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의 구성을 간략하게 살펴두어야 한다. <벽암록>은 내용으로 볼 때 크게 수시, 본칙, 송으로 나뉘며, 본칙과
송에는 각각 착어와 평창이 따라붙는다. 그러니까, “수시”, “본칙과 본칙에 대한 착어·평창”, “송과 송에 대한 착어·평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본칙과 송은 설두의 작품이며, 수시와 착어와 평창은 모두 원오의 작품이다. 구성은 조금 복잡한 편이지만, 형성사를 살펴보면
구성이 좀더 명료하게 파악된다.
원오가 <설두송고백칙>을 제창한 내용이 바로 <벽암록>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설두송고백칙>은 설두가 <조당집>·<전등록> 등 옛 어록에서 공안 백칙을 가려뽑고 각
칙마다 송을 부친 것이다. 그러니까 <설두송고백칙>은 옛 공안 백칙(“古百則”)과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오는 그
백칙(본칙)과 송에 각각 착어와 평창을 부친 것이다. 그리고 수시는 머리말 격으로 각 칙의 앞에 온다. 이 모든 구성물을 합해놓은 것이 바로
<벽암록>이다:
<벽암록>의 구성도. <설두송고백칙>은 설두가
<조당집>·<전등록> 등의 옛 어록에서 공안 백칙을 뽑고 거기에 송을 부친 것이다. 원오는 <설두송고백칙>의
백칙과 송을 제창하였는 바, 그 내용이 바로 백칙(본칙)에 대한 착어와 평창, 그리고 송에 대한 착어와 평창이 된다. 이를 제자들이 기록하였다.
수시는 원오의 글로 각 칙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벽암록>의 내용을 형성사에 따라 구분하면
“본칙(고백칙)”, “송”, “수시·착어·평창”으로 나눌 수 있으며, 편집 순서에 따라 구분하면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으로 나눌 수 있다. 각 구성물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수시, 본칙, 송의 기본내용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착어는 원오의
촌철살인의 반어와 역설이 주 내용을 이루고, 평창은 고사의 배경이나 인물 소개, 간략한 설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암록>의 맨
앞에 실려 있는 보조의 서는 바로 이러한 형성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극한 성인의 명맥, 역대 조사들의 대기, 뼈를 바꾸어놓는 신령한 처방, 정신을
기르는 오묘한 술법이여! 저 설두선사께서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는 뚜렷한 안목을 갖추시어 바른 법령을 이끌어내면서도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시지
않으시며, 부처를 단련하고 조사를 담금질하는 집게와 망치를 손에 들고 선승이 자기 초월에 필요한 요점을 말해주셨다. 은산 철벽이니 뉘라서 감히
이를 뚫을 수 있으리요. 몸뚱이가 쇠로 된 소를 무는 모기와 같아 입질을 할 수 없다. 대종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깊고 미묘한 이치를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불과 원오 스님께서 벽암에 계실 때 수행하는 이들이 잘 몰라 이 미혹을
깨우쳐주실 것을 청하니, 노장께서 이를 어여삐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어 저 깊은 밑바닥을 파헤쳐주시고 깊은 이치를 드러내어 명백하게 딱
가르쳐주셨으니, 이것이 어찌 알음알이를 가지고 한 것이겠는가? 백 칙의 공안을 첫머리부터 하나로 꿰어 수많은 조사스님네들을 차례차례 모두
점검했다.
— <벽암록 上>(장경각 1993)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