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중 김효정 선교사의 2024년 6월 이야기
캘거리는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고산도시(?)입니다. 그래서인지, 6월이라는 계절에 무색하게 여전히 찬 바람과, 아침저녁으로 낮은 기온에 긴 옷을 꼭 챙겨입어야 합니다. 캘거리는 최근 인구유입이 증가하고 있어서, 매일 새 집을 지어대느라 도시 전체가 건설현장과 같습니다. 특별히 저희는 캘거리 북쪽지역에 살고 있는데, 북쪽으로 도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입국한 한국 청년들도 이곳 캘거리에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1. 김현중, 김효정, 김예훈, 김예일의 이야기들....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 가정은 지난 12월에 런던 온타리오를 떠나 캘거리 알버타 주로 이주했습니다. 그동안 영주권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아서, 늘 저희 가정의 숙제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1년 안에 영주권을 마무리 하고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두 아들의 경우에도 영주권자와 비영주권자의 학비가 10배정도(500만원과 5000만원) 차이가 나는 데다, 영주권자에게는 학비 대출 등의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영주권에 대한 필요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었습니다. 캘거리에 가면 뭔가 새로운 희망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이곳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에 AOS(주 정부 영주권 진행 프로그램)가 일시 중단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직장도 이제 새로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LMIA(영주권 지원을 위한 노동허가서)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온타리오 보다 생활비가 저렴하리라는 예상도 크게 어긋났습니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민자들이 대거 캘거리로 몰려 오면서 집값과 월세도 많이 올랐고 그 덕분인지 일자리도 줄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아서 경제도 얼어붙은 상황입니다. 저는 배달을 주로 하는데, 주차장에서 주문을 기다리다가 그냥 집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오랜 시간 차에서 앉아서 주문을 기다리다 보니 건강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둘째 예일이는 지난 6개월 동안 홀로 런던 온타리오에서 남은 학업을 마무리 했습니다. 방학을 맞은 예일이의 짐도 정리하고 캘거리로 데려오기 위해 저는 밤 1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아침 6시에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4시간 비행기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와서 그런지 아랫배가 묵직하고 팽창하는 거 같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식은 땀이 나고 복통이 너무 심해서, 급히 런던에 있던 동생에게 연락했고, 그 사이에 길바닥에 누워서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증상은 좀 가라앉아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하고 시간이 지나 동생과 아들을 만나 동생집에서 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복부에 가해지는 팽창감과 아랫배와 등까지 아프기 시작해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실에서도 피검사를 하고, 3시간 이상을 대기한 이후에야 의사를 만났는데 증상을 들어 보더니 '게실염' 같다고 합니다. 일단은 항생제를 처방 받았지만, 심해지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몇주동안 아침마다 아랫배가 아프고, 복부 팽만감이 심해서 힘들었는데, 장에 생긴 염증이 문제였던가봅니다. 여하튼, 항생제를 먹으면서 다시 3일간 달리고 달려 3,000킬로미터를 미국 국경을 통과해서 캘거리에 잘 도착했습니다.
저는 지난 3월부터 캘거리 에벤에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조성호 목사님의 권유로 중고등부와 청년부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하겠다고는 했지만 오랜 동안 한글보다 영어로 자료를 준비를 해 왔고, 한글 사역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속 한 귀퉁이에 처박아둔 자료들을 꺼내야만 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파트 타임 사역자이지만, 캐나다에 이주해 있는 한인 학생들과 청년들을 이해하고 공부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자료들을 준비하고 매일같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있습니다. 캐네디언도 한인도 아닌 것 같은 그들을 대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래된 기억속에서 소중한 자료를 하나씩 꺼내어 복구하는 일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캘거리의 생활은 첫째 예훈이에게도 도전의 나날들입니다. 런던에서는 학생이었던 그의 신분이 이제는 직장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루는 예훈이가 저에게 와서 “하나님이 있기는 한 거냐고?” 따집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잘 다니는 학교를 중단하고 캘거리로 가면 영주권도 해결이 되고 취업도 된다고 해서 왔는데 영주권 문제도 힘들어지고 취업도 몇 달째 못하고 있는데 그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는 겁니다. 선교지에서도 말은 못했지만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럴때마다 하나님이 있긴 한건가 싶었나 봅니다. 선교사로, 목회자로 주의 일을 한다고 열심히 사는 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 길고 그 고통이 자녀들인 자기에게도 주어지는지 의문이었나 봅니다. 그 때 준비하던 주일 설교 주제가 하나님이 계신지? 계시면 어떻게 알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자신의 불만을 다 털어 놓는 예훈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했습니다. 교회에서는 학생회장이었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과 불만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던 아들이 엄마와 같은 베이커리에 취업을 했습니다. 캘거리에 와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나마 취업이 되어서 몸은 고단하지만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에도 새벽에 일을 마친 후에 예배에 참석하다 보니, 예배 시간 내내 졸고 있는 날이 많지만, 아빠가 맡고 있는 학생회 예배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 번은 예배가 끝난 후, 월급을 받으면 아빠에게 선물을 하겠다고 합니다. 설교시간에 학생들에게 퀴즈를 내고, 답을 하는 것을 보더니 화이트 보드를 기증하겠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숫자에 맞추어 작은 화이트 보드를 사주고, 거기에 답을 적거나, 간단한 메모의 용도로 사용하라는 겁니다. 최저시급을 받고 있는 예훈이의 월급이야 뻔한데도, 아빠의 사역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주문한 화이트보드로 학생회 모임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2. 캐나다, 그리고 필리핀
캐나다에 와서 치열하게 살면서 하루 하루 먹고 살기에 바빠서 늘 마음에는 있었지만 언젠가는 해야지 했던 일.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필리피노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나씩 실천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캘거리에 오니 사방 팔방에 필리피노들이 많고, 매일 스치며 만나는 이들이 필리피노들인데 내 코가 석자다 보니 어떻게 어디서부터 만나야 할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Opendoor Filipino Church를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목사님께 문자로 보내니 스팸인줄 알고 경계를 하는 거 같아서, 이메일을 통해 구구절절 보내니 바로 전화가 옵니다. 그래서 드디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엘머 목사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리핀 사역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을까 고민했던 과제가 조금은 해결이 되는 듯 했습니다. 또한 고난주간에는 엘머 목사님의 초청으로 필리핀 교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며 교제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필리핀 교회들도 한인교회들과 마찬가지로, 1세대들은 필리핀에 대한 향수와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1.5세대나 2세대들은 그저 필리핀계 캐네디언들로, 필리핀에 대한 향수도 크지 않고 그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편해 보였습니다.
