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농촌의 생활비
농촌에 살면 생활비가 적게 든다. 그러나 꼼꼼히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고 어떤 항목은 도시보다 비싸다.
농촌이 도시보다 적게 드는 대표적 생활비는 주거비일 것이다. 농촌의 집값, 집세가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의 싼 집에 사는 것은 한국에서는 경제적으로 큰 위험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등 도시의의 집값이 농촌의 집값보다 훨씬 빨리 올랐다.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농촌지역에 사는 사람의 보유 자산 가치는 상대적으로 쪼그라든다. 농촌 사람은 앞으로 서울에서 살기 어렵고 자식들도 집값, 집세 때문에 서울 살이가 고달플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인가에 지금 빚내서 집 사면 패가망신할 것이다 했는데 현실은 반대로 됐다. 빚내서 집 산 사람은 대박을 쳤고, 집 살 돈을 저축해 온 사람은 앞으로 서울 등에서 집 사기가 어렵게 되었다. 농촌의 싼 주거비는 공짜가 아닌 셈이다. 더욱이 농촌 주택은 잘 팔리지 않는다. 급하게 현금이 필요할 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농촌에 살려면 도시 사람에 비해 금융자산을 더 보유하고 있어야만 큰 병이 나거나 가족을 도와줄 일이 있을 때 쉽게 대처할 수 있다.
둘째, 식료품비도 전반적으로 적게 들지만 이것도 여러 가지 비용과 노력을 부담한 결과이고 일부는 식료품값은 대도시보다 더 비싸다. 농촌에 살면 텃밭 등을 이용해 채소, 감자, 고구마, 과일 등을 상당부분 자체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농사지으려면 당연히 씨앗, 비료 등 농자재 비용이 들고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노동비용까지 생각하면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여기다 요즘은 고라니와 멧돼지, 새들이 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많아 아마추어 농부들은 헛고생하기도 한다. 물론 자체 재배한 농산물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자신의 땀이 들어갔고 무농약 등 농산물의 이력을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농촌지역 마트의 농산물 가격은 그 지역에서 생산해서 그 지역에서 바로 파는 로칼 푸드(local food) 상품을 제외하고는 농촌이 서울보다 싸지 않다. 다른 지역의 농산물은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등을 거쳐 지역으로 다시 오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 근처 5일장의 농산물은 가격이 들쭉날쭉하고, 싸 보이지도 않는다. 더욱이 5일장 농산물은 원산지에 대한 신뢰가 없어 불안하다. 5일장에 가면 여기 저기 장터를 돌아다니는 전문업자가 아닌 근처 농촌에서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파시는 것 같은 분을 찾아서 산다. 이런 분들을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이 분들도 자신이 재배한 것만 파는 것 같지도 않다. 어쨌든 5일장에 가면 소머리국밥도 한 그릇 사먹을 수 있고 한적한 농촌 마을과 달리 활기찬 시장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 좋다.
셋째, 교통・통신비는 농촌이 대도시보다 확실히 더 많이 든다. 농촌지역은 대중교통 수단이 아주 열악하다. 버스는 자주 안다니고 일찍 끊어진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기름값 부담이 크고 주유소의 기름값도 농촌지역이 더 비싸다. 택시비도 꽤 나간다. 대처에 나갔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곳에 밤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만 있으면 몰라도 외출을 하게 되면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교통비가 많이 든다. 더욱이 65세가 넘으면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는 지하철 무료승차제도가 있는데 농촌에는 지하철이 없으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농촌지역은 대리운전도 없다. 차 몰고 나갔다가 술을 먹게 되면 난감해진다. 농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술을 적게금 먹게 되어 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통신비 중 핸드폰 요금은 차이가 없고, 인터넷 CTV 등은 독점적 요인 때문에 농촌이 더 비싸다. 농촌지역의 인터넷은 실질적으로 특정 통신사에 의해 독점된 상태이다. 타 통신사는 서비스가 안 되는 지역이 많고 서비스가 된다 하더라도 인터넷 품질이 떨어진다. 결국 특정 통신사만 이용할 수밖에 없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인터넷 통신사를 선택하거나 변경할 때 또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고 장기 사용하면 요금할인이 많은데 농촌에서는 이러한 혜택이 적어 실제 부담하는 비용이 큰 것이다. 작지만 독과점의 폐해를 절실히 느낀다. 그리고 산 밑 농촌마을에서는 핸드폰의 경우 요금은 같지만 소리가 잘 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넷째, 외식문화비용은 농촌지역이 확실히 적게 든다. 이것은 가격이 싸서라기보다 기회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농촌이나 인근 소도시에는 품격있는 식당이나 질 높은 문화시설이 드물다. TV에서 하는 음식프로나 공연프로에 의존하는 것이 좋은 상황이다. 얼마 전 가족과 근처 시내에서 오래되고 가장 좋은 호텔(무궁화 다섯 개) 안에 있는 식당에 갔다. 메뉴가 몇 개 없어 토마토 스파게티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먼저 나왔는데 음식 장식으로 방울토마토 2개가 접시에 얹어 있었다. 종업원은 우리에게 토마토 스파게티를 시키신 분이 누구냐고 묻더니 그 앞에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접시를 놓는 것이었다. 인근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인데 토마토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구분 못하는 종업원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농촌에도 차타고 좀 나가면 맛 집은 꽤 있다. 소고기국밥, 밴뎅이 조림, 칼국수, 추어탕, 동태탕, 삼계탕, 오리주물럭, 묵밥 등을 잘하는 집이 있다. 가격은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서울보다 싸지 않았다. 임대료가 서울보다 많이 쌀 텐테.... 이유를 물어보니 손님이 많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맞추기 어렵고 식자재 가격이 농촌이 싸지 않고 인건비는 최저임금이 동일해 서울과 같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농촌지역은 음식 배달이 쉽지 않아 어떻게 하든 집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외식비를 줄일 수 있는 요인이다.
