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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인간, 태초의 꼴찌!>의 줄거리: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의 창조가 모든 피조물 중 제일 마지막에 일어납니다. 아! 그래서 인간이 태초의 꼴찌인가요? 그러나 비록 창조 된 순서는 꼴찌 이지만 탁월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기에 만물 중에 으뜸이고, 그래서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신 것인가요? 본문 말씀에 대한 오해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문화적 위임'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정복과 다스림은 문화창달의 위임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방식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인간, 태초의 꼴찌!
(창1:26~31)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인간, 태초의 꼴찌!>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과정 중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피조물들 중의 꼴찌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는데, 만물의 꼴찌라고 하는 말은 뭔가 좀 어색합니다.
영장이라는 것은 영적인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으뜸이라는 뜻의 영장이라는 단어에만 익숙해있지, 만물의 꼴찌라는 단어에는 낯설기가 그지없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왜 꼴찌라고 했는가?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창조 활동이 다 끝나가는 제일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꼴찌라고 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태초의 꼴찌, 창조 되어진 모든 만물들 중의 꼴찌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꼴찌라는 말입니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기가 좀 어색한 부분들이 경험적으로 많이 발견되지 않습니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이유는 만물인 동물, 식물과는 다른 속성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판단력이 있고 사고력이 있습니다. 대단하지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힘도 있고, 거기에 도덕적 양심과 책임감이 주어져 있고, 이런 모든 것들이 지정의(知情意)의 통합체로 포함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정의에 바탕을 둔 인간의 능력이 소위 말해서 문화 창달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장이라고 말하기가 어색한 이유는 어떤 동식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지독하고 악취가 나고 부패하고 악한 그러한 모든 항목과 덕목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 살인도 존속 살인, 나 자신이나 배우자의 직계 가족을 죽이는 겁니다.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입니다. 그러니까 아동학대, 근친상간, 인권유린, 인신매매, 동족살해, 환경파괴, 사기, 거짓, 강도, 강간, 절도, 시기, 증오, 극한의 이기심, 게으름, 뻔뻔함, 사치, 방탕 등 헤아릴 수가 없죠. 이런 차원에서 인간이 꼴찌라는 이야기가 성립되는가? 그것만은 아닙니다.
이러한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 배제될 수는 없지만 이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 주제를 섞어가면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28절에 너무 유명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십니다.
‘충만 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이 말은 이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존재하니 현실적으로도 이루어졌어요. 충만해졌지요.
중요한 단어는 정복과 다스림입니다.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위임이 인간을 만물 중의 으뜸의 자리로 치켜세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을 문화적 위임(cultural mandate)이라는 신학적 용어로 표현을 합니다.
문화적 위임이란 쉽게 말해서 문화 창달의 위임입니다.
이 문화 창달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인간의 속성으로 허락해주셨다는 겁니다.
판단력과 사고력과 도덕적 양심과 책임감과 창의력과 언어의 능력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심지어는 직립보행 이런 모든 속성들이 문화 창달에 필요한 기본 요건으로 주어져 있으면서, 문화 창달을 위해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하느냐?
자발적으로 위임을 받아서 가정을 꾸미고, 사회를 꾸미고, 제도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정치, 교육, 예술 다 방면에 걸친 문화를 창달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바로 다스림과 정복이라고 이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지배적인 것이라서 제가 문화적 위임이라고 하는 말이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하면 아마도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문화적 위임이라는 말은 본문과 적절치 않고 매치되지 않는 단어이고 개념입니다.
그리고 또 요즘은 미국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라는 분이 “신사도 운동”에 정신적 지주가 되는 분 아닙니까? 그런 분은 또 통치 신학이라는 것을 본문에 근거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통 이제까지의 기독교, 개신교 교단에서는 문화 신학이라는 것을 이 구절에 근거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에는 오해 같아요.
왜 오해냐?
먼저 본문을 잘 보면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나왔잖아요.
여기서 땅을 정복하라는 이야기는 2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피조의 세계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피조의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 만들어져서 삶을 살아가는 영역이 바로 피조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이에요.
그런데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문화적 위임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방식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정복하고 다스리지 않으면 인간답게 존재할 수가 없는 그런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정복하고 다스림으로써만 인간답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해도 아직 선뜻 우리 마음에 분명하게 정리가 되지 않아요.
백합화하고 비교를 해봅니다.
