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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
― 이정화 수필집 『점등인이 켜는 별』
정리: 이응인(시인)
― 일시: 2024. 8. 24.(토) 오후 3~5시 ― 장소: 가포 바닷가 ‘우주슈퍼’에서 ― 진행: 이응인, 김지영 <1부> 초대 작가 이야기 마당 ▪ 작가 소개 ▪ 수필 「점등인이 켜는 별」 낭독 ▪ 초대 작가 이야기 ▪ 대담 ▪ 수필 「산골 변사의 시네마」 낭독 ▪ 참가자 질문 <2부> 자유로운 문학 수다 ―참가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하고 싶은 말 나누는 시간 |
[진행] 반갑습니다!
〈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 진행을 맡은 이응인입니다.
함께 진행을 할 김지영 시인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눈에 띄지 않는 스텝 역할은 저 뒤에 계신 노민영 시인이 맡고 있습니다.
〈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를 한 마디로 소개하면,
‘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담(冊談)입니다.
이곳, 가포 바닷가 갯내 가득한 숲 ‘우주슈퍼’에 작가를 초대하여,
작가의 이야기도 듣고, 궁금한 것도 묻고, 낭독의 즐거움도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만남은 1, 2부로 펼쳐집니다.
1부는 이정화 작가와 함께하는 ‘초대 작가 이야기 마당’입니다.
2부는 참가자 모두가 한 마디씩 하는 ‘자유로운 문학 수다’의 자리입니다.
[작가 소개]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주인공은 수필집 『점등인이 켜는 별』(23.12.)을 발간한 이정화 수필가입니다. 이정화 수필가를 소개합니다. 이정화 수필가는 ‘2018년 토지문학제 평사리 수필 대상’으로 등단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전부터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좀 있다 ‘초대 작가 이야기’ 시간에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수필 낭독]
먼저 수필 한 편을 낭독하겠습니다. 오늘 참석하시는 분들께 『점등인이 켜는 별』을 미리 읽고 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요, 이 작품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작품 「점등인이 켜는 별」을 김지영 시인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전문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일부가 생략되었으니 그리 아시길 바랍니다.
[초대 작가 이야기]
김지영 시인께서 이정화 작가의 수필 「점등인이 켜는 별」을 낭독해 드렸습니다. 김지영 시인의 목소리로 듣게 되니 눈으로 읽을 때와는 다르게 와 닿습니다. 이제 ‘초대 작가 이야기’를 듣는 순서입니다. 이정화 작가께서 수필집 『점등인이 켜는 별』과 관련해서 작품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등등 자유롭게 풀어 주시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정화 수필가
[이정화]
오면서 남편한테 대여섯 분 정도 오실 거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실 줄 몰랐어요. 우황청심원을 먹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점등인이 켜는 별』이 첫 작품집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서울에서 살다가 부천에서 살다가 또 천안으로 내려와 살다가 지금은 창녕에서 살고 있어요. 저는 아들이 귀한 집에 둘째 딸로 태어나서 태어날 때부터 반골 성향을 타고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살면서 시의적절한 상황에 늘 제가 느끼는 불만을 표현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았어요.
여러분들은 살면서 자신을 어떤 식으로 가꾸어 나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결혼을 하고 나니까 여성 문제에 대해서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성학 공부도 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나라 교육이 굉장히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교육운동을 했고,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한 이십 년 좀 넘게 했어요.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운동이라는 게 굉장히 포괄적이에요.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운동인데, 농민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고 소비자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사회 제반 문제나 환경에 대한 민감성을 느낄 때마다 저희 조합원들이 쫓아나가는 거죠. 그래서 저 파주 문산까지 인간띠 잇기 통일운동도 해 봤고, 노동운동 빼고는 아마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점등인이 켜는 별』에 나오는 얘기들 중에서는 물론 안심마을이라는 제가 살고 있는 마을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시면 작가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거예요. 제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사회 운동을 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산골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바쁘다가 너무 많은 시간이 생겼고 심심해서 못견딜 정도가 되어 보니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을 쓰면서 제가 드디어 맞이하게 된 운동이 ‘나와의 운동, 나와의 투쟁, 아니면 나를 알아가는 과정’, 그런 거였어요. 그래서 십여 년을 나를 알기 위해서 하는 공부 가운데 가장 지름길인 불교철학을 공부했어요. 불교 공부를 하면서 어느 순간 나를 찾았죠. 이 대목에서 ‘나는 나를 찾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니가 뭔데?’ 하면서 사람들이 웃거든요. 그러면 제가 아주 시건방지게 해답을 주죠. ‘나는 없다.’, ‘나는 공空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백 프로 삽질하는 나는」이라는 작품에서도 나왔듯이, 살면서 주어지는 과정 따라 움직이면서 결국은 나를 찾았는데 찾고 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더라. 동쪽에서 보는 나는 서쪽에 있는 사람일 거고, 서쪽에서 보는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사람일 거고, 우리 엄마가 보면 딸일 거고, 제 딸이 보면 엄마일 것이고, 나라는 상이 없는 거라는 걸 찾았어요.
