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루의 안동 선비길 순례기, 제4코스 퇴계 예던길
예던길은 퇴계가 예전에 오가던 길, 즉 그가 예 걷던 오솔길을 이른다. 퇴계(退溪)가 스승이었던 농암(農巖)을 찾아 걷던 옛 길
이요, 청량산(淸凉山) 자락을 굽 돌아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산수를 즐기던 강변 옛길이다. 예던길을 찾아가는 도산(陶山)의
토계천은 황톳물이 큰 물을 이뤄 흘렀다. 계상서당(溪上書堂) 앞 징검다리는 물속에 잠겨 물보라를 거칠게 토하고, 퇴계종택
문전옥답의 누렇게 익은 논벼들은 쓸고 간 바람길이 휑했다.
지난 구간에 이어 다시 이육사문학관을 찾았다. 육사(陸史. 李源祿.1904~1944)는 20년 간 열입곱 차례나 옥고를 치르며 39세
에 북경 일본영사관 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이자 광야, 청포도 등을 쓴 민족시인이다. 그를 기리는 문학관 앞 언덕에는
생가인 육우당(六友堂)도 이전해 와 함께 있다. 하염없이 비는 계속 내렸다. 육사의 청포도 시비공원도 찾았다.예던길 옆 원원
촌(源遠村) 마을에 있다. 육사가 나고 자란 이 마을에는 퇴계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마을로, 지금도 목재고택(穆齋
古宅) 원대구택(遠臺舊宅) 사은구장(仕隱舊庄) 등 이 집안 이름난 이들의 고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이육사 생가(육우당) 터
에는 청포도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었다.육사가 광야의 시상을 떠 올렸던 원촌 마을 앞길을 따라 뒷재를 넘고, 단천리로 이어
지는 단천교 앞 낙동강 강변을 거슬러 건지산 자락 백운동(白雲洞)을 찾았다.위대한 철인(哲人)의 발길이 머물던 도산구곡(陶
山九曲) 길이다. 협곡 사이로 청량산이 보이는 옛 마을 산록에는 백운정이 한가롭고, 길 따라 퇴계의 풍류가 깃든 시비들이 길
손을 반겼다. 이어지는 건지산 등산길은 빗길이라서 안전을 위해 차를 불러 우회해 가송리로 바로 갔다.
농암종택(農巖宗宅)을 찾았다. 안동호의 수몰지역인 분천곡(汾川曲)에 있던 농암(聾巖. 李賢輔. 1467~1555)의 옛 고택이다.
농암은 조선 연산과 중종 때의 문신이자 우리나라 강호문학(江湖文學)의 창도자로 유명한 문인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만년에
는 고향인 도산 분천마을(汾川- -)로 낙향해 후학을 길렀다. 송재(松齋.李堣. 조선 중기 문신)의 스승이었고, 또 송재의 두 조카
인 온계(溫溪. 李瀣. 조선 중기 문신)와 퇴계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들 세분은 숙질간으로 모두가 과거에 급제해 출사 하며 집
안을 명문의 반열에 올린 분들이다. 종택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고 단지도 넓었다. 집 뒤는 건지산 동쪽 능선이 병풍을 두르고,
집 앞은 낙동강이 굽 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였다. 솟을대문이 있는 여섯 칸 문간채를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뒤에
는 안채가, 사랑채 옆에는 종택의 별당인 긍구당(肯構堂)이 날아갈 듯 서있다. 이웃해 분강서원(汾江書院)이, 또 이웃해 애월
당(愛月堂)이 마당가에 강각(江閣)을 거느리고 각각의 영역을 갖고 한 곳에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다. 명품고택인 농암종택은
오늘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하는 우수 전통한옥문화체험 숙박시설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애일당 앞, 풍류
가 깃든 미천장담과 강 건너편 벽력암 한속담, 그리고 그 조금 상류의 월명담은 불어난 낙동강 황톳물로 인해 볼 수 없어서 아
쉬움 토하며 고산협(孤山峽)을 찾았다.
