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의 불충을 용서하소서-
범부(凡婦)의 기도
나의 하나님!
나는 기도를 잃은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 해 동안 범속한 것에 취해 있었다는 것이며,
고독하지 못했던 것이 여러 해 되었다는 말이며, 내가 내 생명을 생명처럼 가꾸지 못한 지 여러 해 되었
다는 말이며, 이상보다는 현상, 하늘보다는 땅, 빛보다는 어둠에 접해 있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아, 나는 스스로를 믿는 데에 자신만만하였으며 내 속에 은거한 당신의 얼굴을 명확히 파악하는 데에
게을렀습니다. 당신을 채색하는 나의 캔버스에는 무변광활한 우주의 공허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리스도 때로는 천지신명, 때로는 조상의 얼굴, 때로는 원한 없는 귀신들이 되기도 하는 당신.
그리하여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은 외롭게 계십니다.
당신의 주소, 당신의 거처를 마련해 드리지 못하는 나의 불충을 용서하소서. 나를 묶고 나를 가두소서.
그러하신 다음에야 나는 소원을 빌 수 있겠습니다.
조금도 놀랍지 않고 대수롭지도 않은, 다만 세상살이에 대한 짙은 애정이 손가락 마디마다 스며 있는 이
범부의 기도를....
나의 하나님.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까지 저를 덮으신 당신의 은총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히 지금, 내 지절한 열망의 포구砲口를 엽니다. 내 노모의 건강을 위해 빕니다. 그가 인생은 잠깐이며
꿈같이 허무하며 지리한 고생이 끝날 즈음 막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게 하시고 당신의 내세에 희망을 걸게
하소서.
내 남편이 횡행하는 액운과 재해에서 보호받기를 간절히 소원하나이다. 그에게 당신의 옷을 입히시고 당신의 시선으로
건지심을 받아 한밤의 늪을 홀로 건넌다 하여도 걱정 없게 하소서.
새 새끼들 같이 눈동자 까만 아이들을 위해 빕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이 세상을 헤쳐나갈 튼튼한 몸과 굳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과 평화를 주시고, 선량한 시민으로 자라게 하소서.
지구 위의 한 점같이 지극히 작은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을 버리지 마시고 길러 주소서.
오랜 역사 가난과 앙화殃禍를 용하게도 견뎌온 그 참을성을 가상하게 여기시고 눈물겨운 우리 겨레에게서 어떤 쓸모를
찾아주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돌보아 주소서.
내 마음에 마르지 않는 사랑을 주시고 무수한 잘못을 일깨워주소서.
순간의 격정으로 여러 밤을 울며 새우지 말게 하시고, 내가 패배하여 엎드려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않게 해주소서.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가벼운 입술로 무슨 말을 더 아뢰리이까?
당신께서 이미 알고 계시는 바와 같습니다. 당신의 앞에서는 달변의 혀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도합니다. 당신을 믿으며, 당신을 우러르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