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분별(分辨)
고린도전서 11:29 또 12:10
로마서 12:2 또 14:22
상동교회
人之立世分辨必要, 若無分辨則不可以立世, 必顚乃已也. 盖人幼則不辨, 且無知則不辨, 故主曰使犯罪者寧懸石沈海云. 此示見欺之戒也. 且保護幼兒之戒也. 此世魚目渾珠, 明珠乎魚目乎, 人不能辨, 淪胥以亡, 或指鹿爲馬, 指馬爲鹿, 誰知烏之雌雄乎? 人在五里霧中而亡羊不知矣. 故往古來今, 有辨別力者爲偉人或聖人也. 豈不着眼視之乎? 然則所辨者何也? 卽罪義也. 吾所罪義者, 非世人之罪義也. 不信者以爲罪義者, 及信者之以爲罪義者不同, 故主曰吾來世非爲義人也, 爲罪人而來云. 故信者之兄妹皆罪人, 而爲偉人者也. 勿言我義, 勿言我潔, 皆由主血而赦免故也. 故人言我無罪, 實有罪矣. 요한九章末, 主曰不信爲罪, 罪之結果或歸之父母, 此猶人之思想也. 惟保惠師審罪義也. 次辨物神兩界爲截然可也. 猶人以爲活我者果何也? 神乎物乎? 現在非バン不能活, 故指バン爲神, 心靈昏黑不辨, 故主曰汝積寶于天, 此不盜不蠹處也. 目爲汝身之燈, 目明則全身明矣云. 主亦財寶重故如是言之, 又重寡婦之分而指稱, 古之先知발남亦被試, 亞當亦被試, 然貧則爲偶, 聖書卽斥예서者, 以其食欲也. 飮食之人卽人賤之, 物爲神造, 造與人者, 人有信則用之, 無信則不能用也. 保羅曰天國不在飮食, 롬十四章十七. 近日拜金思想, 幾乎馳全世, 指敎會爲阿片, 甚矣不辨之也! 其次辨神偶也. 今日靑年思想惑之甚矣, 隣家有巫覡之戱, 使人終夜不能寐者, 指以爲當然, 至如耶蘇敎會排斥無餘地, 此何故也? 巫覡文明之事也, 敎會反指爲昧暗, 何矛盾之甚也? 無論何國所崇之神爲偶, 則國民之思想腐敗也. 獨逸以畏神爲標語, 丁抹亦然而至多神之國, 如印度中國等果如何也?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는 분별이 필요한데 만일 분별력이 없으면 세상에서 설 수 없고 반드시 넘어지게 합니다. 사람은 어릴 때 분별력이 없습니다. 또한 무지(無知)하면 분별을 못합니다. 그리하여 ‘죄를 지으면 차라리 돌을 매달아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훈계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물고기 눈과 진주가 혼동되어 이것이 진주인지 물고기의 눈인지를 사람들이 분간하지 못하여 서로 망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사슴을 보고 말이라 하고, 말을 보고 사슴이라고 하니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오리무중의 널리 퍼진 안개 속에서 양을 잃고 찾아갈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랜 옛날에서부터 지금까지 변별력이 있는 자는 위인이고 혹은 성인입니다. 이 어찌 눈여겨 보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런즉 분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죄와 의(義)입니다.
내가 여기서 죄와 의라고 한 것은 세상 사람의 죄와 의가 아닙니다. 신앙을 안 가진 자의 죄와 의라고 하는 것과 신자의 죄와 의라고 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의인(義人)을 위하여서가 아니고, 죄인을 위하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형이나 누이들은 다 죄인으로 위인(偉人)이 된 자들입니다. ‘나는 의롭다’고 말하지 말고, ‘나는 깨끗하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 모두 주의 피로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는 죄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로 죄가 있는 것입니다(요한복음 9:끝). 주께서 ‘믿음 없음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죄 지은 결과를 혹 부모에게 돌리는 것은 유대인의 사상입니다. 오직 보혜사만이 죄와 의를 심판하십니다.
다음은 물신(物神) 두 세계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옳습니다.
유대인은 말하기를 ‘나를 살려줄 자가 과연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물질인가?’라고 하였습니다. 현재는 빵이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빵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심령이 어둠 속에서 분별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거기는 도둑이 침범하지 못하고, 좀 벌레도 없는 곳이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니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아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옛 선지 발람이 또한 시험을 당하였고, 아담도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하면 우상을 위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에서를 배척한 것은 식욕 때문이었습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사람을 천하게 여깁니다. 사물은 하나님이 만드시어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그것을 쓰고, 믿음이 없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로마서 14:17). 요즈음 돈을 중시하는 배금사상이 거의 전 세계에 퍼져서 교회를 아편이라고 지칭하니 심하기도 하구나, 분별하지 못함이여!
그 다음은 하나님과 우상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사상에 미혹된 것이 심합니다. 이웃집에 무당의굿판이 벌어져 밤새도록 잠을 못 자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예수교의 교회를 여지없이 배척합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무당은 문명의 일이고, 교회는 도리어 우매한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모순이 심한 것입니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우상을 숭배한다면 국민의 사상은 부패합니다. 독일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표어를 삼았고, 덴마크도 역시 그러한데, 다신국[多神國]으로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들에 이르러서는 과연 어떠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