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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맞춤법의 열쇠
연구자료
2007/03/03 20:00
http://blog.naver.com/utimegps/70014907462
< 국어 : 맞춤법 사슬 풀어주는 열쇠> - 서성환 경영관련 서식
"맞춤법 사슬을 풀어주는 27개의 열쇠"
(지은이: 성기지, 한글학회 책임연구원)
═════ 차 례 ═════
첫째 마당 : 우리글 바로 쓰기
1. 한글 맞춤법 이야기
2. 알쏭달쏭 띄어쓰기 이야기
3. 사이시옷 이야기
4. 준말 이야기
5. 두음 법칙 이야기
6. 된소리 이야기
7. '-습니다' 이야기
8. '-오'와 '-요' 이야기
9. '그러므로'와 '그럼으로' 이야기
10. 뒷가지 '이/히' 이야기
둘째 마당 : 우리말 바로 하기
1. 표준말 이야기
2. 복수 표준말 이야기
3. 닮은꼴 이야기
4. '다른' 말 '틀린' 말 이야기
5. 자주 틀리는 낱말 이야기
6. 우리말 셈씨 이야기
7. 수와 길이에 관한 이야기
8. 말버릇 이야기
9. 표준 발음 이야기
셋째 마당 : 말글 사랑 실천하기
1. 일터의 말씨 이야기
2. 부름말 이야기
3. 부조금 봉투 이야기
4. 4자 성어 이야기
5. 일본말 찌꺼기 이야기
6. 생활 외래어 이야기
7. 외래어의 된소리 이야기
8. 로마자 표기법 이야기
열쇠 1: 한글 맞춤법 이야기
"한글 맞춤법" 하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젖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글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하며 그 어느 글자보다 읽히기 쉽고 쓰기에 편리한 글자입니다. 한글을 가진 우리 겨레의 문자 해득률은 거의 100%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 국민 누구나가 쉽게 부려 쓰고는 있지만, 막상 철자법, 띄어쓰기, 표준말 따위를 꼬치꼬치 따져야 할 자리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은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우리 시대의 어른들, 곧 한자 세대일 것입니다. 한자 세대는 일제 교육과 정치적 격변기를 거쳐오면서 규범화된 한글 적기법을 학습할 기회를 그리 많이 갖지 못하였으므로 그와 같은 불평이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한글 세대마저도 한글 맞춤법을 기피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한글 맞춤법이 이루어져 공포된 지 60년이 넘고, 학교 교육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지 5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맞춤법이 어렵다고 불평하며 올바로 읽히기를 기피하는 한글 세대가 많습니다. 이들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사람들이거나, 공부하기를 귀찮아하는, 몹시 게으른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래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그 사실을 입증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그 동안 한글 맞춤법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도 쉽게 그 원리를 알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정을 간략하게 풀이해 보겠습니다. (다음 4가지 풀이는 김계곤 님 지은 ≪한글 맞춤법 풀이≫(1987, 과학사), 10~13쪽에서 따 왔음.)
⑴ 띄어쓰기의 원리
우리말 적기의 띄어쓰기 단위는 구나 절이 아니며 엄격히 말하면 낱말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문장성분의 단위인 '어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절은 "나무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에서 '/'표로 나누어 보임과 같이 실지의 말씨에서 또박또박 떼어서 발음할 수 있는 말의 도막입니다. 그러므로 어절을 떼어서 글을 쓰거나 읽으면 이해하기도 수월하고 말뜻의 다름에 따라 휴식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숨결(호흡)에도 들어맞습니다.
이 어절은 우리들이 말을 할 경우 숨결에 맞는 단위이므로 조금만 주의하면 대부분의 글 적기에서 띄어쓰기의 규정을 몰라도 저절로 띄어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유의한다면 띄어쓰기에 자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떠날/ 줄을/ 몰랐다."
"나의/ 목표는/ 그보다/ 높은/ 데/ 있다."
"우리가/ 알/ 바가/ 아닌/ 것/ 같다."
위 문장을 숨결에 맞게 적으려면,
"그가/ *떠날줄을/ 몰랐다."
"나의/ 목표는/ 그보다/ *높은데/ 있다."
"우리가/ *알바가/ *아닌것/ 같다."
따위와 같이 붙여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거의 무든 일간 신문에서 이와 같이 숨결에 따라 붙여서 기사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예문들에서의 '줄, 이, 바, 것' 따위는 문법상 한 낱말로 다룬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이름씨[명사]와 이름씨가 잇달을 때의 띄어쓰기입니다. 원칙적으로 토씨[조사]나 씨끝[어미]을 제외하고는 낱말과 낱말은 모두 띄어서 써야 합니다. 그리고 한 낱말인지 두 낱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은 사전을 찾아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다만, 띄어쓰기 규정대로 띄었을 적에 너무 산만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적당히 붙여 써도 좋다는 융통성이 있는 규정이 여럿 있는데, 고유 명사와 전문 용어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가령, "서울대학교'도 '서울', '대학교' 따위가 각각 한 낱말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서울/ 대학교"로 띄어 써야 하지만, 이는 고유 명사이므로 "서울대학교'로 붙여써도 무방한 것입니다. 또한, "자동변속기"도 '자동', '변속기' 따위가 각각 한 낱말이어서 "자동/ 변속기"로 띄어 써야 하지만, 이는 전문 용어이므로 붙여 쓸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⑵ 받침 적기의 요령
한자 세대라고 불리는 기성 세대의 상당수가 어떤 받침을 적어야 할지 망설여질 때를 종종 경험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말은 "닭-이, 값-은, 꽃-에" 따위와 같이 임자씨(체언) '닭, 값, 꽃'에 토씨(조사) '이, 은, 에' 들이 붙어 쓰이며, "밟-아, 찾-으니, 없-으면, 높-으니까" 따위와 같이 풀이씨(용언)의 줄기 '밟, 찾, 없, 높'에 씨끝(어미) '아, 으니, 으면, 으니까' 들이 붙어 쓰입니다. 이런 경우 뜻을 나타내는 임자씨나 풀이씨의 줄기(어간)는 제 형태를 밝혀 적기로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토씨나 씨끝의 고정된 일정한 형태만 밝혀 적으면 임자씨나 풀이씨 줄기의 받침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꼬시(꽃이), 꼬슨(꽃은), 겁시 만타(겁이 많다)" 따위로 말하는 서울을 중심한 표준권 사람들의 말씨 버릇에 따르면 "꼿이, 꼿은, 겁시 많다"로 적어야 하기 때문에 받침이 (또는 토씨가) 제대로 밝혀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맞춤법이 아니고 표준말 문제인데, 이것을 맞춤법의 잘못으로 그릇 알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글 바로적기에 선행해야 할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표준말을 익히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⑶ 사이시옷 적기 문제
사이시옷 적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적기 원칙은 간단합니다. 다만 표준말을 가려 보지 않은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해님:햇님, 코노래:콧노래, 코등:콧등, 이몸:잇몸, 머리말:머릿말"에서 어느 쪽의 적기를 따라야 하는가에 있어서 먼저 표준말이 어느 쪽인가를 가려 보아야 합니다. (만일 표준말을 가려 보기에 의문이 생기면 사전을 찾아서 판별하면 됩니다.) 표준말의 실제 발음을 살펴보면 *[핸님], *[머린말]이 아니고 [해님], [머리말]이므로 사이시옷을 적을 필요가 없으며, *[코노래], *[코등], *[이몸]이 아니고 [콘노래], [코뜽], [임몸]이므로 "콧노래, 콧등, 잇몸"으로 적어야 합니다. '우리말+우리말' 또는 '우리말+한자말'로 이루어진 합성이름씨에서 [코뜽]처럼 뒤 조각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콘노래"처럼 앞 뒤 조각 사이에 'ᄂ'이 덧나거나, "임몸"처럼 'ᄆ'이 덧나는 경우에 사이시옷을 그것도 앞 조각에 아예 받침이 없을 때, 받침으로 적습니다. 그밖에 사이시옷 규정에 관한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 책에 따로 '사이시옷 이야기'를 두어 설명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⑷ 준말 적기의 방법
준말 적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준말을 적어 놓고 다시 본디말로 풀어 보면 그 요령이 잡힙니다. 보기를 들면 "아니한다"를 "안한다"로, "하지 아니한 일"의 "아니한"을 "않은" 따위로 줄여 쓰는데, 이런 경우는 준말 "안"을 "아니", "않은"을 "아니한"으로 풀어서 읽어보고 그 차례가 잡혀 있으면 맞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입니다. 만일 "안한다"를 "않한다"로 적었거나 "않은"을 "안은"으로 적었다고 하면 "않한다"는 "아니하한다", "안은"은 "아닌"으로 풀이되므로 앞 뒤 말의 관계에서 그 잘못을 쉬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저녁"을 "엊저녁", "가지고"를 "갖고" 따위 준말로 적는 이치도 앞의 보기에 대조해 보면 'ᄌ' 받침으로 적은 이유를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다, 가지면, 가지고" 따위로 적어야 할 것을 "갖이다, 갖이면, 갖이고" 따위로 적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준말이 아니므로 그렇게 적을 아무런 까닭이 없습니다. 이것은 으뜸꼴이 "가지다"이므로 그 줄기 '가지'에 씨끝 '-다, -면, -고' 따위를 붙여 쓰면 됩니다. "쓰이었다"의 준말을 "쓰였다" 혹은 "씌었다"로 적는데 둘 다 맞습니다. 이것은 "쓰이었다"의 '-이었-'이 줄면 '-였-', '쓰이-'가 줄면 '씌-'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씌였다"로 적으면 "쓰이었다"의 '-이-'가 앞 뒤로 겹쳐서 준 형태를 취하였으므로 틀린 것입니다.
열쇠 2: 알쏭달쏭한 띄어쓰기
우리 나라 사람이 우리말 적기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띄어쓰기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띄어쓰기라는 것은 아예 생각 않고 쓰면 모르되, 제대로 지켜 가며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요지경 속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글 맞춤법에서의 띄어쓰기 규정 자체가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한글 맞춤법> 제5장 '띄어쓰기'에는 모두 10개 항의 규정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반이 넘는 6개 항이 '~할 수도 있다'는 식의 규정(제46, 47, 49, 50항)이거나 '다만'이라는 허용 규정을 따로이 두고 있는 것(제43, 48항)입니다.
그러나 말글의 띄어쓰기는 '우리말 바로쓰기'의 터를 닦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규정이 다소 복잡하다 하여 손쉽게 포기해 버릴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규정을 잘 익히고 제대로 맞추어 쓰려는 성의를 가지면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것도 바로 띄어쓰기입니다. 많은 이들이 가장 알쏭달쏭해 하는 띄어쓰기 사례 가운데 몇 자지만 뽑아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의 띄어쓰기
"자신이 생긴 것은 이 학습기로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이렇게 써 놓으니 아무래도 이상해 보여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따위로 띄어 쓰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절은 모두 붙여 써야 합니다(관련 규정 제41항). 조사 '부터'는 위의 경우, 보조사로 쓰이었습니다. 보조사는 부사나 부사구에 붙어 쓰이기도 하며, 우리말에서 조사와 조사가 겹쳐 날 때에는 모두 붙여 씁니다.
(2)의존 명사 '데', '바', '뿐', '수', '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의존 명사 '데, 바, 뿐, 수, 지' 들은 모두 띄어 써야 합니다(관련 규정 제42항). 그러나 이들이 문장 안에서 언제나 의존 명사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예문들을 보겠습니다.
(1) ᄀ. 그렇게 서둘렀는 데도 불구하고 늦었다.
ᄂ. 그렇게 서둘렀는데 그만 늦고 말았다.
(2) ᄀ. 나는 그곳에 가 본 바가 없다.
ᄂ. 내가 그곳에 가 본바 사실 그대로였다.
(3) ᄀ. 귀찮을 뿐 아니라 밉기조차 하다.
ᄂ. 귀찮을뿐더러 밉기조차 하다.
(4) ᄀ. 이제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ᄂ. 그를 만날수록 깊이 빠져 들어 갔다.
(5) ᄀ. 우리가 갇힌 지 얼마나 되었을까?
ᄂ. 우리가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1)~(5)의 ᄀ은 의존 명사로서 모두 띄어 쓰지만, ᄂ의 '데, 바, 뿐, 수, 지' 들은 앞말에 붙여 써야 합니다. 이들은 제 홀로는 뜻을 갖지 않는 어미들로서, 본디 형태는 각각 '-ᄂ데/-(은)는데, -ᄂ바, -ᄅ뿐더러, -ᄅ수록, -ᄂ지/-(은)는지' 들이다. 특히, (1), (2)에서 보인 ᄀ과 ᄂ의 구별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3) '한번'의 띄어쓰기
'번'이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로 쓰인 경우에는 '한v 번, 두v 번, 세v번, …' 등과 같이 띄어서 써야 합니다(관련 규정 제42항). 그러나 '한번'이 어찌씨(부사)로서 하나의 낱말 단위로 쓰일 때에는 붙여 써야 합니다. 가령
"한번 속아 본 사람은 남을 쉽게 믿지 못한다.",
"어렵더라도 한번 해 보자."
등에서의 '한번'은 '일단'의 뜻으로 쓰인 어찌씨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한'과 '본'을 띄어 쓰면 안됩니다.
그러나, 어떤 문장 안에서 '한번 해 보자'가 '일단 시도해 보자'의 뜻이 아니고, '두 번 해 본다', '세 번 해 본다'와 같이 '두 번, 세 번, …' 등으로 바꾸어서 뜻이 통할 경우, '번'은 띄어 써야 함은 물론입니다.
(4) '십만 원'의 띄어쓰기
먼저, '십'과 '만' 사이를 띄어 쓸 것인지 붙여 쓸 것인지 한두 번쯤 망설여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를 적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글 맞춤법> 제44항에서 '만' 단위로 띄어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보기: 십칠억 이천이백삼십칠만 팔천오백사십일). 따라서 '십만'은 붙여 써야 합니다.
그 다음, 단위 명사 '원'은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 외에는 띄어 쓰는 것이 옳습니다(관련 규정 제43항). 곧 '천v원, 이만v원, 십만v원, …' 등으로 띄어 써야 합니다. 다만, 숫자와 어울려 '1,000원, 20,000원, 100,000원, …' 등과 같이 쓰일 때에는 붙여 씁니다.
(5) '및' 과 '등'의 띄어쓰기
'및'은 '그밖에 또'라는 뜻을 가진 어찌씨로서, '겸', '내지' 등과 같이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해 주는 말이므로 띄어서 씁니다(관련 규정 제45항). 따라서 'A, B 및 C'라고 할 때뿐만 아니라 'A 및 B'라고 할 때에도 띄어 써야 합니다.
'등(等)'은 우리말 '들, 따위'와 한뜻말로서, 같은 종류의 것이 앞에 열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등'도 위의 '및'처럼 어느 경우에나 띄어 써야 합니다.
(6) '알 만하다'의 띄어쓰기
우리말에서 '듯하다, 만하다, 법하다, 성싶다, 척하다' 들은 기원을 따져 보면 의존 명사 '듯, 만, 법, 성, 척' 들에 '하다, 싶다' 들이 붙은 것으로 이해되므로 이들을 모두 보조 용언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만v하다'와 같이 '만'과 '하다'를 뗄 수는 없다. 이 말은 '알v만하다'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관련 규정 제47항).
다만, 보조 용언의 띄어쓰기 규정에는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알만하다'로 써도 맞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허용 규정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는 일이 많은데, 글쓴이의 생각에는 되도록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길이며, 허용 규정을 따를 때에는 일관성을 지키어 같은 글 안에서는 통일되게 적어야 할 것입니다.
(7) '한국 전기 안전 공사'의 띄어쓰기
'한국 전기 안전 공사'는 고유 명사로 볼 수 있습니다.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습니다(관련 규정 제49항). '한국 전기 안전 공사'는 본디 낱말별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전체가 하나의 단위 명사이므로 '한국전기안전공사'와 같이 붙여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정은 전문 용어일 경우에도 적용(관련 규정 제50항)되어 '배관 설비 공사'는 '배관설비공사'로, '만성 신경성 위염'은 '만성신경성위염'으로 각각 붙여 쓰는 것이 허용됩니다.
열쇠 3: 사이시옷 이야기
사이시옷 적기에 대한 규정은 한글 맞춤법(문교부 고시 88-1호) 제30항에 밝혀 놓았는데, 이 규정은 잘 짜여진 듯하면서도 일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다. 때문에 사이시옷 문제는 대중의 글자살이에 있어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사이시옷 적기에 대한 규정을 훑어 보고, 자주 틀리는 두어 가지 함정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순 우리말끼리 어울린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 다음과 같은 소리 환경에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습니다.
①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보기) 나뭇-가지[―까―], 맷-돌[―똘], 나룻-배[―빼], 조갯-살[―쌀], 쇳-조각[―쪼―].
② 뒷말의 첫소리 'ᄂ, ᄆ' 앞에서 'ᄂ' 소리가 덧날 때.
(보기) 아랫-니[―랜―], 시냇-물[―낸―].
③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ᄂᄂ' 소리가 덧날 때.
(보기) 뒷-일[뒨닐], 깻-잎[깬닙].
둘째, 순 우리말과 한자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 다음과 같은 소리 환경에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습니다.
①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보기) 샛-강(―江)[―깡], 햇-수(―數)[―쑤].
② 뒷말의 첫소리 'ᄂ, ᄆ' 앞에서 'ᄂ' 소리가 덧날 때.
(보기) 제삿-날(祭祀―)[―산―], 수돗-물(水道―)[―돈―].
③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ᄂᄂ' 소리가 덧날 때.
(보기) 예삿-일(例事―)[―산닐], 훗-일(後―)[훈닐].
따라서 이 두 가지 외의 경우, 곧 '한자말+한자말'로 된 합성어일 때에는 어떤 소리 환경에서도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지 않는 것입니다(보기: 대가代價[―까]→대가, '댓가'가 아님). 위에 든 두 가지 원칙만 잘 지킨다면 사이시옷 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글쓴이가 '거의'라고 표현했듯이) 이것으로써 모든 문제가 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문교부 한글 맞춤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외 조항이 많다는 것인데, 이 사이시옷 규정에 있어서도 예외를 두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 예외는, '한자말+한자말'로 된 합성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음절로 된 다음 여섯 낱말이 바로 그 '문제아'들입니다.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이렇게 해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 세 가지(예외의 경우까지) 경우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이 정도만 이해하면 이제 글살이에서 사이시옷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도 언급하였듯이, 이 문제는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이들이 위의 규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그토록 헷갈리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곧 이 규정 자체가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이 규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두 군데의 함정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사이시옷은 '소리' 때문에 덧붙는 문법 형태소임에도 이 규정에서는 이를 '글자' 위주로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말끼리 어울린 합성어에서는 사이시옷 표기를 허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말과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나 외국인들은 이로써 낱말을 배울 때 그 뿌리―순 한국말인지, 한자에서 유래한 말인지 하는―까지도 알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말이 된 것이라면 그것이 토박이말이든 한자에서 온 말이든 구별하지 말고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맞춤법의 틀이 세워져야 합니다. 아마도 이 규정은 한글 전용의 추세를 의도적으로 꺼리고 국・한 혼용의 글자살이를 대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 없는 노파심마저 듭니다. 가령,
"법원에 소장이 갔다."
라고 할 때, 이 말의 뜻을 얼른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자 섞어 쓰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핑계로 삼아 '우리말은 한글로만 써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곧 "법원에 訴狀이 갔다."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법원에 솟장이 갔다."
로 쓰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한글 전용에 바탕을 둔, 제대로 된 어문 규정이라면 이같이 '말소리'를 무시하고 한자타령이나 하면서 복잡한 원칙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위의 여섯 낱말을 따로 예외로 두어 규정 아닌 규정을 자초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숫자, 횟수'처럼 앞으로 입에 완전히 굳어진 낱말(가령 '솟장', '갯수' 등)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계속 '예외'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글 맞춤법은 어렵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 같은 어문 정책의 줏대없음이 작용하는 바 큽니다.
둘째는, 앞에서 설명한 사이시옷 규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일수록 많이 틀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함정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문교부 한글 맞춤법 제30항에서는 '참고' 사항으로 "한 낱말 아래에 다시 된소리나 거센소리가 나는 낱말이 이어질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을 필요가 없다."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순 우리말+순 우리말', '순 우리말+한자말'로 된 합성어이더라도 'ᄁ, ᄄ, ᄈ, ᄍ, 나 'ᄏ, ᄐ, ᄑ, ᄎ' 앞에서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갈비-뼈…'갈빗뼈'가 아님.
위-쪽 …'윗쪽'이 아님.
아래-쪽…'아랫쪽'이 아님.
뒤-편 …'뒷편'이 아님.
위-층 …'윗층'이 아님.
뒤-처리…'뒷처리'가 아님.
위의 낱말들은 모두 사이시옷을 적지 아ᄒ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규칙도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역시(불행하게도)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셋-째…'세째'가 아님.
넷-째…'네째'가 아님.