다섯째, 공산품 등의 가격은 대도시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일반 가계의 공산품은 농촌이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고 가격이 좀 비싼 듯하다., 대형마트는 멀어 가기가 힘들다. 이런 점은 농촌의 공산품 가격을 비싸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쇼핑의 발달로 이런 영향이 많이 줄고 있다. 인터넷 쇼핑이나 모바일 쇼핑은 농촌이나 도시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촌지역도 택배가 아주 잘 들어온다. 사람이 없을 때도 현관 앞에 두고 가 아파트처럼 경비실 등으로 찾으러 갈 필요가 없다. 인터넷 쇼핑이 늘어나면서 도시의 판매상보다 유동 인구가 적은 농촌의 판매상들이 더 많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여섯째, 의료비는 사람마다 크게 갈리는 것 같다. 가벼운 질병의 경우나 만성 질병이 있는 사람은 농촌이 의료비가 적게 든다. 병의원이나 약국이 멀어 감기 몸살과 같은 가벼운 병은 병원에 적게 가게 되어 돈이 적게 든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은 근처 보건소를 이용하면 의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온 귀촌인은 보건소를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인근 도시에서 잘 알려진 전문의를 찾는다. 큰 병이 있는 사람은 서울이나 대도시의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교통비와 시간이 많이 든다. 가족의 간병이 필요한 경우 가족의 숙박과 식비 등도 부담이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귀촌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병원 다니기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는 농촌에 살려면 더 건강관리를 잘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난방비와 전기 수도요금 등 주거관련 비용은 난방 방식, 지하수 사용 여부 등에 따라 크게 다를 것 같다. 이 부분은 좀 더 농촌에 살아보면서 다시 글을 올릴 생각이다.
농촌에서 생활비가 적게 드는 것은 외형적일 뿐 간접적인 비용이 크거나 불편함을 감수한 결과이다. 그러나 농촌에 사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공기, 여름에 덜 더운 것, 조금 노력하면 이력을 알 수 있는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것, 주변에 푸른 것이 많아 마음이 안정되는 것, 생산적인 일을 하며 땀 흘린 기회가 많다는 것 등일 것이다.
지역 간 균형 발전을 하고, 소멸해 가는 지방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귀농・귀촌이 늘어나야 한다. 농촌에 사는 것은 불편하고 외로울 가능성이 크다. 농촌생활이 더 경제적이고 쾌적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농촌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것을 계속 추진해야 하고 여기에다 서울 등의 집값을 하향 안정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서울 등 대도시 집값이 무섭게 오르면 귀농・귀촌한 사람은 미래에 더 가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공감합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수도권 집중은 이제 개인의 비효율을 넘어서 공동체에게도 비효율적으로 보이네요. 개인 출퇴근 시간 증가와 지어도 부족한 교통망 건설비용이 대표적입니다.
네, 맞습니다. 농촌에 산다는 것 만도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농촌에 조금 살아보니 살만합니다.
농촌생활이 전원적이고 청빈하고 아름답기만 할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군요. 소장님 글 항상 쉽고 잘 와닿고 멋있어서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구기자, 과맙습니다. 바쁘더라도 가끔 들려 보세요..
문득 든 생각인데 소장님 이런 약간은 소프트한 에세이 모아서 책으로 내시면 안되나요? 도고통신을 책으로 해도 좋고. 제가 편집자라면 당장 전화할것 같은데요. 경제학적 시선이 곁들어진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글도 많이 보고싶습니다 ^^
구기자, 고마워요. 도고통신이 많이 모아지면 추진해 볼께요.
요즘 에세이 읽는 독자들이 많거든요. 컨셉과 기획만 잘 잡으면 소장님 전원생활을 통해 되게 좋은 서적이 나올 것 같아요. ^^ 기존에 쓰신 책들도 좋지만 말랑말랑하면서도 인사이트 있는 글 좋아하는 저 같은 독자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소도시, 농촌지역의 5일장에 가보면 원산지가 불분명한 농수산물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판매자가 고령, 노인일수록
원산지 및 원산지 표시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고, 또한 원산지를 속이는데에도 도덕적으로 매우 둔감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시골장에 가서 구경만 하고, 농수산물을 선듯 사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