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딸, 나의 아들들에게.
너희가 그 작고 꼬물거리는 생명을 품에 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 한구석이 참으로 애틋하면서도 대견함으로 벅차오른단다. '내가 이 귀한 아이의 엄마가 되다니, 아빠가 되다니.' 그 거룩한 두려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너희의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를까.
하지만 사랑하는 얘들아, 두려워하지 마렴. 하나님은 결코 너희를 홀로 두지 않으셨단다. 오늘 너희에게 전할 제2강은, 바로 너희의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가볍게 하고, 너희의 가정을 가장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는 놀라운 진리에 관한 이야기란다.
자, 엄마의 눈을 맞추고 우리의 마음판에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새기며 시작해 보자꾸나.
제2강. 부모의 거룩한 부르심과 위임된 권위 (The Parent's Role)
사랑하는 얘들아, 너희가 부모가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란다. 그것은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거룩하고 막중한 직분을 '위임'받았다는 뜻이야.
우리가 이 진리를 명확히 깨닫기 위해, 바울 사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엄중하고도 따뜻한 명령을 들어보자꾸나.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로새서 3:21)
이 짧은 말씀 안에 부모가 지녀야 할 권위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단다.
첫째, 부모의 권위는 '내 것'이 아니라 '위임받은 것'이란다.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진리야. 너희는 아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절대 군주가 아니란다. 너희는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자녀를 잠시 맡아 기르는 **'청지기요 대리자'**란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부모는 비로소 두 가지 큰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하나는 내 감정과 기분대로 아이를 억누르는 '폭군'이 되는 함정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아무런 기준도 세워주지 못하는 '나약한 부모'가 되는 함정이지. 너희의 권위는 너희 자신의 능력이나 우월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 자리를 주셨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란다. 그러니 당당하렴. 하지만 한없이 겸손해야 한단다.
둘째, 자녀를 절대로 '노엽게' 하지 말아라.
그렇다면 무엇이 아이들을 노엽고 낙심하게 만들까? 그것은 부모가 일관성 없이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아이를 훈육할 때란다.
어제는 웃어넘겼던 일에 오늘은 화를 내고, 부모 자신의 피곤함 때문에 아이의 작은 실수에 소리를 지른다면, 아이의 영혼은 길을 잃고 분노하게 된단다. 아이는 불공평함을 어른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거든. 부모의 권위가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도구가 될 때,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단다.
셋째, 부모의 진짜 권위는 '조용하고 단호한 사랑'에서 나온단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정말로 권위 있는 부모는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아. 협박하거나, 빌거나, 애원하지도 않는단다.
아이가 마땅히 순종해야 할 올바른 길을 안내할 때, 너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저 조용하고, 평안하며, 단호하게 말하면 된단다. "이것을 하렴", "이것은 안 된단다." 이 짧은 말 속에 사랑과 확신이 담겨 있을 때,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 권위가 부모의 이기심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선하고 안전한 질서임을 느끼고 기꺼이 순종의 자리로 나아오게 된단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너희의 가정에 세워져야 할 질서는 '군대'의 규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통치하는 '평안한 질서'**란다. 너희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앞에 부드럽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렴. 그러면 너희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귀한 자녀들도, 너희의 등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권위를 보며 평안과 안정감 속에서 자라날 거야.
오늘 밤, 아이들을 안아주며 마음속으로 다짐하렴.
"하나님, 이 아이의 진짜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당신의 사랑과 진리를 이 아이에게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 신실한 청지기가 되겠습니다."
어떠니? 부모로서 너희의 어깨에 놓인 짐이 무거운 굴레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운 면류관임을 깨닫게 되었니?
이 귀한 부르심을 마음에 품었다면, 이제 그 사랑의 권위를 가지고 가정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생명력 넘치게 가꿀 수 있는지 다루는 제3강. 교육의 세 가지 기둥: 분위기, 훈육, 생명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겨 보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