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공개된 장소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되고, 낯선 사람을 보면 신고하라고 교육 받는 이들이다. 적들의 한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 가운데 늘 적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경계를 푸는 즉시 건국 이후로 쌓아 올린 수많은 사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는 그런 나라.
바로 이스라엘이다.
크라브 마가는 이렇게 생존이 매일의 과업인 국가에서 탄생했다.
헝가리 태생의 레슬러이자 복서 이미 리히텐펠트(Imi Lichtenfeld)는 터프하지만 다정한 동유럽의 운동선수였다. 나치가 나타나 그의 민족을 태워버리기 전까지는. 나치의 대량학살극에서 살아남은 그는 이스라엘이 세워지고도 계속되는 피의 역사 속에서 그의 민족이 살아남길 바랐다.
그는 자신이 배운 테크닉에 더해 세상의 모든 격투기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생존술 크라브 마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크라브 마가는 존재의 근원 자체가 '살아남게 하는 기술'이었기에 우아하고 예술적임 움직임도, 그럴싸한 철학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생존, 생존, 생존, 그것만을 고려할 뿐이다. 이 생존의 기술은 오랜 시간 피의 역사를 쌓아 올렸다. 먼저 허가 받은 살인자 집단 모사드(이스라엘 정보부) 요원들의 무기가 되었다. 그 후 전 이스라엘 국민이 군인으로서 전투 태세를 유지하는 동안 크라브 마가는 살인술로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크라브 마가 수뇌부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이 살인술을 원했거나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초기 모사드 요원들은 물론 대부분의 이스라엘 군인들은 고학력의 샌님들이었다. 이 샌님들을 격렬한 폭력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준비시키는 기술이 크라브 마가였을 뿐이다. 그들이 크라브 마가를 배우고 난 뒤 어떤 임무들을 수행했든지 간에.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면서 크라브 마가의 창시자 이미 리히텐펠트(Imi Lichtenfeld)의 수석 교관이자 후계자로서 모든 크라브 마가 중 가장 정통적인 계열을 이끌었던 이얼 야닐로프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살인술의 껍질을 벗기로 결심하게 된다. 단순히 잔인한 살인술이라고 하기에는 크라브 마가의 체계는 너무나 세련되고 과학적이고 약자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크라브 마가 글로벌(Krav Maga Global)의 이름 아래 크라브 마가는 '공격자(들) vs 약자'의 폭력적 상황에서 약자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로 발전해왔다.
FBI가 크라브 마가를 요원 교육 시스템에 맨 처음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평생을 ‘범생이’로 살아온 신참 요원들이 몇 개월 후 현장에 투입돼 평생을 폭력 속에서 살아온 야수 같은 사내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크라브 마가는 놀랄 만큼 효과적이었고 결국 CIA를 비롯해 전 세계 특수기관들, 특수부대들이 크라브 마가를 배우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FBI, CIA, 델타포스 등)에게 실제의 폭력 상황은 스포츠나 무술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심판도 규칙도 없고 탐색전도 없었다. 5초 이내에 끝내야 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통제하거나 회피해야 했다. 땀과 피로 빛나는 자랑스러운 승리도, 내일을 위한 패배도 없다. 오로지 살거나 죽거나. 단 두 가지 상황만 존재한다. 규칙과 공방을 전제로 하는 격투 스포츠 식의 대응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뿐이다. 즉 공격자(들)와 바닥을 구르거나 펀치를 주고받는 것은 상황 해결의 실패를 의미하거나 죽음을 부르는 대응인 것이다.
크라브 마가는 우아한 하이킥을 가르치는 대신, 영화 <본 얼터네이텀>에서 맷 데이먼이 그랬듯이 단단한 책 한 권이라도 들고서 무기로 사용하는 대응을 가르친다. 늘 다수를 염두하고 우발적인 상황을 고려한다. 일격필살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속전속결주의와 과적인 실용성이 모든 전문가들로 하여금 크라브 마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오래 지속된 미국의 전쟁과 그 속에서 크라브 마가를 익힌 전문가들의 헐리우드 유입으로 인해서 크라브 마가는 이미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클리셰가 되어 버렸다. 이를테면 안젤리나 졸리도 액션장면을 위해서 무에타이를 수련했다가 호쾌한 액션을 원하는 제작자 측의 요구로 결국 크라브 마가를 연습해 촬영했을 정도다.)
그리고 총, 칼, 몽둥이 모든 무기에 대한 대응법은 물론, 상황 그 자체에 대한 대응법을 가르치는 유일한 체계이자, 일반인도 가능한 수준의 공격 기술로 고수들 혹은 야수들과 맞대응 할 수 있게 해주는 이 놀라운 체계는 전문가들의 현장 경험과 맞닿으면서 더욱 정교화 되어 갔다.
사실 크라브 마가에도 정통과 사이비들이 있다. 군대와 기관 들에서 크라브 마가를 배우고 나와서 자신만의 단체를 만들고 비슷한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크라브 마가의 창시자 이미(Imi)의 공식 후계자는 이얼 야닐로프(Eyal Yanilov)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기관들(FBI, CIA, 델타포스 등)과 손을 잡고 시스템을 정교화하는 작업은 KMG와 KMG 수장 이얼 야닐로프가 해왔다.
바로 이 분이 2012년 4월 20일, 21일 한국에서 세미나를 연다. 국내 최초의 일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상은 일반 시민들이다. (물론 법집행자들도 참여가능하다.)
크라브 마가 글로벌(KMG)은 약자의 자기방어 시스템을 고도화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시민과 전문가 과정을 구분했다.(KMG에는 심지어 어린이 과정도 있다.) 전문가가 위기 상황에서 즉각 총이나 삼단봉을 뽑아 대응/통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전문가 과정이라면 그런 무기 하나 없이도 더 안전하고 빠르게 폭력 상황을 회피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 일반인 과정이다.
장담하건대 매우 새롭고 신선한 시각들이 펼쳐질 것이고, 당연하게도 유용할 것이다.
혹시나 폭력적으로 보이는 시범들 때문에 망설인다면 그럴수록 일단 참여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크라브 마가가 위험해 보이지만, 일체의 시합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안전한 수련 시스템이다. 잔인한 폭력은 가해자들의 의도와 행위 그 자체이지, 당신의 살기 위한 대응책이 아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최자인 스쿨오브무브먼트는 미국의 오리지날 케틀벨 운동 단체 RKC(Russian Kettlebell Challenge)의 한국 디스트리뷰터다. 스쿨오브무브먼트는 지난 11월11일~13일 아시아 최초로 RKC 지도자 과정을 열었다. RKC와 KMG는 서로 협력 관계에 있다. 지도자들의 인적 구성 자체가 꽤 겹치기도 하고 크라브 마가를 위한 KMG의 체력 단련 방식이 RKC의 하드 스타일이기도 하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크라브 마가는 무술을 수련하는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인 것 같습니다.
이거 어떻게든 들어볼려고 지금 스케줄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참석못하면 정말 후회할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