현재 출석하고 사역하는 캘거리 에벤에셀 교회에서 필리핀 선교지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필리핀 선교 물품 보내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2주간 귀한 마음과 헌신을 담아 선물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교지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물품들을 모아주신 에벤에셀 교회와 조성호 목사님께 너무도 감사 드립니다. 이 박스는 오는 7월 쯤이면 필리핀에 도착해서 새학기를 맞는 학생들과 부모님들께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3. 필리핀 동산 교회는
4월부터 장학금을 다시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후원자가 다 채워진 상태가 아니지만, 어렵더라도 장학금을 후원을 계속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1월부터 재정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교회 월세, 목회자 사례비, 장학금 등등 모든 지원을 일시 중단했었던 상태였습니다. 우리 가정이 한달 한달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캐나다 정부에 세금 신고를 하니 수입이 적다고 세금 환급금이 꽤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밀린 월세, 목회자 사례비, 장학금까지 보내었습니다. 3개월간 버텨준 교회나, 목사님, 리더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4. 간호학과 1학년 과정을 잘 마친 레이나
레이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속에서도 꿋꿋이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에서 도너츠를 팔며 학비를 벌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형편과 사정을 듣고 후원을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명순 권사님께서 레이나의 1학년 과정의 수업료를 후원해 주셔서 1학년 과정을 잘 마칠수 있었습니다. 권사님 따님도 간호사이셔서 더 마음을 쓰기고 기도도 해주시고 후원도 해주셨습니다. 귀한 후원금 덕분에 자신이 마음껏 공부하고 과정들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남은 학업의 과정도 잘 마칠수 있도록 기도와 후원 부탁 드립니다.
5. 겨자씨 장학금
겨자씨 장학금은, 후원자와 장학생들을 1대 1로 연결하여 후원을 하고 있는 장학금 제도 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 주셔서 지난해에는 약 1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올해는 후원자들이 많이 줄어들어서 6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등록금 전액이나 일부를 지원하고 있고,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매달 3만원의 장학금을 통해 교통비나 학교생활에 필요한 준비물등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6명의 장학생 중에서 지아라, 크리스틴 두명의 학생들만 후원자가 연결 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저희가 개인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인데 많이 어렵습니다.
2024년에도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은 더 많습니다. 다만 기존에 필리핀 동산교회를 후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분들이 계셨지만, 여러가지 상황상 후원을 중단하신 분들이 많아서 새롭게 후원해 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학금 이외에도 매월 교회 예배당 렌트비, 목회자 사례비가 필요합니다. 장학금을 애타게 기다리는 학생들은 점차 늘어가는데 후원의 손길이 줄어들고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선교에 동참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함께 동참하고 싶은 후원자님들께 꼭 당부를 드립니다. 장학금은 필리핀 학생들의 학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또한 장학금은 그들의 미래에 한줄기 빛을 선물하는 일 입니다. 매월 3만원의 후원으로 학생들의 인생이 달라질수 있습니다. 이 일에 꼭 마음을 모아 주시고 동참을 부탁 드립니다.
- 매월 한 명의 장학생을 선정해서 지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 필리핀 동산교회의 예배당 건축을 위한 건축헌금이 모아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 교회의 운영비와 관리비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매달 교회당 렌트비와 현지 목회자 사례비를 감당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 또한 저희 가정과 저희의 사역을 위한 선교 후원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들도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늘 부족함이 많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기도제목
1. 필리핀 동산교회를 15년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동산교회의 성도들을 이끌 좋은 필리핀 목사님을 청빙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좀 더 넓고 안정적인 예배 장소가 마련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장학금 후원이 많이 줄었습니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후원 결연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우리 가족의 영주권이 빨리 해결 되어서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공부하고, 사역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4. 가족 4명 모두가 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데 안전사고 일어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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