그래서 이 책은 아마 제가 인생의 전반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각종 사회 체계에 부닥치면서 굉장히 다양한 경험들을 밑천으로 했으며 거기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필로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닌가. 아까 이응인 선생님께서 ‘어찌어찌 하다가 선생님 블로그를 찾았다. 그런데 블로그에 있는 글들은 대체로 술술 읽히고 쉽던데 이 책은 넘어가는 데 약간 어려움이 있다. 수필도 알고 보면 그런 어려운 부분이 있나 봐요.’라고 하셨는데, 아까 소개할 때도 『점등인이 켜는 별』을 ‘푸른사상사’에서 발간할 때, 수필집이라는 명칭이 없어서 산문집이라고 했는데, 엄격히 표현하자면 수필집이 맞습니다. 시와 소설은 장르로 인정해 주는데 수필은 장르로 인정하지 않나 봐요. 그래서 제가 마음속으로 경남작가회의 안에서도 언젠가 ‘수필 누구누구’ 이렇게 작품을 싣게 되는 날이 오겠지 하는 그런 기대감이 있어요. 수필도 하나의 문학 장르이고, 수필을 편안하게 읽기가 어렵다면 제가 아마 못 써서 그럴 겁니다. 글솜씨가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읽어도 술술 읽히는 글을 쓰겠죠. 술술 읽히지만,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심오한 철학이 느껴지도록 그렇게 썼을 겁니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이응인 선생님이 봤던 재미있는 글들은 제가 5분이나 10분만에 쓴 글입니다. 제가 글솜씨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건 평면적 글쓰기이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인 글이라는 생각이 들고, 지금 『점등인이 켜는 별』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들은 복합구성이에요. 그 안에 하나의 주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유를 통해 철학적으로 의미화하고, 소재를 인생과 연결시키는 거죠. 평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쭉 하다 보면 그거는 독자들에게 굉장히 보편적인 공감대는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암 투병을 했다거나 굉장한 고생을 했던 얘기들을 쓰면 우리가 절절하게 동의하고 극복해 낸 것에 박수를 치면서 공감을 하잖아요. 그런데 수필집 한 권에 40편 내지 45편 정도 들어가는데, 그 고생했던 얘기, 아팠던 얘기가 40편 들어간다면 지루해서 못 읽어요. 아무리 감동을 느껴도 반복되는 이야기는 독자도 질리겠지요.
