호야!
천천히 가자
숨을 몰아 쉰다
푸르기만 한 녹음 속에
설익은 꿈을 매달며 시간을 누비던 어젯날의 기억
놋 재떨이를 울리던 아버지의 곰방대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래
서울은 내 거야
그러나 서울은 나를 외면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격언 같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7 순을 넘기고 전주를 거쳐 충청도의 천안으로 귀향하였다
태조산 기슭에 앉아 가끔씩 장충단 공원을 생각해 본다
지금도 KBS 송신탑이 서울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장충단 공원의 나무벤치는 거기 그 자리를 지킬까
이마에 깊게 자리한 주름살처럼 그 밴치에도 나무주름이 잡혀 있지나 않을까
대중가요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안개는 어떤 색일까?
2, 톱니바퀴 속의 삶
송 일 호
내가 몸담아 있는 기업의 CEO가 병이 들었다 ,
신체는 건강해도 세상이 어수선하다고 투덜 대다가
중병이 들었다.
정치에 오염되고 나서 회사까지 감염이 되었고
종업원이었던 나도 오염되었다
공장의 기계는 여전히 맞물려 돌아가고
내 삶의 톱니 바뀌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전기세를 못 내자 기계가 멈추었다
내 급여도 건너뛰게 되고 내 인생도 휴식기를 맞게 되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었던
욕망의 화신이 물에 젖어 해우소의 휴지로 가는 순간이다.
누구를 탓하랴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가을햇살은 여전히 따스하다.
중병에 감염되었던 회사의 대표는 여전히 와병 중인지 소식이 없다
톱니 바뀌는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녹이 쓰는 것인가
이제
기름을 치고 세제를 풀어 닦고 조여도
돌아가지 않는다
내 청춘도 돌아오지 않는다..
3. 하던 데로 하세요
청담/송일호
40년 직장에 명퇴를 하고
후회 막급했던 남편의 의무 태만을 사죄하고 싶었다
아내의 시잠바구니를 들어주고
때로 설거지를 대신하면서
아내에게 못 다했던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때로 그녀의 동창회에 운전기사가 되어 주고
백화점에서 옷을 골라 사 입히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석 달
아내는 정색을 하며 나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여보! 그만했으면 되었으니
하던 데로 하세요
4. 불알친구들의 변태
청담/ 송 일 호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 살다가
배움의 밑천이 달려 지역 향교에 나갔다
명륜당 학장이 되어 제문을 읽다가
어려운 한자를 만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물 우물 하며 대목을 넘겼는데
누구도 그런 모습을 개의하지 않았다
무식이 상통한 것인가?
성공했다는 불알친구들의
무식은 나보다 더한데
그들은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학급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친구는
맨날 친구들에게 점심을 얻어먹으며
말을 한다
저승 가는 데 입는 수의에는 포켙이 없다고..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공부 못하는 자식들 얼굴을 보며
함께 지켜보았던 불알친구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점심을 얻어먹고사는 놈이 되느냐
고급 승용차를 타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 점신을 먹고사는 놈이 되느냐
오늘도
태양은 여전히 동녘에서 뜨고
서녘으로 진다.
5. 시인을 꿈 꾸며
청담/송 일 호
꿈을 꾼다는 일은 참 두려운 일이다
한 줄 시구(詩句)에 절명하고
시구 한연에 절절매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는 100세에 시집을 내고
100만 부를 팔아 냈다는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심은 강 건너 불이 되고 시향(詩香) 은 먼산의 아지랑이다
깨면 더 허무할 것 같아
가슴속 등촉의 불을 끄지 않으려 안 깐 힘을 쓴다
사랑을 배우고
피조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
왜 진즉 귀의하지 않았던가
별빛을 아우르며
시구의 노매드가 되어 봐야겠다
눈물이 솟고 웃음이 파노라마가 되는 순간의
내 모습을 꿈꾼다.
상실한 자아를 찾아 눈빛에 심지를 돋운다
사랑아! 내 사랑아!
