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애 시인 등단 심사평 ◈
이현애 시인을 덕향문학 통권 제15호 시부문 신인상 후보로 천료 한다. 나는 가끔씩 부여의 궁남지에 간다. 때로 백마강이 허구의 사설을 강심에 품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자 강변 고수부지에 서서 탁류를 바라보며 시심을 키우곤 했다.
길에 우연히 들른 궁남지의 연꽃 갤러리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다소곳하지만 눈빛 맑은 여인네 한 분이 전시회를 주최하고 있었고 벽면에 전시되고 있었던 것은 문학작품도 아니고 예술성 높은 그림이거나 사진전이 아니라 개인적인 소장품들 같았다. 되돌아 나오려다 보니 200자 원고지에 일기처럼 쓰인 한 줄 혹은 한 연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원고지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연가(戀歌)라고 불러도 괜찮은 어느 할머니의 일기였다. 한글의 기초과정 정도 공부한 수준의 글들이었다. 오탈자, 틀린 맞춤법 등이 그 할머니의 순수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분이 바로 이현애 시인의 시어머니라고 했다. 친정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의 원고를 선별하여 래미네이팅하여 전시함으로 모두의 가슴에 앙금이 될 수 있는 감동의 히스토리를 연출한 것이다.
그 효심에 감동하여 한국효단체 총연합의 효행 대상자로 선정하여 수상한바 있다. 시간이 흐르고 2회 전시회에 초대가 되어 다시 연꽃 갤러리에 갔다. 장족의 발전을 보았고 그녀를 시인 반열에 서게 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문학은 절제된 감정의 정화를 통한 감성의 학문이고 시는 그 절정의 노래다. 사람마다 조금은 감정이 다르고 사는 방향에 대하여 생각이 다르다. 다만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없고 그런 이유로 하여 삶을 향한 구애가 애달프기도 하다.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보다 한 치 건너의 존재임에도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조각난 글귀를 짜 맞추어 가면서 한 땀 한 땀 엮어낸 시들이 수준급이고 시흥(詩興)은 도도하다. 이제 감히 신인상 후보로 그녀를 추천한다.
데스크에 올라온 최종 작품 중
1. 나의 시어머니는 일본의 100세 여류시인 시바타도요 여사를 생각나게 한다.
‘차케서 이쁘고 이뻐서 착한 며느리’ 자랑을 연필로 꾹꾹 눌러서 쓴 연서를 읽고 있노라면 가슴에 찡한 울림이 온다. 더하여 ‘나도 머지않아 시어머니가 되겠지’라는 깊은 탄식을 통하여 여자의 인생을 그리고 그 한계를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시작의 테크닉을 달관하지 않았어도 이현애 시인의 효심과 효행은 절찬받아 마땅하다.
2. 압사된 나뭇잎에서는 학생 시절 식물이거나 곤충을 채집하여 압화를 만들어 과제물로 제출하였던 기억을 되살려 내게 한다. 화지 위에 몸을 눕히는 고엽이거나 곤충의 절규를 시인은 시인다운 관조의 시각으로 정밀 분석한다. -중략-
마지막 연에서 ‘한때 여름 하늘에서 바람에 춤추던 시절이 그립다’를 통하여 윤회와 푸르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나직하게 읊조린다.
3. 연엽주를 빚으며
시 전편에 맴도는 궁남지의 연꽃과 백제의 혼과 백마강이 실루엣이 되어 시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술을 빚는 마음이 시심이고 무아의 경지를 꿈꾸는 것은 술꾼이고 달달한 기운으로 백마강에 배를 띄는 사공의 노래는 술 익는 소리가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알고 보니 시인은 연잎주라는 명주를 빚어내는 장인이기도 하였다.
4. 비가(悲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만남과 이별의 윤회는 환희와 슬픔의 교향곡이다. 대중가요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내가 너를 작별하는 순간
기억의 배는 항해를 멈춘다 라는 시구는 전율의 극치다
사랑아!
너의 기억만으로 살 수 있게 해 다오
눈물은 기다림의 강이 되어 멈추지 않으리라
사랑아!
너의 그림자만으로도 살 수 있게 해 다오
아픔보다는 기다림으로 살 수 있게
이상은 기다림의 미학을 시답게 표현해 주었다. 다가가지 못하는 슬픔보다 기다림이 좀 나을지도 모르지만 둘 다 아픔이고 슬픔이다. 작품 "비가"는 작별할 수 없는 송가다.
5. 이유 있는 저항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하여
품위를 앗아간 삶의 들녘에서
또 하나의 허탈을 배운다
크레용으로 색칠한 도화지 위에 눈물을 떨군다
하얀 화지의 순수
중천에 떠있는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야한 밤하늘의 수퍼문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눈물의 의미를 모르는 철모르는 세상
그 이유로 하여
거울 속의 여인은 목주름에 설움이 얼룩져 있다.
되돌아올 수 없는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
운명이라는 식상한 표현이
서럽기만 하다
앞치마에 얼룩진
중년 여인네의 한
아궁이 앞에 앉아 군불을 지피든 어머니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앞치마로 눈물을 훔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누가 사랑을 모르랴
포기하는 아련한 아픔이
나를 저항하게 한다
이상 전편에 흐르는 저항의 요소는 한과 사랑이다. 이미 세월은 저만치 앞서가고 태양은 뉘엿뉘엿 석양이 되어가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가 모두 저항 요소이다. 어머니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 나이가 중년이라고 할 때 시인은 이미 중년을 준비하고 있나 보다.
이상 5편의 시를 신인상 대상으로 천료를 마치면서 한 여인의 삶의 도정이 시가 되어 나타났음을 감지하게 된다. 서정시인으로 시작의 기승전결을 알고 객관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 정진을 빈다. 술 빚는 여인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정갈한 손으로 연잎을 만지는 여류 시인 시답게 사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구부, 김인희, 신상성 최기복(記), 최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