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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2017년1월14일 토요일
모란역#6출구버스정류장[09:00]➡이배재고개[09:22]➡475봉[09:53]➡망덕산(왕기봉)[10:07]➡사기막골갈림길[10:19]➡약수터[10:27]➡상대원능선사거리[10:32]➡검단산헬기장[10:46~10:49]➡남한산성유원지갈림길[11:11]➡남문[11:25~11:27]➡영춘정[11:45]➡수어장대[11:55~11:58]➡서문[12:06]➡북문[12:25]➡제1군포터[12:35~12:55;점심]➡제4암문[13:03]➡제3암문(벌봉갈림길)[13:12]➡동장대터[13:15]➡제3암문[13:17]➡외동장대터[13:29]➡벌봉[13:32~13:37]➡외동장대터[13:40]➡남한산[13:44~13:46]➡은고개갈림길[13:48]➡419봉[14:05]➡346고지쉼터[14:15]➡장구마기고개[14:33]➡20번송전탑봉[14:41]➡산불감시초소(안산)[15:03]➡상산곡동[15:16]➡은고개[15:34]➡20번송전탑봉[16:06]➡84번송전탑봉[16:11]➡300.4봉(삼각점)[16:26]➡은고개[16:40]➡은고개버스정류장[16:43]➡천호역도착[17:42]
이배재[二拜峴]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과 광주시 목현동을 연결하는 고개이며, 성남시 중원구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청량산과 검단산 산줄기를 넘는 고개로서 해발고도 300m상에 위치한다.‘절을 두 번 하는 고개'라는 뜻의 이배재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옛날 경상도와 충청도의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이 고개에 오르면 한양이 보여 임금이 있는 쪽을 향하여 한 번 절을 하고, 부모가 계신 고향을 향하여 다시 한 번 절을 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황(李滉)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임금을 향하여 절을 두 번하고 길을 떠난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북쪽으로는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을 거쳐야 광주시로 넘어갈 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갈마치고개, 새마을고개, 태재 등의 고갯길이 두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현재 이배재를 통과하여 지방도 338호선[공단로]이 지나고 있다. 이 도로는 중원구 상대원동에 위치하는 성남산업단지와 직접 연결되어 출퇴근 차량에 의한 통행량이 많으며 교통량의 증가가 계속되어 도로 확장과 터널 건설이 추진 중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검단산[黔丹山] : 경기도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높이 534.7m로, 청량산(淸凉山)[479.9m]과 함께 광주산맥의 지맥으로서 남한산성과 연결되는 산줄기를 이루는 산이다. 탄천이 중앙부를 북류하고 그 좌우에 지류가 발원하는 산지가 형성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凹형을 띠고 있다. 성남시의 지세에서 동쪽의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에 위치하는 청계산(淸溪山)[618m] 줄기와 함께 전체적인 성남시의 동서 방향의 경계를 이룬다. 검단산의 동쪽 너머는 경안천 유역으로, 행정구역상 광주시에 해당한다. 검단산을 중심으로 하는 성남시의 동쪽 산지는 남쪽으로 갈수록 해발고도가 낮아지며 서쪽의 청계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지에 비해 전반적으로 평균고도가 낮고 완만한 사면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지형조건으로 성남시가지 조성계획 당시 시가지가 입지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태평동, 신흥동, 단대동, 금광동, 상대원동, 중동, 성남동, 수진동을 중심으로 하는 원 성남과 야탑동에서 구미동에 이르는 분당시가지는 모두 탄천과 동쪽 산지에 조성되었다. 현재의 검단산 정상부에는 한국통신의 대규모 중계시설이 입지하고 있으며, 공군의 통신부대도 한국통신 중계소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산의 최정상부는 면적은 넓지 않지만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어 헬리콥터 이, 착륙장이 건설되어 있으며, 남한산성으로부터 등산로와 작업용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검단산 남쪽 비탈, 해발 고도 400m 일대에는 야생 동식물 보호 구역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남한산성 지화문[南漢山城至和門]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남문(南門)이다.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修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하면서부터 지화문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75m·폭 3.35m·길이 8.6m이며 홍예기석 위에 17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홍예문 좌우 성벽은 자연석을 수평줄에 맞춰 막돌 쌓기로 축조한 것이다. 1976년 복원된 문루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수어장대[守禦將臺]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아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위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건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면적은 1층 105.08㎡, 2층 43.29㎡이다. 아래층 평면은 내진(內陣) 3×2칸과 외진(外陣) 5×4칸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낮은 축대 위에 한단 높여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마련하였으며, 맨 바깥둘레에는 8모뿔대 주춧돌을 높게 세우고 안두리기둥 밑에는 그보다 낮은 반구형(半球形) 주춧돌을 받쳤다. 외진부에는 전돌을 깔았고, 내진부에는 긴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모두 민흘림 둥근기둥이다. 공포는 익공계인데 1층은 초익공, 2층은 2익공으로 되어 있으며, 첨차 끝은 모두 수서[垂舌]이다. 2층 평방 위에만 화반(花盤: 주심도리 밑 장혀를 초새김한 받침)과 운공(雲工: 화반 상부에 얹혀 장여와 도리를 가로 받친 물건)을 사용하고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로서 고주(高柱) 위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마루보를 받쳤다. 마루보 위에는 판대공(板臺工)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도리를 걸었다. 합각벽(閤閣壁)은 전벽돌쌓기로 되어 있고, 용마루·합각마루 및 1층 추녀마루에 용두(龍頭)를 얹었으며, 사래[蛇羅 : 추녀 끝에 잇대어 댄 네모난 서까래] 끝에는 토수(吐首: 용머리와 鬼頭 모양의 장식)를 끼웠다. 지붕마루는 모두 양성바름을 하였고, 기와골 끝에는 막새를 사용하였다. 창호(窓戶)는 위층에만 있으며 매칸마다 2짝 판문(板門)을 달았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아래층 내진의 북동쪽 칸에 설치되어 있으며 단청은 모로단청이다. 외부 정면에 ‘수어장대(守禦將臺)’라고 쓴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어서대 : 수어서대 남동쪽 모서리에 있는 매바위에 새겨진 암각문이다.