제가 수필을 처음 배울 때 제 문우 중 한 분이 작품집을 내서 제가 그 작품집을 여러 권 사 가지고 주변에 나누었는데, 저의 언니에게 읽고 나서 ‘어땠어?’ 하고 물었죠. ‘반쯤 읽다가 다 못 읽었어.’ 이래요. ‘왜?’ 그랬더니, 첨에는 너무 좋았는데 자꾸 읽다가 보니까 그분 고생한 얘기를 내가 왜 알아야 되지 하는 의문이 들었대요. 더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아 그만 읽었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수필집이란, 제목에서 그 내용이 뭔지 짐작할 수 없어 호기심을 주어야 해요. 제목에서 이미 그 내용이 뭔지 드러나 버리면 재미 없잖아요. 그리고 자기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내서 구구절절 쓰기보다는 그 주제나 소재를 이용할 때 자기 얘기를 문득 화소로 넣어 주는 정도가 알맞을 거 같아요. 반대로 자기 경험이 아예 들어가지 않으면 관념적인 글이 되기 쉽지요. 다양한 화소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작가적 역량을 다하는 거겠죠. 그게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제가 스승님한테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날까지 작품을 쓰고 있는데 중요한 거는 작품집을 내고 나니까 내기 전과 후가 또 달라지더라고요. 책을 내기 전에는 제가 제 글을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퇴고를 하는데, 사실은 제 글이 눈에 안 들어와요. 그래서 제가 한 이백 번 퇴고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자신만만하게 문우들에게 보여 주면 문우들이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거죠. 그래서 이게 도대체 남의 글은 나도 잘 보이는데 내 글은 어떻게 해야 나도 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작품집을 내기 위한 일 년 동안에 끊임없는 퇴고와 출판사와의 피드백을 하면서 몰입을 경험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제 글이 보이더라고. 저도 옛날에 천안에서 인문학 공동체를 만들어서 운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저희가 강사를 모실 때 책을 낸 작가만 불러서 강연을 열었더랬거든요. 그때는 왜 그런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을 해 보고 나니까, 책을 내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은 자기가 아무리 얘기해 봐도 남의 얘기밖에 될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한 작품집을 내고 나서 제가 얻은 어떤 희열감이라든가 자신감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내기 이전에 제 모습과는 참으로 다르구나 하는 그런 용기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진행]
이정화 작가에게 직접 듣는 ‘초대 작가 이야기’ 시간이었습니다. 『점등인이 켜는 별』을 읽으면서 가졌던 많은 궁금한 점들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약간 수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게 그 ‘구성’이었어요. 한 편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게 뭔가 복잡해.’ 이런 생각을 했는데, 좀 전에 ‘복합구성’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수필에 대해서 모르는 면이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저도 이 자리를 위해 『점등인이 켜는 별』을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정리를 하다가 왔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시를 쓰는 저로서는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또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보게 되고요.
[대담]
이어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주고받는 대담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점등인이 켜는 별』을 읽다 보면, 작가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고민을 많이 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단도직입의 짧은 문장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첫 문장은 신선하게 와 닿았습니다.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고 할까, 낯설게 만든다고 할까, 이게 뭐야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점등인이 켜는 별」의 마지막 문장은 ‘똑딱’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루어져 있어요. 작가 나름대로 한 편의 글에서 ‘시작’과 ‘끝’에 대한 고민을 한 것 같고요, 한편으로는 시작과 끝의 틀 갖은 걸 갖고 있는 듯한데요?
[이정화]
모든 작가들이 아마 첫 문장에 대한 고민은 있을 거라고 봐요. 저는 십여 년 전에 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시를 공부해 볼까’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아예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는 감히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은 얼추 공부하면 써 내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가장 쉬워 보이는 게 수필이었어요. 길이도 아주 적당하고, 남들이 쓴 걸 보면 대충 생활글 쓰듯이 하면 재미있는 글 쓸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필을 배워 보니까 수필도 수필이라는 장르적 장치가 있어야 독자의 시선을 끈다는 거를 배웠죠. 그리고 그나마 눈길을 잡기 위해서는 제목이 50프로 정도 중요해요. 사람들이 제목을 보고 이것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하겠죠. 제목을 찾아서 읽겠다라는 각오로 왔는데 첫 문장이 흐리멍텅했다 이러면은 손이 안 가겠죠. 그런데 첫 문장이 뭔가 강렬한 게 있다면 사람들이 저절로 읽게 될 겁니다. 그건 문학사에서 증명을 하고 있어요.
첫문장이 가장 유명한 글이 무엇인지 찾아봤어요. 『안나 까레리나』이더라고요.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이 대목이 가장 유명한 첫문장이랍니다. 그리고 『변신』의 첫문장도 유명합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잠에서 깼는데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었다.” 독자들이 그레고르 잠자는 사람 이름 같은데 어떻게 벌레로 변했지? 하는 의문을 가지겠죠.