추천사
-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젠 송일호 시인이라고 불려지겠지만 아직은 덜 여물었다고 전하고 싶다
충남 천안은 도시와 농촌의 복합지역으로 50여 년 전에는 지금의 천안역 부근 외에는 거이 전부가 시골이었고 농촌이었다. 그는 송 씨 가문의 둘 때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부터 상경유학으로 푸르른 이상과 불타는 욕망을 지닌 야심가적 자질을 키워 냈다
그의 처녀작 "장충단 공원의 추억에서 본 그림이다. 꿈은 이상에서 현실로 낙하하면서 그는 엔지니어 가 되었고 식 품회사의 중역이 되어 고향을 떠나 예향이며 한지문화의 고향이라는 전주에서 젊은 시절을 착지했다. 회사의 부침 속에서도 회사를 지켰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호연 지기를 키워 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귀향을 이루고 고향은 변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뼈를 묻어야 하는 조상의 역사가 숨 쉬고 지켜야 할 어제였다. 인간상실의 시대 속에서도 예의와 범절에 대한 선비문화가 몸에 밴 탓에 그는 지인들과 더불어 목천 향교에 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유학을 통하여 사서삼경을 접하고 장의가 되고 명륜 학장으로 실사구시의 지혜를 전하는 사표가 되었다.. 詩를 만났고 삶의 쾌적에 문학이라는 명제를 각인시켰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헤어나 왜 사느냐? 어떻게 살아 내느냐? 는 삶의 알파와 오메가를 규명하는 철학적 명제를 문학이라는 형이상학적 장르로 접근한 것이다. 모두 다 사랑할 수 있는 시인을 꿈꾸며 해학 속에 촌철살인의 지혜를 찾고 진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유심히 바라보는 노매드가 되어 가는 모습이다 살며 사랑하며 보내는 시간을 조탁하고 떠오르지 않는 詩句 를 찾아 고민하는 시인 반열에 올랐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감히 그를 덕향문학 13호의 신인상 후보로 추천한다.
데스크에 올라와 있는 작품들 중 다섯 편을 선택 천료한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시인의 자서전 에는 자신의 어제와 성장과정이 시적 통찰력에 의해 조명되어 있다. 첫 작품 장충단 공원의 추억 속에는 그의 야심과 소년적 야망이 꿈틀 대고 있다 대장기질 속에 그를 따르는 부하라고 불리는 친구들 (과감한 단어 채용)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들에서 우리 자신들의 어제를 익히게 도 하지만 詩가 갖는 기승전결과 전개 과정은 프로 수준이다. 결구(結句),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안개 색깔은 어떤 색일까? 시인 다운 발상에 박수를 보낸다
둘째 작품 "톱니 바뀌 속의 삶"에는 중년과 장년의 깨달음이 엿 보인다 ,
이제
기름을 치고 세제를 풀어 닦고 조여도
기계는 돌아가지 않는다
내 청춘도 돌아오지 않는다.. 비유가 가슴을 찡 하게 조여 온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내청춘의 한이 여기에 있다
셋째 작품 "하던 데로 하세요"는 세상을 살아본 사람들이면 누구도 한 번쯤 웃고 넘어가야 할 해학이 숨 쉰다.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리듬을 갖고 있었다 남편의 퇴직과 함께 아내의 삶이 균형을 깨어지고 그리고 남긴 절규다
네 번째 작품 "불알친구들의 변태"에서는 세상의 변화가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들이 추구해 온 삶의 양태 속에 어느 유형의 삶이 성공적이냐?라는 의문 부호를 던진다 100세 가 넘은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한이야기가 기억난다. 강의 요청을 받아 서울에서 3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에서. 초등학교 시절 지지리도 못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재벌 수준의 부자가 되어 그 먼 거리에서 최고급 승용차로 서울까지 태워다 주더라는 것이다. 네가 참 부럽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 친구는 정색을 하며 내 가진 것 다 줄 테니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 1/10 만 넘겨주라. 삶에 정답은 없다. 명답은 더러 있다.