이상으로 두 가지 함정을 살펴보았는데, 앞의 규정을 완전히 숙지하고 이 두 가지 함정마저 건너뛸 수 있다면 사이시옷에 관한 한 다시는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함정 1'에서 글쓴이가 현행 한글 맞춤법을 탓한 것은 그저 글쓴이의 사견일 뿐이니 염두에 두지 말고 규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융성했던 시대에서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썩 귀감이 되는 한 마디로써 세계의 질서를 지탱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열쇠 4: 준말 이야기
문장을 만들 때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아내기에 골몰합니다. 그것은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입니다. 어휘 선택에도 신중을 기하게 되지만, 서술어 하나 하나에도 결코 소홀할 수 없습니다.
서술어를 자연스럽게 쓰기 위해서는 으뜸꼴을 그대로 적기보다는 여러 가지 준말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 준말 사용에 있어서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잘못 알기 쉬운 준말 적기 가운데 몇 가지만 뽑아서 올바른 적기를 보이고자 합니다.
⑴ '되라'와 '돼라'는 어느 것이 올바른가?
우리말에서는 'ㅔ'와 'ㅐ'와 같이 발음만으로는 구별하여 적기가 어려운 음소가 있습니다. '되라'와 '돼라'의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으뜸꼴 '되다'에 명령형 맺음씨끝 '-어라'가 붙은 '돼라'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우리말의 명령형 씨끝은 '-어라'가 일반적이고 '어'가 움직씨에 따라 변이하여 '(가)거라'나 '(오)너라'가 쓰이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입말에서는 '-라'가 단독으로 풀이씨의 줄기에 결합할 수 없습니다. '되라'는 줄기 '되-'에 씨끝 '-라'가 직접 결합한 형태이므로 잘못입니다. '되-'에 '-어라'를 결합시켜 '되어라'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돼라'는〈한글 맞춤법〉제35항〔붙임 2〕"[ㅚ] 뒤에 [-어, -었-]이 어울려 [ㅙ, ㅙᄊ]으로 될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되어라'가 줄어진 대로 쓴 것입니다. 부사형 씨끝 '-어'라든지 '-어'가 선행하는 '-어서', '-어야' 따위 이음씨끝이나 과거 표시의 도움씨끝 '-었-'이 결합한 '되어, 되어서, 되어야, 되었다' 들을 '돼, 돼서, 돼야, 됐다'와 같이 적는 것도 모두 이 규정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쓰임이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원이 되라고 당부하셨다."에서와 같이 명령의 의미를 가지는 '-(으)라'가 어간에 직접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으)라'는 입말에서 들을이를 앞에 두고 말할 때는 쓰지 못하고, 글말이나 간접 인용문에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 때 '되라'는 '되어라'로 대치될 수 없으므로 오히려 '돼라'라고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되라'인지 '돼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에는 그 말을 '되어라'로 바꾸어 쓸 수 있는가 살펴보면 된다. 만일 '되어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돼라'로 써야 합니다.
⑵ '정은이에요.'인가, '정은이예요.'인가?
'-이에요'가 축약되어 '-예요'로 쓰인다는 것은 대개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사람 이름을 가리킬 때에도 '제 이름은 서 정은이에요.'라고 쓰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정은이예요.'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법적 구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분석입니다.
ᄀ. 정은+이에요.
ᄂ. 정은이+이에요.
이 둘 가운데에서는 ᄂ이 ᄀ보다 타당한 분석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정은'과 같이 닿소리로 끝나는 이름에 토씨가 결합되는 경우 뒷가지(접미사) '-이'가 함께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ᄃ. 정은이가, 정은이와, 정은이를, 정은이도
ᄂ이 타당한 구조라는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위의 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또 한 가지가 어려운 점으로 남게 됩니다. '정은이+이에요'에서 '이'와 '이'의 부딪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회피하는 방법으로는 탈락과 축약 가운데에 어느 방법을 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자라면 몸씨(체언)의 끝음절 '-이'든지 계사 '-이-'든지 하나의 '이'가 탈락하여 '정은이에요.'가 되겠고, 축약의 경우라면 '-이에요'의 '이'와 '에'가 축약하여 '-예'가 되어 '정은이예요.'로 표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과 평행되는 예는 '정은이였다.'와 같은 표기입니다. 이것을 분석하면 '정은이+이었다'일 것이고,〈한글 맞춤법〉제36항 규정('ㅣ' 뒤에 '-어'가 와서 'ㅕ'로 줄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을 따른다면 '정은이였다.'가 맞고 '*정은이었다.'는 틀리는 표기가 됩니다.
⑶ '않'과 '안'의 다른 점
'않다'는 움직씨나 그림씨 아래에 붙어 부정의 뜻을 더하는 도움풀이씨 '아니하다'의 준말이고 '안'은 풀이씨 위에 붙어 부정 또는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어찌씨 '아니'의 준말입니다. 따라서 "영수가 하지 않았다, 순미는 예쁘지 않다."와 같이 움직씨나 그림씨에 덧붙어 함께 서술어를 구성할 때에는 '않다'를 쓰고 "안 먹는다, 안 어울린다."에서와 같이 서술어를 꾸미는 구실을 할 때에는 '안'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줄기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ᄒ'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가 될 적에는 거센소리로 적는다(제40항). 다만, '하다'가 붙는 다른 풀이씨들 가령 '간편하다'와 같으면 '간편하니'만 가능하고 '*간펴으니'와 같은 형태가 불가능한 데 비해 '아니하다'는 '아니하니, 않으니' 모두가 가능한 것으로 보아 '않다'는 하나의 별개 낱말로 굳어진 것이라 판단됩니다다. 따라서 제40항〔붙임 1〕"[ᄒ]이 줄기의 끝소리로 굳어진 것은 받침으로 적는다."에 따라 받침으로 적게 됩니다.
반면, '아니'를 '안'으로 적는 것은〈한글 맞춤법〉제32항 "낱말의 끝홀소리가 줄어지고 닿소리만 남은 것은 그 앞의 음절을 받침으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아니하다'는 어찌씨 '아니'와 풀이씨 '하다'가 결합된 것이므로 '아니'를 그 준말 '안'으로 대치하는 것이 가능할 듯 싶지만, 도움풀이씨로 쓰이는 '아니하다'는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안하다'의 꼴로는 쓰이지 못합니다. 반드시 '않다'나 '아니하다' 꼴로 표현해야 합니다.
흔히 '않다'와 혼동되어 쓰이는 것으로 '아니다'가 있습니다. '아니다'는 서술격 토씨 '이다'에 대응하는 부정 표현입니다. 곧 서술격 토씨 '이다'가 쓰인 문장을 부정할 때 사용되는 그림씨로서 도움풀이씨가 아닌 본용언입니다. 따라서 '본동사+지' 구성에 연결되는 도움풀이씨로 '아니다'를 써서는 안 됩니다. '아니다'는 "A가 B가 아니다."와 같은 구성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열쇠 5: 두음 법칙에 대하여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 올 때쯤이면, 으레 연구실에 단골로 쏟아지는 문의 전화가 있습니다. '연말 연시'의 바른 표기를 묻는 내용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연말 연시'를 '연말년시'로 적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년'(年)이 낱말의 앞자리에서는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아 '연말'로 되지마는, 셋째 음절의 '年'은 '년'으로 적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연말 연시'는 하나의 낱말이 아닙니다. '연시'는 '연말'과는 별개의 낱말로 쓰이므로, 두 낱말은 띄어서 써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연시'도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위의 경우는 매우 간단한 예이지만, 두음 법칙의 적용 범위가 항상 규칙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글 맞춤법의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두음 법칙에도 유의하지 않으면 틀리기 쉬운 예외가 있으며, 때로는 모호하게 느껴지는 적용 예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두음 법칙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일상 생활에서 흔히 잘못 쓰기 쉬운 예를 든 뒤에 관련되는 규정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선녀"와 "신여성"
두음 법칙은 <한글 맞춤법> 제5절(제10, 11, 12항)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10항에서는 "한자음 '녀, 뇨, 뉴, 니'가 낱말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여, 요, 유, 이'로 적는다."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음) (본음대로 적음) (두음에서 바뀜)
녀(女) → 선녀(仙女) : 여자(女子)
뇨(尿) → 당뇨(糖尿) : 요소(尿素)
뉴(紐) → 결뉴(結紐) : 유대(紐帶)
니(泥) → 운니(雲泥) : 이토(泥土)
그러나, 매인이름씨(의존명사)는 위의 규정에 적용되지 않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가령, 매인이름씨 '년'(年)은 '년 1회', '몇 년' 등과 같이 본디 음대로 '년'으로 적습니다. 이 '년'(年)이 매인이름씨가 아닌, 두 음절 이상의 낱말 첫머리에 쓰일 때에만 '연말', '연시', '연초' 등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밖에 매인이름씨 '냥'(한 냥, 두 냥, …), '냥쭝'(한 냥쭝) 들도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제10항에서 특히 잘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음운 환경(둘째 음절 이하)임에도 'ᄂ'이 'ᄋ'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ᄂ' 소리로 나더라도 두음 법칙에 따라" 적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그것입니다.
신여성(新女性) [↔선녀(仙女)]
공염불(空念佛) [↔상념(想念)]
위 '신여성', '공염불' 들은 각각 '신'(新), '공'(空) 들이 접두사처럼 붙어 이루어진 합성어이므로, 한자음 '녀'(女), '념'(念)이 둘째 음절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ᄂ'이 'ᄋ'으로 바뀐 예입니다.
2. "법률"(法律)과 "선율"(旋律)
<한글 맞춤법> 제11항은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낱말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야, 여, 예, 요, 유, 이'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음) (본음대로 적음) (두음에서 바뀜)
량(良) → 선량(善良) : 양심(良心)
렬(列) → 행렬(行列) : 열거(列擧)
례(禮) → 혼례(婚禮) : 예의(禮儀)
룡(龍) → 와룡(臥龍) : 용호(龍虎)
률(律) → 법률(法律) : 율격(律格)
리(理) → 진리(眞理) : 이발(理髮)
앞에서 밝힌 바대로 의존명사는 위의 규정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리유'(理由)는 '이유'로 적지만, 의존명사 '리'(理)는 '그럴 리가 없다.'처럼 본음대로 적습니다. 또한, 거리를 나타내는 의존명사 '리'(里)도 '몇 리인가?'처럼 두음 법칙에 적용 받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10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는 둘째 음절 이하에서라도 'ᄂ, ᄅ'을 두음 법칙에 따라 'ᄋ'으로 적어야 합니다(예: 연이율, 열역학).
제11항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렬', '률'은 낱말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도 일정한 환경에서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아 음운이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곧 "모음이나 'ᄂ'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열(羅列) [↔행렬(行列)]
비율(比率) [↔시청률(視聽率)]
선열(先烈) [↔열렬(熱烈)]
선율(旋律) [↔법률(法律)]
위의 '렬, 률'은 그 앞 음절이 받침 없는 말이거나 'ᄂ' 받침으로 끝나는 경우, 둘째 음절 이하임에도 본음대로 적지 않고 각각 '열, 율'로 바뀜을 알 수 있습니다.
3. "경로석"과 "상노인"(上老人)
끝으로, 제12항은 "한자음 '라, 래, 로, 뢰, 루, 르'가 낱말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는다."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자음) (본음대로 적음) (두음에서 바뀜)
락(樂) → 쾌락(快樂) : 낙원(樂園)
래(來) → 미래(未來) : 내일(來日)
로(老) → 경로(敬老) : 노인(老人)
뢰(雷) → 낙뢰(落雷) : 뇌성(雷聲)
루(樓) → 기루(妓樓) : 누각(樓閣)
릉(陵) → 왕릉(王陵) : 능묘(陵墓)
이 규정에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낱말은 뒷말을 두음 법칙에 따라 적습니다.
곧, '경로석'(敬老席)에서는 '로'(老)를 본디 음대로 적지만, 상늙은이라는 뜻의 '상노인'(上老人)에서는 두음 법칙에 따라 'ᄅ'이 'ᄂ'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는 '상노인'이 '상+노인'의 합성어인데, 여기에서 '상'이 접두사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노인' 앞에 서을 붙여 부르는 부름말 '강노인', '김노인', 박노인' 들은 모두 두음 법칙에 따라 'ᄅ'이 'ᄂ'으로 바뀌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4. 사람이름에서의 적용
이 문제는 동사무소의 주민 등록 업무가 한글로 전산화하면서부터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성과 이름은 붙여 쓰기로 되어 있으니(제48항), 성을 뗀 이름의 첫 음절은 자연히 둘째 음절 이하가 되므로, 원칙적으로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사람이름을 부를 때에는 '용식'이라 하지 '김룡식'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성과 이름을 붙여 쓰더라도 이름에서만큼은 두음 법칙을 적용하여 '김용식'이라 적도록 하였습니다. 다만,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예: 신립, 최린).
사람이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는 이름 마지막 글자의 적기입니다. 특히 '렬, 률, 룡' 따위의 한자음은 사람마다 제각기 달리 적습니다. 가령, 같은 한자음인 '렬' 자도 '최병렬'에서는 본음대로 적는가 하면, '선동열'에서는 'ᄂ' 음을 'ᄋ'으로 바꾸어 적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두음 법칙과는 무관한 것이며, 한글 맞춤법으로 규정할 내용이 아닙니다. 한자를 한글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이름의 고유성을 최대한 존중하여, 실제 부르는 이름으로 적도록 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곧, [동녈]로 부르고 있다면 '동렬'로 적되, [동열]로 부르고 있다면 '동열'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열쇠 6: 된소리 이야기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나날말(일상 용어) 가운데 그 표기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처럼 잘못 알고 있는 한글 표기법은 그때그때 바로잡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바로잡히지 않는 표기 예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어지간한 것들은 그 잘못을 깨닫고 되살펴 보면 대개가 수긍이 가기 마련이지만, 어떤 것은 나름대로의 상식으로 볼 때 어찌하여 잘못인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된소리 적기에서 이 같은 어려움이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음에 들어보는 몇 가지 경우는 된소리와 예사소리를 구별하여 적기가 매우 까다로운 용례입니다. 개정된 문교부 <한글 맞춤법> 이후,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할게'의 적기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할게'와 '~할까?'
현행 표기법에서는, "~할께"는 "~할게"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래 예문들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1) ᄀ. 걱정 마, 내가 *할께. (→할게)
ᄂ. 그래, 내가 *치울께. (→치울게)
(2) ᄀ. 그럼 내가 할까?
ᄂ. 어떤 것부터 치울까?
(1)과 (2)에서 볼 수 있듯이, 씨끝 '-(으)ᄅ게'와 '-(으)ᄅ까'는 둘 다 된소리로 발음되면서도 (1)은 예사소리('→' 표 뒤의 고딕글자)로, (2)는 된소리로 구별하여 적습니다. 이와 같은 표기법의 근거는〈한글 맞춤법〉제53항의 규정입니다.
곧, 씨끝 '-(으)ᄅ걸, -(으)ᄅ게, -(으)ᄅ세, -(으)ᄅ세라, -(으)ᄅ수록, -(으)ᄅ시, -(으)ᄅ지, -(으)ᄅ지니라, -(으)ᄅ지라도, -(으)ᄅ지어다, -(으)ᄅ지언정, -(으)ᄅ진대, -(으)ᄅ진저, -올시다' 들은 예사소리로 적되, 다만 의문을 나타내는 씨끝 '-(으)ᄅ까, -(으)ᄅ꼬, -(스)ᄅ니까, -(으)리까, -(으)ᄅ쏘냐' 들만을 된소리로 적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예사소리로 적는 것들은 모두 '-(으)ᄅ'과 어울려 쓰이는 일정한 조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으)ᄅ걸, -(으)?ᄅ' 들은 각각 '-(으)ᄂ걸, -는지' 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 연관성이 있는 씨끝들의 표기를 통일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스)ᄇ니까, -(으)리까' 들은 'ᄅ' 받침 뒤가 아닌 환경에서 항상 된소리 '-까'로 나타나는 의문형 씨끝들입니다.
(2)에서처럼 '-(으)ᄅ' 뒤에 오는 소리를 된소리로 적는 것은 '-(으)ᄅ까, -(으)ᄅ꼬, -(으)ᄅ쏘냐'의 경우에만 국한됩니다. 이들은 본디 된소리로 발음되는 의문형 씨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비슷한 조어 구조이면서도 반드시 예사소리와 된소리를 구별해서 써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음에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2)"뚝배기"와 "곱빼기"
"뚝배기"와 "곱빼기"의 경우, 다같이 [-빼기]로 발음되면서도 이를 '-배기'와 '-빼기'로 구별해 적어야 하니,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음식점에 가 보면, 거의 모든 차림표에서 이와 같은 혼란을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귀퉁배기, 나이배기, 대짜배기, 육자배기, 주정배기, 포배기, 혀짤배기" 들과 같이, [배기]로 발음되는 경우를 '-배기'로 적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발음이 [빼기]인 경우들인데, 이들은 다음과 같이 '-배기', '-빼기'로 구별하여 적어야 합니다.
(3) *뚝빼기도 *곱배기가 있습니까?
→뚝배기도 곱빼기가 있습니까?
1. "뚝배기, 학배기" 들과 같이 한 형태소 내부에 있어서 'ᄀ, ᄇ' 받침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경우는 '-배기'로 적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뚝배기, 학배기" 들은 〈한글 맞춤법〉제5항의 "한 낱말 안에서 'ᄀ, ᄇ'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가 아니면 된소리로 적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곱빼기"는 'ᄇ' 받침 뒤에서 된소리가 나는 경우이지만, 앞의 밑줄 친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ᄇ+ᄈ)'에 속하므로 된소리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2. 반면, 다른 형태소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것은 모두 '-빼기'로 통일하여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한글 맞춤법' 제54항 참조). 여기에 해당되는 예로는 "고들빼기, 그루빼기, 대갈빼기, 머리빼기, 이마빼기, 재빼기, 코빼기" 들이 있습니다.
(3)"맛적다"와 "멋쩍다"
(4) ᄀ.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맛적은 사람이다.
ᄂ.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매우 멋쩍어 하였다.
(4)ᄀ에서처럼 "맛적다"는 '재미나 흥미가 적어서 싱겁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발음이 [-쩍다]로 나더라도 '적다(少)'의 뜻이 유지되고 있는 합성어의 경우는 '-적다'로 적어야 합니다.
반면, (4)ᄂ에서 예를 들어 보인 "멋쩍다"의 경우처럼, '적다(少)'의 뜻이 없이 [-쩍다]로 발음될 때에는 모두 '-쩍다'로 통일하여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한글 맞춤법' 제54항 참조). 여기에 해당되는 낱말로는 "객쩍다(쓸데없고 실없다), 겸연쩍다, 맥쩍다(심심하고 무료하다), 멋쩍다(동작이나 모양이 격에 맞지 아니하다, 어색하다), 해망쩍다(영리하지 못하고 어리석다), 행망쩍다(정신을 잘 차리지 아니하다, 아둔하다)" 들이 있습니다.
(4)"부딪히다"와 "부딪치다"
지금까지 살펴본 예사소리・된소리 적기와는 성격이 다른 문제이지만, 흔히들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낱말들 가운데 "부딪히다"와 "부딪치다"가 있습니다. 아래 예문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5) ᄀ. 공사장에서 떨어진 나무에 머리를 부딪혔다.
ᄂ. 그 배우는 지금까지 별의별 질시와 모함에 부딪혀 왔다.
(6) ᄀ. 저기가 그들의 차가 부딪친 곳이다.
ᄂ. 마침내 할인 매장에서 그녀와 맞부딪쳤다.
"부딪다"는 '마주 닿다, 마주 대다, 마주 닥뜨리다'의 뜻으로 쓰이는 움직씨입니다. "부딪히다"는 이 말의 피동형으로서 '부딪음을 당하다'의 뜻이고, "부딪치다"는 "부딪다"의 힘줌말입니다. 얼른 보면 구별이 쉬운 것 같지만, 나날살이에서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해서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5)ᄀ, ᄂ은 본인(주어)의 적극적인 행위 없이 일방적으로 '부딪음을 당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나를 무엇인가가 와서 부딪는다면 분명 '나'는 '부딪힌' 것입니다. 반면, (6) ᄀ, ᄂ은 서로의 행위가 적극적으로 맞닥뜨린 것입다. '나'도 그에게 부딪고, '그'도 나에게 부딪은 것이니 서로는 분명 '부딪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쇠 7: "있슴"인가, "있음"인가?
씨끝〔어미〕"-습니다, -읍니다" 가운데서 "-습니다"를 표준으로 삼은 근거는 지난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문교부에서 고시한〈표준어 규정〉제17항에 밝혀져 있습니다. 곧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읍니다"에 비해 오늘날 상대적으로 더욱 널리 쓰이게 된 "-습니다"만을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하여 전혀 예기치 않았던 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씨끝 "-읍니다"를 "-습니다"로 적도록 하고 나니까, 많은 이들이 이름씨끝〔명사형 어미〕"-음"을 "-슴"으로 적는 엉뚱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학회 연구부에 걸려온, 이 문제에 관련된 문의 전화를 받아 오며 느낀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 위주의 입말(말하기)과 읽기 위주의 글말(어법)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고 하니까 새 표준어 규정이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바뀐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한글 맞춤법〉제1장 제1항에서는 분명히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음, -ᄆ"은 풀이씨〔용언〕를 이름씨〔명사〕처럼 구실하게 하는 이름씨끝으로서, 닿소리자음〕밑에서는 "-음"을, 홀소리〔모음〕밑에서는 "-ᄆ"을 쓰는 것이 올바른 어법입니다.