사각형으로 제액을 파고, 그 안에 '수어서대(守禦西臺)'라고 새겨놓았다. 원래 수어사는 도성의 수어청에서 업무를 수행하였으나 유사시 에는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에 와서 지휘하였다. 정조 19년(1795)부터는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였다. -출처; 경기도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매바위 전설 : 바위에 수어서대(守禦西臺)라고 새겨져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앞마당 한쪽 모퉁이에는 '매바위' 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매바위로 불리어지게 된 데에는 남한산성의 축성 책임을 맡았던 이회 장군의 억울한 죽음과 한이 깃들어 있다. 이회 장군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산성 동남쪽 지역의 공사에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하나하나 철저하게 점검을 하며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그만 정해진 날짜를 넘기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공사비용 역시 턱없이 모자라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공사비용이 부족하게 된 이유가 이회 장군이 주색잡기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에 나라에서는 이회 장군에게 그 책임을 물어 참수형에 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서장대 앞뜰에서 이회 장군은 참수를 당하기 직전 하늘을 쳐다보면서 "내가 죽은 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죄가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은 남겼다. 그런데 실제로 이회 장군의 목을 베자, 이회 장군의 목에서 매 한마리가 튀어나와 근처 바위에서 슬피 울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멀리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이 그 매가 앉았던 바위를 보니 매 발톱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장군의 말대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이회 장군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라 믿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회 장군이 책임을 맡았던 지역의 성곽을 살펴보니, 아주 견고하게 쌓아져서 빈틈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곽 공사를 함에 있어서 부정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심혈을 다했음이 밝혀진 것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회 장군의 목에서 나왔던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르고, 이 바위를 신성시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매바위에는 실제로 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어떤 일본인 관리가 남한산성을 둘러보다가, 바위 위의 매 발자국을 보고 참신기한 일이라 여겨서 그 매 발자국이 찍힌 부분을 도려내어 떼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 일본 관리가 떼어갔음을 말해주는 사각형의 자취만 남아 있다고 한다. -출처; 경기도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1624년(인조 2년) 수어사 이서(李曙)가 성을 쌓을 때 서남쪽은 이회(李晦)에게, 동북쪽은 벽암(碧巖)대사에게 맡겼다. 벽암은 기한 내에 성을 쌓았으나, 이회는 성을 튼튼히 쌓느라 기한을 어겼다. 이회는 무고로 수어장대 앞에서 참형되었다. 이회가 죽기 전에 원통함을 호소하였는데, 목이 떨어진 자리에서 매 한 마리가 날아올라 근처 바위에서 슬피 울다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발톱 자국이 남았다. 뒤에 벽암이 쌓은 곳은 무너졌으나 이회가 쌓은 곳은 튼튼하여 무너지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이회를 위해 사당을 지어 억울함을 위로하였다. 이회의 부인이 남편을 대속하기 위해 영남 지방에서 돈과 곡식을 구해 오다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쌀을 버리고 통곡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송파나루 앞에 있던 쌀섬여울[米石灘]이 이회 부인이 빠져 죽은 곳이다. 삼전도 아래 이회의 유씨와 송씨 두 부인을 모신 당집이 있어 무녀가 굿하고 부녀자가 치성하였다. 뒤에 당집이 사라지면서 두 부인은 청량당으로 모셨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국립민속박물관)-
수어장대 무망루(無忘樓) : 조선 영조27년(1751년) 광주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 문루로서 그 편액(扁額)이 2층 누각에 있어 1989년 전각을 건립하고 이 안에 현판을 새로 설치 일반인이 볼 수있게 하였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北伐)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입니다. -출처; 현장 안내문-
청량당[淸凉堂]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이회(李晦)와 그의 처첩(妻妾)을 모신 사당이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본당은 목조 단층와즙 한식 건물로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면적은 108평이다. 본당의 전면에는 이회의 초상화가 있고 좌, 우편에는 벽암대사(碧岩大師)와 이회의 처첩 초상화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원래의 것은 6·25전쟁 때 분실되었고 지금 있는 것은 그뒤 새로 만든 것이다.
이회는 조선시대인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성의 동남쪽을 맡았던 공역의 책임자였다. 그러나 축성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기일 안에 마치지 못하였다는 무고한 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하였다. 그의 처첩도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도와 삼남지방에 가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이회가 참수당할 때 그의 목에서 한 마리의 매가 날아 나와 부근의 바위에 앉아 사람들을 노려보다가 날아갔다고 하는데,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가 이룬 공사를 재조사해 보니 그가 맡았던 부분이 견고하고 충실하게 축조되어 있어 무죄가 밝혀졌고, 서장대(西將臺) 옆에 사당을 지어 이회와 그의 처첩의 넋을 달래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 해마다 한 차례씩 지방 무속인들이 제사를 지내며 당시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른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병암남성신수비 : 병암남성신수비는 정조3년(1779) 6월 18일부터 약 50여 일간에 걸쳐 수어사 서명응의 지휘아래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사실을 전해주고 있는 금석문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산성을 증, 개축하는데 돈1만 냥과 쌀 900석의 재정을 투입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당시 감독관인 광주부윤 이명중의 지휘아래 벽돌, 석회 등을 구어 운반하는 관리와 보수할 곳을 18구역으로 나누어 담당한 18패장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으로 보아 선조들의 건축실명제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이다. 정조는 즉위 후 영릉을 참배하는 길에 자주 남한산성에 행차하여 산성의 관리실태와 주민들의 생활상 등 민의를 살핀 개혁군주로 평가되고 있다. 동문밖에 있는 기해주필이 그 사실을 잘 반증해 주고 있다. 이 비문은 당시 수어사였던 서명응이 짓고, 광주부윤 이명중이 쓴 것이다.