고산정(孤山亭)은 성재(性齋) 금난수(琴蘭秀.1530~1604)가 1564년에 지은 정자로 일동정사(日洞精舍)라고도 한다.청량산 축
융봉 산록에 자리한 이곳 정자 옆은 가송협(佳松峽)으로 이름난 도산구곡 고산곡(孤山曲)이다. 이웃한 외병산과 내병산이 병
풍을 두르고, 건너편에는 고산(孤山. 獨山이라고도 함)이 마주 보고 솟아 절경을 이루었다. 성재는 23세에 퇴계의 8 고제(八
高第) 중 한 사람인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누이와 결혼하고, 처남인 월천의 권유로 퇴계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일찍이 퇴계
선생은 이곳을 지나다가 강건너 일동정사를 바라보며 "일동 주인 금군/ 물 건너에서 부르네, 지금 있는가/ 농부가 손을 졌는
데 소리는 안 들리고/ 구름 낀 산 쓸쓸히 보며 홀로 한참 앉았네." 라는 시를 남겼다 전한다. 지금도 낙동강이 굽 돌아 나가는
가송협은 다리가 없어 건널 수 없다. 비는 종일 내렸다. 독산 기슭 물가에 서서 퇴계가 그랬듯이 24-105mm 랜즈로 줌 하여 강
건너편 고산정을 불러들였다.
촬영, 2024, 09, 21.
▼이육사문학관 / 지난 3구간 날머리 때 촬영 이미지
▼퇴계 예던길 안내지도
▼이육사문학관 / 우중 촬영
▼이육사의 고향 원촌 마을
▼이육사 생가터에 있는 청포도 시비공원
▼청포도 시비 / 이육사 생가터
▼이육사문학관 옆으로 이전해 있는 이육사 생가 '육우당'
▼원촌 목재고택
▼원대 구택(遠臺舊宅) / 처사 이구(李榘)의 옛집으로 이 마을에 처음으로 정착하고 원촌(遠村)이란 마을 이름을 부여한 분.
▼ 사은구장(仕隱舊庄) 및 이원영 생가
▼원원촌 마을 동구 버스 정류장
▼원촌 뒷재
▼단천리 앞 단천교 일원
▼ 단천교 앞
▼퇴계오솔길 안내도 / 단천교 앞
▼단천교에서 본 건지산 산록과 낙동강
▼건지산 산록 백운정
▼백운정에서 본 청량산
▼백운동 시비(詩碑) 길
▼백운동 시비
▼퇴계오솔길, 농암종택 앞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
▼농암 선생 영정
▼농암종택 대문채
▼농암종택 사랑채
▼ 농암종택 안채
▼농암종택 별당, 긍구당
▼농암종택 명농당
▼분강서원 유도문
▼분강서원
▼애일당(愛日堂)
▼애일당과 강각
▼강각(江閣)
▼애일당 담장 밑에 있는 분천 농암 각자 바위
▼농암종택 앞 벽력암 - 1
▼ 농암종택 앞 벽력암 - 2
▼월명담 암벽
▼가송길 잠수교 / 고산정 입구
▼가송리
▼도산구곡 고산곡
▼고산정
▼고산곡과 고산정 - 1
▼ 고산곡과 고산정 - 2
▼고산곡과 고산(독산)
첫댓글 출발지인 이육사 문학관에서 청포도 시비공원과
그 옆의 고택들을 잘 담았군요.
소인은 비가 내려 서두르느라
청포도 시비를 보지 못했고
이웃 고택들도 도로에서 내려다 본게 전부입니다.
윤대장 따라 나섰다가 우측 늪지에서
한동안 길을 헤매였지요.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에는 스틱을 든채
건지산을 넘느라 참 힘든 하루였답니다.
5코스에서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던길 코스는 맑은 날은 그런대로 완주하기 좋으나
우중 트레킹은 건지산 산행길이 험해
힘든 코스라 여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