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발사!! ㅡ남기린|07.06.18|군위 석산초등학교
우리학교는 머리를 잘 깍지 않고 눈을 찌를 정도로 길게 다니는 애들이 더러 있다. 전교생 19명의 시골벽지학교에 결손가정이 다섯이나 된다. 대개가 도시서 부모가 이혼하고 시골 할머니집에 맡기니, 핏줄을 어쩔 수 없어 할머니, 외할머니가 애들을 떠맡는다.
학용품, 급식비, 체험학습비, 인터넷 정보통신비 등등을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어서 초등학교까지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른들이 보기에 조금 애처러워 보여서 그렇지.... 저거들끼리 어려움을 해결해가며 힘든 세상살이를 어릴적부터 해보는 것도 의미로운 일이라 생각하여 하양서 승용차로 출퇴근하면서 학교까지 3-4km정도 걸어다니는 3남매를 눈오고 비오는 날 외에는 저거들 스스로 걸어다니며 들꽃도 보며 다리에 힘 길러가며 등교하라고 차를 잘 태워주지 않고 지나가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면 저거들도 알아차리고 손흔들어 주면서 뒤따라 걸어오며 즐겁게들 등교하곤 한다.
여름철이 되면서 농사철이라 이발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군위읍내까지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할머니들이 애들의 머리를 제때 못깍이고 가정용 가위로 대충 짜르거나 긴머리로를 그대로 둔다.
이런 애들을 보고 교장선생님이 ‘남교무, 이발기술 좀 배워라. 이발기구 사줄테니 애들 머리나 좀 깍아 주어라’ ‘예, 그러지요’ 대답은 쉽게 해놓고 학교일이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가위. 바리깡, 빗, 가리개 등’ 8만여원어치 이발기구 바로 구입해 와서는 ‘ 내일 의성에서 이발사 한분이 오기로 했으니 이발 시켜라’
사연인즉은 교장선생님께서 퇴근하시면서 이발기구를 구입하고 목욕탕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이발기술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기술 다 가르쳐 드리면 우린 무얼 먹고 삽니까~!' 하면서 사연을 물어보길래 우리학교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이발사가 매달 둘째 목요일마다 우리 학교에 와서 이발봉사를 해주기로 했다고 하신다. ‘교장선생님 일이 묘하게 잘되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가 봅니다. 시골에서 그런 좋은 생각을 가지신 분을 만나게는 되는 것도 다 교장선생님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가 봅니다.’ 아부성 발언을 하고서 몇일을 기다려 드디어 약속한 목요일 이발사 부부가 말끔한 차림으로 학교에 나타났다.
외모로 봐선 예술하는 제비족 정도로 보이는데 애들의 머리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시는지 이발을 다마치고 보니 애들이 모두 공주, 왕자 같다. 애들 이발을 다마치고 ‘교무선생님도 이발 함 하시지요? 봉사활동 왔다가 애들이 적어서 싱겁습니다.’ 다 늙었지만 머리 베릴까봐서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겟다. 요새 바빠서 이발할 시간도 없는데 잘 됐다 싶어서’ 일단은 이발을 다하고 차를 한잔 나누면서 이발사 부부의 야기를 들어 보니 시골에서 이발을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아니다. 얼굴은 깡마르고 고집있게 생겼고 나이는 나보다 한살 아래다. 주로 서울, 부산 특급호텔에서 이발을 해왔는데, 1급 이발 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스카웃 해가려고 한다고 한다. 건강챙기며 시골 생활이 하고 싶어서 그런 좋은 자리들을 다 마다하고 시골에 살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 마다 봉사활동 다닌다고 한다. 이발가위도 일급기능사의 전문가 답게 이백 팔십만원짜리라고 한다. 교장선생님이 사오신 4만원짜리도 우리는 비싸다고 했는데프로들이 사용하는 기구는 다른 모양이다. 우째든 오늘 우리학교 애들 횡재했다. 이발비 공짜에다가 그것도 1급 기능사의 2백8십만원짜리 가위로 이발도 다해보고 ㅎ
‘봉사활동’이라 하면 대개가 고등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작성용이거나, 경범처리 시간때우기용의 봉사나, 정치인들이나 사회 유명인사들의 사진찍기 봉사 개념정도가 고작이고 종교활동을 하면서 한달에 한두번 정도 봉사활동에 참가해보면 봉사를 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 모두가 아직은 위선이나 겉치레로 보는 사회적인 인식도가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직장단위나, 가족단위로 봉사활동 다니며 보람있게 사는 사람들이 드러 있다. 종교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봉사활동에 동참하다 보니 도움을 주고 받는 활동 그자체가 좋고 평소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리는 일이라 조끔씩 봉사활동에 맛들이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발사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면 이분은 카톨릭 태중교우로 어릴적부터 부모들이 봉사활동 다니는 걸 많이 보아왔고, 부인은 안식교에 착실한 신자라 하고 외동딸은 초등학교 교사로 가족과 함께 봉사활동을 더러 다닌다고 한다. ‘안식교’라 하면 유대교의 철저한 율법중심의 종파로 거부감이 많은 종교로 알고있어 ‘일요일에도 봉사활동도 다닙니까? 부부가 종교가 다른데도 문제가 없습니까?’ 여러 가지로 물어보니 안식교도 사람중심의 종교라 한다. 율법보다 사람을 돕고 위하는 일부터 하는 게 우선이라며 언제든지 봉사활동 할 시간과 장소만 있으면 잘 다닌다고 한다. 우째거나 벌어먹고 살기도 바쁘고 주위의 인식도 좋지 않은 시골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우리 사회도 점점 밝아오리라는 희망이 보인다.