-출처; 경기도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여장[女墻] : 여장은 성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을 말한다. 이 여장은 다른 용어로 여담, 여첩, 치첩, 타, 여원 이라고도 하고 고어로는 성각휘, 성가퀴, 살받이터 등으로 불려졌다. 또한 설치하는 목적에 따라 치폐, 첩담, 비예, 희장 이라고도 하였다. 여장의 종류에는 평여장과, 凸형여장, 반원형여장 등으로 구분된다. 평여장은 타와 타 사이에 타구를 설치하고 크기가 일정한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남한산성의 여장은 1940타 이며 모두 평여장이다. 1타의 길이는 남한산성의 경우 위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1타의 길이는 대략 3 ∼ 4.5m 정도이며 여장의 높이는 낮은 곳은 70cm, 높은 곳은 135cm 정도이다. 타와 타 사이의 타구의 폭은 30cm이고 타구의 높이는 56cm로 대략 여장높이의 1/2정도이다. 여장의 폭은 76cm이고, 타와 타 사이의 간격은 15cm 정도이나 중앙부를 형태로 뾰족하게 처리하여 좁지만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의 조망이 가능하도록 하여 방어의 효율성을 높였다. 남한산성 여장의 경우 급경사지역의 일부지역에서는 경사면의 중간에 단을 두어 계단과 같이 축조하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단을 두지 않고 바닥의 경사면과 평행하게 여장을 설치하였다. 이 경우 여장의 높이가 전체적으로 일정하게 되어 방어의 효율성은 있지만, 여장을 쌓을 때 양력이 아래로 쏠리게 되어 여장 축성 시 어려움이 있고,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여장의 경우 체성벽의 상단에 미석을 설치하고 여장을 쌓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석은 체성벽에서 3치 정도 밖으로 돌출하도록 하였는데, 체성벽 맨 윗 단의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는 역할과 의장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남한산성의 경우 이러한 미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축성 시 미석을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남한산성 여장의 경우 당초 벽돌로 축조하였으나 영조 20년(1744)에 벽돌을 제거하고 기와로 덮었으며, 정조 3년에는 다시 원성을 수축하면서 기와로 덮었던 것을 치우고 전돌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여장은 대부분 전돌로 쌓은 것이며, 부분적으로 타와 타 사이의 타구에는 수키와를 한 장씩 횡방향으로 올려놓았다. 현존하는 여장을 보면 성벽의 정상부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20-30cm 정도의 활석으로 약 30cm 정도 허튼 층 막쌓기로 쌓고 그 윗부분에는 방전을 사용하여 쌓고, 내부에는 생석회 잡석다짐을 하였으며 정상부에는 옥개전을 덮었다. 여장의 1타에는 3개의 총안이 설치되었다. 세 총안의 가운데에는 근총안을 설치하고, 양쪽에는 원총안을 하나씩 설치하였다. 총안의 간격은 대략 96cm 정도이며, 총안의 크기는 폭22cm, 높이 24cm이다. 성벽외곽의 경사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근총안은 경사도가 38도, 원총안은 22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형적으로 외곽의 경사도가 높은 능선지점에는 여장의 총안외에도 체성벽의 상단부에 별도의 총안을 설치하기도 하여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 경기도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봉암신성신축비 : 봉암신성신축비는 행태가 자연석 위에 정사각형의 해서체로 음각 되어 있으며 판독 가능한 49자 이외에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든 몇 글자가 더 있다.
이 비문내용은 숙종 12년(1686) 윤4월 1일부터 봉암성(비문에는 봉암 신 성이라 하였음)을 쌓아 같은해 5월9일에 성역을 끝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비변사등록 등 관련기록에 따르면 봉암성은 수어청 소속의 군인을 징발하여 1,000석 정도의 재원을 확보하여 신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축이후 봉암성에는 숙종 19년(1693)에 돈대를 설치하였고, 숙종 31년(1705)에는 포루를 설치하여 청나라의 화포공격에 대비하였다. -출처; 경기도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남한산[南漢山]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과 하남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98m이다.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한 산으로 천연 요새지에 성을 쌓아 삼국시대 이래로 산성의 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였던 온조(溫祚)가 백제를 건국하여 위례성에 도읍한 후, 서기전 6년(온조왕 13)에 남한산으로 천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홍경모(洪敬謀)는 『남한지(南漢志)』에서 이것을 부정하고, 그 당시 온조가 도읍한 곳은 검단산(黔丹山) 아래였다고 주장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일장산성이 672년(문무왕 12)에 새로 축성한 주장산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남한산성이다. 산의 사방이 평지이고,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하여 일찍이 주장산(晝長山) 또는 일장산(日長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남한산성도 주장산성(晝長山城)으로 불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광주목(廣州牧) 편에는 남한산성이 일장산성(日長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모든 지도에 남한산 대신 청량산으로 표기되고 있다. 남한산은 광주산맥에 속하며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침식되어 형성된 고위 평탄면(高位平坦面)이다. 고위 평탄면은 신생대 제3기 후반부터 진행된 요곡융기(謠曲隆起) 이전에 한반도가 저평화(低平化)되었을 당시의 평탄면을 대표하는 지형이다. 남한산성은 고위 평탄면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이다. 사적 제57호인 남한산성은 1971년 3월부터 도립공원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남한산성 내의 문화재로는 산성 정상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서장대(西將臺)라고 부르던 수어장대(守禦將臺), 병자호란 후 항복을 반대하다 잡혀간 충절의 3학사를 모신 현절사(顯節祠)를 비롯하여 행궁·숭열전(崇烈殿)·청량당(淸凉堂)·침과정(枕戈亭)·연무관(演武館)·지수당(池水堂)·장경사·망월사지·개원사지 등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은고개 : 경기도 하남시의 남동부 산곡리에서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다. 하남시에서 가장 큰 고개이다. 은고개는 문헌상에 엄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광주부 도엽에 "엄현(掩峴)은 관아의 동쪽 10리에 있다. 남한산성과 길이 통하는 요충지이다. 돈대는 성의 남쪽 5리에 있는데, 성안이 내려다보이는 매우 중요한 곳이므로 돈대를 쌓아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 후 두 개의 옹성을 쌓고 수초의 군사를 머물게 하여 적의 형세를 살피고, 위험이 닥치면 신호를 보내게 하는 곳으로 삼았다."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방비해서 적의 침입을 막을 만하다고 알려져 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엄현(掩峴)'으로, 『1872년지방지도』와 『대동여지도』에는 '엄현(奄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광주군 군내면 영치현명이 아닌 주막명 부분에 엄현리에 속한 엄현주막(음고개 주막)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을 은고개 마을이라고 부르며, 은고개 계곡 · 엄미천 · 엄미교 등에서 그 유래를 엿볼 수 있다. 엄미리 장승이 유명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09:00] : 모란역 6번 출구로 나와 그 옆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31-3번 버스를 승차한 후
[09:22] : 이배재고개 정상에 도착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망덕산을 향한 데크 계단을 오르고
[09:26] : 등산로 양쪽에 로프난간이 설치된 원형목 계단을 오른다.