저는 좀 반짝이는 재주가 없다 보니까 아마 시 같은 건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도움은 시를 통해서 많이 받습니다. 저는 항상 시집을 옆에 두고 영감을 얻으려고 하고 실제로 시를 읽으며 영감도 많이 얻고 음악에서도 많이 얻습니다. 초안을 써 놓고 보면 친구들에게 ‘임산부가 보면 애 떨어진다.’는 얘기를 해요. 그만큼 엉망인 글을 가지고 하나의 예술적인, 미학적인 문학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지난해요. 최소한 초안은 써놓고 나면 1~2년 동안은 계속 주물러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면 덮어 두었다가 숙성이 될 때까지 기다려요. 또 몇 개월 만에 다시 열어봐요. 그러면 또 그거에서 보이는 게 있죠.
그러면서 고쳐나가는데 첫 문장 같은 경우는 한 작품을 쓸 때 첫 문장을 가지고 아마 몇 달을 같이 살아요. 어느 상황에서부터 첫 문장 때문에 계속 고민하면서 살아요.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어느 순간 여기처럼 아름다운 바닷가를 거닐다가 문득 떠오른다거나 이렇게 연관성을 가지게 되죠. 그래서 첫 문장을 만들어 내요. 첫 문장도 단숨에 만들지는 않아요. 하나의 어떤 발상이 떠오르면 길이라든가 내용, 낱말을 굉장히 조합하고 다듬고 그러는데, 첫 문장에서 첫단락이 나오고 첫 단락이 정해지면 수미상관을 이뤄야 되니까 끝단락도 그에 맞춰가지고 다듬어 내죠.
수필을 문학 안에서 하나의 장르로 인정해 가는 과정이 왜 필요하냐 하면, 내가 수필이 문학 안에서 소외된 것처럼 계속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여기는 소설 쓰시는 분이나 시를 쓰시는 분이 많기 때문에 의도성을 가지고 말씀드리는데, 수필이 뭐냐고 다른 작가들한테 여쭈어 보면 다들 일반적으로도 우리가 옛날 학교에서 배웠듯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고 해요. 아직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고 대중들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 책임은 아마 수필로 이름이 가장 유명한 피천득 선생님이 책임을 지셔야 될 것 같고, 피천득 선생님의 가장 대표적인 수필 「인연」이라는 글을 읽으면, 첫사랑을 세 번 만난 얘기잖아요. 여고 시절에 그 대목을 배울 때는 아름답게 느꼈어요. 뭘 몰랐기 때문에. 지금은 수필적 장치를 이해하고 난 다음부터는 「인연」을 읽으면 화가 나죠.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고? 이 생각밖에 안 떠올라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되지요.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 해석이 되리라 보거든요. 그런데 독자에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그건 던져 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수필은 사물에 대한 해석이 남달라야 되고, 수필은 소설과 달리 새로운 상황을 창조해 내지는 않아요. 무슨 소재든 남들이 생각하는 걸 갖고 글을 쓰면 창조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아요. 해석이 참신하고 혁신적이어야 수필 문학의 창조성이라 할 만해요.