하루를 지나면서 부질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남들을 도와가며 즐겁게 살아가는 이발사 부부와의 만남이 참 소중했고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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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산초등53 동기생
최갑종 07.06.18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것 같은 분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김계숙 07.06.18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고 하더니 ~~~ 봉사활동하는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멋으로 길게 길러서 두발길이 제한으로 징계 받은 아이들이 많은 도시 아이들과 좀 다르네. 며칠전에 一村 一社 결연 체험활동을 보았는데 감명 깊었다. 좋은일 많이 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허근명 간07.06.18
사회가 밝아지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것 같구나. 누구가 시켜서도 되는일이 아니지만 자기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나야 할수있다. 젊은 이발사 부부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하네. ~~~ 복많이 받으 십시오..
남향숙 07.06.18
젊은시절 험하게(남샘 본인의 주장임^^) 산 사람 답지않게 그 산속 마을 학교에서 보통사람들은 누려보지 못하는걸 많이도 누리고 산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어딜가도 따뜻함을 끌어 모으나보다. 남샘! 늘~ 지금 처럼만 사십시오, 부러워서 하는 소립니다.^^*
ㅡ남기린 07.06.19
'많이도 누리고 산다는 표현이 재미있구나!!!'봉사는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봉사후 시원한 맥주 한잔정도야 마음껏 누리고 산다.
남향숙 07.06.20
남샘! 난 봉사활동만을 얘기한게 아닙니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사철 변화하는 풍광을 여유롭게 즐기며, 늘 대하는 해맑은 웃음들, 아이들 각자 생일을 넣어 달력을 만들수 있는 즐거움, 이곳에서 보는것 보담은 훠~얼씬 더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을 볼수있는 혜택등등.. 덤으로 산이 베푸는 부산물들을 시시때때로 섭취하며 가슴에 산바람이 싸~~~아 하게 드나들수 있게 하여 삶의 찌꺼기들이 쌓이지 않게 하는 그런 즐거움들을 말하는게지요. 언젠가 나도 그런 행운을 누릴수 있게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배판호 07.06.19
요즘은 여러가지 봉사활동을많이 하고있지만 특이 이발봉사활동을 많이하드라 친구역시도 마음을 비우고 남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즐겨보는것도 좋을것같다..
구상근 07.06.21
나도 2백8십만원 짜리 기구로 이발한번 해보고싶다 .
복 많이받으십시요 ..
윤종대 07.06.21
어릴때 양손을 사용하여 머리를 깍는 바리캉으로 울 아부지가 머리를 깍아 주셨는데 머리를 너무 많이 씹어 깍는건지 뽑는건지 그 고통에 머리를 깍을때 마다 눈물이 그렁그렁~~~
교대14 댓글
cosmos 07.06.18
남교무님, 좋은일 하시니 좋은일도 생기고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되네요. 알밤같이 깎아놓은 모습들 보고싶네요. 얼마나 예쁠까?
라일락향기 07.06.18
별의 별거 거 다 해가며 웃음 잃지 않는 교단일기 보며 교장샘도 교무샘도 페스탈로찌이네요. 고마운 이발사 부부에게도 좋은 일 가득했으면 합니다. 의무는 칼같이 이행하고, 혹 불똥 튈까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세상살이에 정을 나누고 봉사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이들 앞에 미안해서 고개가 숙여지네요
김재식 07.06.18
남회장은 참으로 딴세상에 사는 구먼, 이 글을 어디 좋은 소식지에다 올리라. 뭉클해진다.ㅎㅎ 봉사해야한다는 마음은 누구나 잇지만 실천하기가 쉬운게 아니지라
ㅡ남기린07.06.19
딴세살 별것 아니다. 주어진 상활에서 조그마한 즐거움이라도 찾아가며 웃고사는 거 좋은거 앙이가???
솔향 07.06.19
암튼 살만한 세상임에 틀림이없습니다요~~~
훌륭하십니다^^*
김판수 07.06.19
남회장! 축구에서 온갖 포지션을 소화해내는 선수를 멀티플레이어라 하는데... 남회장은 이제 멀티teacher가 다 되었구나.
ㅡ남기린 07.06.19
무늬만 흉내낼 따름이다.
석창섭 07.06.19
남회장 좋은 이발기계로 머리 광냈구나. 소시적에 이빨 빠진 와리깡으로 머리 빡빡 밀 때 생머리 뽑히면서 눈물을 찔끔 찔끔 흘리면서 아무말 못하고 깍던 시절 생각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