[09:30] : 로프난간 오르막길 좌측에 성남소방서에서 설치한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고개5)이 있다. 조금 더 오르니 로프난간구간이 끝나고
[09:32] : 원형목 계단만 있는 오르막을 오른다.
[09:34] : 이정표(안말2.5km,보통골2.3km,망덕산(왕기봉)1.3kmㅣ이배재고개0.4km)와 이정표 기둥 아래에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고개4)이 기대어 있다. 땀이 나기 시작하여 겉옷을 정리한 후
[09:39] :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09:40] :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고 이어지는
[09:42] : 오르막길 우측에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고개3)이 소나무 묘목 옆에 있다.
[09:47] : 로프난간이 지그재그 식으로 설치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09:52] : 475봉에 도착하는데 등산로 좌측에 벤치 한 개가 먼저 반기더니 곧이어 여러 개의 벤치와 의자 일체형 식탁들이 있으며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고개1), 이정표(안말1.9km,보통골1.7km,망덕산(왕기봉)0.7kmㅣ이배재고개1.0km), 이정표에 부착된 성남누비길 검단산 거리표지판(갈마치고개-<1.8Km>-이배재고개-<0.8Km>-현위치-<0.6Km>-망덕산정상-<0.7Km>-만수천약수터-<1.4Km>-검단산정상-<1.4Km>-산림초소-<1.0Km>-남한산성남문), 현 위치가 이배재정상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290 3786ㅣ망덕산(왕기봉)0.7Kmㅣ이배재고개1.0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는데 혼잡한 느낌이 든다.
[09:53] : 475봉을 가파르게 내려가고
[09:54] : 오르막 초입에 둥그스레한 바위 한 개가 등산로 좌측에 있다. 계속 오르는데
[09:56] : 중간크기의 바위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지점을 지나서도 오르막은 계속된다.
[09:58] : 도착한 봉우리에는 현 위치가 보통골갈림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299 3808ㅣ망덕산(왕기봉)0.9Kmㅣ이배재고개0.7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는데 475봉의 소방구조목과 거리표시가 다르다. 내리막길은 Y자형으로 갈라지는데 우측 내리막길에는 로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좌측 내리막길은 보통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 로프난간이 있는 내리막길이 검단산으로 가는 길이다. 우측 로프난간이 설치된 내리막길 계단을 가파르게 내려가니
[09:59] :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안말1.5km,망덕산(왕기봉)0.4kmㅣ이배재고개1.3kmㅣ보통골1.3Km)가 있는데 이곳도 보통골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다가
[10:02] :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 내려간다.
[10:03] : 오르막길에 중간 크기의 바위 두 서너 개가 있는 지점을 지나니
[10:05] : 로프난간이 설치된 오르막길을 오르게 되는데 로프난간이 끝나는 지점이 망덕산이다.
[10:07] : 도착한 망덕산에는 정상석(500.3m)과 이정표(검단산ㅣ군두레봉3.8km,두리봉1.8km), 현 위치가 망덕산정상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308 3846ㅣ검단산2.3Kmㅣ이배재정상0.7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으며 벤치들과 의자 일체형 식탁이 있다. 그리고 성남누비길 검단산 거리표지판도 이정표 기둥에 부착되어 있다. 망덕산은 삼거리 봉으로 우측은 군두레봉과 두리봉 방향이다.
[10:10] : 망덕산을 출발하여 검단산을 향해 내려가는데 로프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계단길이다.
[10:12] :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도 두리봉 갈림길이 있는데 좌측에 현 위치가 사기막능선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303 3864ㅣ검단산1.70Kmㅣ망덕산(왕기봉)0.2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고 우측에 이정표(검단산2.1kmㅣ망덕산(왕기봉)0.2km,이배재고개1.8kmㅣ두리봉2.0Km)가 있으며 전방 좌측에는 의자 일체형 식탁 한 개와 벤치들이 산재해 있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10:13] :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검단1)이 등산로 우측에 있다. 계속 내려가다가
[10:16] : 둔덕을 우측에 두고 등산로가 좌측으로 굽어지는 지점에 이정표(망덕산(왕기봉)0.9Km)가 있다. 검단산 방향 안내 이정 안내판은 없다.
[10:19] : 사기막골 갈림길에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이정표(검단산1.0km,지화문(남문)4.0Kmㅣ사기막골0.5Km)와 현 위치가 사기막갈림길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297 3912ㅣ검단산1.0Kmㅣ망덕산(왕기봉)1.0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다. 완만하게 오르는 중에
[10:20] :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검단2)이 등산로 우측에 있는 지점을 지나니 통나무를 이용하여 흙 쓸림 방지 턱을 등산로 양 옆에 설치한 계단 오르막길이 나온다.