"-음"을 "-슴"으로 적어야 한다는 생각은 "-음"을 "-읍니다"의 줄인꼴로 잘못 알고 있는 데에서도 비롯됩니다. 그래서 "-습니다"가 표준말이 되었으니까 "-음"도 "-슴"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은 "-읍니다"의 줄인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음"은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음"입니다. 아래의 보기에서 ':' 표시 왼쪽은 "-습니다"가 결합된 예이고 오른쪽이 "-음"이 결합된 예인데, 발음을 잘 비교하여 보면 그 이치를 금방 깨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줄기+씨끝) (발음) (줄기+씨끝) (발음) (참고)
먹+습니다 [먹씀니다] : 먹+음 [머금] ※[먹씀]이 아님.
닫+습니다 [닫씀니다] : 닫+음 [다듬] ※[닫씀]이 아님.
숨+습니다 [숨씀니다] : 숨+음 [수믐] ※[숨씀]이 아님.
찾+습니다 [쁨씀니다] : 찾+음 [차즘] ※[쁨씀]이 아님.
쫓+습니다 [쪼ᄃ씀니다] : 쫓+음 [쪼츰] ※[쪼ᄃ씀]이 아님.
같+습니다 [갇씀니다] : 같+음 [가틈] ※[갇씀]이 아님.
갚+습니다 [갑씀니다] : 갚+음 [가픔] ※[갑씀]이 아님.
없+습니다 [업씀니다] : 없+음
있+습니다 [램씀니다] : 있+음
이와 같이, 줄기〔어간〕의 끝 받침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맺음끝〔종결 어미〕"-습니다"를 붙이거나 이름씨끝 "-음"을 붙이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음씨끝〔연결형 어미〕"-으니"와 "-으며"와 "-으면"과 "-으면서"의 경우도 위와 한가지이다.
먹+으니→먹으니 [머그니] ※[먹쓰니]가 아님.
닫+으며→닫으며 [다드며] ※[닫스며]가 아님.
숨+으면→숨으면 [수므면] ※[숨스면]이 아님.
.
.
.
없+으니→없으니
있+으며→있으며
-겠+으면→-겠으면
-였+으면서→-였으면서
지금까지 밝힌 대로, "-습니다"와 "-음"(그 밖에 "-으니", "-으며", "-으면", "-으면서" 따위)의 적기는 전혀 갈래가 다르며, 새〈표준어 규정〉에서 바꾼 것은 "-읍니다"를 버리고 "-습니다"로만 적기로 한 것뿐입니다.
〈표준어 규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물음을 나타내는 씨끝 "-습니까"('-읍니까'가 아님)와 또 다른 씨끝 "-습디다"('-읍디다'가 아님)도 "-습니다"와 한가지로 다루면 됩니다.
한편, "없아오니"와 "없사오니"의 경우에서는, 오히려 '-사오니'가 '없-'과 관련하여 발음되는 것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인 줄로 잘못 알고 어법 위주로 돌리려는 충실한(?) 착각에서, "없아오니"의 형태를 취하는 오류가 종종 일어납니다. 이 때의 '-사오-'는 옛날말 '-삽-'이 변형된 선어말 어미로, '-으오-'보다 공손함을 나타낼 때 쓰입니다. 아래에 몇 가지 용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먹+사오니→먹사오니 ※'먹아오니'가 아님.
닫+사오니→닫사오니 ※'닫아오니'가 아님.
숨+사오니→숨사오니 ※'숨아오니'가 아님.
같+사오니→같사오니 ※'같아오니'가 아님.
없+사오니→없사오니 ※'없아오니'가 아님.
있+사오니→있사오니 ※'있아오니'가 아님.
앞에서,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바뀐 지 6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씨끝 "-습니다"와 "-음"의 적기를 혼동하고 있는 까닭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표준말을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게' 쓰도록 한 표준어 규정을 잘못 이해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으로 착각한 까닭인데, 이는 말하기 위주가 아닌 읽기 위주의 올바른 어법을 깨우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음을 앞에서 예시하였습니다.
둘째는 씨끝 "-음"을 "-읍니다"의 줄인 꼴로 잘못 알고,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니까 따라서 "-음"도 "-슴"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종결 어미 "-습니다"와 명사형 어미 "-음"의 무관함을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임으로써 설명하였습니다.
글쓴이가 우리 말글 규범에 관한 각종 질의를 대하며 느낀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보다는 우리 문법에 관한 기초가 탄탄하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단순하고 개괄적인 것에 대한 착각―가령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의 성격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든지―으로 종종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열쇠 8: '-오'와 '-요' 이야기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그때마다 틀리게 써서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것들이 더러 있는데, 씨끝 '-오'와'-요'를 뒤섞어 쓰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음에 보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1) 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ᄂ. "어서 *오십시요."
ᄃ. "자리에 않아 *주십시요.
(2) ᄀ. "그대는 나의 *빛이오, 생명입니니다."
ᄂ. "이분은 *부장님이오, 저쪽이 상담실입니다."
위 예문 (1)은 '-오'를 써야 할 자리에 '-요'를 쓴 것이고, (2)는 '-는 '-요'를 써야 할 자리에 '-오'를 쓴 것입니다. '-오'와 '-요'의 구별을 사전 뜻풀이에 기대어 살펴보겠습니다.
-오: 홀소리로 끝나는 줄기에 붙어, '하오' 할 상대에게 의문・명령・설명을 나타내는 맺음 씨끝.
-요: '이다'・'아니다'의 줄기에 붙어, 사물이나 사실을 나열할 때에 쓰이는 이음 씨끝.
곧, '-오'는 맺음 씨끝이고 '-요'는 이음 씨끝입니다. 다만, '-오'가 '-시-' 뒤에서 'ㅣ'모음의 영향을 받아 [요]로 소리나기 때문에 이러한 혼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1)의 밑줄 친 부분은 본디'하오' 할 상대에게 '받으오(→바등시→받으십시오)', '오오(→오시오→오십시오)', '주오(→주시오→주십시오)'로 말하는 것을 매우 높여 표현한 것이며, (2)의 밑줄친 부분은 문장의 앞과 뒤를 이어주는 씨끝으로서 각각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야 합니다.
(1)' 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ᄂ. "어서 *오십시오."
ᄃ. "자리에 않아 *주십시오."
(2)' ᄀ. "그대는 나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ᄂ. "이분은 *부장님이요, 저쪽이 상담실입니다."
이번에는 현행 <한글 맞춤법>에서 이 두 씨끝의 구별을 어떻게 명시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행 <한글 맞춤법>은 형태소 결합에 나타나는 'ㅣ' 홀소리 되기('ㅣ'모음 동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합하는 형태소들의 본디 모습을 최대한 살려주는 <한글 맞춤법>의 기본 정신 때문입니다. 만일 위 예문 (1)의 경우, 'ㅣ'홀소리 되기를 표기에 반영하면 새로운 씨끝으로 '-요'를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말 맺음 씨끝 '-오'는 홀소리 되에서는 그대로 '-오'로 쓰이고, 닿소리 뒤에서는 '-으-'가 결합된 '-으오'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홀소리'ㅣ' 뒤에서의'-요'를 인정하면 이 형태의 수가 늘어나 활용이 복잡하게 될 뿐만 아니라, 터씨 '-요'와 구분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한글 맞춤법> 제15항 [붙임 2]에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씨끝 '-오'는 [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와 같이 용법과 표기에 대해 명시하여 놓은 것입니다.
한편, 이음 씨끝으로서의 '-요' 외에 토씨로 쓰이는 '요'가 있는데, 맺음 씨끝 '-오'와 토씨 '요'와의 구별에도 주의하여야 합니다. 왜냐 하면, ᄐ씨 '요'도 맺음 씨끝 '-오'처럼 문장을 끝맺을 때 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3) 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ᄂ. 어서 오세요.
ᄃ. 자리에 앉아 주세요.
ᄅ. 우리가 이겼어요.
위 예문 (3)에서의 '-요'는 존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도움토씨입니다. 사전에서의 뜻풀이를 보겠습니다.
요: 풀이씨의 씨끝이나 어찌씨들에 붙어,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존대하는 뜻으로 나타내는 도움씨 '-오'는 맺음 씨끝이므로 줄기나 안맺음 씨끝 뒤에 결합하여야만 하며, '요'는 토씨이므로 이름씨에 결합함은 물론 풀이씨와 결합할 때도 맺음 씨끝 뒤에 다시 결합합니다. 따라서 '-오'나 '요' 앞의 말이 몸씨이면 당연히 '-요'를 써야 하며, 앞의 말이 풀이씨이더라도 맺음 씨끝이라면 '-요'를 써야 합니다.
특히, '-요'는 반말체의 맺음 씨끝 '아/어', '지' 들의 뒤에 결합되므로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가시오'의 경우 '-오' 앞의 '-시-'는 안맺음 씨끝이므로 '요'가 결합할 수 없어 *'가시오'라고 쓸 수 없습니다. '가세요, 가셔요'의 경우, '가세, 가셔'가 독립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점으로 보아 맺음 씨끝 다음의 토씨 '요'가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세요'와 같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ㅣ 뒤에 '-어'가 와서 'ㅕ'로 쓸 적에는 준대로 적는다."(한글 맞춤법 제36항)는 규정과 혼동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행 <한글 맞춤법>이 'ㅣ'홀소리 되기를 인정하지는 않으나,아예 'ㅣ'가 줄어들고 뒤의 홀소리와 합쳐질 때는 '가져(가지어)'와 같이 표기할 수 있습니다. 만일, '가시오'에서 '-시-'의 'ㅣ'가 '-오'와 합쳐질 수 있다면, 이 규정에 따라 '가쇼'와 같이 표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종결형에서는 '-오'로, 연결형에서는 '-요'로 적는다.
예: 이것은 책이오. ↔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연필이다.
(2) '-십시오'의 형태에서는 언제나 '-오'로 적는다.
예: 어서 오십시오.
(3) 존대를 나타내는 도움토씨의 경우에는 문자의 끝에서 '요'로 쓴다.
예: 어서 오세요.
열쇠 9: '그러므로'와 '그럼으로'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소리나는 대로 바뀌었다는데, 그러면 '있음'이 아니고 '있슴'이 맞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가 이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경우에는 '있음'이 맞습니다.
우리 한글 맞춤법의 큰 원칙이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한글 맞춤법 제1항)는 것인데,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바로 이 '어법에 맞도록' 써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규칙적인 끝바꿈(활용)에서는 풀이씨(용언)의 줄기(어간)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곧 '있다'의 끝바꿈꼴(활용형)인 '있고, 있어(서), 있으니, 있음, …' 들은 줄기 '있-'은 변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씨끝(어미) '-고, -어(서), -으니, -음' 들이 붙은 것입니다.
우리말에 '-슴'이란 씨끝은 없습니다. 따라서 '있음'을 '있슴'으로 적는 것은 어법에 어긋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있슴'이 소리나는 대로 적힌 것도 아닙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면 '이씀'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그러므로'와 '그럼으로'의 혼동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와 '그럼으로'는 적기에 있어서만 구별될 뿐 말하기・듣기에서는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하므로/함으로, 알리므로/알림으로, 일어나므로/일어남으로, … 들도 모두 같은 경우입니다.) 억지로 끊어서 읽기 전에는 발음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적기에 있어서도 자주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분명하게 서로 다른 말이므로 잘 구별해서 적어야 합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무었보다 중요합니다.
먼저, '그러므로'는 '그렇다' 또는 '그러다(←그렇게 하다)'의 줄기 '그러(큁)-'에 까닭을 나타내는 씨끝 '-므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 하기 때문에'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다음의 예문들에서는 '그러므로'로 적어야 합니다.
⑴ 그녀는 이제 혼자이다. 그러므로 외롭다. (그러니까)
⑵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모았다. (그렇기 때문에)
⑶ 법이 그러므로,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⑷ 그녀가 만날 때마다 그러므로,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리 하기 때문에)
반면에 '그럼으로'는 '그러다'의 이름씨꼴(명사형) '그럼'에 토씨(조사) '-으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말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라는 수단이나 방법의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그럼으로' 다음에는 '그러므로'와는 달리 '-써'가 결합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예문들에서는 '그럼으로' 또는 '그럼으로써'를 써야 합니다.
⑸ 그녀는 무턱대고 먹어댔다. 그럼으로(써) 울분을 삭였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한편, 위의 ⑴, ⑵나 ⑸에서 두 문장이 하나로 합쳐질 때에도 '그러므로, 그럼으로(써)'에 준하여 '~므로, ~(으)ᄆ으로(써)'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⑴' 그녀는 이제 혼자이므로 외롭다.
⑵'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므로 돈을 많이 모았다.
⑸' 그녀는 무턱대고 먹어댐으로(써) 울분을 삭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곧 '그러므로써'나 '그러므로서', '그럼으로서' 들과 같은 표기는 어느 경우에나 맞춤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하여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다 알고 있다시피, 씨끝은 줄기와 결합하며, 토씨는 몸씨(체언)에 붙습니다. '-므로'는 씨끝이므로 풀이씨의 줄기와 결합할 수는 있지만 몸씨에는 붙을 수 없습니다. 또한, '-(으)로써'나 '-(으)로서'는 토씨이므로 몸씨에만 붙을 수 있을 뿐 풀이씨의 줄기에는 붙지 않습니다. 곧 '혼자이므로'를 '혼자임므로'로 쓸 수 없듯이 '먹어댐으로써'를 '먹어대므로써'나 '먹어대므로서'로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문들은 모두 비문입니다.
⑹ *그녀는 책을 읽으므로써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읽음으로써)
⑺ *그러므로써 모든 일은 끝났다. (→그럼으로써)
⑻ *그렇게 하므로서 나의 책임은 다했다. (→함으로써)
⑼ *얼굴이 크므로서 긴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크므로)
다시 말해서, 우리말에는 '-므로써'나 '-므로서'와 같은 씨끝이 없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한글 맞춤법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면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직도 토씨 '-로써'와 '-로서'의 구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고, '-로서'는 신분이나 자격을 뜻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의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문장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구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⑽ 그는 영웅으로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다.
⑾ 그는 대패로써 나무를 깎았다.
위의 예문 ⑽에서 '-(으)로서'는 '(영웅의) 자격'을, ⑾에서 '-로써'는 '(대패를) 가지고'라는 수단을 나타내는 토씨로 쓰였습니다. 이들 문장은 비교적 짧기 때문에 한 번 읽어 보면 쉬이 그 뜻이 파악되지만, 문장이 길어질수록 내용을 이해해서 뜻을 알아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 때에는 이런 방법을 쓰면 됩니다. 곧 '~로서'나 '~로써' 앞의 구절을 'A는 B이다'식으로 만들어 보아서, 문맥상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로서'를 쓰고, 말이 되지 않으면 '-로써'를 씁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하면 위의 예문들에서 밑줄 친 부분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⑽' 그는 영웅이다.
⑾' *그는 대패이다.
⑽'은 문맥상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⑾'은 전혀 맞지 않는 비문이 됩니다. 따라서 위 ⑽에서는 '-로서'를, ⑾에서는 '-로써'를 써야 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열쇠 10: 뒷가지 '-이/-히' 이야기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교정하다 보면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가 잘 구별되지 않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틈틈히"인지 "틈틈이"인지, "꼼꼼히"인지 "꼼꼼이"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한글 맞춤법〉제51항에서는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틈틈이"와 "꼼꼼히"가 각각 바른 표기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홀소리와 홀소리 사이 또는 울림소리(유음, 비음)와 홀소리 사이에서는 'ᄒ'이 약화되므로, 실제로〔이〕와〔히〕의 발음을 구별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발음에만 의존하여 구별하려 한다면 "틈틈이, 꼼꼼히, 고이, 헛되이, 나른히" 들을 "틈틈히, 꼼꼼이, 고히, 헛되히, 나른이" 들로 잘못 적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의 구별을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앞에서 제시한〈한글 맞춤법〉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다음에서 부사화 접미사를 '-이'로 적어야 하는 것들의 문법적인 기준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보이겠습니다.
⑴ '-하다'가 붙는 뿌리(어근)의 끝소리가 'ᄉ'인 경우
가붓이, 기웃이, 깨끗이, 나긋나긋이, 나붓이, 남짓이, 느긋이, 둥긋이, 따뜻이, 뜨뜻이, 반듯이, 버젓이, 번듯이, 빠듯이, 산뜻이, 의젓이, 지긋이 등.
어찌씨에서, 뿌리의 끝소리가 'ᄉ'일 때에는 '-하다'가 붙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관계없이 모두 '이'로 적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하다'가 붙는]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일반적으로 ['-하다'가 붙을 수 있으면 '히'로 적는다]는 등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하다'가 붙더라도 '이'로 적어야 하는 예외성을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때(뿌리의 끝소리가 걁인 어찌씨인 경우)는 그 발음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간혹〔깨끄치〕,〔따뜨치〕들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깨끄시〕,〔따뜨시〕들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⑵ 'ᄇ' 벗어난 풀이씨(불규칙 용언)의 줄기 뒤
가까이, 가벼이, 고이, 괴로이, 기꺼이, 날카로이, 너그러이, 대수로이, 번거로이, 부드러이, 새로이, 쉬이, 외로이, 즐거이 등.
'ᄇ' 벗어난 끝바꿈을 하는 풀이씨의 경우, 그 풀이씨 줄기에 뒤붙이 '-이'나 '-히'가 붙어 어찌꼴(부사형)을 만들 때에는 발음에 상관 없이 모두 '-이'를 취합니다. 이러한 용법은 줄기의 끝소리 'ᄇ'이 끝바꿈을 할 때에 일률적으로 홀소리 'ㅜ'로 바뀌는 현상(한글 맞춤법 제19항)과 연관지워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곧 다음과 같이 체계화할 수 있습니다.
가까-?다 → 가까-이(?→이) : 가까-?-어 → 가까-워
괴로-?다 → 괴로-이(?→이) : 괴로-?-어 → 괴로-워
새로-?다 → 새로-이(?→이) : 새로-?-어 → 새로-워
즐거-?다 → 즐거-이(?→이) : 즐거-?-어 → 즐거-워
⑶ '-하다'가 붙지 않는 풀이씨 줄기 뒤
같이, 굳이, 길이, 깊이, 높이, 많이, 실없이, 적이, 헛되이 등.
뒷가지 '-하다'가 올 수 없는 풀이씨 줄기(어간)에 '이'나 '히'가 붙어 어찌씨를 만들 때에는 '이'를 붙인다고 하니까, 어떤 이들은 "도저히, 가만히, 무단히, 열심히" 들은 '-하다'가 오기 어려운데도 '히'를 붙이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나 '도저(到底), 무단(無斷), 열심(熱心)' 들은 풀이씨(용언)의 줄기가 아니라 몸씨(체언)이며, '가만'은 그 가운데서도 어찌씨입니다. 게다가―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이들 낱말에는 '-하다'가 붙어 쓰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편, "도저하다"는 '생각, 지식, 기술, 인품 따위의 정도가 매우 깊다'는 뜻으로서 그윽하고도 긍정적인 말이지만, 이의 어찌씨꼴 "도저히"는 주로 '없다'나 '못하다' 앞에 놓여서 '어찌해도 끝내'라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어 다소 이채로운 말입니다.
⑷ 첩어 또는 준첩어인 이름씨 뒤
간간이, 겹겹이, 골골샅샅이, 곳곳이, 길길이, 나날이, 다달이, 땀땀이, 몫몫이, 번번이, 샅샅이, 알알이, 앞앞이, 일일이, 줄줄이, 집집이, 짬짬이, 철철이, 틈틈이 등.
'첩어'란 같은 음이나 비슷한 의미를 가진 낱말들이 반복적으로 결합한 말입니다: 간(間)+간(間)+이, 겹+겹+이, 골+골+샅+샅+이, 달+달+이(→다달이), …. 곧, 낱말 대 낱말의 합성어의 성격을 가집니다. 글쓴이가 어느 학원에서 위 ⑷와 같은 기준을 제시하자, 한 학생이 "섭섭하다"의 어찌씨꼴을 "섭섭이"로 해야 하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섭섭하다"는 독립된 하나의 낱말이지 첩어가 아닙니다('섭'을 따로 떼어서 쓰는 용례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의 어찌씨꼴은 "섭섭히"가 맞습니다.
⑸ 어찌씨 뒤
곰곰이, 더욱이, 삐죽이, 생긋이, 오뚝이, 일찍이, 해죽이 등.
