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설레는 마음으로
까다로운 질문들1: 안목
인생에서 안목) 분별은 지천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행운을 가져다준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안목 있는 사람이 그 진가를 안다. 안목 있는 사람만이 진흙에서 진주를 줍는다. 안목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절망할 때 희망을 보고 남들이 문제를 붙들고 답답해야 할 때 이미 답을 본다. 안목은 의문으로부터 생겨나 나의 삶에 작용한다.
나는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왜, 어떻게, 안목을 관리하는가?
성경을 읽을 때 생기는 의문들
-언제나 준비하라:
성경을 읽을 때 단순한 낙관과 맹목은 금물이다. 성경에 대한 믿음을 갖고 신봉자가 되어서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을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까다로운 질문에도 성경은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답이 성경 어디에 있는 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것을 찾는 방법을 함께 알아보자.
-창세기의 걸림돌:
과학자들은 우주는 생성되는 데 2백억 년이 걸렸다고 믿고 있다. 창세기의 7일간 천지창조설과 7이란 숫자는 걸림돌이다. 창세기 1-2장의 내용은 다르다. 카인은 문맥상 인류 출현의 세 번째 인물인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 것을 두려워한다.’ 그 사람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노아의 방주 실제로 존재했는가?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고, 인신 제사를 명령하신 잔인한 하느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탈출기와 판관기의 걸림돌:
탈출기의 ‘헤렘 법’에 의한 하느님의 이집트인 전멸 명령과, 여호수아기에서 가나안을 점령할 때 원주민 기브온족을 살려주었다(여호 9장)라고, 호되게 야단치는 내용(판관 2,1-3)이 있다. 잔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하느님을 모습은 걸림돌이 된다.
의문에 대한 해제
-성서의 궁극적 관심:
성경은 과학 서적이 아닌 영성과 신학 서적이다. 하느님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이지 자연과학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이 아니다. 따라서 어떻게 우주가 생성되었느냐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주를 만드셨다”라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기본 정신 사고방식을 배워야 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문화 쇼크를 겪는다고 한다. 성경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성경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 곧 그 시대와 저자의 사고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성경이 논리적으로 읽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사고방식:
인류에게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끼친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희랍)그리스과 히브리)이스라엘인이 있다. 이 두 민족은 사고방식이 전혀 달랐다. 그리스인들은 “어떻게?”에 관심이 많았고 여기서 자연철학이 발달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은 그리스인들이 자연을 보면서 우주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노력에서 얻어진 결과이다. 반면 이스라엘인들은 ‘왜?’라는 물음에 관심을 기울였다. ’왜‘에 대한 질문은 존재와 그 의미를 질문하는 사고방식이다. 하느님은 왜 천지와 사라마을 만드셨지 왜 고통은 있지 이것은 신에 대한 종교적인 사유법이다.
이 두 사고방식의 차이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어떻게‘는 자연과학도를, ’왜?”는 종교인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으면서는 어떻게 보다 왜에 집중해야 한다.
-전승문학의 특징
성경은 저자 문학이 아닌 전승문학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 말은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썼다는 것을 뜻한다. 조금씩 전승되어 쓴 것이 나중에 편집되어 묶이고 성경으로 선포된 것이다. 최초 사람의 영감에서 최초의 기록까지 걸린 시간을 가늠할 수도 없다. 수집 기록 묶인 기간만 해도 1,000년에 이른다.
성경은 집필 과정에서 ’편집‘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편집이 시작되었던 것은 바빌론 유배 생활부터였다. 당시 성경은 다 두루마리에 따로 적혀 있었다. 이 두루마리를 모아 편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와 주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에 최대한 원전을 보존하면서 편집하다 보니 창세기 1-2장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역설적으로 ”진실로 충실하게 기록하였다. 조작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성경이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그 밑바닥에 공통 분모가 있다. 얼마나 대단한가!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책상을 만들자라고 하고 설계도 주지 않고, 몇 사람에게 ”너는 다리를 만들어 와라 너는 서랍을 만들어 와라, 너는 책꽂이를 만들어 와라, 너는 책상 판을 만들어 와라“ 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고서야, 책상이 책상이 나올리 만무이다.
그런데 성경은 기막히게 책상 하나가 만들어진 격이다. 성경이 꼭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음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일관성 내지 통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 아니고서는 기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경의 공통 분모 즉 일관성, 통일성이란, ’하느님의 존재와 그 하느님 사랑에 의한 구원의 역사‘이다.
<안목>
스승은 제자에게 희한하게 생긴 돌을 하나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했다. 제자는 먼저 야채 가게에 갔다. “이 돌을 드리면 내게 무엇을 주겠소?”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예쁜 돌이네요. 배추 두 포기를 주겠어요” 이번에는 정육점으로 들어가 값을 물었다.” 참 희한하게 생긴 수석이네요. 소고기 다섯 근하고 바꿉시다.” 그다음 보석상을 들렸다. 유심히 살펴본 보석상 주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귀한 보통 귀한 보석이 아니네요. 우리 집에 있는 거 다 팔아도 이것을 살 수 없어요.”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스승님께 돌아와 자초지종을 보고했더니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알겠느냐? 보는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석도 한낱 돌멩이로만 보이는 법이다. 무엇이건 그 가치를 아는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드러나게 되어 있지. 결국 귀한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라.”
안목을 지니면 흙 속에서 진주를 건져내고 상식에서 진리를 찾아낸다. 진정한 안목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0518;AM 10:25
출처:차동엽, 행복코드 1 (꿈의 성취를 통하여); 위즈앤 비즈. 26-35p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장익 주교님께서 노틀담 수녀회 1993, 1996년 두 차례 본원에 오셔서 성서백주간 소개를 해주셨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참석하지 못하였다. 1997년 본원에서 성서백주간 연수가 있어 참석중인데 오빠가 뇌출혈로 쓰러져 장례를 치르느라 또 비껴갔다. 한심한 것은 도무지 성서 백주간에 무지하니...‘아쉬운 줄도 아까운 줄도’ 몰랐다.
그러다 2010년 백주간 사무실 소임중 직접 해 볼수록 깜짝 놀랐다. 전통을 찾아보니 도르즈 신부님의 백주간은 12세기 귀고 2세, 6세기 중반의 베네딕도 성인의 성경독서법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보석으로 치면 원석!
성서백주간의 진가를 아는 데 오래 걸렸다. 나의 무지와 인연의 지각 때문이다. 더딘 늦은 안목이지만 불행중 천만다행!
차동엽 신부님의 책을 읽으며 성경 독서에 성서백주간과 깊은 연관을 느껴 개인적 소회의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좀 과하다고 여기시는 분들은... 저의 개인적 소견이니 너무 불편해하지 마시옵소서!
-성서백주간에 대한 반 안목: 길다.힘들다.어렵다.강의가 아닌 수준이 낮다.
=길다:연구나 비교해보면 성경 프로그램중 가장 짧다. 121주 2년반이면 마친다
=힘들다: 바이올린 이론 아무리 들어도, 직접 연주로 훈련하지 않으면 악기 치가 된다.
인생만사 다 직접 해봐야 내 것이 된다.(도움책 18p)
=어렵다:한글만 읽을 줄 알고 찬찬히 정성껏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 대부분 이해 된다. 궁금증에 대한 답들은 본문 앞과 뒤 그리고 다른 텍스트에도 흩어져 있다.
=수준낮다:백주간은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스타 강사나 전문가들도 대부분 복습(본문을 주의깊게 보고, 궁금한 부분 이해), 묵상(와 닿는 부분)을 정리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