다섯 번째 "시인을 꿈꾸며"에서는 세상을 살아오며 간과해 온 자화상을 보여 준다. 어떤 시인도 등단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선 보인 작품들은 자신의 겪은 역사를 통해 작품을 엮어 내는 경향이지만 송일호 시인처럼 분명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것도 괞찮겠구나?라는 생각 을 해본다. 삶에 새로운 서광이 문학을 통해 재조명되기를 기대해 본다. 총평은 희망적이다. 조언은 서둘지 마라. 햇빛과 바람은 어는 누구 편이지 않아.. 100세 시인 시바타 토요 여사의 시구다.
작가 약력
49. 년. 천안 산
부인 변재숙 슬하 1남 1녀
광운전자공고 졸
방통대 법학과 졸
서주산업 공장장
목천 향교 명륜대학장.
덕향문학 목요 문학방 수료
등단 소감
인생유전의 골목어귀에 장승처럼 서있는 자화상 , 70 생애를 살면서 아직 삶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장승이다. 천안역 부근 남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 교훈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워라였다 나는 착하지도 참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해 본 적도 고민의 명제도 되지 않았다. 촌놈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천안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 유학을 하면서 만난 서울친구 녀석 둘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무렵 나는 군대를 가야 했고 만기제대 후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 고향을 떠나 있다가 70대 중반에서야 귀향을 하였다 늦깎이 한학공부를 해보겠다고 목천 향교의 장의가 되었고 명륜대학장이 되었다. 하나 나에게 학문은 밑도 끝도 없는 강 건너 불이었다. 먹고사는 일에 크게 영향이 없지만 일상은 고단하고 바빴다 그 고단한 여정에서 만난 것이 시문학이었다. 은유와 직유를 배웠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고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상당 한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배 아프지 않고 옥동자를 분만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문학의 이해"라는 교과서를 배부받았고 나는 침침한 눈으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밑줄을 그어 가며 시와 수필과 소설 쓰기를 익혀 가며 학창 시절 공부와 지금의 문학강의가 상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것도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와주신 장성균교수의 훈수와 최기복 교수의 열강에 빠져 들면서 신인대상에 도전장을 냈다. 시가 먹고사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나 정신영역의 영양소라는 것만은 인정 안 할 수가 없었다
트롯의 노랫말이 시가 되기도 하고 침묵이 감동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경지에만 이른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나의 오기를 자극했다 그 결과 나는 신인상 수상 대상자가 되었다. 추억의 책장을 펼치면서 나 자신의 역사를 반추하다 보니 경건 해지고 자아반성 속에 휘몰려 오는 옛이야기 들은 모두가 시제가 될 수 있었다. 인생 이모작을 위해 이가을 모를 심어야겠다. 사랑과 눈물을 배워야겠다 , 만남과 이별에 환호와 슬픔을 통해 삶의 질곡을 헤매기도 하고 탈출을 시도해 보기도 하자. 이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모멘텀이 되는 기회다. 시는 감정의 노출이 아니라 감정의 세련이라고 말씀하신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시를 통해 남은 여생을 세련되게 하겠습니다 , 고독을 줄길줄 알고 말하기보다 글을 쓰고 당나귀 귀가 되어 자신의 유익보다 보편적 가치를 향해 듣기를 생활화하겠습니다 , 덕향문학회의 문우 여러분과 지도교수님,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한평생 무탈하게 부도를 지켜온 아내 변재숙 여사, 아들 성권이 딸 선아 많이 사랑한다. 부족한 남편 모자라는 아버지가 망발했다고 손가락 질 하지 말고 함께 소통하지 꾸나. 물 설고 낯선 타국으로 시집와서 손자 요찬이와 손주 시원이를 낳아주고 키워준 며늘아기 왕운아! 고맙다 외손자 이강현! 외할아버지가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단다 사랑한다. 복숭아 나무미 아래서 도원결의는 안 했지만 평생 우정 하나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할 친구 명환 이에게도 소식을 전한다.
첫댓글 시인의 자화상 그속에서 숨쉬는 젊은날의 초상, 문운을 기원 해보며 등단의 영예가 송일호 선생님에게 수여 되기를 기원 합니다.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請談 /송일호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