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신자의 모범
마태복음 5:13-16. 고린도전서 12:27
백명철(白明哲) 씨
10월 14일 (주일오전)
吾等何以爲模範也? 初則言語, 言不愼則不可爲範, 言柔則可爲範矣. 南容三復白圭曰,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不可爲也. 故吾等之言, 尙務無瑕. 宣川有桂氏, 有人問개골之路, 桂氏答曰, 개꼬리를 指言, 言甚不快, 路人言諸不已, 至招巡査而決定云, 故言不可不愼也. 言悖則不能自己得救, 況救他人乎? 其次篤行, 行不可不篤. 平壤李德煥氏, 令胤悖行不已, 其父患之, 其後悔改, 工夫甚篤, 人皆稱之. 行爲一誤, 則不可爲人之光, 人之看吾甚明. 古有言, 有篤行則可復活, 古有人讀書, 隣有女子乘夜至焉. 此男子後貴爲上卿, 受陷而死. 此女人之子, 其時執法, 宣言死刑, 此女人乃入法庭, 乃言其無罪, 由此觀之, 篤行可復活. 其次心潔可爲光. 可引證尹誰之事, 鵝玉之事. 由此觀之, 心潔則可受福. 主曰 心貧者受福, 天國爲其物也. 主亦洗弟子之足, 坐主之右便矣 其次做事謹愼可爲光. 曾子聖人, 亦日三省吾身, 自古賢人, 皆謹事而行, 吾人做事, 當盡職而已也. 吾人當三思尤好矣. 常債事易爲驚忽失敗. 主嘗於犯淫之女判之, 主俯首書地, 更曰 爾無罪者石擊云, 如此則可爲當也. 吾人勿讓可也. 古秦過趙伐楚, 趙楚同盟, 欲擇當任者, 毛遂自薦, 平原不許, 乃後與十九人, 俱往楚結約而歸.
우리들이 어떻게 하여야 모범이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언어입니다.
말이 신중하지 않으면 모범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말이 부드러우면 가히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논어>에 남용(南容)이 <시경>에 나오는 백규시(白圭詩)를 세 번 반복해 읊었는데 그 시의 내용은‘ 아름다운 옥의 티는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내가 한 말의 흠집은 어떻게 할 수가 없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말은 흠집이 없도록 힘써야 합니다.
평안북도 선천고을에 계씨(桂氏)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개골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개구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을 하자, 묻던 사람이 매우 불쾌하게 여기어 언쟁이 끊이지 않자 마침내 순사(巡査)를 불러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은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말이 이치에 어긋나면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타인을 구제하겠습니까?
그 다음은 독실한 행실(篤行)입니다.
행동을 독실하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평양의 이덕환(李德煥) 씨의 맏아들이 패악한 행동을 끊임없이 하니 그 아버지가 걱정하였는데 그 뒤에 회개하고 공부를 독실하게 하여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습니다. 행동을 한 번 그르치게 되면 빛을 발할 수 없으나 사람들은 그를 매우 분명히 바라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독행(篤行)하면 다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독서를 하는데 이웃집 여자가 밤에 몰래 들어와 만났습니다. 이 남자는 뒷날 귀하게 되어 장관벼슬[상경上卿]을 하다가 무함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의 아들이 법관이 되어 사형을 선언하였는데 이 때 그 여인이 법정에 나와 그가 무죄함을 입증해 주어서 풀려났습니다. 이로써 볼 것 같으면 독실한 행동은 다시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마음을 깨끗하면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윤수(尹誰)(?) 사건이나 아옥(鵝玉)(?)의 사건에서 증거로 인용할 수가 있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마음이 깨끗하면 복을 받습니다. 주님이 이르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을 받느니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도 역시 제자의 발을 씻겨주고 주님의 오른편에 앉게 했습니다.
그 다음은 일을 만드는 데 조심하고 삼가야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성인(聖人)인데도 역시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어진 사람[현인賢人]들은 다 일을 삼가 행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만드는데 마땅히 직분을 다할 뿐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세 번 생각하는 것이 더욱 옳습니다.
남을 나무라는 일은 쉽지만 놀랍게도 갑자기 실패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간음을 범한 여자를 판결하실 때, 머리를 굽히고 땅에 글씨를 쓴 뒤에 이르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즉 가히 합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양보하지 않으려 합니다. 옛날 전국시대에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지나 초(楚)나라를 치러 가려고 하자 조초(趙楚)가 동맹을 하기 위하여 적임자를 고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모수(毛遂)가 스스로 적임자라고 자천(自薦)하였으나 인솔자인 평원군(平原君)이 허락지 않았다가 결국 데려가서 모수의 힘으로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