그런 어떤 수필적 장치 이런 부분에 대한 새로운, 이전의 ‘붓 가는 대로’의 수필이 아니라, 또다른 장르인 수필이 문학 안에서 형상화되어야 되지 않을까. 그 과도기적 상황에서 저 같은 수필가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은 이때까지 읽었던 수필과 제 수필은 약간은 좀 다르다, 뭔가 쉬울 것 같은데 어렵고, 어려울 것 같은데 의외로 쉽고, 어떤 독자는 대개 유머가 넘치더라는 표현을 했어요. 감사하죠. 의도를 가지고 웃기려 드는데 재미 없으면 안 되죠. 더 수위 높게 웃기려 했는데, 마지막 과정에서 많이 잘렸어요. 웃기려는 욕심은 문장을 헤칠 수 있어서 좀 참았습니다. 수필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전달하는 장이 되어서 굉장히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진행]
하나의 화제(제재)가 정해지면 그걸 어떻게 파고드는지 궁금해요? 영화나 여행, 독서 등 종횡무진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정화]
좋은 수필일수록 아주 작은 소재를 가지고 광대하게 확장시켜 내는 수필이 멋진 수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점등인이 켜는 별』 안에 「꼬박」이라는 작품은 도자기를 만들기 전에 물레 위에 하나의 흙덩이로 시작해서 나중에 아주 광대한 철학적 의미로 확장되잖아요. 그렇게 이어져 나가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시집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운전할 때 음악을 많이 들어요. 특히 자우림 음악을 들으면 영감이 많이 생겨요. 자우림 음악 중에서 ‘유리가면’을 들으면, 인간이 뭔지 근원을 생각하게 돼요. 거기 수록된 작품은 전부 다 좋아요. 그 작품을 들을 때는 제 어떤 고여 있는 마음 속의 물들이 막 치솟는 그런 느낌이 들고, 그래서 하나의 착상이 떠오르잖아요. 그러면 결국은 문학이 예술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남이 똑같이 하는 상투적인 얘기들을 백날 써 봤자 예술이 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의 소재를 놓고 계속 새롭게 발상해 내기 위해서 거꾸로 했다가 뒤집었다가 말도 거꾸로 만들어 봤다가 그렇게 해요. 그러고는 마인드맵을 해 가지고 관련된 낱말이나 정보를 검색하기도 해요.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더 매여 있잖아요. 직장인들이나 전문가들은 자기 영역 안에 깊이 있는 활동들을 평생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사회 제반 운동에 투신했던 결과로 굉장히 다양한 경험들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은 편이에요. 남편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 왔고 그래서, 경험 속에서 또는 독서나 여행 이런 것들이 큰 자산이 되지 않았나. 지난 10년을 우연한 기회에 저를 가르친 스승님을 만나서 수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평생 그런 공부는 처음이었어요. 수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글이 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단 하루, 반나절 오전 두 시간을 배우는데, 나머지 일주일을 하루에 8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서 글을 써요. 심지어 자면서도 글을 써요. 『점등인이 켜는 별』에 나오는 「글자를 품은 나무」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단숨에 썼어요. 그게 제가 배우면서 세 번째 쓴 글이에요. 스승님께 보여 드렸더니 탄식을 하시더라고요. 정말 잘 썼다고. 무엇에 미친다는 경험을 제가 처음으로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칠팔 년을 미쳐서 수필을 썼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진행] 『점등인이 켜는 별』을 읽어 가노라면, ‘말씀’을 ‘말’과 ‘씀’으로 풀어나가는 부분처럼 ‘어떤 낱말에 대한 탐구’ 같은 데도 관심이 있는 것 같고, ‘대상이나 개념을 나타낼 때 비교와 대조, 비유’를 통해 표현하는 부분도 독특하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글쓰기를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자신의 글이 가진 특징을 좀 소개한다면?
[이정화] 저는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인데, 책을 내는 한 일 년 동안에 정말 퇴고를 더 많이 했거든요. 근데 그때는 좀 더 책임감 있는 퇴고죠. 책으로 나가버리면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잖아요. 그때는 일일이 사전으로 모든 낱말들을 다 찾아봤어요. 핸디캡이 경상도 출신이다 보니까 우리가 쓰는 언어하고 표준말이 약간 차이가 나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바로잡아야 되었던 때가 있고, 그리고 낱말에 대한 관심이 원래 많았습니다. 글이란 경제성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한 작품 안에 많은 낱말들이 중복해서 나오는 거는 재미가 없거든요. 그래서 조금 가까이 있는 낱말조차도 비슷한 걸로 바꾸든지 하고 가능하면 배제시켜요.
‘웃음’이란 낱말을 다양한 언어로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말고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이 잘 없었어요. ‘웃음’ 말고는 흔히 ‘미소’를 많이 쓰죠. 이 ‘미소’라는 것은 일본말 한자말이잖아요. 우리말에서는 ‘웃음’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요. 아니면 모양을 형상화해 낸 ‘빙그레’ 라든가 아니면 소리로 ‘껄껄’이라든가, 이런 식으로. 그런 것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낱말을 찾아나가는 재미를 느꼈고, 작품을 내기 전에 가족들한테 보여 주면, 어렵고 생소한 낱말이 걸린다고 하죠. 자식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수용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낱말에 대해서 저처럼 관심 있어 하지는 않아요. 제 책을 읽는 분들은 모르면은 찾아보길 기대해요. 요즘 스마트폰만 열면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요.