[10:26] : Y자형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은 만수천 약수터를 안 거치고 검단산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약수터를 거치는 길인데 약수터에서도 길이 갈라지지만 모두 검단산으로 갈 수 있다. 우측 길로 오르는데 약수터 못 미친 지점에서 이정표(검단산1.1kmㅣ망덕산(왕기봉)1.2kmㅣ윗말1.0km)를 만난다. 조금 더 올라
[10:27] : 이정표(검단산갈림길0.7km,지화문(남문)4.0Kmㅣ망덕산(왕기봉)1.3kmㅣ용천약수0.7km,황송공원2.8Km)와 벤치가 있는 만수천 약수터에 도착한다. 용천약수 방향으로 진행하면 10시26분에 갈라진 Y 자형 갈림길 좌측 등산로와 합류되어 검단산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10:29] : 이정표(검단산갈림길0.8kmㅣ용천약수0.8km) 안내판에 훌라후프 한 개가 걸려 있는 약수터에서 직진하여 검단산 갈림길 방향 오르막을 오른다.
[10:32] : 올라선 능선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상대원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검단약수와 망덕산(왕기봉)에서 올라오는 좌측 길과 검단산과 지화문(남문)으로 올라가는 우측 길, 그리고 방금 만수천 약수터에서 올라온 길(불당리와 윗말로 가는 길)이 만나는 등산로 상의 삼거리이지만 방금 올라온 길에서 직진하여 돌탑 봉우리를 올라가는 길이 있어서 사거리인 셈이다. 그러나 돌탑 봉우리 방향에는 이정 안내판이 없다. 이곳에도 의자 일체형 식탁과 벤치들이 있고, 이정표(검단산0.7km,지화문(남문)3.2Kmㅣ검단약수,망덕산(왕기봉)1.4Kmㅣ불당리,윗말1.1Km)와 현 위치가 상대원능선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280 3962ㅣ검단산0.3Kmㅣ망덕산(왕기봉)1.5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국가지점번호(다사 7280 3963ㅣ검단산0.4Kmㅣ사기막골공원1.8Km)가 등재된 남한산성11-6번 소방구조물(스테인리스로 만든 직사각형 기둥)이 있다.
[10:34] : 이정표의 이정 안내판이 안내하는 검단산 방향 우회 길을 무시하고 직진하여 돌탑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10:36] : 도착한 돌탑 봉우리에도 의자 일체형 식탁과 벤치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돌탑이 있는 삼거리 봉이다.
[10:38] : 돌탑 봉우리에 올라선 방향에서 우측 1시 방향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검단산 KT중계소 시설물들이 보인다.
[10:39] : 전신주 같은 기둥에 태양광 패널과 확성기 시설이 설치된 지점을 지나니 소나무들을 식재한 공터 우측에 의자 일체형 식탁도 한 개가 있다. 계속 진행하니
[10:42] : 이정표(검단산ㅣ망덕산(왕기봉)ㅣ불당리(윗말))가 있는 쉼터에 도착한다. 돌탑 봉우리를 거치지 않고 우측 우회로로 이어지던 등산로와 합류하는 지점이다. 이곳에도 의자 일체형 식탁 2개와 벤치가 2개씩 짝을 이루며 산재해 있다. 검단산 방향으로 오르는데 등산로 좌측에 3단형 로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얼마 안 가서
[10:43] : 이정표(검단산0.5kmㅣ이배재고개2.6Km,망덕산(왕기봉)1.7Kmㅣ지화문(남문)2.8Kmㅣ불당리2.3Km)가 있는 사거리를 만난다. 그러나 도착한 방향과 검단산 오르는 로프난간 사이에 길이 하나 더 있는데 이정 안내는 없고 산악구조 신고안내판(현 위치 검단4)이 있다. 실제적으로 5거리인 셈이다.
검단산 방향 등산로 좌측에 설치된 3단형 로프난간 구간을 지나 계속 오르는데 등산로 우측에 로프난간과 원형목 계단이 설치된 구간을 만난다. 그리고 계단 길 좌측에 있는 산악구조 신고 안내판(현 위치 검단5)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10:46] : 검단산(黔丹山) 정상석이 있는 검단산 헬기장에 도착한다.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이곳에다 정상석을 설치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상석에는 해발높이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며 한 숨 돌린 후에
[10:50] : 헬기장을 출발하여 검단산 포장도로로 나가는 길에 이정표(검단산ㅣ황송공원2.6Km,성천약수1.5Km)가 있다. 곧 이어
[10:51] : 포장도로 사거리에 도착하니 좌측 오르막은 KT검단산중계소로 가는 길이고 직진 방향은 공군부대로 가는 길이며 우측 내리막길이 지화문(남문)으로 가는 길인데 이정표(지화문(남문)2.5Kmㅣ황송공원2.7Km,성천약수1.5Km)와 현 위치가 검단산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247 3997ㅣ남문2.2Kmㅣ검단산0.3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지화문(남문) 방향에 있다.
[10:53] :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정면에 격납고 같은 시설물이 있는 지점에 갈림길이 있고, 이정표(종로2.7Km,지화문(남문)2.4Kmㅣ검단산0.1Kmㅣ이배재고개3.0Km)도 있다. 그리고 격납고 같은 시설물이 설치된 봉우리와 이배재 방향(양쪽에 로프난간이 설치된 데크계단 길) 사이에 이정 안내가 없는 비포장도로가 또 있다. 계속 포장도로 따라 내려가는데
[10:58] : 도로 좌측에 이정표(남한산성유원지2.3Km,지화문(남문)2.2Kmㅣ검단산0.4Km)가 있다.