뿌리 "곰곰, 더욱, 삐죽, 생긋, 오뚝, 일찍, 해죽" 들은 모두 본디 어찌씨입니다. 위 ⑸의 용례는 어찌씨에 '이'가 붙어서 역시 어찌씨가 된 경우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찌씨 뒤에 '히'가 붙어 다시 어찌씨로 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이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다소 연관성이 있는 규정을〈한글 맞춤법〉제25항 '붙임' 2에 두고 있는데, "부사에 '-이'가 붙어서 역시 부사가 되는 경우에는 그 부사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라고 명시하여 놓았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일찍이"를 "*일찌기"로, "더욱이"를 "*더우기"로 쓰는 것은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 됩니다.
열쇠 11: 표준말 이야기
우리 말글 규정에서 '표준말'에 대한 최초의 규범은 1936년에 조선어 학회(한글 학회의 전신)에서 내놓은〈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입니다. 이 때에 9,547 낱말을 사정한 바 있고, 그 뒤로도 몇 차례 민간(조선어 학회) 주도로 표준말 사정 작업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에 이르러 문교부에서〈표준어 규정〉을 고시(1월 19일, 제88-2호), 이듬해 3월 1일부터 지금까지 시행하여 오고 있습니다.
현행〈표준어 규정〉(문교부)이 시행된 지 만 8년이 넘었어도 아직까지 일반 국민에게 널리 계몽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언어의 변화는 흔히, 수많은 냇물이 합쳐져 강을 이루어 흘러가는 모양과 비견됩니다. 내를 이루는 샘에 변화를 준다고 해도 그 영향이 내에서 강으로, 다시 바다에 미치는 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행 표준말 규범이 온 나라 백성에 골고루 미치기에는 8년이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서구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는 때에는 말글 오염이 가속화하기 십상이므로, 올바른 우리 말글 규범의 준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표준말 사용에 서툰 이들은 한시바삐 이를 익혀 말글살이를 곧추세워야 할 것입니다.
아래에서, 현행〈표준어 규정〉(문교부)이 시행된 이후 달라진 표준말 가운데서도 생활 속에서 가장 자주 틀리고 있는 것들을 뽑아내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거센소리를 인정한 것
현행〈표준어 규정〉(이하, '표준'이라고 줄여 일컬음) 제3항에서는 "다음 낱말들은 거센소리를 가진 형태를 표준말로 삼는다."라 하고 "칸/간(間)", "털어먹다/떨어먹다" 가운데 각각 "칸"과 "털어먹다"만을 표준말로 인정하였습니다.
"*간"은 한자말 "間"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칸]이라고 발음하므로 "칸막이, 빈 칸, 방 한 칸"처럼 "칸"으로 정하였다. 다만 "초가삼간, 뒷간, 마굿간"처럼 복합어로 굳어진 것은 그대로 "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다 없앤다'는 뜻으로는 "털어먹다"만을 인정하였습니다. '밑천을 털다, 도둑이 빈 집을 털다'에서의 "털다"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먼지떨이, 재떨이"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2) 굳어진 형태를 인정한 것
2-1.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로 굳어져서 널리 쓰이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여 표준말로 삼았습니다(표준 제5항).
"*강남콩"은 본디 '江南'에서 온 것이지만, 이미 굳어져 있는 현실 발음대로 "강낭콩"만을 인정하였습니다. "*삭월세" 또한 '朔月貰'의 취음이지만 오늘날의 실제 발음인 "사글세"를 그대로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강남콩, *삭월세"는 모두 잘못된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2. 발음이 바뀌어 굳어진 형태를 그대로 인정하여 표준말로 삼았습니다(표준 제11항).
홀소리의 발음 변화를 인정하여, 바뀐 형태를 표준말로 삼은 낱말들에는 "-구려(*-구료), 나무라다(*나무래다), 미숫가루(*미싯가루), 바라다(*바래다), 상추(*상치), 주책(*주착), 튀기(*트기)" 들이 있습니다. 또한, "*호도과자"도 "호두과자"로 써야 하며, "바라다"의 명사형은 "바람"이지 "*바램"이 아니니 유의하여야 합니다.
(3) 두 뜻을 한 형태로 삼은 것
뜻이 두 가지로 구별되어 그에 따라 두 형태로 쓰여 왔으나, '표준' 이후 하나의 형태로 통일된 것들이 있다. "돌/돐, 셋째/세째, 빌리다/빌다" 들이 그것입니다.
지난날에는 "돌"은 생일을, "*돐"은 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되었으나 "돌" 하나로 통일하였습니다. 또한, "둘째, 셋째, 넷째" 등은 '몇 개째'의 뜻이고 차례를 가리킬 때에는 "*두째, *세째, *네째"로 썼으나, 역시 "둘째, 셋째, 넷째"로 통일하였습니다. "*빌다"는 '내가 남에게서 빌어오다'로, "빌리다"는 '내가 남에게 빌려주다'로 구별해 써 왔으나, 그 구분을 없애고 자주 쓰는 "빌리다"로 통합하였습니다.
(4) 모음조화에서 벗어난 형태를 인정한 것
모음조화 규칙에 따라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던 예들에 대하여 현실 발음을 인정하여 표준말로 정했는데, 이에 따라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깡충깡충"이 "*깡총깡총"을 쫓아내고 표준말이 되었습니다. 또한, "쌍둥이, 귀염둥이, 막둥이"가 표준말이 되고 "*쌍동이, *귀염동이, *막동이"는 표준말이 아닙니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다"라고 해야지 "*오돌오돌"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다만, "삼촌, 부조금, 사돈" 들은 아직 어원 의식이 남아 있어서 표준말로 두었으므로, "*삼춘, *부주금, *사둔" 들은 비표준말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5) 모음이 단순화한 형태를 인정한 것
"*괴퍅하다"가 "괴팍하다"로, "*-구면"이 "-구먼"으로, "*미류나무"가 "미루나무"로 각각 표준말이 달라졌는데, 이는 모음이 단순화한 현실 발음을 인정한 것입니다(표준 제10항).
이와는 좀 다르지만, '?' 모음 역행동화 현상이 나타난 형태('학교'를 '*핵교'라 발음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인데, 이는 원칙적으로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대로를 표준말로 인정한 낱말들도 있습니다. "-내기, 냄비" 들이 그것으로, 이에 따라 "서울내기, 자선냄비"가 표준말이고 "*서울나기, *자선남비"는 비표준말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지랑이"는 역행동화가 일어나지 않은 형태를 표준말로 인정하므로, "*아지랭이"는 비표준말입니다.
(6) 준말을 표준말로 인정한 것
본디말을 줄여 쓴 준말이 오히려 본디말보다 널리 쓰이게 된 경우에는, 그 준말만을 표준말로 인정하였습니다(표준 제14항).
"*무우, *새앙쥐" 들 대신에 그 준말인 "무, 생쥐"가 더 널리 쓰인다고 인정하여 이를 표준말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준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디말 역시 널리 쓰이고 있으면 본디말을 그대로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귀이개(*귀개), 수두룩하다(*수둑하다)" 들이 그 예입니다.
한편, 준말과 본디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쓰임이 뚜렷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준말과 본디말 둘 다를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이 같은 예에는 "거짓부리/거짓불, 노을/놀, 막대기/막대, 머무르다/머물다, 시누이/시뉘/시누, 외우다/외다" 들이 있습니다.
열쇠 12. 복수 표준말 이야기
얼마 전에 노인 한 분이 전화를 걸어 오셔서 '소고기'와 '쇠고기'에 대하여 한바탕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분 말씀인즉, '쇠고기'는 잘못 된 낱말이라는 것이다. '소달구지', '소도둑' 들을 '*쇠달구지', '*쇠도둑'이라 할 수 없음이 그 까닭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쇠고기'는 '소고기'와 함께 복수 표준어로 되어 있습니다. '쇠고기'는 '소의 고기'가 줄어든 형태인데, 이 경우 '고기'는 '소'의 부속물이므로 '-의'의 쓰임이 가능하였으며, '소의 고기'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쇠고기'로 불려 온 것입니다(소가죽/쇠가죽, 소기름/쇠기름, 소머리/쇠머리, 소뼈/쇠뼈 등). 그러나, '소달구지', '소도둑'에서 '달구지'와 '도둑'은 모두 소의 부속물이 아닙니다. 이들은 각각 '소가 끄는 달구지, 소를 훔치는 도둑'의 뜻이지, '*소의 달구지, *소의 도둑'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쇠달구지, *쇠도둑'이라는 줄어든 꼴은 본디부터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고기/쇠고기'류와 같은, 이른바 '복수 표준어'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의외로 많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이 것 아니면 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기 때문에 생각지 않은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바로 이러한, 알고 보면 둘 다 맞는 말들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모양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말들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태가 둘 이상으로 쓰여 헷갈리게 하는 낱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주로 지방에 따라 달리 쓰이던 말들이 현대에 와서 교류가 잦아짐에 따라 각자 세력을 크게 넓혀, 이제는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게 된 것들입니다. 이와 같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표준어 규정 제26항)되고 있는 낱말들을 몇몇 들어 보겠습니다.
① 이름씨의 경우
가락엿/가래엿, 가뭄/가물, 개수통/설거지통, 고깃간/푸줏간, 고까/때때, 넝쿨/덩굴, 눈대중/눈어림/눈짐작, 돼지감자/뚱딴지, 딴전/딴청, 멍게/우렁쉥이, 목화/면화, 물방개/선두리, 물부리/빨부리, 벌레/버러지, 보조개/볼우물, 살쾡이/삵, 삽살개/삽사리, 수수깡/수숫대, 신/신발, 애꾸눈이/외눈박이, 어저께/어제, 언덕바지/언덕배기, 엿기름/엿길금, 옥수수/강냉이, 우레/천둥, 자리옷/잠옷, 자물쇠/자물통, 중신/중매, 짚단/짚뭇, 책씻이/책거리, …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가뭄/가물, 넝쿨/덩굴, 멍게/우렁쉥이, 어제/어저께, 엿기름/엿길금' 등이 자주 혼동을 주는 낱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이들이 '/'표 왼쪽이 표준말이고, 그 오른쪽은 비표준말인 줄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가물, 덩굴, 우렁쉥이, 어저께, 엿길금' 들은 모두 정겨운 우리 토박이말입니다. 이들도 모두 표준말이니 잘 익혀 두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위에서 인용한 낱말들 가운데 '눈어림'은 '눈대중'에, '선두리'는 '물방개'에, '물부리'는 '빨부리'에, '볼우물'은 '보조개'에, '우레'는 '천둥'에, '자리옷'은 '잠옷'에, '짚뭇'은 '짚단'에 각각 가리워 잘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우리말이니 앞으로 잘 살려 써야 하겠습니다.
② 풀이씨・그림씨의 경우
가엾다/가엽다, 교정보다/준보다, 깨뜨리다/깨트리다(-뜨리다/-트리다), 들락거리다/들랑거리다, 발그스레하다/발그스름하다(-스레하다/-스름하다), 불사르다/사르다, 서럽다/섧다, 성글다/성기다, 씁쓰레하다/씁쓰름하다, 앉으세요/앉으셔요(-세요/-셔요), 어금버금하다/어금지금하다, 어림잡다/어림치다, 여쭈다/여쭙다, 역성들다/역성하다, 연달다/잇달다, 의심스럽다/의심쩍다, 장가가다/장가들다, 천연덕스럽다/천연스럽다, 출렁거리다/출렁대다(-거리다/-대다), 혼자되다/홀로되다, …
위에서 인용한 낱말 가운데서도 특히, '가엾다/가엽다', '서럽다/섧다', '여쭈다/여쭙다' 등 'ᄇ 벗어난 끝바꿈'(ᄇ 불규칙 활용)을 하는 그림씨(형용사)와 풀이씨(동사)들이 자주 틀리는 것들입니다. 아래 예문을 들어 보겠습니다..
ᄀ-1. 우리들의 가엾은 아버지.
-2. 우리들의 가여운 아버지.
ᄂ-1. 서러워 말고 힘을 내세요.
-2. 설워 말고 힘을 내세요.
ᄃ-1. 아침마다 인사 여쭈는 아들들.
-2. 아침마다 인사 여쭙는 아들들.
위에서 ᄀ~ᄃ의 1, 2는 모두 맞는 표현입니다. 이들의 갖가지 끝바뀐 꼴인 '가엾게/가엽게, 가엾어라/가여워라, 가엾지/가엽지, …', '서러운/설운, 서럽게/섧게, 서럽지/섧지, …', '여쭈게/여쭙게, 여쭈어/여쭤/여쭈워, 여쭈어라/여쭈워라, …' 들도 모두 표준말이니,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발음이 비슷하여 같이 쓰이는 말들
표준어 규정 제19항에서는 "말맛(어감)의 차이를 나타내는 낱말 또는 발음이 비슷한 낱말들이 다 같이 널리 쓰이는 경우에는,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발음이 비슷하여 같이 쓰이게 된 말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고까/꼬까, 고린내/코린내, 교기(驕氣)/갸기, 구린내/쿠린내, 나부랭이/너부렁이, 거슴츠레하다/게슴츠레하다, 꺼림하다/께름하다
'고까'의 경우, '가스[까스]', '버스[뻐스]' 들처럼 비록 된소리로 나더라도 '꼬까'로 쓰지는 않는 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까스. *뻐스는 틀림). 그러나 이 경우 '꼬까'는 표준말로 인정됩니다. '고린내/코린내', '구린내/쿠린내' 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네/예'도 역시 둘 다 널리 쓰여 복수 표준어가 된 것들입니다.
한편, 겹홀소리를 풀어 써 버릇하다가 둘 다가 표준말이 된 것들도 있습니다(표준어 규정 제18항). '괴다/고이다, 꾀다/꼬이다, 쐬다/쏘이다, 죄다/조이다, 쬐다/쪼이다' 들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참고로, '우레'를 '우뢰'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아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본디 '우레'는 순 우리말입니다. 이를 한자말로 잘못 인식하여 예전부터 '우뢰(雨雷)'로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말 '우레'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레'는 우리말 '울다'의 어간 '울-'에 뒷가지 '-에'가 붙어서 된, 엄연한 우리 토박이말입니다. 15세기 옛 문헌에 보면, "한 소릿 울에 三千界를 뮈우도다(一聲雷震三千界)."<금강경 삼가해 Ⅱ:2>와 같이 '울에'로 나타납니다. 그 뒤에도 여러 문헌과 작품에서 '울에/우레'가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뒤늦게나마 이를 바로잡아 '우레'를 표준말로 삼은 것입니다. '우레'와 같은 뜻인 '천둥'도 표준말입니다.
열쇠 13: 닮은꼴 낱말들
바깥나라에 나들이를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종종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는 외국어에 능숙한 이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구조적인 발음 차이에도 까닭이 있겠지만,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낱말 선택에도 실수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 선택의 혼동은 비단 다른 문화권을 접할 때만 빚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언어 문화로 묶여 있는 한 나라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다른 언어 문화권에서 유입된 들어온 말 곧 외래어의 영향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오랜 동안의 한자말(외래어) 유입으로 인하여 이러한 현상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토박이말의 의미 구별에는―아무리 발음이 닮은 낱말일지라도―그다지 어려움이 없습니다. 가령, 우리는 '밤:'과 '밤'이나 '눈:'과 '눈' 따위를 거의 본능적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한자와 함께 건너온 한자말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같은 한자를 쓰더라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낱말로 쓰이기도 하고,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미를 구별하기 어려운 낱말들도 많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들 가운데 뜻과 쓰임에 있어 가장 잦은 혼란을 보여 주고 있는 것들을 몇 개 뽑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개발(開發)과 계발(啓發)의 다른 점
이 두 낱말은 신문지상을 비롯한 각종 공문 등에서 흔히 혼동되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거의 구분이 없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전에 따라서는 이 둘을 동의어로 처리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과 '계발'은 본디부터 쓰임이 서로 달랐으며, 아직도 이 둘의 쓰임은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말 큰사전》(1992, 한글 학회)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개발 (이) 개척하여 발전시킴. (ᄇ) 경제 ~. 새로 ~된 광산.
계발 (이) 지능, 정신 따위를 깨우쳐 열어 줌. (ᄇ) 민족 정신 ~.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개발(開發)'에는 '개척'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광산을 개발하거나 유전을 개발하거나 신도시를 개발하는 것 등은 모두 '개척'입니다. 이를 '계발'과 비교하면 가장 특징적인 변별 자질은 물리적인 이룸, 곧〔이루어 냄〕입니다.
'계발(啓發)'은, 위의 풀이에 따르면, 인간의 지적・정신적 능력에 관계된 낱말입니다. 들판에 신도시를 열듯(개발), 정신 세계에 깨우침을 여는 것(계발)입니다. "*동해상에 유전을 계발한다."가 비문이듯이, "*각자의 소질을 개발한다."도 비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각각 "동해상에 유전을 개발한다.", "각자의 소질을 계발한다."로 써야 합니다. '계발'의 변별 자질은 깨우쳐 엶 곧〔이끌어 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사람의 내면에 관계되었다고 해서 모두 '계발'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인위적으로('학습' 등으로) 사람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은〔이끌어 냄〕보다는〔이루어 냄〕에 가까우므로 '능력 개발'이라 합니다.
(2) '갱신(更新)'과 '경신(更新)'의 다른 점
올림픽 경기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선수들이 새로운 기록을 세울 때 표현하는 낱말인 '更新'을 어떤 신문에서는 '갱신'으로 쓰고, 또 어떤 신문에서는 '경신'으로 쓰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更'의 한자음이 두 가지로 나기 때문인데, '고친다'는 뜻으로는〔경〕으로 나고 '다시'라는 뜻으로는〔갱〕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경신'은 '고쳐서 새롭게 함'을 이르는 말이며, '갱신'은 '다시 새롭게 함'을 이르는 말입니다('갱신'은 법률 용어로서도 쓰이는데, 이 때는 '존속 기간이 다 끝난 법률 관계의 기간을 다시 연장함'의 뜻을 갖습니다.).
가령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 받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때는 그 사정에 따라 주민등록증을 '경신'할 수도 있고 '갱신'할 수도 있습니다. 곧, 법률상 개명 허가를 얻어 이름을 바꾸었을 때에는 주민등록증을 '경신'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민등록상의 기록이 고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을 분실하여 새로 발급 받고자 할 때는 기록 변경이 없이 '갱신'한다고 합니다. 또한, 전세 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경우, 전세금 인상 등 그 조건을 바꿀 때에는 '경신'이 되지만, 같은 조건으로 계약 기간만을 연장하는 경우에는 '갱신'이 됩니다.
따라서, 올림픽 대회 같은 운동 경기에서 선수가 신기록을 세웠을 때에는 '경신'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미 있던 기록을 새로이 고쳤기 때문입니다.
(3) '주관(主管)'과 '주최(主催)'의 다른 점
한글 학회《우리말 큰사전》에 보면, '주관(主管)'과 '주최(主催)'의 풀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적고 있습니다.
주관 (이) 주장하여 관리함.
주최 (이) 어떤 모임을 주장하여 엶.
위의 설명만 가지고서는 그 차이를 분명히 밝혀 쓰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실제에서는 각기 어떤 경우에 쓰이는가를 살펴보겠습니. 대체로 '주최'는 위의 풀이에서 나타난 '어떤 모임을 주장하여 여는 것' 외에 '어떤 일 또는 행사에 대하여 계획하거나 최종 결정을 하며 이에 따르는 책임을 질 때' 쓰이는 말입니다. 반면 '주관'은 '어떤 일 또는 행사에 대하여 실무를 맡아 처리하고 꾸려 나갈 때' 쓰입니다. '주관'은 '주최'가 마련한 계획대로 집행하여 나갈 뿐이며, 행사 자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주최'가 지는 것입니다.
가령 문화체육부와 대한사이클연맹이 함께 사이클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합시다. 이 경우, 어느 한 쪽은 이 대회를 계획하고 명분을 제공하여 최종적인 책임을 질 뿐이며, 다른 한 쪽은 대회 홍보 및 참가자 신청・등록, 대회장 준비, 시상식 등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면, 전자는 '주최'이고 후자는 '주관'입니다. 이러한 성격의 대회는 보통 문화체육부가 주최가 되고 대한사이클연맹이 주관이 됩니다.
(4) '등(等)'과 '들'
일반적으로 '등(等)'은 둘 이상의 낱말이나 구를 열거할 때 그 뒷부분에 쓰이는 글자로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실만 들고 그 뒤에 '등'을 다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예로, 요즘 시중에 팔리고 있는 담배의 포장지에는 "흡연은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씌어 있는데, 이 때의 '폐암 등을'이란 표현이 잘못 되지 않았느냐는 질의를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위의 문구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등'은 우리말 '들'이나 '따위'에 대응되는 의존 명사입니다. '폐암, 후두암 등을'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겠지만, '폐암 등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가령 올림픽 경기 개막식 선서를 할 때, '전병관 외 299명은'이라 해도 되지만 '전병관 등 300명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등'을 달기 위하여 선수 이름을 꼭 둘 이상 나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 우리말 '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둘 이상'의 복수를 나타내는 뒷가지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들'은 뒷가지이면서 동시에, 위의 '등'과 쓰임이 같은 순수 우리말 매인이름씨이기도 합니다. 곧 '폐암, 후두암, 들을' 이라고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때에는 '들'의 앞을 띄어 써야 하겠지요.