누가 제 작품을 사 준다는 건 크게 생각 안 했어요. 그렇지만 이게 아카이브 기록의 측면으로 남는다면 후대의 어떤 사람들이 이거를 보면서 ‘아, 이때는 이런 낱말을 그래도 썼구나, 명맥이 끊어지는 낱말을 누군가가 이으려고 노력했구나’라는 거는 눈 밝은 사람이 찾아낼 거다. 그래서 ‘꼬박’이라는 낱말도 제가 찾아낸 거고 이 책에는 아직 수록되지 않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도 ‘국수’를 주제로 쓰고 있는데, 국수의 의미가 ‘움켜질 국’ 자에 ‘물 수’ 자이더라고요. 국수라는 낱말이 먹는 거하곤 직접 상관이 없어요. 잔치국수 씻을 때 움켜잡았다가 놓았다가 하잖아요. 먹는 국수를 씻는 과정을 은유해서 그걸 그냥 국수라는 낱말로 만든거죠. 문학의 근원은 낱말에 있는 거잖아요. 작가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낱말을 살려내고 보존하는 거에 의미 부여를 해야 되겠다 생각해요.
[진행] 말씀 듣다가 보니 갑자기 「웃는 문」이란 글이 생각이 나네요. ‘문지방은 아래로 휘어져 살포시 웃고 있는 모양 같다’는 표현, ‘세살문, 평대문, 문지방, 문얼굴, 문머리’ 등의 낱말을 써서 그려내고 있는 걸 보면 전통 건축을 전공한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참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됩니다.
[이정화] 2021년에 청송객주문학상을 받았어요. 이 상을 받으면 팸투어로 송소고택을 들르거든요. 「웃는 문」은 청송 송소고택에 갔을 때인데, 고택의 문지방이 이렇게 많이 휘어져 있잖아요. 그걸 보고 착상해서 쓴 글입니다. 제가 수상한 이후로 청송객주문학상을 받은 이들은 송소고택에 가면 ‘어이구 웃는 문 여기 있네.’ 하고 수필 쓰는 분들에게 회자되고 있답니다. (…) 최소한 문학하는 사람들은 시류에 맞추는 의미도 중요하고, 자기만의 신념을 가진 분들이니 그 신념에 맞춰서 자기 고집대로 고어나 옛 문화 또는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진행] ‘대담’ 시간을 통해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놓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쯤에서 『점등인이 켜는 별』을 읽고 오신 분들은 다르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1부의 끝 순서로 수필 한 편 낭독을 해 드리고, 오늘 오신 분들 질문을 받고 하겠습니다.
[수필 낭독]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음미하면서, 수필을 한 편 더 낭독하겠습니다. 작품 「산골 변사의 시네마」를 김지영 시인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전문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일부가 생략되었으니 그리 아시길 바랍니다. (…) 김지영 시인의 목소리로 「산골 변사의 시네마」를 들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1부 순서를 마무리하고요, 10분간 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부는 참가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인사도 나누고, 하고 싶은 말도 풀어보는 ‘자유로운 문학 수다’의 자리입니다.
[2부] 자유로운 문학 수다
(…중략…)
오늘 자리를 함께한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으로 ‘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 그 첫 번째 순서, 이정화 작가의 『점등인이 켜는 별』과 함께한 시간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10월쯤에 두 번째 작가를 초대하여 여러분과 만날까 합니다. 안전운전 하시고, 멋진 나날들 보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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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담01)_저만치 우주슈퍼 휴게소
사진(책담02)-포스트
사진(책담03)-이정화 수필가
사진(책담04)-우주슈퍼 휴게소 겸 카페
사진(책담05)-책담을 나누는 장면
사진(책담06)-경남작가회의 회원들과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