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에
경산에서 D와의 생활은 가을 학기를 보내면서 끝이 났다. 멀고 먼 거리 탓에 집에서 죽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면 시간표가 바뀌거나 강의실이 바뀌어서 텅 빈 교실과 마주치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강의실 문을 열었는데 일제히 시험을 보고 있는 때도 있었다. 시험지에 적을 수 있는 것은 내 이름자밖에 없었다.
아니다 그것은 '문학' 시험이었는데, 시험 문제 중간에 '서정주'의 '冬天'을 쓰시오 라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시들을 외우고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그런 문제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그 학점을 날리지 않았다.
학구적이고 엄격한(?) Y형이 있는 하숙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J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대구 서구 쪽이었다.
J는 내가 지금껏 동거한 사람들 중 가장 모범적이었다. 방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 되어있었다. J는 공부와 직장 일로 바빴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대부분 나 혼자가 되었다.
친구들이 군에 가고, 더러는 경산 영남대에 있고, 대부분 학교생활에 자리를 잡아가던 때였다. 무엇보다 나는 지쳐 있었다. 89번 버스를 타고 계산성당을 지나 사거리의 화강암의 큰 교회건물을 지나 언덕을 넘어 계명대학 서쪽 아래 시장입구에서 차를 갈아타고 집으로 오면 나는 그냥 집에 눌러있었다.
큰 위안이 있었다. '파나소닉' 카셋트였다. 몸체는 검고 손으로 누르는 작동 버튼이 흰색과 하늘색인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였다.
'박인희'의 테이프를 즐겨 들었다. 무엇보다 언젠가 춘천에 갔을 때 소양극장 옆에 있던 판을 파는 가게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녹음을 신청했다. 지금처럼 성음에서 나오는 클래식 테이프가 없던 때였다. '운명'과 '전원'이었다. 테이프는 90분 짜리였고, 나는 슈베르트의 '미완성'까지 부탁했다.
스탠드를 켜놓고 방바닥에 엎드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혼이 맑게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웅장하고 두렵게 운명은 다가왔다. 2악장의 아다지오 콘모토의 콘드라베이스의 피치카토를 타고 주제와 변주를 오가는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3악장의 가쁜 언덕을 넘어 4악장의 금관악기의 장엄함 속에서는 외경이 느껴졌다.
비해서 얼마나 '전원'은 얼마나 잔잔한 시냇물로 내 귀를 부드럽게 자극했던가, 미완성으로 끝나는 2악장의 가늘고 여린 오보에로 이어지면 끊을 듯 가슴이 아파 왔다. 그러면 어느새 클라리넷이 부드럽게 슬픔을 감싸 안았다. 밖에는 분지의 밤을 쓰다듬듯 설핏한 눈이 내리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나보다.
J는 조용히 들어와 자리를 깔아 놓고 나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직장을 가지면서 갖고 싶은 것이 좋은 전축이었다. 퇴근 후에 종로의 음악사에 나가 판을 고르는 시간을 아꼈다.
"무슨 음악을, 어떤 작곡가를, 어떤 노래를 좋아하세요?"
아무리 좋은 전축과 카셋트와 LP와 CD를 통해서도 그때만큼 음악이 내게 감동을 준 적은 이후에 없다.
(2002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