열쇠 14: '다른' 말, '틀린' 말 이야기
그 뜻을 가만히 새겨 보면 금세 올바른 쓰임을 깨닫을 수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날살이에서 습관적으로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끼리 통하면 그만이라고 치부하기 쉬우나, 말이란 영속적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이므로 되도록 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산과 강을 오염되지 않게 보존하여 물려주려면, 몇몇 환경 운동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겨레말을 본디 모습대로 물려주려면 '나'부터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곳에서는 습관적으로 그 뜻을 왜곡하여 쓰고 있는 나날말(일상용어)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당장 바로잡아 쓸 수 있는 것들이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올바른 말글살이를 스스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1) "다르다"와 "틀리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뜻이 서로 매우 다릅니다. <우리말 큰사전>(1992, 한글 학회)에서 각각의 풀이를 살펴보겠습니다.
다르다: ① 같지 아니하다. ② 특별한 데가 있다. ③ 변함이 있다.
틀리다: ①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② 사이나 감정이 나쁘게 되다.
③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다.
④ 서로 견주는 때 얻는 결과가 다르게 되다.
위와 같이 분명한 뜻의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뜻 구별이 없이 두 낱말 사이를 넘나들며 쓰고 있습니다. 특히,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잘못이 가장 많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문들을 들어 보겠습니다.
(1) ᄀ. *소문과 다르지 않게 그 여자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ᄂ. *이건 약속이 다릅니다.
(2) ᄀ. *지난번에 샀던 옷하고는 색상이 틀리네.
ᄂ. *김과장 말과 자네 말이 어째서 서로 틀리는가?
ᄃ. *참 밥맛 좋다, 철원 쌀이 틀리긴 틀려!
ᄅ. *서울 거리가 몰라보게 틀려 보이네 그려.
(1)은 "틀리다"를 써야 할 자리에 "다르다"를 잘못 쓴 예입니다. (1)ᄀ에서는 밑줄 친 부분이 '(소문과)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지'(위의 사전 풀이 '틀리다①'을 참조)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다르지'가 아니라 '틀리지'로 써야 합니다. 또한, (1)ᄂ에서는 밑줄 친 부분이 '서로 견주는 때 얻는 결과가 다르게 된'(위의 사전 풀이 '틀리다④'를 참조) 때이므로, '다릅니다'가 아니라 '틀립니다'로 써야 합니다.
(2)는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잘못 쓴 예입니다. (2)ᄀ에서의 밑줄 친 부분은 '지금 보고 있는 옷'과 '지난번에 산 옷'의 색상이 '같지 아니한'(위의 사전 풀이 '다르다①'을 참조) 경우이므로 '다르네'라고 써야 합니다. (2)ᄂ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2)?에서는 '(철원 쌀이) 특별한 데가 있다'(위의 사전 풀이 '다르다②'를 참조)는 뜻이므로 '다르긴 달라'로 고쳐 써야 하고, (2)ᄅ의 밑줄 부분 역시 '변함이 있다'(위의 사전 풀이 '다르다③'을 참조)는 뜻으로 쓰인 예이므로 '달라'로 표현해야 합니다. (1), (2)를 바로잡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1)' ᄀ. 소문과 틀리지 않게 그 여자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ᄂ. 이건 약속이 틀립니다.
(2)' ᄀ. 지난번에 샀던 옷하고는 색상이 다르네.
ᄂ. 김과장 말과 자네 말이 어째서 서로 다른가?
ᄃ. 참 밥맛 좋다, 철원 쌀이 다르긴 달라!
ᄅ. 서울 거리가 몰라보게 달라 보이네 그려.
(2) "바꾸다"와 "고치다"
위의 "다르다/틀리다" 못지 않게 자주 혼동하여 쓰는 말 가운데 "바꾸다"와 "고치다"가 있습니다. <우리말 큰사전>(1992, 한글 학회)에서 두 낱말의 뜻 차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바꾸다: ① 어떤 물건을 주고 그 대신 딴 물건을 받다. ② 본디의 것이 딴것으로 되게 하다.
고치다: ① 낡거나 헐거나 고장이 나거나 한 물건을 손질하여 제대로 되게 하다
② 그릇되거나 틀리거나 한 것을 바로 잡다.
③ 모양이나 태도 따위를 다시 새롭게 가지다.
④ 이름, 명칭, 형식 따위를 다르게 바꾸다.
특히, "바꾸다②"와 "고치다②,③,④"의 뜻이 서로 넘나들어 잘못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3) ᄀ. *일정을 고쳐 내일 떠나기로 했어요.
ᄂ. *방향을 북쪽으로 고쳐 주십시오.
(4) ᄀ. *마음을 바꿔 먹었으니 걱정 마세요.
ᄂ. *자세를 바꿔 앉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ᄃ. *한자말식 이름을 고운 우리말 이름으로 바꿨다.
(3) ᄀ,ᄂ의 밑줄 친 '고쳐'는 문맥상 '본디 정해 놓은 시간(ᄀ)/방향(ᄂ)을 달리 정하여'의 뜻이므로 둘 다 '바꿔'로 고쳐야 합니다. '그릇되거나 틀린 것'을 바로잡을 때에 "고치다"를 써야 하는데, 위 (3)의 예문에서는 일정/방향을 바꾸는 행위가 그릇되거나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4)ᄀ에서의 밑줄 친 부분은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는'(위의 사전 풀이 '고치다②'를 참조) 경우이므로 '고쳐'라고 써야 합니다. (4)ᄂ의 밑줄 친 부분은 '태도를 다시 새롭게 가지는'(위의 사전 풀이 '고치다③'을 참조) 행위이므로 '고쳐'로 써야 하고, (4)ᄃ의 밑줄 부분 역시 '이름을 다르게 바꾼'(위의 사전 풀이 '고치다④'를 참조) 경우이므로 '고쳤다'로 표현해야 합니다. (3), (4)를 바로잡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3)' ᄀ. 일정을 바꿔 내일 떠나기로 했어요.
ᄂ. 방향을 북쪽으로 바꿔 주십시오.
(4)' ᄀ. 마음을 고쳐 먹었으니 걱정 마세요.
ᄂ. 자세를 고쳐 앉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ᄃ. 한자말식 이름을 고운 우리말 이름으로 고쳤다.
(3) '너무'와 '매우'
어찌씨(부사) "너무"가 지나치게 남용되어, "참"이나 "매우"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 "너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서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너무"는 '느낌이 강하여 그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한계나 정도에 지나게'의 뜻으로 쓰이는 어찌씨입니다. 가령, "*꽃이 너무 예쁘다.",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왔다." 따위로 말하는 이가 매우 많은데, 이는 "꽃이 참(/매우) 예쁘다.", "사진이 참(/매우) 예쁘게 나왔다."로 고쳐 써야 합니다. 또한, "*오늘은 너무 바빴어요."도 "오늘은 매우(/참) 바빴어요."의 잘못입니다. "너무"는 "비가 너무 내린 것 같아요."라든지,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라."와 같은 경우에서 처럼 '지나치게'의 뜻으로 쓰이는 어찌씨입니다. 이 말을 "참'이나 '매우'를 써야 할 자리에 너무 남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열쇠 15: 자주 틀리는 낱말
나날살이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쓰고 있는 말 가운데에도 알고 보면 잘못 쓰고 있는 것들이 간혹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① "오늘이 몇 월 몇 일이지요?", ② "하늘을 날으는 슈퍼맨!", ③ "그 사장은 참으로 야멸차다." 등의 문장들에는 각기 잘못 쓴 낱말이 한 개씩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가는 어느 기회에 매우 난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는 이들 문장에 포함되어 있는, 자주 틀리는 낱말 몇 개를 살펴보겠습니다.
⑴ '몇일'과 '며칠'
지난날에는 이 두 경우를 모두 인정하여 왔습니다. '몇일'은 "오늘이 몇 일이냐?"에서와 같이 '몇'이 매김씨(관형사)로 쓰일 적에, 그리고 '며칠'은 "며칠 뒤에 보자."처럼 '며칠'이 이름씨로 쓰일 적으로 각각 구별하여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교부 고시(1988년) 새〈한글 맞춤법〉에서는 '몇일'과 '며칠'을 모두 '며칠'로 통일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이든 '몇일'로 적으면 틀리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한글 맞춤법〉제27항의 [붙임 2]에서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용례 가운데 '며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몇 개, 몇 사람' 등에서의 '몇'과 '날'을 나타내는 '일'이 결합된 '몇+일'로 분석하여 그 표기가 '몇일'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혼동되기 쉽습니다. 게다가〈한글 맞춤법〉제27항이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릴 경우 …… 각각 그 원형을 밝혀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몇일'로 적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붙임'을 두어서 '며칠'로 적도록 한 데에는 물론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곧, 우리말의 합성어에서는 뒤에 오는 형태소의 머릿소리가 '이'일 경우 앞에 붙는 말의 받침이 대표음으로 바뀌면서 사이에 'ᄂ'이 덧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음을 보겠습니다.
앞일 : 〔압일〕→〔암닐〕(*[아필]이 아님)
잣엿 : 〔잗엿〕→〔잔녀ᄉ〕(*[자셧]이 아님)
낮일 : 〔낟일〕→〔난닐〕(*[나질]이 아님)
'며칠/몇일'의 경우, 이 낱말이 '몇+일'로 분석될 수 있는 합성어라면, 위의 발음 법칙에 의하여 그 발음이〔?일〕→〔면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면닐〕이 아니라〔며칠〕로 발음되므로 소리대로 적어 불규칙성을 반영하도록 한 것입니다.
⑵ '날으는 슈퍼맨'과 '나는 슈퍼맨'
제움직씨(자동사) '날다'는〈한글 맞춤법〉제18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벗어난 끝바꿈(불규칙 활용) 풀이씨입니다. 따라서 '날다'는 '나니, 나오, 나는' 들과 같이 끝바꿈하므로 "날으는 슈퍼맨"이 아니라 "나는 슈퍼맨"이 맞습니다.
간혹 "하늘을 나르는 슈퍼맨"이라고 쓰는 이들도 있는데, 이 역시 "하늘을 나는 슈퍼맨"으로 고쳐 써야 합니다. '나르다'는 '옮기다, 운반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남움직씨(타동사)인데, '하늘을 나르는'이라고 하면 '하늘을 옮긴다'는 뜻이 되니, 제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이는 가능하지도 않은 엉뚱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곧, "나는 슈퍼맨"이라고 하면 두 가지 뜻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는 '내가 슈퍼맨'이라는 뜻이요, 또 하나는 '공중을 날아 다니는 슈퍼맨'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나는 슈퍼맨"이라고 하면 '나는(I) 날아 다니는(flying) 슈퍼맨'이라는 뜻이 된다. 어쨌든 "날으는 슈퍼맨"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니 유의하기 바랍니다.
⑶ '야멸차다'와 '야멸치다'
우리는 흔히, 남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제 일만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참 야멸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러한 뜻을 가진 낱말은 '야멸치다'이지 '야멸차다'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저 사람 참 야멸치다."로 해야 합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낱말로 '매몰차다'는 말은 있으되 '야멸차다'라는 말은 우리 국어 사전 어디에도 없습니다. 글쓴이가 짐작하기로는 '야멸치다'를 '매몰차다'와 연관지어서 생각하다 보니 이러한 혼동이 온 것 같습니다.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를 묘사하는 말 가운데에는 이 밖에도 여럿 있습니다.
기운차다: 힘차다.
대차다: 성미가 굳고 꿋꿋하다.
세차다: 힘있고 억세다.
옹골차다: 옹골지고 기운차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유의 낱말에는 한결같이 '-차다'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도가 차고 매섭다'는 뜻을 가진 '야멸치다'를 '야멸차다'로 혼동하여 잘못 쓰고 있는 현상에는 아마도 위와 같은 낱말들과의 연상 작용도 한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의 머리에 제시해 놓은 문장들을 바로잡아 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①' "오늘이 몇 월 며칠이지요?"
②' "하늘을 나는 슈퍼맨!"
③' "그 사장은 참으로 야멸치다."
열쇠 16: 우리말 셈씨 이야기
얼마 전 대방동의 어느 뷔페에 마련한, 하나뿐인 조카의 돌 잔치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좀 늦게 간 탓인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제수는 조카를 안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매우 바쁜 것 같았습니다. 아우의 회사 동료들이 온 모양이었는데, 문득 귀에 거슬리는 말 한 마디가 들렸습니다.
"세 돈짜립니다. 아무래도 너무 작지요?"
돌아보니, 제수가 금으로 만든 아기용 팔찌를 받아들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멋적어하고 있는 청년―아우의 회사 동료인 듯한―이 '세 돈짜리' 반지를 선물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되련만, 글쓴이는 습관처럼 관여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애 큰아버지 됩니다."
"아, 녜. 처음 뵙겠습니다."
"뭘 그리 비싼 걸 선물하십니까? 그런데… 세 돈이라고 하면 잘못된 말입니다."
청년은 아, 하더니 금방 틀렸다는 걸 깨달은 듯 정정하였다.
"그렇습니다. 세 돈이 아니라 석 돈이지요."
금팔찌는 세 돈짜리가 되었다가, 다시 석 돈짜리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실은 세 돈도 석 돈도 아닌, '서 돈'이 맞는 말입니다. 글쓴이의 이 같은 설명에 청년은 '서 돈은 옛날 말인 줄 알았는데…' 하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우리말에서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의존 명사, 곧 '돈', '말', '발', '푼' 등의 앞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이 쓰일 때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위의 실례도 그러한 보기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는 '서 돈'과 함께 '세 돈, 석 돈' 들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너 돈' 대신 '네 돈, 넉 돈'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특히 젊은 계층에서―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에는 '서 돈', '너 돈'과 같은 말법이 옛날에나 쓰이던 말일 뿐, 요즘에는 사라진 말인 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서/너'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써 오던 셈씨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에도 엄연하게 (특정 수량 단위 앞에서) 표준어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이 '세/네, 서/너, 석/넉' 계열의 어휘는 주로 전통적인 수량 단위(돈, 말, 발, 푼, 냥, 되, 섬, 자 따위)와 결합할 때는 배타성을 띄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타성이 현대로 오면서 조금씩 무너져 혼동되어 쓰인 까닭에 위와 같은 잘못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동을 막기 위해〈표준어 규정〉제17항에서 아래와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제17항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ᄀ을 표준어로 삼고, ᄂ을 버림.)
ᄀ ᄂ
서〔三〕 | 세/석 | ~돈, ~말, ~발, ~푼
석〔三〕 | 세 | ~냥, ~되, ~섬, ~자
너〔四〕 | 네 | ~돈, ~말, ~발, ~푼
넉〔四〕 | 너/네 | ~냥, ~되, ~섬, ~자
그러므로 위 규정에 따르면, '세 돈, 석 돈, 세 말, 세 발, 세 푼'이라든지 '세 냥, 세 되, 세 섬, 세 자' 들은 모두 잘못된 표현이 됩니다. 또한, '네 돈, 네 말, 네 발, 네 푼, 너 냥, 네 냥, 너 되, 네 되, 네 섬, 네 자' 들도 써서는 안됩니다. 특히, 이 가운데 '세 자'와 '네 자'는 치수를 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모두 '석 자, 넉 자'가 바른 말임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특정 수량 단위를 제외하면 '서/너, 석/넉'은 거의 쓰이지 않고 주로 '세'가 많이 쓰입니다. 따라서 현대로 오면서 많이 쓰이게 된 수량 단위는 주로 '세/네'와 결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래 보기와 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⑴ 서 겹(?) 석 겹(?) 세 겹 삼 겹(?)
⑵ 서 달(?) 석 달 세 달 삼 달(×)
⑶ 서 대 석 대 세 대 삼 대(×)
⑴의 경우는 '세 겹'이 옳습니다. 전통적인 여러 문헌에서 그 용례가 발견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삼 겹'은 '삼겹살'과 같은 특정한 복합어에서 쓰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입니다. '삼겹살'은 맞는 표현이지만 그 외의 '삼 겹'은 잘못된 말입니다.
⑵의 경우는 '석 달'과 '세 달'이 함께 쓰이고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석 달'로 쓰였음을 참고로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석 달'과 '세 달'이 모두 맞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문 정책 당국에서 복수 표준어로 명시하거나 표준어 사정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⑶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복잡한 예입니다. 현실적으로 '서 대, 석 대, 세 대'가 모두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가 현대에 와서 자동차나 비행기 등에 많이 쓰이는 것이고, '되, 돈' 따위의 전통적인 특정 수량 단위가 아니므로 '세'로 세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열쇠 17: 수와 길이에 관한 이야기
쉬운 듯하면서도 실제 당하면 매우 헷갈리는 것이 바로 수를 세는 말과 길이를 재는 말입니다. 수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이름씨는 우리말에 풍부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새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를 세는 단위는 몇몇 낱말로 한정・통합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길이를 재는 단위는 이미 서양에서 들어온 낱말로 대체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아비(선조)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우리말 단위 이름씨들을 그리 손쉽게 포기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수와 길이를 나타내는 우리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수를 나타내는 말
△ 낱
낱개의 사물을 하나씩 셀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그릇 세 낱', '빗자루 두 낱' 따위로 써 왔는데, 요즈음은 이 말 대신에 한자말 '개'(個)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인들은 이 '낱'이란 말을 흔히 쓰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되살려 낼 수 있는 순우리말 단위 이름씨입니다.
△ 대, 자루
길고 곧은 물건을 셀 때에 쓰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길고 곧은 물건 가운데서도 사람이 쥐거나 잡을 수 있는 손잡이로 된 것일 때에는 '자루'를 더 많이 씁니다. 가령, 기둥이나 전봇대를 세는 단위는 '대'이지만, 연필, 붓, 지팡이 들은 '한 자루, 두 자루, …'와 같이 셉니다.
△ 사리
국수나 새끼처럼 가늘고 긴 물건을 둥글게 사리어(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 감아) 놓은 것일 때는 '사리'라는 말로 셉니다. 칼국수집에서 국수를 추가로 시킬 때에 흔히 "여기 사리 주세요."하는데, 이는 "국수 한 사리 주세요." 또는 "국수 두 사리 주세요."로 써야 합니다. '사리'는 위의 '자루'와 같은 단위 이름씨입니다. 연필만 파는 가게에 갔다고 해서 그냥 "자루 주세요." 하지는 않을 터이니까요.
△ 타래
실 따위를 사려서 틀어놓은 묶음의 경우에는 '타래'라는 단위로 셉니다. 예: 뜨개실 두 타래, 철사 세 타래.
△ 알, 톨
작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것을 셀 경우에는 '알'을 씁니다. 특히, 밤이나 도토리 따위를 셀 때에는 '알'이라고도 하지만 '톨'이라는 단위 이름씨를 더 많이 씁니다. 예: 사과 한 알, 달걀 두 알, 밤 세 톨, 도토리 네 톨.
△ 모
두부나 묵 따위와 같이 모난 물건일 때에는 '모'라는 단위 이름씨를 씁니다. 예: 두부 한 모, 묵 세 모.
△ 켤레, 매, 벌
서로 짝을 이루는 대상이나 짝이 갖추어진 물건일 경우에는 '켤레, 매, 벌' 들을 씁니다. 그 각각의 쓰임새는 '구두 두 켤레, 수저 한 매(숟가락과 젓가락), 치마저고리 한 벌' 따위입니다.
△ 손, 뭇, 두름, 코, 쾌
'손', '뭇', '두름', '코', '쾌' 들은 모두 여러 개를 한 단위로 삼는 것일 때에 쓰는 명수사입니다. 주로 수산물을 세는 단위로 널리 쓰이는데 각각의 쓰임새와 단위별로 묶이는 개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손: 고등어 한 손→ 두 마리
뭇: 조기 한 뭇→ 열 마리
두름: 청어 한 두름→ 열 마리씩 두 줄로 묶은 스무 마리
코: 낙지 한 코→ 스무 마리
쾌: 북어 한 쾌→ 스무 마리
△ 동
굵게 묶어서 한 덩이를 만든 묶음을 셀 때에 쓰는 낱말입니다. 묶은 데 따라 볏짚은 100단, 먹은 10장, 붓은 10자루, 베나 무명은 50필, 곶감은 100접, 한지는 10권(2,000장), 청어는 2,000마리 들이 한 동을 이룹니다.
(2) 길이를 나타내는 말
〈개략적인 길이를 나타내는 말〉
△ 뼘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과의 사이를 한껏 벌린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손뼘) 예: 한 뼘 길이.
△ 가웃
말, 되, 자, 뼘 등으로 수량이나 길이를 헤아릴 때 그 단위의 약 절반의 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 자 가웃'이라 하면 약 반 자의 길이를 말합니다.
△ 발
두 팔을 펴서 벌린 길이를 말하며, 새끼나 옷감을 재는 단위로 예부터 많이 쓰였습니다.
△ 바람
실이나 새끼, 철사 같은 것의 한 발쯤 되는 길이를 말합니다. 철사 세 바람은 세 발 정도의 길이입니다.
