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사의 이미지화 <녹다>를 연출했던 8조 팔스텔의 서원정입니다.
거의 모든 과목들의 기말이 끝나가서, 이 시점에 이번 2학기를 돌아보며 몇 가지 글들을 올려보려 합니다. :)
22년 1학기 이후로 1년 반 동안 휴학을 하고,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와서 정신없이 올해를 보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영상스토리텔링 2 수업을 비롯해서 시나리오 수업, 다큐멘터리 수업 등을 수강하며 글과 연출, 영화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어요. 특히 영스텔 2 오후반 선후배 동기님들의 영상들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통해서, 제가 학교에 입학한 후 4년 간 영화와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어왔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 영상들을 보며 정말 감명깊었고 자극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제 개인적인 과정과 생각들을 게시판에 올려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부끄럽지만 남은 짧은 기간동안 제가 써둔 몇 가지 글들을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
처음 다룰 것은 동사의 이미지화 과제였던 <녹다>에 대해 했던 고민들입니다.
(위 시나리오는 제가 업로드했던 최종본과는 보이스 오버 대사가 조금 다릅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완성했던 버전의 시나리오예요.)
촬영 당일 새벽까지 시나리오를 수정한 바람에 콘티를 따로 그릴 수 없었는데요. 제가 직접 촬영할 예정이었고, 장비도 아이폰 하나에, 글을 쓰면서 이미지를 같이 생각하고 중요한 컷들은 샷사이즈를 함께 시나리오에 적어두었기에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위의 이미지에 보이는 것처럼 굉장히 러프하게 찍어야될 컷들을 정리했고, 다 찍은 씬들은 줄을 그어가며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촬영에는 규모를 최소화해서 조명부도, 미술부도, 촬영부도 필요하지 않았고 아주 짧은 분량이었기에 가능했지만 일반적으로는 무조건 콘티를 만들어야겠죠..? ㅎㅎ
<녹다>를 통해 오랜만에 연출을 하다보니, 제 머릿속에서만 있던 화면을 구현시키는 게 너무 즐거워서 정말 깔깔 웃으며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찍으면서도 굉장히 신났던 건 원형 극장에서의 씬이었습니다.
지원 바스트샷, 유진 바스트샷 이라고 컷을 나누어두고, 총 두 쇼트로 구성한 하나의 씬이었는데요. 글을 쓸 때부터 이 장면은 장소와 구도를 먼저 정하고 대사를 나중에 쓸 정도로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었어요.
첫번째 쇼트에서는 의도적으로 수평이 안 맞게 각도를 틀었는데, 지원만 보았을 때는 수평이 맞아보이는 재밌는 구도가 나와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여기서는 유진이 미끄러질 것 같은 각도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통해서 유진의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두번째 쇼트에서 유진이 뿅 하고 프레임 인 하고, 멀리있는 지원이 깜찍한 포즈로 뒤돌며 소리치자 포커스가 이동하는 등 제가 원했던 요소들이 귀엽게 화면에 배치되어 나타나서 역시 뿌듯한 마음으로 촬영했습니다.
이건 제가 3년 전에 제주도에서 샀던 산타 오르골 스노우볼이에요. 전원을 키면 조명과 눈 효과가 켜지고, 4개의 캐롤이 반복 재생되는데요. 그 캐롤들을 녹음해서 작품의 배경음악으로도 활용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크리스마스 회상 장면에서 가장 큰 역할을 이 스노우볼이 해준 것 같아요. 촬영 며칠 전 본가에 갔다가 거실 책장에 올려져있길래 얼른 가져왔는데,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소품이 이미지부터 사운드까지 담당해주었어요.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촬영이지만, 또 바꿔 생각하면 계획 한 것보다 더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까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거구나- 새삼스레 다시 실감한 것 같아요.
<녹다>에서 과거 회상 장면을 보여줄 때 총 두개의 필름 효과를 썼는데요. 영화 인트로 장면의 필름 효과는 시나리오상 저번주라는 짧은 과거를 위해, 위 이미지의 필름 효과는 작년 크리스마스라는 먼 과거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강의실의 큰 스크린에서는 티가 잘 안 나서 알아봐주셨을지 모르겠지만 .. 유진이 얼음 마음이 녹은 걸 확인하는 순간 화면에 검정색 테두리가 생기며 크기가 작아지고, 작년 크리스마스 회상 씬과 같은 필름 효과가 나타납니다. 유진의 마음이 결국은 녹아버려서 작년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걸 화면으로도 드러내면서 필름 효과로 통일성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오르골의 캐롤 음악이 다시 재생됩니다. 원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고있던 캐롤이 배경에 깔리는 설정이었는데, 편집할 때 확인해보니 행인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계획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니 더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마지막에 유진의 '잘 지내' 음성을 넣을지 말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 대사 하나로 앞선 모든 이야기들이 좁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사실 처음에는 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편집을 하다보니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심축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고, 영화의 상징들이 주는 힘은 좀 빠지겠지만 인물이 거부하려했던 그 녹은 마음의 종착지를 마지막 대사를 통해 알려주어야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크레딧에 보이스 오버 음성을 입히는 것으로 편집을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5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상징들이 많아서 불친절해질 수 있는 단점을 약간은 보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밖에도 정말 많은 고민들을 했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가장 중요했던 몇 가지 부분들만 추려서 써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써왔던 글들, 그리고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글을 잘 쓰지도 못 하고 시나리오는 더더더더더욱 부족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TMI 가득한 내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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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정 씨의 영상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는 글인 거 같아요!..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녹다'의 영상을 매우 인상깊게 봤던 사람으로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글이었어요! 재밌게 본 작품의 비하인드를 읽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여러방면에서 깊게 고민하신게 작품에서도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바쁜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좋은작품 만드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니 원정 님이 영상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게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러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영상의 깊이감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영상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글에서 드러나네요..!! 수고하셨어요!!
연출님의 고민과 애정이 와닿는 글이네요:) 같이 준비했지만 더 깊은 이야기도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일단 이 작품을 제가 처음 본 인상은 되게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는 점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작품에 대한 고민들을 보면 연출님께서 이 작품에 대한 열정이나 신경이 얼마나 쓰신지를 알수가 있는거 같고 영상 자체는 카메라는 얼마나 좋은지 렌즈가 얼마나 고급스로운지 그런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폰도 불구하고 이 작품처럼 좋은 스토리텔링함으로써 잘 표현한거 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깜찍한 포즈” 저도 정말 쑥스럽고 정말 재밌었어요 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