백합화는 이미 땅을 정복하고 있는 상태예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백합화가 어떻게 땅을 정복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앞서 본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계시는 밖의 영역, 창조를 계획하시면서 생긴 밖의 영역의 설계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피조물들이 거하게 되는 영역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덮여 있는 깊음으로 설계되고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백합화가 한 송이 피었다는 것은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덮여있는 깊음이 정복된 상태입니다.
어떻게 정복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주체성이 그 백합화 안에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하심과 판단하심과 말씀하심과 행동하시는 그 하나님의 주체성만이 피조세계의 기본 바탕인 혼돈과 공허와 깊음을 극복하고 가라앉지 않을 수 있는데, 이미 백합화는 이 땅에 백합화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정복이라는 것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덮여있는 깊음을 정복했다는 거예요. 정복은 말 그대로 정복하는 것이고 발로 딛고 서 있는 것입니다.
혼돈을 발로 딛고 서 있고, 공허를 발로 딛고 서 있고, 흑암이 덮고 있는 깊음을 발로 딛고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백합화의 상태예요.
개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구상이 그대로 수용되어서 바로 그 개가 되었다는 거예요.
삼라만상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다 각자가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됨으로, 피조의 세계를 상징하는 이 땅의 바탕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덮여 있는 깊음이 정복되어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인간은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백합화는 정복할 필요가 없이 존재가 시작되면서 혼돈과 공허가 정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정복해야 된다는 이야기예요.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비로소 백합화가 처음부터 누리고 있는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겁니다.
백합화와 개는 생겨 날 때부터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됨으로 혼돈과 공허가 극복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정복하고 다스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되어서 인간답게 될 수 있습니다.
백합화가 백합화답고, 개가 개답고, 나무가 나무답고, 산이 산답고, 구름이 구름다울 수 있는 상태를, 인간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과정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꼴찌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내용적으로 살펴봅니다.
인간이 이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 머릿속에 분명한 개념으로 들어와야 됩니다.
정복하는 것은 발로 딛고 서는 거예요.
그런데 뭘 정복하느냐?
혼돈과 공허를 정복해야만 됩니다. 혼돈과 공허를 정복하고 흑암에 덥힌 깊음을 정복해야 깊음에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그게 안 되어서 나타난 것이 앞에서 열거했던 것이에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살인, 거짓, 사기… 온갖 눈뜨고 볼 수 없는 더러운 상태가 다 출연합니다. 이게 바로 혼돈과 공허가 정복되지 않음으로 우리 삶을 덮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는 상태는 정복하고 있는 상태와 다스리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죄가 뭡니까? 그리고 죄가 아닌 것은 뭡니까?
하나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가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어떻게 됩니까?
혼돈을 내가 극복하려고 합니다. 내가 답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내가 열매를 찾으려고 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실제로 채워줄 수 있는 꺼리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러면서 나타난 것들이 살인, 거짓, 사기, 시기, 증오… 이런 모든 악함이 다 나타나는데 이건 사실은 그 자체가 죄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주체성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죄인데, 이 죄의 결과로 피조세계의 바탕이 되는 혼돈과 공허와 깊음이 우리를 덮어버린 것이지,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거예요.
정복이 바로 이거예요.
그러니까 문화적 위임이 아니라 존재 방식입니다.
정복하라는 겁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정복된 상태로서 이 땅에 존재하지만 인간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체성을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혼돈과 공허가 정복되어야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을 한 번 돌아보시면 정복을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몇 년 됐어요. 조희팔이라는 사람이 단군 이래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으로 등장합니다.
8조원을 사기 쳐서 들통 나게 되자 중국으로 건너가서 죽음을 가장해서 장례식 비디오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뿌렸습니다. 이제 ‘죽었다. 끝났다.’라고 그런데 안 죽었어요. 조사를 가만히 해보니까 비디오도 가짜고 다 연극으로 한 겁니다. 끝내 못 잡았어요.
그 당시의 정권이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었을 거예요.