△ 길, 걸음
'길'은 사람의 키의 한 길이를 말하며, '걸음'은 다리를 한 번 들어 옮겨 놓을 때의 거리를 재는 단위입니다. 이 가운데 '길'은 수직상의 거리 곧 높이나 깊이를 재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정확한 길이를 나타내는 말〉
△ 자
열 치를 나타내는데 서양식 척도로 0.303미터입니다. 보통 한 자는 1미터의 3.3분의 1에 해당합니다.
△ 치
한 자의 10분의 1을 한 치라 합니다. 한자말 단위 이름씨 '촌'(寸)과 같은 길이입니다.
△ 푼
한 치의 10분의 1을 한 푼이라 합니다. '푼'은 무게 단위로서는 한 돈의 10분의 1, 비율의 단위로서는 1할의 10분의 1을 말하기도 합니다.
△ 리, 마장
'리'는 약 393미터쯤 되는 거리를 나타냅니다. '마장' 역시 이와 같은 길이(393미터)인데, 10리나 5리가 되지 못하는 거리를 잴 때에 '리' 대신에 쓰이던 단위 이름씨입니다.
열쇠 18: 말버릇 이야기
우리 나라의 미래를 떠맡을 한글 세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성 세대보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입니다.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로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글 세대에 대한 기성 세대의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합리적'인 생활 양식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던 유교적 전통 윤리와 상당 부분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발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언어 습관은 자주 거론되는 문제입니다.
이 자리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상용되는 바르지 못한 말버릇 몇 가지입니다. 이는 한글 세대뿐만 아니라 일부 기성 세대의 말투를 포함하며, 청소년의 언어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방송 언어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1. "~겠습니다"와 "되겠습니다"
"-겠-"은 "10월 말쯤에 첫눈이 내리겠습니다."에서처럼 확실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정'을 나타내는 중간씨끝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말할이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다가올 시간(확실하지 않은 일)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보기: 첫눈이 오면 그대에게 가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이들이 이 "-겠-"을 잘못 쓰거나 남발하고 있습니다.
(1)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1)은 공개 방송 현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방송 진행자가 잘못 쓰고 있는 말버릇인데, 밑줄 친 부분은 그 아래에 제시한 바와 같이 고쳐 말해야 합니다.
이 "-겠-"과 관련된 문제로서 "되겠습니다"가 있습니다.
(2) *화장실은 이 쪽이 되겠습니다.
→화장실은 이 쪽입니다.
(3) *이 분이 저희 부장님이 되시겠습니다.
→이 분이 저희 부장님이십니다.
(2)는 기내의 스튜어디스에게서 가끔 듣는 말버릇이고, (3)은 사무실에서 잘못 쓰고 있는 말입니다. 이 둘의 경우는 "-겠-"을 잘못 쓴 것뿐만 아니라 "되다"라는 말을 잘못 쓴 것까지 겹친 사례입니다. 각각 그 아래에 보인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2. "~고 있습니다"
"~고 있습니다"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될 자리인데도 꼭 이렇게만 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4) *그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5)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압니다.
(4), (5)는 각각 밑줄 친 부분을 그 아래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의 일기 예보 프로그램에서 "현재 기온은 18도를 보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현재 기온은 18도입니다."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굳이 "보이고 있습니다"를 살리려면 "현재 온도계는 18도를 보이고 있습니다."와 같이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온도계"와 "보이고"가 함께 쓰인 점이 썩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3. 조사 "-가"와 "-를"의 남발
격조사 "-가/이"와 "-를/을"을 마구 써서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경향이 심합니다. 이는 우리말을 쓸데없이 난잡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데, 주로 용언의 어근과 접미사('-되다, -하다' 따위)와의 사이에 이들 조사를 끼워넣어 두 언어 형식을 분리하는 현상이 지적됩니다.
(6)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7) *무효화가 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효화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8) *온갖 거짓말로 변명을 했다.
→온갖 거짓말로 변명했다.
(6), (7)의 밑줄 친 부분에서 "-이/가"는 아무 필요없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물이 얼음이 되다.", "그가 군인이 되다."와 같이 "ᄀ이 ᄂ이 되다."라는 말의 틀이 있기는 하지만, (6), (7)과 같이 ᄂ(예상, 무효화)이 움직씨스러운 말일 때에는 그 앞에 "-이/가"를 끼워넣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8)은 "하다" 앞에 긴요하지 않은 조사 "-을"을 넣어 좋은 말을 망가뜨린 사례입니다.
4. "같습니다"
"같다"라는 말의 쓰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ᄀ이 ᄂ과 같다."라는 짜임에서의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 ~것 같다."라고 할 때의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뒤의 경우입니다. 뒤의 "같다"는 '추정'이나 '예상'을 나타내므로 반드시 '확실하지 않은'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특히, 청소년들이 '분명한' 사건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면서 "같다"를 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9) A: 상 받으신 소감은?
B: *기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10) A: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B: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9)는 A가 상 받은 당사자인 B에게 소감을 묻고 B가 자기의 느낌을 말한 사례입니다. 자기의 느낌을 말하면서 남의 일처럼 '추정'의 표현을 쓴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마땅히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10)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겪은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치 남의 경험처럼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며, 마땅히 "없었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열쇠 19: 표준 발음 이야기
올바로 쓰는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제대로 읽는 문제입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3종에서 "말하기・듣기・쓰기", "읽기" 2종으로 개편된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뒷받침합니다. 곧 '쓰기'는 '말하기・듣기'에 통합하면서도 '읽기'만은 따로 둔 것입니다. 비록 모국어라고는 하나 올바른 발음을 익히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어느 스포츠 신문에 난 기사 한 토막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했스니다. 그 내용인즉, 요즘 젊은이들은 짝찾기 만남(미팅)을 가질 때 가장 먼저 상대방의 영어 발음 실력을 시험한다고 합니다. 그 영어 발음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거리가 있는, 영어권 나라의 실제 발음을 더욱 중시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컴퓨터' 하면 딱지를 맞고 '컴퓨러' 하면 인정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외국 유학물을 좀 먹었거나 최소한 배낭 여행이라도 다녀온 티가 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기사에서는 '한글 맞춤법은 잘 몰라도…'라는 단서까지 달고 있습니다. 우리말 우리글은 좀 잘못되고 틀리더라도 영어 발음만은 정확해야 '제 짝을 찾는' 안타까운 세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것을 먼저 잘 익힌 다음에 선진 문물을 가려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영어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국적없는 떠돌이, 국제 미아를 양산시킬 뿐입니다.
이 곳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 말들 가운데서 발음이 자주 틀리거나 발음의 구별이 다소 모호하다고 생각되는 낱말을 몇 개 뽑아 보았습니다.
1. 두음법칙에서 벗어나는 말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안방 극장에는 예외없이 갖가지 '납량 특집'들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납량'이라는 말이 때마다 문제가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납양'으로 알고〔나?〕으로 발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納凉'의 '凉'은 '량'이지 '양'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은〔남냥〕으로 읽어야 옳습니다. 국어에서의 두음법칙은 어두에서만 적용되고 제2음절 이하에 올 때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음법칙에서 벗어나는 말들이 가끔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렬(列)'과 '률(率)'입니다. 이들 한자말이 어두에 쓰일 때는 물론 두음법칙에 적용 받지만, 제2음절 이하에 쓰일 때에도 '렬, 률'의 'ᄅ'이 줄어지는('ᄋ'으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두음법칙에서 벗어나는 경우라서〈한글 맞춤법〉제11항 '붙임 1'에 따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곧 '모음이나 ᄂ 받침 다음에 오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ᄀ. 행렬(行列), 결렬(決裂), 맹렬(猛烈), 졸렬(拙劣)
ᄂ. 치열(齒列), 분열(分裂), 우열(優劣), 진열(陳列)
(2) ᄀ. 법률(法律), 능률(能率), 출석률(出席率)
ᄂ. 운율(韻律), 비율(比率), 전율(戰慄)
곧 (1), (2)의 ᄀ은 '렬'이나 '률'로, ᄂ은 '열'이나 '율'로 적습니다. 이는 모음이나 ᄂ 받침 다음의 '렬, 률'이 '열, 율'로 각기 발음되는 현실을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표기법에도 반영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운율', '전율'의 발음은 각각〔운뉼〕,〔전뉼〕이 아니라〔우뉼〕,〔저뉼〕이 맞습니다. 이 말들은 요즘 가장 자주 틀리는 것들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2. 자음동화 규칙에서 벗어나는 말들
자음동화 규칙에 의하면, 'ᄂ'은 'ᄅ'의 앞이나 뒤에서 'ᄅ'로 소리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곧 '신라'는〔신나〕가 아니라〔실라〕로, '칼날'은〔칼랄〕로 소리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 가운데는 이러한 자음동화 규칙에서 벗어나는 말들이 꽤 있습니다. 가령, '등산로'는〔등산노〕이지〔등살로〕가 아닙니다. '선릉'도〔선능〕이 맞으며, 한글 회관이 세워져 있는 '신문로'도〔신문노〕입니다.
실제 요즘 발음을 보면 개인차가 있기는 하나, 젊은 세대에서는 특히 어휘에서 'ᄂ+ᄅ'의 연결을〔ᄂᄂ〕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강한 듯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형태 보존의 실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곧, '등산로'의 경우, 선행 형태소 '등산'이 자립 형태소로 그 뜻이 분명한데, 형태를 바꿔 '등살'로 하면 '등산'이란 의미와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형태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표준 발음법〉에서는 자음동화 규칙에서 벗어나는 말들을 묶어 그 예외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위에 든 낱말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 용례입니다.
의견란 → 〔의:견난〕 상견례 → 〔상견녜〕
임진란 → 〔임:진난〕 결단력 → 〔결딴녁〕
동원령 → 〔동:원녕〕 이원론 → 〔이:원논〕
3. 겹받침의 발음 문제
한글 학회 연구부에 걸려 오는 문의 전화 가운데 1할 가량은 겹받침의 발음 문제입니다. 특히, '맑다'와 '넓다' 등의 발음을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맑다'가〔말따〕인지〔막따〕인지, '넓다'가〔널따〕인지〔넙다〕인지 자신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표준 발음법〉제10항에서, 겹받침 ', , �'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ᄀ, ᄆ, ᄇ〕으로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닭'은〔닥〕으로, '젊다'는〔점:따〕로, '읊다'는〔읍따〕로 발음해야 하므로, '맑다'도〔막따〕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용언의 어간 말음 ''은 활용할 때 'ᄀ' 앞에서〔ᄅ〕로 발음해야 합니다. 곧 '맑게'는〔말께〕로, '묽고'는〔물꼬〕로, '얽거나'는〔얼꺼나〕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겹받침 '�, , , , �, ᄡ'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ᄀ, ᄂ, ᄅ, ᄇ〕으로 발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넓다'도〔넙다〕가 아니라〔널따〕로 발음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넋 → 〔넉〕 외곬 → 〔외골〕
앉다 → 〔안따〕 핥다 → 〔할따〕
여덟 → 〔여덜〕 값 → 〔갑〕
다만, '넓죽하다'와 '넓둥글다'는〔넙쭈카다〕와〔넙뚱글다〕로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4. '의'의 발음에 대하여
'의'는 이중모음으로서 발음 역시 이중모음〔ㅢ〕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표준 발음법〉제5항에서는 단어의 첫음절 이외의 '의'는〔이〕로, 토씨(조사) '의'는〔에〕로 발음함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의(注意)'는〔주의〕로 발음함이 원칙이지만〔주이〕로 발음하는 것도 허용하며, '우리의'는〔우리의〕가 원칙이나〔우리에〕도 허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의 명소'나 '민주주의의 의의'는 각각 표기대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서울에 명소〕,〔민주주이에 의이〕로 발음해도 좋다는 것이 현행 표준 발음 규정입니다.
열쇠 20: 일터의 말씨
일터(직장)는 가정과 더불어 현대인의 나날살이(일상생활)를 꾸려 나가는 가장 중요한 마당입니다. 일터의 질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대변할 수도 있는 만큼, 즐거운 일터를 가꾸어 나가는 개인의 노력은 바로 자신의 삶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회사의 생산성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일터에서의 언어 예절을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로써 서로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비생산적인 갈등을 해소하여 즐거운 일터를 꾸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곡에서는 바로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⑴ 윗사람을 그보다 더 윗사람에게 말할 때
평사원이 과장을 부장에게 말하는 경우처럼, 말하는 사람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상사)을 그보다도 윗사람(상사의 상사)에게 가리켜야 할 때에 종종 올바른 존칭법을 몰라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흔히 일반 회사에서는 신입 사원을 교육할 때에, 부장 앞에서 과장에게 '님'을 붙이지 않고 존칭 선어말 어미 '-시-'도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님'을 붙이지 않는 지칭은 일본어의 어법으로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된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언어 예절로는 일터에서 윗사람을 그보다 윗사람에게 지칭하는 경우에, '님'과 '-시-'를 모두 넣어 "부장님, 총무과장님은 잠깐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이 경우 '-께서'라는 존칭 조사는 불필요한 것으로서 생략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⑵ 상사의 직함 뒤에 '님'을 붙여야 하는가?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추측하건대 직함 자체를 존칭으로 여겨서 그 뒤에 '님'을 붙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함은 그 사람의 회사 내에서의 신분을 나타낼 뿐 그 자체가 존칭은 아닙니다. 직함이 있는 상사를 부를 때에는 반드시 직함에 '님'을 붙여 '과장님', '부장님'처럼 부르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 맞는 올바른 부름말(호칭)입니다. 그리고 부장이나 과장이 한 자리에 여럿 있어서 구분하여 말해야 할 때에는 '총무부장님', 또는 '홍길동 부장님'처럼 소속이나 이름에 직함을 붙여 부릅니다.
⑶ 일터에서 '김 형', '박 형'이라는 부름말은 바람직한가?
가족 구성원끼리의 부름말에서 '형'은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지만, 사회에서의 '형'은 주로 동년배이거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입니다. 일터에서도 '김 형', '박 형' 하고 성과 '형'을 합쳐 쓸 수 있는 부름말은 남자 직원이 동료 남자 직원을 부를 때입니다. 그러나 그냥 '형' 하거나 이름과 '형'을 합친 'OOO 형'은 지나치게 사적인 인상을 주므로 쓰지 않아야 합니다. 여직원이 남자 직원을 'O 형' 하고 부르는 것도 잘못된 부름말입니다.
⑷ '말씀'이라는 말에 대한 예절
'말씀'은 "부장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처럼 상사를 높이어 그의 말을 이르는 말입니다. 동시에 "부장님께 말씀 드리겠습니다."처럼 상대방을 높이어, 자기가 하는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흔히 이 같은 경우에 자기가 하는 말을 '말씀'이라고 표현하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가 하는 말에 '말씀'을 쓰는 것이 바른 예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⑸ '~ 말씀이 계시다'의 오류
"다음은, 사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관공서에서 행사할 때, 예식장에서 주례할 때, 학교에서 졸업て입학식을 할 때 등과 같이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아마도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있다'를 '계시다'로 바꾸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바꿀 수 있는 경우는, 존칭 이름씨가 주어이고 '있다'가 존재를 의미할 때("사장님께서는 지금 안에 계십니다.")와 도움풀이씨로 사용되어 존칭 이름씨의 동작이 진행됨을 나타날 때("부장님께서는 전화를 받고 계십니다.")입니다. '말씀'은 높은 사람과 관련하여 존칭화된 말이지만, 그것 자체는 존대의 대상이 되는 존칭 이름씨는 아니고 '존재할' 수 있는 유정 이름씨도 아닙니다. 따라서 '말씀'은 '하시는' 것이지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 말씀이 계시다'는 존경의 어휘를 쓰지 않아야 할 자리에 존경의 어휘를 쓴 오류입니다. 이 경우는 '~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또는 '말씀하시겠습니다'가 옳습니다.
⑹ 일터에서 평사원을 부르는 알맞은 부름말
일터에서의 부름말, 가리킴말 등 언어 예절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특히, 동료끼리의 부름말이나 상사가 부하 직원을 부를 때의 부름말은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중요성은 어느 경우에 못지 않습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미스 O', '미스터 O'의 '미스', '미스터'는 외국말이므로 어느 경우에도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친한 사이인 경우 'OO야'처럼 이름만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석이면 몰라도 공적인 일터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직함이 없는 동료를 부를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홍길동 씨'처럼 성과 이름에 '씨'를 붙이거나, 상황에 따라 '길동 씨'처럼 이름에 '씨'를 붙여 부릅니다. 그러나 직함이 없는 입사 선배나 나이가 많은 동료 직원을 'OOO 씨'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이 경우는 꼭 '님'을 붙여 '선배님', '선생님' 또는 성이나 이름을 붙여 'O 선배님(선생님)', 'OOO 선배님(선생님)'처럼 부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과장이 과장을, 또는 부장이 부장을 부르는 경우처럼 직함이 있는 동료 사이에는 직함으로 'O 과장', 'O 부장'처럼 부르거나, 직함이 없는 동료들끼리 부르는 것처럼 'OOO 씨'로 부릅니다. 그러나 같은 직급이라도 나이가 많을 경우에는 '님'을 붙여 'O 과장님', 'O 부장님'처럼 부릅니다.
한편, 상사가 부하 직원을 부를 때에도 일정한 언어 예절이 필요합니다. 특히, 부하 직원이 직함이 없는 평사원일 때에, 함부로 'OO야'라고 이름을 부르거나, '미스 O', '미스터 O' 등 외국말로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과 이름 뒤에 '씨'를 붙여 'OOO 씨'로 부르거나, 상황에 따라 이름 뒤에 '씨'를 붙여 'OO 씨'로 부르는 것이 가장 무난합니다.
열쇠 21: 부름말 이야기
우리 겨레는 전통적으로 예의 바르고 겸손한 민족입니다. 자연히 우리는 예부터 서로간의 호칭 하나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호칭 문제는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말글살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친척 계보에서는 물론 각종 조직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문제입니다. 여기에서는 특히, 친척간의 호칭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경우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호칭'이란 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흔히 '호칭'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호칭어〔부름말〕'와 '지칭어〔가리킴말〕'로 구분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지칭어 곧 가리킴말은 다시 직접 가리킴말과 간접 가리킴말로 나누어집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호칭은 부름말, 직접 가리킴말, 간접 가리킴말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남편"을 보기로 들어 보겠습니다.
⑴ ᄀ. 얘, 우리 남편이 얼마나 구두쇤지 아니?
ᄂ.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구두쇤지 깨달으셔야 해요.
ᄃ. 여보! 이제부터는 구두쇠 노릇 안 하실거죠?
⑴ᄀ에서의 "남편"은 간접 가리킴말이며, ᄂ의 "당신"은 직접 가리킴말, ᄃ의 "여보"는 부름말입니다. 남에게 제 남편을 "여보"라고 가리킬 수 없듯이, 제 남편을 대놓고 "남편!"이나 "당신!"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친척끼리도 서로 이름을 부르지만 우리는 엄연히 부름말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입니다.
1. 시댁 식구들을 어떻게 부를까?
⑵ ᄀ. 제 시아주버니/시숙께서는 문화관광부에 다니십니다. (간접 가리킴))
ᄂ. 아주버님께서 절 놀리시는군요. (직접 가리킴)
ᄃ. 아주버님, 정말 고마워요. (부름)
⑶ ᄀ. 명일동 아주버니도 내일 오십니까? (간접 가리킴)
ᄂ. 큰아주버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름)
⑷ ᄀ. 저희 시동생은 문화관광부에 다닙니다. (간접 가리킴)
ᄂ. 서방님/명일동 서방님이셔요? (직접 가리킴)
ᄃ. 도련님/서방님, 많이 잡수세요. (부름)
⑸ ᄀ. 제 시누이는 옛날 소꿉친구이기도 해요. (간접 가리킴)
ᄂ. 형님은 제가 싫으세요? (직접 가리킴)
ᄃ. 아가씨, 우리 잘 지내기로 해요. (부름)
⑹ ᄀ. 형님이 먼저 자리에 드세요./ 형님, 그만 누우세요. (직접 가리킴/부름)
ᄂ. 동서가 잘못했어./ 동서, 이번 추석에는 꼭 와야 해? (직접 가리킴/부름)
⑺ ᄀ. 우리 시누이남편은 문화관광부에 다니신다. (간접 가리킴)
ᄂ. 서방님, 일부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부름)
남편의 형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에는, 한자말로는 "시숙"이라 하고 순 우리말로는 "시아주버니"라고 합니다(2ᄀ). 직접 가리키기나 부를 때에는 "아주버님"이라고 합니다(2ᄂ,ᄃ). 남편의 형이 여럿일 때에는, 필요에 따라 맏이를 "큰(시)아주버니"라고 하며, 그 다음부터는 차례대로 "둘째(시)아주버니", "셋째(시)아주버니", …라고 하여 구별합니다. 집안 식구끼리는 사는 동네 이름을 앞에 붙여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3).