[11:00] : 얼마 안 가서 또 도로 좌측에 있는 이정표(남한산성유원지2.0Km,지화문(남문)1.9Kmㅣ검단산0.5Km)를 지나니
[11:01] : 현 위치가 524고지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211 4035ㅣ지화문(남문)1.7Kmㅣ검단산1.0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좌측에 있고 우측에는 제동장치 점검구간 안내판과 제설함이 있다. 얼마 안가서
[11:02] : 또 도로 좌측에 이정표(남한산성유원지1.8Kmㅣ지화문(남문)1.7Kmㅣ검단산1.0Km)가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11:06] : 도로가 완전히 S자 형태로 보이는 지점 좌측에 전신주와 반사경이 있으며, 산길 진입로가 있는데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삼거리 좌측에 이정표(지화문(남문)1.4Kmㅣ검단산1.2Kmㅣ남한산성유원지1.5Km)가 있다. 지화문 방향 산길로 진행하여 둔덕을 넘어 내려가니
[11:10] : 검단산 포장도로와 산길이 나란히 간다. 그러다가
[11:11] : 철판 덮개가 덮여져 있는 배수로를 건너니 로프난간이 설치된 좌측 길과 합쳐지는데 남한산성 유원지 민속공예관에서 오르는 길이며, 이정표(지화문(남문)1.1Kmㅣ검단산1.5Kmㅣ남한산성유원지(민속공예관)1.3Km)도 있다. 완만하게 오르니
[11:13] : 상석이 등산로 우측에 있는 언덕 봉을 넘어 내려간다. 그리고
[11:14] : 검단산 포장도로와 합쳐지면서 도로 따라 내려가다가
[11:15] : 이정표(지화문(남문)0.8Kmㅣ검단산1.8Kmㅣ남한산성유원지2.0Km,남한산성유원지(약사사)1.2Km)와 전신주 같은 기둥에 태양광 패널과 확성기가 설치된 시설물이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포장도로 우측에는 로프난간이 등산로 양쪽에 설치된 넓은 등산로가 이어지고, 도로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남한산성 유원지(약사사)에 올라오는 길과 합쳐져서 지화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길로 접어들어 완만하게 오르는데
[11:17] : 남한산성 제1남옹성이 보이면서 발굴조사 안내문을 지나더니 제1남옹성 좌측 성벽 따라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러더니
[11:18] : 간단한 운동시설과 정자, 그리고 이정표(지화문(남문)0.6Kmㅣ검단산2.0Kmㅣ남한산성유원지(영도사)1.2Km)가 있는 성곽 옆 삼거리 쉼터 봉에 도착한다.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제1남옹성 성곽 길 따라 진행하다가
[11:22] : 성곽 옆 둔덕에 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니 지화문(남문)이 보이면서 성남 누비길 검단산길 구간 아치를 통과한다.
[11:25] : 아치 기둥 우측에는 이정표(남한산성유원지입구ㅣ검단산정상ㅣ백련사)와 성남 누비길 노선안내도, 검단산길 해설문이 있고, 좌측에는 남문 앞 역사터 안내문이 있다. 유원지 방향으로 약 350년 된 보호수(느티나무) 2 그루가 있다. 주변을 두루 조망한 후에
[11:27] : 至和門(남문)을 통과한다. 지화문(남문)을 통과하여 좌측 성문누각방향으로 오르는 돌 계단 옆에 이정표(수어장대1.5Kmㅣ남장대(터)1.1Kmㅣ종로0.7Km)가 있다. 수어장대 방향 성곽 길 따라 한동안 진행하니
[11:45] : 이정표(우익문(서문)1.0 Km,수어장대0.4Kmㅣ지화문(남문)0.7Km)가 있는 성곽 길 우측언덕에 팔각정(영춘정)이 있다. 팔각정(영춘정)을 경유하여 성곽 길을 진행하는데
[11:49] : 나무계단을 만난다. 계단을 힘들게 오르니 산성 내 순환도로에 합쳐지고 도로 따라 오르는데
[11:52] ; 도로 좌측에 있는 제6암문(서암문)에 도착하니 우측으로 수어장대 오르는 계단과 이정표(전승문(북문)1.7Km,종로1.1 Km,우익문(서문)0.7Kmㅣ지화문(남문)1.4Kmㅣ수어장대0.1Km)가 있다. 계단을 올라 수어장대[守禦將臺]를 탐방한 후
[11:58] : 성곽 옆 도로 따라 서문을 향해 진행하는데
[12:00] : 이정표(종로0.9Kmㅣ수어장대0.1Km)있는 종로 갈림길을 지나니 화장실이 있다. 계속 진행하니
[12:02] : 성곽 옆 도로 우측에 이정표(우익문(서문)0.3Km,전승문(북문)1.3Kmㅣ지화문(남문)1.8Km,수어장대0.3Km)와 산길로 진행하는 갈림길이 있다. 우측 갈림길로 진행하니 병암남성신수비가 있다. 다시 성곽 옆 도로에 합류하여 진행하다가 도로와 헤어지면서 성곽 길 따라 진행하니
[12:06] : 右翼門(서문) 누각 위를 지난다. 성곽 길 따라 오르고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 길에
[12:10] : 제5암문에 도착하니 이정표(전승문(북문)0.8Kmㅣ학암동1.7Km,수어장대0.9Km,우익문(서문)0.3Km)와 현 위치 2•7 연주봉 옹성임을 알리는 소방구조목(북문1.0Kmㅣ서문0.3Km)이 있다. 성곽 길 따라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12:14] : 이정표(전승문(북문)0.7Kmㅣ학암동1.8Km,수어장대1.0Km,지화문(남문)1.8Km)와 쉼터용 벤치가 있는 산성 내부 도로와 만난다. 내부 도로 따라 내려가다가
[12:18] : 성곽 길로 오르는 갈림길에 이정표(전승문(북문)0.3Kmㅣ학암동2.1Km,수어장대1.3Km,우익문(서문)0.7Km)가 있다. 성곽 길로 오르니
[12:19] : 의자 일체형 식탁들이 있는 언덕에도 이정표(동장대(터)1.6Km,전승문(북문)0.3Kmㅣ수어장대1.4Km,우익문(서문)0.8Km)가 있다. 성곽 길 따라 내려가는데 가파르다.
[12:25] : 全勝門(북문) 누각을 지나면서 내부 도로를 보니 종로를 향해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가고 있다. 계속 성곽 길 따라 오르고 내려가고 또 오르고 내려가는데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다시 오르니
[12;35] : 제1군포 터(軍鋪址)에 도착한다. 군포 터 위 언덕에 있는 벤치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12:55] : 식사를 마치고 계속 오르는데
[12:56] : 이정표(동장대암문..6Kmㅣ전승문(북문)0.7Kmㅣ현절사0.5Km)가 있는 현절사 갈림길을 지난다.
