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성,
중학교 과학시간 때
배운 말이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있으려는 물리현상.
운전 중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쭈욱~ 앞으로 밀려가는 것,
야구 주자들이 루를 달릴 때
달려온 힘을 이기지 못해
직각이 아니라 둥글게 도는 것,
그래서 영어로는 관성 (inertia)을
굼뜨거나 둔하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어쨌건 우리는 이렇게 일상에서
흔하게 관성을 경험한다.
2.
관성은 물리적인 현상뿐 아니라
심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신나게 놀다보면
더 놀고 싶고
일만 열심히 하다보면
또 그게 익숙해져서
휴일에도 뭘 할지 잘 모르고
다이어트 한다며
야식 끊는다고 다짐하지만
먹어온 습관 때문에
삼일만에 포기,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타성에 젖는다고 말하는
심리적 관성 때문이다.
3.
모임 혹은 사회적 교류도
마찬가지다.
참석과 만남의 횟수가 잦아질수록
신입회원은 열심회원이 된다.
왜 그럴까?
모임에 대한 애착,
개개인의 참석 의지도 있고
뭔가 재미나 필요를 느껴서겠지만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는 현상,
즉, 참석하던 모임이니
자연스럽게 계속 참석하는,
우리가 습관이라 부르는
관성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반대로,
잘 나가던 모임이었지만
어떤 이유건 모멘텀을 잃어버리면
의욕이나 관심이 시들기도 한다.
그럴 때,
멈추어 있는 것은
계속 멈춰 있으려는,
네가티브 관성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모임 참석이 시들해지거나
개인간 교류가 드문드문해져도
그 사람 잘못만은 아니다.
관성의 법칙을
누구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
4.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연법칙인 물리적 관성과 달리
심리적 관성은 무한히 작동하지 않고
일시적, 또는 한정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각자의 마음 속에
어떤 관성이 생겼는지
타인이 관여할수도,
관여해서도 안된다.
생각과 의지,
그 관성의 세기와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며
가끔은 스스로도 통제가 어려운
심리 현상이기 때문이다.
5.
우리는 오늘도
나름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운동, 취미, 생활 습관 등
스스로 세운 계획과
약속한 모습들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다.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관용’의 의미는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이해이고
동의하진 않아도 공감은 할수 있는,
그러니까 마음에 뭔가 틈을 열어두는
여유로움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보다는 '구별'의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이쯤해서 자문해 본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관성 하에서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지금
타인의 관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