조희팔이라는 사람이 뭐라고 했느냐? “이 정권은 절대로 나를 잡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8조원을 사기 치는 동안에 그 사기를 수사해야 될 사람들과 그 윗사람들에게 8조 원 중에서 2조만 떼어내도 꼼짝 못할 정도로 다 뇌물을 먹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희팔이라는 그 사람이 이 정권은 절대로 나를 손대지 못한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이게 뭡니까? 이게 바로 혼돈과 공허가 덮쳐버린 겁니다.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고, 정권을 잡겠다고 하고, 정권을 잡으려고 하니 돈이 필요하고, 이렇게 사는 상황에서 혼돈과 공허가 이 나라를 덮쳐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은 정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모든 동식물이 하나님의 주체성인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받아들여서 존재하고 있어요. 하늘과 땅과 구름과 나무와 모든 것이…
그런데 인간만이 하나님의 주체성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하나님이 본래 생각하는 인간다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꼴찌의 상태에 있는 겁니다. 그 꼴찌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모든 일들이 그런 악한 일들이라는 거예요.
다스림이라는 것이 뭐예요?
저는 이 성경을 해석하는 분들이 다스림이라는 단어를 다스림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가요.
바로 다음 장에 가면 선악과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악을 판단하게 되는 나무라는 거예요.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선악을 판단하지 않고 다스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의도로 선악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면서 선악판단의 능력은 주시고, 선악판단은 못하게 하시면서 다스리라고 하시는 모순의 모순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까?
판단은 필요합니다.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판단해서는 안 되는데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무슨 이야기겠어요?
판단하지 않음으로 내가 갖고 있는 판단의 능력은 어디에 쓰느냐?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는데 씁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는데 쓰면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서 내 사지백체가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누가 움직이는 겁니까?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뜻이 받아들여져서 그 판단과 그 뜻을 따라 움직이게 되니까, 내 사지백체가 움직이고 내가 사물을 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화 위임이라고 생각해서 이제부터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능력들을 주셨으므로 이러한 속성과 달란트를 가지고 문화를 창달해나가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하는 것은 난센스이고 성경에 없는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정의와 경제 분배의 공평을 이루자’라고 하는 것이 난센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태초에 천지창조가 일어났을 때처럼 지금 태초를 재연시키라는 겁니다.
천지 안에 사람이 존재하고 있으니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그 하나님의 활동이 우리를 통해서 계속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너희는 백합화 수준, 개의 수준, 나무 수준, 강 수준으로 그것들이 존재하는 존재의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고, 인간답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백합화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백합화를 지배하고 관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백합화가 머물고 있는 수준에 올라가기 위해서 혼돈과 공허를 극복하라는 이야기고 정복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백합화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백합화에 대한 나의 행동과 말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정복과 다스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물보다 위에 있는 탁월한 존재로써 그것들을 다스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답게 되려면 정복해야만 되고 그래야 만물의 수준으로 올라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이 받아들여져서 존재할 수 있는 만물의 수준, 모든 만물들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인간만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러므로 정복해야 합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덮인 깊음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복하고 나서 하늘에 있는 만물, 바다에 있는 만물, 땅에 있는 만물을 대할 때에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 너의 판단을 죽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활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다스림이라고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선악과가 있으니 판단하지 말고 다스리려면, 다른 존재의 판단이 들어와야 다스려질 것 아닙니까?
누구의 판단을 받아들이겠어요? 하나님의 판단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판단대로 움직였으면 누가 다스리는 겁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그 말의 의미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내일 안식과 함께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
여러분! 가정에 계시죠.
그러면 가정에서 내가 뭘 해야 합니까?
혼돈과 공허를 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가시면 화분에 꽃이 있죠? 그 꽃에서는 이미 정복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제 나만 정복하면 돼요.
회사에서 수위 자리면 수위 자리에서, 사장 자리면 사장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주체성이 받아들여집니까?
내 주체성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받아들여집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자기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였는데 그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이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나의 주체성이 죽지 않습니다. 나의 주체성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주체성이 들어오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이 나를 통해 표현되지 못하면, 억제되어 있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이 나를 덮쳐버립니다.
그 증거가 뭡니까? 답이 없는 거예요.
내가 지금 뭘 해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왜 이런 답을 알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인지? 내가 자식을 길러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내 자식에게 뭐라고 말해야 자식이 제대로 되는 것인지?
혼돈과 공허입니다.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다스림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복하라, 다스리라’
이것은 우리의 활동을 통해 문화를 창달하라는 문화 위임이 아니라, 정복하고 다스림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모든 만물이 도달하고 있는 그 상태에 도달해서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다는 존재 방식을 선언한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내 주체성이 죽고 하나님의 주체성이 받아들여짐으로 정복하고 다스림이 일어나 비로소 백합화가 백합화다운 것처럼 인간다운 상태에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고, 그러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끊임없는 통치와 하나님의 끊임없는 창조의 활동이 일어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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