[12:58] : 이정표(좌익문(동문)1.3Kmㅣ우익문(서문)1.7Km,전승문(북문)0.7Kmㅣ공원관리소1.2Km) 있는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13:03] : 제4암문과 제2군포 터가 있다. 주변을 둘러본 후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니 성곽 길 옆에 바위 한 개가 있고 언덕을 넘으니 수령이 오래된 서어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13:12] : 이정표(좌익문(동문)1.5Kmㅣ전승문(북문)1.4Kmㅣ벌봉)가 있는 제3암문에 도착하여 암문을 나가서 진행해야 하지만 조금 더 오르면 있는 동장대 터를 탐방한 후 맥 길을 이어가기로 한다.
[13:13] : 동장대 터를 향해 오르는데 우측에 현 위치 2•4 동장대 터임을 알리는 소방구조목(장경사0.7Kmㅣ북문1.4Kmㅣ벌봉0.5Kmㅣ망월사0.3Km)이 있다.
[11:15] : 우측 경사면을 석축으로 축성한 동장대 터(東將臺址)에 도착하니 수령이 오래된 서어나무와 남한산성 여장(女墻) 안내문, 그리고 돌무더기가 있다. 진행할 방향인 벌봉 방향의 봉암성 성곽과 성곽 길이 시원스럽게 조망이 된다.
[13:16] : 다시 제3암문으로 내려가서
[13:17] : 제3암문을 통과하니 성곽 외곽으로 이어지는 위례둘레길이 있으며 이정표(위례둘레길(서문)2.5Km,위례둘레길(북문)1.4Kmㅣ위례둘레길(샘재)7.5Km,위례둘레길(객산)5.2Km,위례둘레길(벌봉)0.7Km)도 있다. 성곽 외곽길인 우측으로 진행하니
[13:19] : 봉암성문(蜂巖城門)을 통과한다. 봉암성 안내문 옆에 있는 소규모의 기상관측 장비를 지나 봉암성곽 길을 내려가고 오르고 또 내려가면서 한 동안 진행하니
[13:24] : 이정표(한봉1.4Km,노적산6Kmㅣ위례둘레길(북문)1.8Kmㅣ벌봉0.2Km,위례둘레길(샘재)7.1Km)와 은고개 갈림길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363 4244ㅣ망월사0.7Kmㅣ은고개3.9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이 있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계속 한봉 방향으로 오르막을 오르니
[13:29] : 외동장대 터(外東將臺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측을 보니 벌봉이 지척에 있다. 벌봉을 탐방한 후 맥 길을 이어가기로 하고 벌봉을 향해 좌측으로 성곽 길 따라 내려가니
[13:32] : 벌봉(蜂峰) 안내문이 있고 커다란 바위들이 치솟아 있다. 바위들 사이로 올라 암봉을 감싸고 있는 성곽 길에 도착하니 봉암신성신축비(蜂岩新城新築碑) 안내문이 있다. 그리고 바위 아래에는 치성을 드리는 아낙네들도 있다. 다시 외동장대 터로 되돌아가는데 벌봉 아래 우측에 이정표(한봉1.6Kmㅣ좌익문(동문)1.9Km,동장대(터)0.6Kmㅣ상사창동2.0Km,위례둘레길(샘재)6.9Km)가 있다. 13시24분에 지났던 갈림길에서 상사창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정표를 확인 후
[13:40] : 외동장대 터(外東將臺址)로 회귀하여 남한산을 향해 오르막을 오르는데
[13:41] : 봉암성 암문을 만난다. 암문 아래에 이정표(한봉1.2Kmㅣ전승문(북문)1.7Kmㅣ벌봉0.2Km)가 있기에 그리로 이동하여 확인 후 봉암성 성곽 길 따라 오르니
[13:44] : 남한산(522m) 삼각점(422 재설 76,9 건설부)이 있고 그 아래는 억새밭이 조성된 넓은 공터가 있다. 주변을 둘러본 후
[13:46] : 남한산을 내려가니
[13:48] : 은고개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이정표(엄미리(은고개)3.9kmㅣ큰골1.2km,한봉1.1kmㅣ벌봉0.4km,동장대(터)0.9km)가 있다. 은고개 방향은 좌측 허물어진 성곽을 넘어서 이어지고 있다. 은고개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13:57] :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고
[13:58] :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는데
[14:00] : 엄미리 계곡 갈림길을 만난다. 이정표(엄미리(은고개)3.3kmㅣ벌봉1.0kmㅣ엄미리계곡0.5km)가 안내하는 좌측 은고개 방향 내리막길로 내려가다가 둔덕을 넘어
[14:04] : 원형목 계단을 오르니
[14:05] : 벤치 2개가 있는 쉼터봉(419m)에 도착한다. 419봉을 넘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14:07] : 갈림길을 만난다. 능선 길 우측으로 갈라지는 로프난간 계단 길 따라 내려가야 은고개로 간다.
[14:11] :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길과 합류가 되는데 좌측 길은 무시하고 계속 우측 길 따라 내려가니
[14:14] : 이정표(엄미리(은고개)3.0kmㅣ벌봉1.3kmㅣ엄미리계곡0.7km)가 있는 또 다른 엄미리계곡 갈림길을 만난다. 이정 안내판이 없는 (구)이정목 기둥에는 은고개 방향 코팅지가 부착되어 있다. 엄미리계곡은 우측 로프난간 계단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은고개를 향해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14:15] : 벤치가 2개 있는 쉼터 봉우리에 도착하니 봉우리 내리막 시작 지점에 346고지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497 4252ㅣ벌봉2.0Kmㅣ은고개1.7Km)가 등재된 소방구조목과 이정표(은고개ㅣ엄미리)가 있는 갈림길이 있다. 은고개 방향인 좌측 내리막길을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14:21] : 완만한 둔덕을 만나지만 둔덕을 넘어 계속해서 내려간다.