남편의 남동생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에는 "시동생"이라 합니다(4ᄀ).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는, 장가가지 않았을 경우에는 "도련님"이라 하고, 혼인을 하고 나면 '남편의 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주버님"이라 하기도 하고 "서방님"이라 하기도 합니다(4ᄂ,ᄃ). 요즈음 "시동생"이라고 해야 할 자리에서 "삼촌"이라고 하는 것을 흔히 보는데, 이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남편의 여형제는 "시누이"입니다. 손위와 손아래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이렇게 일컫습니다. 간접 가리킴말은 이 말을 그대로 쓰면 됩니다(5ᄀ). 직접 가리킴말과 부름말은, 손위 시누이인 경우에는 "형님"이라 하고(5ᄂ), 손아래 시누이는 "아가씨"라고 합니다(5ᄃ). 시누이에게는 나이가 어리더라도 존대말을 써야 합니다. 요즈음 시누이를 "고모"라고 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또한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며느리들끼리 서로를 가리킬 때에는 "동서"라고 합니다. 동서끼리 상대편을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는, 손아래 동서는 손위 동서를 "형님"이라 하고(6ᄀ), 손위 동서는 손아래 동서를 "동서"라고 합니다(6ᄂ). 이 때 며느리들의 손위・손아래는 남편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시 말하면, 며느리들의 나이는 손위・손아래를 결정하는 데에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손아래 동서의 나이가 더 많을 때에는 부름말은 "동서"라고 하되, 함부로 '해라-체'를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누이의 남편을 "고모부"라고 부르는 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간접 가리킴말은 "시누이남편"입니다(7ᄀ). 다만, 이 경우는 예부터 내외하던 사이라서 직접 가리킴말과 부름말은 발달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의 상황에 알맞은 부름말을 찾는다면 "서방님"이 가장 적절합니다(7ᄂ).
2. 처갓댁 식구들을 어떻게 부를까?
⑻ ᄀ. 저의 장인어른/빙장어른이 다녀가셨습니다. (간접 가리킴)
ᄂ. 저의 장모님/빙모님은 아직 환갑 전이십니다. (간접 가리킴)
ᄃ. 빙장어른/빙모님께서는 사업체를 정리하셨습니다. (직접 가리킴)
ᄅ. 장인어른/장모님, 이제부터 제가 모시겠습니다. (부름)
⑼ ᄀ. 제 큰처남이 그 회사에 다닙니다. (간접 가리킴)
ᄂ. 처남, 요즘 사업이 어떠십니까? (부름)
ᄃ. 처남은 무슨 운동을 좋아하나? (직접 가리킴)
⑽ ᄀ. 내 친구의 처형이 그 방면의 전문가입니다. (간접 가리킴)
ᄂ. 처형께서는 어찌 화 한 번 안 내십니까? (직접 가리킴)
ᄃ. 처제, 시집가도 언니를 닮지 마세요. (부름)
⑾ ᄀ. 제 동서가 그 일을 알고 있습니다. (간접 가리킴)
ᄂ.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직접 가리킴)
ᄃ. 동서가 도와 준 덕택입니다. (직접 가리킴)
ᄅ. 동서, 빨리 와 주게./ 박서방, 언제 한번 올라오지 그래. (부름)
⑿ ᄀ. 이번에 제 처남(의)댁이 미용실을 개업했습니다. (간접 가리킴)
ᄂ. 작은처남댁은 어디 가셨습니까? (간접 가리킴)
ᄃ. 아주머니, 지난번 처갓댁에서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부름)
아내의 부모를 가장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은 "장인・장모"입니다. 좀 높여서 말할 때에는 "빙장・빙모"라고 합니다. "장인, 빙장" 뒤에는 "어른"을 붙여 쓰기도 하고(8ᄀ), "장모, 빙모" 뒤에는 "-님"을 붙여 쓰기도 합니다(8ᄂ). 직접 가리킴말과 부름말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는(요즈음은 "아버님・어머님"이라 부르는 것도 하나의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장인은 "장인어른" 또는 "빙장어른"이라 하고(9), 장모는 "장모님" 또는 "빙모님"이라 하였습니다(8ᄃ,ᄅ).
아내의 남자형제는 "처남"입니다. 아내의 오라버니도 처남이고, 아내의 남동생도 처남입니다. 처남이 여럿일 때에는, "큰처남, 작은처남" 또는 "둘째처남, 셋째처남, …, 막내처남" 등으로 구분합니다(9ᄀ). 다만,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 요즈음 흔히들 아내의 오라버니를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전통적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처남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어색한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아내의 오라버니든 동생이든 간에 모두 "처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통적인 우리의 말법이었습니다(9ᄂ,ᄃ).
아내의 여형제 가운데 손위(아내의 언니)는 "처형"이고, 손아래(아내의 동생)는 "처제"입니다. 가리킬 때에든 부를 때에든 이 말을 그대로 씁니다(10). 한 가지, 처제를 보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나이가 찬 처제에게 마구 '해라-체'를 쓰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말법입니다. 자기와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시집을 가고 나면 반드시 존대해야 합니다.
아내의 여형제 남편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에는 손위・손아래를 가리지 않고 "동서"라고 합니다(11ᄀ).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도 전통적으로는 두 경우 모두 "동서"라고 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아내 언니(처형)의 남편인 경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을 때에는 "형님"이라 부르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11ᄂ). 다만, 처형의 남편이 자기보다 연하일 때에는 그대로 "동서"라고 부르며 존대말을 해야 합니다(11ᄃ). 처제의 남편을 직접 가리키거나 부를 때에는 "동서"라고 하는 외에도 "~서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11ᄅ). 이 때에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손아래 동서이면 역시 "동서"라고 부르되 존대말을 써야 합니다.
처남의 아내는 "처남댁"(또는 "처남의댁")이라고 한다(12ᄀ,ᄂ). 이 경우는 직접 가리킴말이나 부름말이 문제인데, "처남(의)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 '댁'이라는 말이 걸리기 때문인지 오늘날 "처남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처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국어 사전에 올리지 않은 말입니다. 글쓴이는 처남(의)댁을 직접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아주머니"를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12ᄃ). 이 말은 실제로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열쇠 22: 부조금 봉투 쓰기
"칠순에는 고희라는 말이 있는데, 팔순 잔치 때는 뭐라고 써야 합니까?"
학회 연구실에 문의해 오는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부조금 봉투 적기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여러 분야의 생활 방식이 서양화 함에 따라 우리의 전통적인 인사말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음에도, 이 부조금 봉투 적기만은 아직까지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적은 액수의 돈일지언정 부조를 하는 이의 정성을 상대방에게 간곡하게 전하려는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부조금 봉투에 적는 인사말 하나에도 대단히 조심을 하게 되는데, 특히 팔순이나 구순을 축하하는 잔치 모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손위 어른의 생일을 높여 부르는 말이 생신입니다. 생신이 곧 '태어난 날'의 뜻이므로 "생신일"은 잘못된 말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육순이 지난 뒤에는 특별히 의미 있는 때를 정하여 주변 사람들을 초청, 성대한 생신 잔치를 열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환갑(또는 회갑, 화갑) 잔치와 칠순 잔치입니다. 칠순을 달리 "고희(古稀)"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이름난 문장가였던 두보의 시 가운데 "人生七十 古來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한학이 융성했던 시기에 글줄이나 배운 이들이 칠순을 좀더 문학적으로 표현하느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팔순이나 구순 따위에도 이 같은 별칭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팔구십 살까지 사는 일이 흔치 않았으므로 굳이 별칭까지 만들어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말을 막연히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니, 정작 우리말인 "팔순, 구순"은 한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80살은 그대로 팔순(八旬)이며 90살은 구순(九旬)입니다. 일부에서는 팔순을 "산수(傘壽)", 구순을 "졸수(卒壽)"라고도 하는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억지로 별칭을 만들어 쓰려는 심리에서 나온 말이니 권장할 것은 못 됩니다. (칠순이나 팔순, 구순 잔치는 모두 우리의 세는 나이로 각각 70, 80, 90살에 치릅니다.)
또한, 66살을 "미수(美壽)", 77살을 "희수(喜壽)", 88살을 "미수(米壽)", 99살을 "백수(白壽)"라고 하여 성대한 생신 잔치를 치릅니다. 이들 말은 모두 일본말에서 들여 온 것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본디 66살이나 77살, 88살 등을 기리는 전통이 없었습니다. 유별나게 장수에 관심이 많은 일본 사람들의 풍속을 우리가 배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따른 용어도 일본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환갑(회갑, 화갑)을 앞뒤로 하여 크게 생신 잔치를 치르었습니다. 환갑 잔치는 우리 나이(세는 나이)로 61살(만 나이로 60살)에 열었고, 60살에는 육순(六旬) 잔치를, 62살에는 진갑(進甲) 잔치를 열었습니다. 70살까지 사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71살만 되어도 "망팔(望八)"이라 하여 장수를 축하하는 큰 잔치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들 잔치에 참석하고자 할 때 마련하는 부조금 봉투에는 무엇이라고 써야 할까요?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세는 나이) (봉투에 적는 인사말)
60살 ……… 축 육순연(祝六旬宴)
61살 ……… 축 수연(祝壽宴), 축 환갑(祝還甲), 축 회갑(祝回甲), 축 화갑(祝華甲)
62살 ……… 축 수연(祝壽宴), 축 진갑(祝進甲)
70살 ……… 축 수연(祝壽宴), 축 고희연(祝古稀宴), 축 희연(祝稀宴)
77살 ……… 축 수연(祝壽宴), 축 희수연(祝喜壽宴)
80살 ……… 축 수연(祝壽宴), 축 팔순연(祝八旬宴)
그밖에 88살의 생신 잔치에는 "축 미수연(祝米壽宴)", 99살의 생신에는 "축 백수연(祝白壽宴)" 따위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한편, 환갑 이상의 생신 잔치에는 장수를 축하하는 뜻으로 보통 "축 수연(祝壽宴)"을 널리 씁니다.
그러나 이 "축(祝)"을 '축하'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본디의 낱말이 가진 뜻과 어긋납니다. "祝"은 '빌다'는 뜻의 동사로서, 예부터 제사를 지낼 때에나 써 오던 말입니다. "축문(祝文)"은 '제사 때 읽어 신명에게 고하는 글'이고, "축가(祝歌)" 역시 본디는 노래의 형식을 빌어 신에게 비는 제례의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모두 제사와는 관계없이 '축하하다'는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더라도 "祝"이라고만 할 때에는 '빌다'의 뜻이지 '축하'의 뜻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축 환갑"이라고 하면 '환갑을 (맞이하기를) 빌다'는 뜻이 되니, 이미 환갑을 맞은 사람에게는 커다란 실언입니다. 같은 경우로, "축 결혼"이라고 하면 '결혼을 (하기를) 빌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당사자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축 OO' 식의 말은 우리말 어법에도 벗어납니다. 우리는 'OO를 축하하다'라고 말하지, '축하하다 OO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어나 중국어의 어법(말법)입니다. "나는 학교에 간다."를 영어권 나라에서는 "I(나는) go(간다) to school(학교에)."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我(나는)去(간다)學校(학교에)."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 한아비(선조)들이 오랫동안 한자로 글자살이를 해 온 까닭에 많은 부분에 이러한 중국식 표현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서 "차 한 잔을 마시며"를 "한 잔의 차를 마시며"로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는 영어의 영향을 받은 미국말입니다. 지난날에는 중국 문화를 신봉하여 우리것이 많이 손상되었다면, 오늘날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잃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말투를 바로잡는 것은 곧 우리의 겨레얼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생신 잔치에 내는 부조금 봉투 쓰기에 대하여, 글쓴이는 종래의 틀에 박힌 '축 OO' 대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합니다. 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의 깊이를 담아야 하는 부조금 봉투에는 꼭 제한된 글자 수를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한글만 쓰기가 보편화 된 요즘 같은 시대에 어려운 한자말을 적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생신 잔치 자체를 축하하는 것보다는 장수를 빌어 드리는 뜻으로 "만수무강하소서"가 어떨까요? 하얀 봉투에 큼직한 한글로 "만수무강하소서"라고 적어 전해 드린다면, 모든 허식을 떠나 마치 부모의 강녕을 비는 자식의 정성을 대한 듯 받는 이의 마음도 한결 따뜻해 질 것이라 믿습니다.
열쇠 23: 4자 성어 이야기
민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한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일이 있습니다.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속담으로 우리 귀에 익은 중국의 고사성어입니다. 그 후에도 "대도무문"이니 "신토불이"니 하는 따위로 심심찮게 한자말 사자성어가 언론 매체에 오르내렸습니다.
은유와 비유를 위해서라면 이들에 못지않게 풍류적이고 재치있는 우리말 속담이 많이 있음에도 굳이 한자말 사자성어를 남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왕에 사용할 때에는 그 뜻을 정확히 알고 특히, 표현의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유식함을 뽐내려다 오히려 무식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 쓰이면서도 가장 많이 잘못 쓰이고 있는 한자 성어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산수갑산→삼수갑산
"산수갑산에 가더라도 우선 먹고나 보자."는 말을 흔히 듣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수갑산'을 '산수갑산'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아마도 이 때의 '삼수'를 '산수(山水=경치)가 수려하다'라고 할 때의 '산수'로 오인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산수갑산'은 '경치 좋은 곳'을 말할텐데 어찌하여 '~에 가는 한이 있어도(뒤에 고생하더라도) ~하고나 보자'의 뜻으로 쓰이는 것일까요? 결국 낯선 사자성어를 뜻살핌이 없이 무비판적으로 남용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잘못인 셈입니다.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둘 다 함경도에 있는 군 단위 지명입니다. 또한, 두 지역이 모두 유배지로 알려진 험한 곳들입니다. 예부터 귀양살이하다가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올 만큼 험하고, 또한 풍토병마저 지독한 곳이었습니다. 삼수군은 오늘날 함경남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지방입니다. 이 지역은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과 험한 봉우리가 많은 고원 지대입니다. 갑산군은 오늘날 함경북도 북동쪽에 있는 지방입니다. 이 지역 역시 삼수군에 못지 않게 험준한 산들로 싸여 있습니다. 이러한 곳들이었기에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어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야밤도주→야반도주
우리 나라 사람들의 그릇된 언어 습관 가운데, 똑같은 뜻의 한자말과 우리말을 겹쳐서 사용하는 예들이 허다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역전앞(→역전, 역앞), 처갓집(→처가), 약숫물(→약수), …' 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겨레가 오랫 동안 우리말에 맞는 글자를 가지지 못하고 남의 글자(한자)를 빌어 써 온 탓에 생긴 것입니다. 말 따로 글자 따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자말+우리말'의 의미 중첩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예 가운데, 흔히 '한밤중'(깊은 밤중)을 뜻하는 말로 '야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 큰 계집애가 야밤에 어딜 나간다는 거야!"라는 말을 예사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의 '야밤'(夜―)은 '밤' 또는 '한밤'으로 고쳐 써야 올바른 표현이 됩니다.
"야밤도주"도 바로 이러한 오해 때문에 빚어진 말인 듯합니다. 그러나 이 때에는 "야반도주"(夜半逃走)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말 '밤중'에 상응하는 한자말이 바로 '야반'(夜半)입니다. 곧 "야반도주"란, '한밤중에 도망하는 것'을 이르는 한자 성어입니다.
(3) 전입가경→점입가경
입학철을 맞아 새내기 학부모들이 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 인사하는(물론, 이제 '촌지' 따위는 없어졌으리라 믿고 싶지만) 풍경들이 자주 눈에 띄곤 합니다. 아파트 아낙들은 전화통에 매달려 제각기 자기 아이를 맡아 가르칠 담임 선생을 입에 올려 놓고 한바탕 수다를 늘어 놓느라 법석을 떨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글쓴이는 지금까지 '담임 선생님'의 '담임'[다밈]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담임'은 모두 '단임'[다님]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다밈]을 왜 [다님]이라고 할까요? '단임 선생님'이라 하면 한 해 동안만 교사직을 맡기로 한 '단임제' 선생님이란 뜻으로도 들리니, 자기 아이를 한 해 동안 해당 교사에게 맡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딴은 맞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담임'을 [다님]으로 발음하는 현상은 발성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곧, 받침소리 [ᄆ]이 [임], [입] 앞에서는 [ᄂ]으로 소리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데, 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발성 구조입니다. 따라서 매우 유의하지 않으면 이러한 말들의 발음을 정확히 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 한 예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사자성어의 경우를 살펴보지요. 이 말은 '들어갈수록 아주 재미가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점입가경"을 "전입가경"으로 잘못 알고 쓰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바로 위와 같은 발음상의 오류 때문인데, "점입가경"을 [저밉가경]이라 읽지 않고 [저닙가경]이라 읽어 버릇함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이 한자 성어의 쓰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발음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4) 동병상린→동병상련
'동병상련(同病相憐)'의 '憐'을 '린'으로 잘못 읽어 '동병상린'이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동병상련'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5) 개발새발→괴발개발
위에서 예든 말들은 모두 한자 성어입니다. 그렇다면 한자 성어의 경우에만 이러한 잘못이 있을까요? 알고 보면 우리말 격언이나 속담, 비유어 등에서도 위와 같은 사용상의 오류가 적지 않게 발견됩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우리 속담 가운데 "점잖은 개 부뚜막에 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을 두고 저마다 부뚜막에 오르는 동물이 '고양이'가 맞느니, '강아지'가 맞느니 말들이 많습니다. 그 까닭은, 지난날 장작으로 아궁이를 지피던 시절에, 집집마다 고양이나 강아지가 부뚜막에 올라앉아 잠을 자는 모습들을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양이나 강아지가 흔하게 부뚜막에 오르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슨 비유거리가 되겠습니까? 이 속담은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는 사람이 엉뚱한 짓을 한다'는 뜻입니다. 강아지는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고양이가 부뚜막에 오르는 것 또한 '엉뚱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속담에 등장하는 동물은 바로 '개'입니다. 그것도 제법 몸집이 큰 놈입니다. 평소 어슬렁거리며 점잖아 보이지만, 밤에 기온이 떨어지고 추위를 못 견디면 부뚜막에라도 올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커다란 개가 부뚜막에 올라앉은 모습이야말로 진풍경이 아니겠습니까!
글씨를 되지 않게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보고 이르기를, "괴발개발 그려 놓았다."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개발새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개 발자국과 새 발자국을 연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새는 마당에 앉았다가도 개가 나타나면 이내 날아가 버릴텐데 어찌 개와 새의 발자국이 어울릴 수 있겠습니까? 이 우리말 사자성어는 "괴발개발"이 맞습니다. 여기서의 '괴'는 '고양이'가 줄어든 말입니다. 예부터 개와 고양이는 앙숙간이라, 만나기만 하면 쫓고 도망가며 아웅다웅 다툽니다. 깨끗이 쓸어놓은 마당에 이 두 놈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힌 모습을 상상하면 "괴발개발"의 지닌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열쇠 24: 일본말 찌꺼기 이야기
우리는 해마다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리고 있습니다. 세종 성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위업을 기리미과 아울러, 겨레의 말글살이에 긍지와 힘을 보태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가 되면 우리의 언론에서는 한글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강조하는라 법석을 떱니다. 한 해 동안 관심조차 두지 않던 천덕꾸러기 한글을 이때만 되면 신문마다 앞다투어 떠받들곤 하지요. 그렇기는 하지마는, 그러나 어차피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사는 것이라면, 이때만이라도 우리 말과 우리 글의 소중함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되니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1997년은 특히 세종 성왕께서 나신지 600돌을 맞는 해이어서 한글날의 감회는 예년에 비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52년 전에 일본의 강압 통치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이는 곳 우리 말글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되찾은 말과 글은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동안 많은 이들이 일본말 몰아내기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라가 광복된 지 52돌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참다운 말글의 광복을 이루어 내었습니까? 슬픈 일이지만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일본말 찌꺼기는 일반의 생각보다 그 정도가 매우 심합니다. 이를 모두 떨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 말과 글의 광복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말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일본말 찌꺼기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본말 또는 일본말의 영향을 받은 말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일본말 발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자'를 매개로 하여 남아 있는 것입니다.
1. 일본말 발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일본말 찌꺼기를 거론할 때에 흔히들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구루마(→손수레), 다대기(→다짐, 다진 양념), 사시미(→생선회), 아나고(→붕장어), 우동(→가락국수)" 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들은 일본말의 발음을 우리가 그대로 쓰는 것인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속에 이런 부류의 것이 많습니다. 이들은 글쓴이가 '→' 표시 뒤에 보인 것과 같이 얼마든지 우리말로 바꾸어 쓸 수가 있는 것들로서, 우리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만이 일본말 찌꺼기는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이 다른 나라 말(특히 서양말)을 자기네들의 소리 체계에 맞추어 받아들여 쓰는 것을 우리가 다시 그대로 받아들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본디 일본말은 아니지만, 반드시 버려야 할 일본말 찌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음 보기를 보겠습니다.
