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항구도시인 주문진읍에 자리를 잡은 주문진교회는, 한국 선교1세기를 훨씬 뛰어넘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 교회이다. 1901년에 남감리회 선교사 하디 목사가 배로 원산항을 떠나 이 주문진지역 인근 나루터에 도착해 천국 복음을 전파한 때는 매우 암울하고 참담한 듯했으나, 오늘의 주문진교회는 이 지역의 「구원의 방주」로 우뚝 섰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교회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함께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로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한 시대의 역사를 이끈 위대한 인물일지라도 그 시대의 역사와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러나 말이 잘 통하지 않고 모습이 다른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이 지역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된 지 112년이 흘렀음에도, 주문진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구원의 방주로 이 지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문진교회는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작은 가정에서 1901년에 시작이 되었다. 그로부터 주문진교회는 30여 년 동안 남감리회 원산지방에 소속되었으면서도 담임자 없이, 일제의 통치하에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교회는 끈질기게 작은 신앙공동체로 존재하며 신앙을 지키었다. 드디어 1930년 한국지역 선교를 담당하던 미감리회와 남감리회가 합동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한국인 목사 양주삼 총리사를 대표자로 선출)로 출발하면서 주문진교회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즉 1932년에 교회를 전담할 담임전도사가 파송되면서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교회는 1945년에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점점 신앙의 터가 다져졌고, 1960년대를 맞으며 정착된 목회가 시작되었다. 또 주문진교회는 22세의 젊은 처녀의 몸으로 이 지역에서 평생 동안 몸을 바친 쿠퍼 선교사의 기념예배당을 건축하기에 이른다.
주문진교회의 역사는 크게 6장으로 구분하였다. 제1장에서는 주문진교회 설립이전의 시대에 감리교 한국선교와 동해안지역 선교 상황을 다루었다. 제2장에서는 주문진교회가 신앙공동체로 시작한 자급 시대라 할 수 있는 그 시대의 지역상황과 주문진교회가 속한 남감리회 원산지방의 초기 선교사이며 주문진지역에 복음을 전파한 하디 목사와 쿠퍼선교사의 선교활동을 정리하였다. 제3장에서는 1930년대에 주문진교회가 구역으로 다져가는 정립시대를 통해 제1차 성전이 건축되고, 일제에 항거하던 권성집 담임목사가 옥고를 치루며, 해방의 기쁨과 함께 교회는 큰 상처를 안게 되는 아픔도 안게 되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 제4장에서는 한국전쟁으로 당한 고난을 이기고, 1970년대에 정착하기까지의 역사를, 제5장에서는 부흥과 성장의 균형을 이루어가는 1980년대와 1990연대의 생생한 교회사역을 보게 된다. 끝장에서는 변화로 다져가는 도약의 시대인 새천년과 더불어 2000년대의 교회모습과 활발한 활동을 보면서도 교회의 진통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교회는 교회창립100주년 기념행사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지내다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교회창립100주년기념선교 행사와 교회역사를 정리하게 된다.
본인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주문진교회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아쉬움과 감사의 마음이 엇갈리기도 했다. 초기의 역사적인 자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아쉬움은 어느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주문진교회는 초기의 역사자료를 잘 보관하다가 교회를 신축하고 이전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자료를 손실하게 되었기에 그 아쉬움이 더욱 컸다. 그럼에도 담임목사의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 그리고 교회역사편찬위원장인 정창모 장로의 교회역사 자료 수집에 대한 넘치는 열정 때문에 교회 역사 정리에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편집위원 여러분과 자료를 제공해 주신 박영식 장로님 그리고 사무를 담당한 홍경아 선생의 많은 협력에 감사할 뿐이다.
2013년 11월
집필자 全 成 星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