[14:23] : 오르막을 오른
[14:24] : 봉우리에는 갈림길이 있다. 봉우리 정상 좌측 길은 나무기둥으로 막아서 길이 아님을 알리고 있으며, 등산로 흔적이 뚜렷한 우측 2시 방향 내리막길을 내려가서 안부에 도착하는데 좌측은 묘지로 가는 길이다. 계속 직진하여 오르고 내려가고 오르니
[14:27] : 능선이 우측으로 휘어지고 있다. 능선 따라 진행하니
[14:28] : 벤치 2개가 있는 쉼터에 도착하고, 쉼터를 지나니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있다. 내리막길 우측으로 3단형 로프난간이 설치된 계단을 내려가니
[14:29] : 등산로 양 옆으로 3단형 로프난간이 설치된 오르막을 오른다.
[14:30] : 언덕을 넘어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로프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14:31] : 오르막을 오르고
[14:32] : 펑퍼짐한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장구마기 고개(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이다.
[14:33] : 장구마기 고개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데 원형목 계단이 먼저 시작되더니 3단형 로프난간이 설치된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봉우리 우측 허리를 감아 도는 우회로이다.
[14:38] : 또 다른 3단형 로프난간이 우회로 좌측에 설치된 지점에서 좌측 능선을 보니 송전탑이 있다. 번호가 식별이 안 되어 로프난간을 넘어 송전탑을 좌측으로 돌아가니
[14:41] : 국가지점번호(다사 7573 4230)이 있으며, 신성남-동서울 구간임을 알리는 20번 표지판도 있다. 조난 시 필요한 국가지점번호 판이 있는 것을 보니 예전에는 우회로 없이 무명봉을 넘어 다녔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로프난간이 설치된 우회로로 나가야 하는데 정상에 들렸다가 우회로에 합류할 생각으로 20번 송전탑을 지나 계속 오르니
[14:43] : 봉우리 정상에 도착한다. 로프난간이 설치된 우회로를 향해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우회로가 안 보이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한 동안 이어지는데 송전탑이 보인다. 맥 길에서 벗어났음을 인지하면서도 어디까지 가나 하는 심정으로 계속 진행하는데 송전탑이 보여서 굳이 송전탑 우측으로 돌아가서
[14:49] : 송전탑 번호가 85번임을 확인하고 계속 내려가니
[14:58] : 안부에 도착하고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른다.
[15:03] : 산불감시 망루가 있는 안산에 도착하고 이어지는 내리막을 가파르게 내려가는데
[15:10] : 임도에 접속된다. 임도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만나는
[15:12] :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폐가를 지나
[15:16] : 공장 건물(정우상사)이 있는 비포장도로(산곡남로)에 도착하니 상산곡동이다. 결국은 20번 송전탑 있는 무명봉에서 능선이 갈라지면서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좌측 능선으로 진행하므로 인해 맥 길에서 벗어나고 상산곡동 마을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시계를 보니 벗어난 맥 길로 되돌아가서 계속 맥 길을 이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은고개에서 역진행하여 20번 송전탑이 있는 무명봉까지 갈 생각으로 은고개를 향해 비포장도로(산곡남로) 따라 진행하다가
[15:23] : 43번 도로(하남대로)에 접속하여 43번 도로 변에 있는 어진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43번 도로(하남대로)의 인도로 진행하면서 은고개를 향해 오른다.
[15:27] : 은고개 약수터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인도는 끝나고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뀐다. 자동차 전용도로 갓길로 조심스럽게 오르니
[15:34] : 이정표가 있는 벌봉 들머리가 보인다. 43번 도로(하남대로)에서 우측으로 갈라지는 진입로 좌측은 교차로 신문사이고 벌봉 들머리 방향 사유지 도로로 계속 들어가면 느티나무 콩순이 음식점이다.
[15:35] : 벌봉 들머리 계단을 오르며 20번 송전탑까지 역 진행을 시작한다. 부지런히 걸어서
[16:06] : 20번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 우회로에 도착한다. 14시41분부터 이탈했던 맥 길을 다시 이어간다.
[16:07] : 20번 송전탑이 있는 무명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합류되면서 로프난간은 끝이 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은 바위지대를 넘어도 계속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16:10] : 올라선 봉우리 우측에는 사각형 시멘트 기둥이 하나 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16:11] : 짧은 오르막을 오르니 84번 송전탑이 고개를 넘는 지점에 있다. 송전탑을 통과하여
내려가는데 가파른 내리막길로 바뀐다. 한 동안 길게 내려갔다가
[16:17] :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고
[16:19] : 내려가듯이 하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16:20] : 303고지임을 알리는 국가지점번호(다사 7647 4205)가 등재된 소방구조목과 이정표(엄미리(은고개)0.9Kmㅣ벌봉3.4Kmㅣ엄미리계곡0.4Km)가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여 가파르게 오르니
[16:25] : 300.4봉 정상 초입에 식별하기 어려운 삼각점이 있다. 조금 더 오른 정상에도 식별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으며 그 뒤로 대림학원 학교림 안내문이 있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16:26] : 좌측 10시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3단 로프난간이 양쪽에 있는 가파른 내리막길 계단이다. 로프난간이 끝나도 가파른 계단 내리막길이 이어지더니
[16:32] : 봉분 2기가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계속 내려가다가
[16:35] : 오르막으로 바뀌더니 봉우리 9부 능선에서 좌측 사면으로 휘어져 가파르게 내려간다.
[16:37] : 원형 석관묘가 있는 상부에서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고 묘역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니
[16:40] : 이정표(좌익문(동문)7.0Km,한봉5.1Km,벌봉4.4Km)가 있는 은고개에 도착한다. 좌측은 느티나무 콩순이 음식점이고 우측은 교차로 신문사가 있다.
[16:41] : 43번 도로(하남대로)에 내려서니 은고개 정상 방향에 은고개 입구 버스정류장이 있고, 고개 정상에서 삼거리로 갈라지면서 광주 방향 내리막길 시작지점에 횡단보도가 있다. 은고개 정상을 기점으로 하남시 방향은 하남대로이고 광주시 방향은 희안대로로 도로 명칭이 바뀐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옆에 하남시 방향 은고개 입구 버스정류장이 있다.
[16:43] : 하남시 방향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16시45분에 도착한 13번 버스를 승차하여
[17:42] : 천호역 2번 출입구로 연결되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