(일본말 발음) (본디 발음)
center 센타 센터
cup 꼬뿌 컵
inflation 인프레 인플레이션
muffler 마후라 머플러
nut 낫또 너트
television 테레비 텔레비전
일본말은 홀소리가〔a〕,〔i〕,〔u〕,〔e〕,〔o〕다섯뿐인 데다가 대부분이 받침소리가 없는 음절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서양말의 소리를 제대로 발음하고 표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서양말을 줄이거나 받침 없는 비슷한 소리로 흉내내어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센타, 인프레, 마후라, 낫또, 테레비"라고 하는 것도 분명히 일본말의 찌꺼기입니다. 우리말은 소리가 매우 풍부하여 세계의 어떤 말도 거의 그대로 발음해 낼 수 있으며, 또한 우리 한글도 매우 과학적이어서 어떠한 소리도 다 표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혀짧은 일본 사람을 흉내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 '한자'를 매개로 하여 남아 있는 것
일본의 글자 '가나'는 자유로운 글자살이를 하기에는 다소 불충분한 글자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들은 한자를 버릴 수 없는 숙명을 떠안고 있는데, 그들이 쓰는 각 한자의 음이나 뜻은 우리와 매우 다릅니다. 게다가 그들은 한자를 음으로 읽기도 하고 뜻으로 읽기도 합니다. 그들이 자기네 방법대로 표기한 한자를 들여다가 그대로 적어 버리거나, 우리의 한자음대로 읽어 버린 데서 비롯된 일본말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통틀어 '일본식 한자말'이라 합니다.
이런 부류의 낱말은 매우 많습니다. "거래, 검사, 과학, 국회, 농구, 물리, 방송, 배구, 야구, 철학, 판사, 화학, 회사" 들과 같이, 우리들이 날마다 쓰고 있는 말들이 사실은 그런 것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우리말에 거의 녹아들어 일본식 한자말이라는 이유로 몰아내기는 어렵게 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한자를 매개로 한 일본말 찌꺼기 가운데에는 이제부터라도 얼마든지 바꾸어 쓸 수 있는 말들이 많습니다. 일본말이 들어오기 전에 쓰이던 우리말이 있는 것, 같은 한자말이라도 우리말식 한자말이 따로이 있는 것 등은 마땅히 그것을 써야 합니다. 흔히 '일본식 한자말'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개찰구(→표끊는곳/들어가는곳), 견적서(→추산서), 경합(→경쟁), 굴삭기(→굴착기), 기합(→얼차려), 나대지(→빈집터), 납득하다(→알아듣다/이해하다), 매표구(→표파는곳), 세대(→가구), 수속(→절차), 시건장치(→잠금장치/자물쇠), 절사하다(→잘라버리다), 추월하다(→앞지르다), 타합하다(→의논하다/상의하다), 특단의(→특별한), 행선지(→갈곳/가는곳), …
우리말을 더럽히는 대표적인 일본말 찌꺼기가 바로 위와 같은 것들인데, 한자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 사람들은 서양말의 소리(발음)를 한자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다음이 그런 보기입니다.
(일본 표기) (본디음의 한글 표기)
cholera 虎列刺(고레라) 콜레라
lymph 淋巴(린파) 림프
romantism 浪漫(노망) 로망띠즘
typhus 窒扶斯(지부스) 티푸스
이들은 모두 한자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며, 말과 글의 체계가 불충분한 일본 사람들의 꽁무니를 잘못 따라간 데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이 일본식 발음에 맞추어 아무 뜻없이 쓰인 한자를 그대로 들여다가 우리식 한자음대로 읽는 바람에 "호열자(설상가상으로 '刺'마저 '刺'로 잘못 읽어서), 임파선(―腺), 낭만, 장(腸)질부사" 들과 같은 웃지 못할 말들이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마땅히 "콜레라, 림프샘, 로망띠즘, 장티푸스"로 되돌려야 합니다.
열쇠 25: 생활 외래어 이야기
외래어란, 본디부터 우리 겨레가 써 오던 토박이말이 아니라 바깥나라에서 들어와 국어가 된 말입니다. 우리말의 반 이상이 외래어이고, 외래어 가운데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말입니다. 외래어에서 한자말을 빼면 일본말(또는 일본말의 영향을 입은 말)과 서양어권 말이 그 다음으로 많습니다. 물론,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전파된 외래어도 있지만, 생활 외래어 가운데는 그 수가 많지 않아 이 글에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가운데, 일본말이나 일본말 찌꺼기는 같은 외래어라 할지라도 역사적으로나 민족 감정상으로 반드시 몰아내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국어로서의 외래어'의 지위를 줄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앞선 문명의 유입과 함께 필연적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서양어권 외래어에 대하여, 현행 표준 표기법을 보임으로써 통일된 언어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물론, 서양어권에서 유입된 말이라고 모두 '국어로서의 외래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외래어란, '그와 대체해서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없는 말이면서 오랫 동안 우리 겨레가 널리 써 이미 굳어진 말'을 뜻합니다.
(1) 긴소리 적기 문제―서비스:서어비스
1986년에 고시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긴홀소리[장모음]의 긴소리[장음]는 따로 표기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거(1958~1985년)의 표기법에서는 '루우트, 서어비스, 티임' 등으로 적었던 것을 현행 규정에서 긴홀소리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기로 개정한 데에는 물론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실제 글자 생활에서 긴홀소리의 표기로 말미암아 음절 수가 늘어나서, 특히 지면의 제약을 받는 신문 등에서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토박이말이나 한자말의 긴소리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유독 외래어 표기에서 긴소리를 표기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만일 장음을 표기한다면 별도의 장음 부호를 사용하여야 하는데, 별도의 장음 부호를 사용한다면 외래어 표기법 규정 가운데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로만 표기하고 그 밖의 글자나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제1장 제1항에 어긋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홀소리를 겹쳐서 적어야 하는데, 이 또한 별도의 음절을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긴소리 표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긴홀소리의 홀소리를 따로 표기하지 않게 됨에 따라, 땅이름에 있어서도 전에는 '뉴우요오크'로 적던 것을 '뉴욕'으로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 '큐우슈우, 토오쿄오, 오오사카' 들도 모두 '규슈, 도쿄, 오사카'로 표기합니다. 생활 용어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우트, 서어비스'는 이제 '루트, 서비스'로 표기하여야 합니다.
(2) 홀소리 단순화 문제―주스:쥬스
'텔레비전'은 영어 'television'에서 온 말인데 영어의 발음은〔telivin??n〕입니다. 이것이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 "〔?〕,〔?〕,〔?〕는 모음 앞에서 각각 'ᄌ', 'ᄌ', 'ᄎ'으로 적어야" 하고〔?〕는 'ㅓ'로 적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juice'도 영어 발음이〔?u:s〕이므로 '쥬스'가 아니라 '주스'로 적어야 하며, 'charming'도 영어 발음이〔?a:miŋ〕이므로 '챠밍'이 아니라 '차밍'으로 적어야 합니다.
〔?〕,〔?〕,〔?〕들이 모음 앞에서 각각 '지', '지', '치'가 아니라 'ᄌ', 'ᄌ', 'ᄎ'으로 적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쟈, 졔, 쟤, 져, 죠, 쥬'나 '챠, 쳬, 상, 쳐, 쵸, 츄'와 같은 표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는 달리, "〔?〕는 모음 앞에서 '시'로 적되 뒤따르는 모음에 따라 '샤, 셰, 섀, 셔, 쇼, 슈'로 적어야" 합니다. 따라서 'shadow', 'shake', 'shock,' 'shoe' 들은 각각 '섀도', '셰이크', '쇼크', '슈' 들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3) '어'와 '아'의 대응 문제―센터:센타
외래어 표기법은 관용으로 굳어져 있는 말 이외에는 원지음을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한글로 옮기도록 되어 있는데, 국제 음성 기호로〔?〕는 '어'에 대응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원어의 발음이〔sent?〕,〔t?:min?l〕,〔rout?ri〕인 'center', 'terminal', 'rotary'에서 온 외래어는 '센터, 터미널, 로터리'로 표기되는 것이 옳습니다. '센타, 터미날, 로타리'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사람이 많으나〔?〕가 '어'에 대응되어 있는 이상 이는 모두 잘못입니다.
물론〔?〕를 '아'에 대응시키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특히, 일본인들에게는) 발음하기가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령 'service〔s?:vis〕, second〔sek?nd〕' 등과 같이 어중에 나타나는〔?〕를 '아'에 대응시켜 '사비스, 세칸드'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센터, 터미널, 로터리' 대신에 '센타, 터미날, 로타리'를 표준어로 삼는다면〔?〕는 단어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어'로도 표기되고 '아'로도 표기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 제1장 제2항 "외래어의 1 음운은 원칙적으로 1 기호로 적는다."는 규정에 어긋나게 됩니다.
*셈틀에서 지원되지 않은 영어 발음기호는 (?)로 표시하였습니다.
(4) 관용 표기의 인정 문제―시스템:시스팀
영어 'system'의 발음은〔sistim〕이기 때문에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표기하면 '시스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어 생활에서 이 말은 오래 전부터 '시스템'으로 굳어져서 널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시스템'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5항은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곧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규정에 구애받지 않고 굳어진 대로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camera, radio'는 원어의 발음이〔kæm?r?〕,〔reidiou〕이기 때문에 규정을 적용하면 '캐머러, 레이디오'가 되지만, 누구도 이를 '캐머러, 레이디오'라고 말하지 않으므로 이미 굳어진 대로 '카메라, 라디오'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
'시스템'의 경우도 원어의 발음은 '시스팀'이지만 관용 표기를 인정하여 '시스템'을 표준말로 정하였습니다. 사실, 정확히 따진다면 'system'의 발음이 꼭 '시스팀'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영어의 '강세'가 한글 표기에 반영되지 못하는 한 낱낱의 소리값을 원어와 꼭 같게 한글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외래어는 이미 외국어가 아니고 국어의 일부이며,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외국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나라 사람끼리 말할 때 필요해서입니다. 따라서 본디말의 발음이 어떤지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써 왔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말의 특성에 맞는지를 고려하여 외래어 표기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쇠 26: 외래어의 된소리 이야기
글쓴이는 앞에서 '생활 외래어 바로 적기'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들온말[외래어]들을 몇 자지 들고, 잘못 쓰기 쉬운 점을 바로잡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곧, *'서어비스, 서비스'는 '서비스'로, *'쥬스, 챠밍'은 '주수, 차밍'으로, *'센타, 로타리'는 '센터, 로터리' 등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요즘 세계화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는 데다가, 무역 장벽을 거의 없애 외국산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추세이어서, 들온말 표기의 빈도가 무척 잦아졌습니다. 게다가 신문마다 외국 지명의 표기가 조금씩 달라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지어의 본디 발음과 우리말소리와의 차이, 그에서 비롯된 한글 맞춤법과의 갈등으로 좀체 통일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들온말의 된소리 적기는 허용되는가, 허용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에 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빠리'는 '파리'이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4항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국제 음성 기호'에서 모음 앞의 [p], [t], [k]는 한글로 옮겨 적을 때 'ᄑ', 'ᄐ', 'ᄏ'으로 대응됩니다. 그뿐 아니라, 에스파냐어・이탈리아어・일본어・ 중국어 등에 한글을 대응시킬 때에도 각 언어의 파열음 표기에 'ᄈ', 'ᄄ', 'ᄁ'등의 된소리 글자는 쓰지 않고 있습니다.
영어나 독일어의 경우, 파열음은 유성・무성의 대립을 보이는데 유성음은 우리말의 예사소리, 무성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와 같은 언어의 무성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보다는 된소리에 가깝게 발음되므로 한글로 적을 때에 된소리 글자로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언어의 무성음을 한글로 옮겨 적을 때 된소리 글자로 적는 데에는 여러 가지 불편이 따릅니다.
지구상에는 190여 개의 나라가 있고, 4,000여 가지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의 경우는 그 무성음이 우리말의 된소리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밖의 나라의 수많은 언어에 있어서는 과연 거센 소리에 가까운지 된소리에 가까운지 확인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언어에 따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무성 파열음을 거센소리 글자와 된소리글자로 갈라서 대응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설령 언어에 따라 거센소리와 된소리의 어느 쪽에 가까운지 확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어에 따라 구별하여 적는 것은 엄청난 기억의 부담을 가져오고, 따라서 표기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현지 원어의 무성 파열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나 된소리 가운데 어느 하나로 표기하는 것이 좋은데, 거센소리가 된소리보다 훨씬 부담량이 높기 때문에 거센소리 글자에 대응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paris'는 *'빠리'가 '파리'보다 실제 원음에 가깝지만 '파리'로 적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conte'도 *'꽁뜨'와 비슷하지만 '콩트'가 표준말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들온말 가운데 잘못 쓰기 쉬운 말들의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잘못 쓴 예) (표준말) (잘 못 쓴 예) (표준말)
*아뜰리에 → 아틀리에 *오사까 → 오사카
*까페 → 카페 *후꾸오까 → 후쿠오카
*꼬냑 → 코냑 *도꾜 → 도쿄
*삐에로 → 피에로 *모스끄바 → 모스크바
그런데 들온말의 파열음 표기에서 된소리를 쓰는 예외가 몇 개 있습니다.
'삐라(bill)', '껌(gum)', '빨치산(partizan)'들이 그것입니다. 이들도 원칙을 따르자면 *'비라, 검, 팔치산'이 되겠지만, 예사소리나 거센소리 글자로 표기한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된소리로 굳어졌기 때문에 된소리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이들 예외를 제외한 말에서는 된소리를 써서는 안 됩니다. '버스', '가스', 가운', '댐'과 같은 말도 발음은 각각 [뻐스], [까스], [까운], [땜] 들과 같이 된소리로 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된소리로 표기하지 않아도 잘 알아볼 수 있는 말들이므로 예사소리글자로 적는 것입니다.
(2) *'짜장면'은 '자장면'이다
앞의 예들과는 달리, '자장면'은 중국에서 들어온 낱말입니다. 중국어에서 우리말에 새로운 낱말이 차용될 때에는 간접 차용이라 하여 우리 한자음으로 읽히면서 들어온 것과, 직접 차용이라 하여 중국 한자음 그대로 읽히면서 들어온 경우가 있습니다. '자장면'은 국어 사전에 '酉+乍醬麵"(한글학회), 또는 '炸醬麵"(금성출판사)에서 온 낱말로 되어 있으며, 백과 사전에는 '짜장면(-醬麵)'과 '차오장멘(火+少醬麵)'이 각각 올라 있습니다(동아출판사). '酉+乍', '炸', '火+少'의 음을 한자자전에서 찾아 보면 각각 '작(초)', '작', '초' 들로서 어느 것도 '자'를 음으로 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장면'은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용된 들온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낱말은 먼저 '자장'(중국 된장)과 '면'으로 분석됩니다. 들온말과 한자말이 합쳐져 새로운 낱말로 우리말에 녹아든 경우지요. 이 낱말에서 '자장'이냐 아니면 '짜장'이냐 하는 문제는 먼저 중국에서 어떻게 발음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장'이라 하는 것에 해당하는 낱말로 중국어에는 '炸醬'이 있습니다. 이 낱말의 중국음은 [zhajiang]이므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자장'이 됩니다. 따라서 이 낱말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 대부분 [짜장면]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그 표기는 '자장면'이라고 해야 하니 유의할 일입니다.
*'작(酉+乍)', '초(火+少)' 한자는 셈틀에서 지원되지 않아 '+'로 나누어 표시하였습니다.
열쇠 27 : 로마자 표기법 이야기
지난 5월 6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문화체육부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주최한 이 공청회에서는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이 날 주제 발표자로 나온 3사람(이현복 서울대 교수, 남기심 연세대 교수, 강범모 고려대 교수) 모두가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립국어연구원 측이 마련한 개정 시안(일부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이 올해 안으로 확정, 공포될 전망입니다. 글쓴이는 이 공청회에 참석하여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문제점과 주최측이 내놓은 '개정 시안'에 대한 의견들을 청취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개정 시안'을 간략히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란, 우리말을 로마자(영어의 알파벳)로 옮겨 적는 일정한 규칙을 말합니다. 로마자 표기는 지금까지는 보통의 일반 국민이 직접 표기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앞으로는 자기 이름이나 주소 들을 로마자로 적어야 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므로 누구나 쉽게 배워 익혀야 할 것입니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1984년에 공포되어 지금까지 시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표기법은 이른바 '머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기본 안으로 삼아 제정한 것으로서, 한글 맞춤법에 따른 표기가 아니라 우리말의 발음에 따른 표기 체계입니다.
앞엣것을 전자법(轉字法)이라 한다면, 뒤엣것은 표음주의를 지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행 표기법이 표음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외국인들이 읽기에는 편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 한글을 로마자로 옮겨 적기는 매우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행 표기법의 개정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반달표(˘), 어깻점(') 따위 특수 기호를 써야 하므로 컴퓨터상의 구현이 매우 불편합니다.
(2) 같은 'ᄀ,ᄃ,ᄇ'을 무성음이냐, 유성음이냐에 따라 k, t, p와 g, d, b로 써야 하므로 유・무성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 한번 로마자로 옮겨진 우리말을 다시 한글로 되옮기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이번 개정 시안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자법'을 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전자법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주안점을 외국인보다는 우리 국민에 둔 것이라, 한글 맞춤법이 그대로 실현되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부득이 한글을 쓸 수 없는 사정이 생겨 잠시 로마자를 빌려 쓰더라도 한글 맞춤법대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국어를 표기할 수 있는 표기법을 만든 것입니다.
이 개정 시안은 또한, 지난 1940년에 조선어 학회(한글 학회의 전신)에서 제정, 공포한 <조선어음 라마자 표기법(朝鮮語音羅馬字表記法)>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교부 고시)이 발표된 1984년, 새로 나온 로마자 표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글 학회에서 따로이 마련하여 발표한 <우리말 로마자 적기>와 거의 같은 원칙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행 표기법의 문제점에 대한 새 '개정 시안'의 대책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모음 표기에서 특수 기호를 없앴다
현행 표기법에서 '어' 모음은 'o'로 적어 왔으나, 개정 시안에서는 특수 기호를 없애는 대신 '어'를 표기하기 위한 두 가지 안을 내놓았습니다. 제1안은 '어'를 'e'로, '에'를 'ei'로 쓰자는 것이고, 제2안은 '어'를 'eo'로, '에'를 'e'로 쓰자는 것입니다. '여'와 '워'는 제1안에 따르면 'ye', 'we'가 되고, 제2안에 따르면 'yeo', 'weo'가 됩니다.
또한, '으' 모음은 현행 표기법에서 'U'로 적어 왔으나, 개정 시안에서는 'U'에서 반달표를 없앤 'u'를 채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종래에 'u'로 적히던 '우' 모음은 '으'에 원순성이 가미된 원리에 맞추어 w를 u 앞에 넣어 'wu'로 표기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으'가 u이므로 '의'는 'ui'로 쓰도록 한 것입니다.
(2) 'ᄀ, ᄃ, ᄇ, ᄌ'의 유・무성의 구별을 없앴다
자음 'ᄀ, ᄃ, ᄇ, ᄌ'을 어떻게 표기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번 개정 시안 가운데 자음 표기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이었습니다. 현행 표기법에서는 'ᄀ, ᄃ, ᄇ, ᄌ'을 말 첫머리에서는 k, t, p, ch로, 유성음 사이에서는 g, d, b, j로, 말 끝받침에서는 k, t, p, t로 적고 있습니다. 곧 무성음이냐, 유성음이냐에 따라 k, t, p와 g, d, b로 적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て무성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표기법이므로, 개정 시안에서는 현행 'k, t, p, ch'를 'g, d, b, j'로 바꾼 것입니다. 곧 'ᄀ, ᄃ, ᄇ, ᄌ'은 그 자리가 어디이든 간에 모두 'g, d, b, j'로 표기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ᄏ, ᄐ ᄈ, ᄍ'를 'k', t', p', ch''로 표기하는 현행 표기법을 고쳐서, 모두 어깻점을 뺀 'k, t, p, ch'로 표기하는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는 모음에서의 반달표와 함께 자음의 어깻점도 없애어 로마자 표기법에서 특수 부호를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는 원칙에 맞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ᄀ, ᄃ, ᄇ, ᄌ'가 'k, t, p, ch'에서 'g, d, b, j'로 바뀜에 따라, 된소리 'ᄁ, ᄄ, ᄈ, ᄍ'도 현행 'kk, tt, pp, tch'에서 'gg, dd, bb, jj'로 바꾸었습니다.
(3) 한글과 로마자 사이의 자동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였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표음주의를 따르고 있으므로, 한번 로마자로 옮겨진 우리말을 다시 한글로 옮겨 적는 일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속리산'을 현행 표기법대로 적으면 'Songnisan'이 되는데, 이를 다시 한글로 옮기면 *'송니산'이 됩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 시안은 전자법을 취했기 때문에 '속리산→Soglisan→속리산'처럼 한글과 로마자가 서로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국어와 외국어는 서로 음운 체계가 판연히 다르므로, 어떠한 표기법을 만든다 해도 국어의 로마자 표기만 보고 외국인으로 하여금 완벽한 우리말 발음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이 외국인의 발음을 중시하여 표음주의를 택하고는 있지만, 국어 발음을 잘 나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어의 철자를 복원할 수 있도록 표기법을 만들어 우리 국민들이 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번 개정 시안의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개정 시안은 한글을 로마자로 옮겨 적는다는 정신으로 일관한 것입니다. 문화체육부에서는 이 개정 시안을 좀더 다듬고 보완하여 올해 안으로 최종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제정, 공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