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과 북발해(北渤海)의 전성(專盛)
발해(渤海)는 무용(武勇)에 우(優)하고 북방(北方)의 강의(强毅)한 성질(性質)이 있는 민족(民族)으로 무왕(武王) 같은 영주(英主)는 태조(太祖)의 업(業)을 이어 나라를 다스림에 사방(四方)이 다 두려워하되 홀로 흑수말갈(黑水靺鞨)이 당인(唐人)과 교통(交通)하여 변경(邊境)을 범(犯)함으로 장수 일하(壹夏)를 보내어 쳐 물리치고 왕(王)의 아우 문예(門藝)는 본국(本國)에 득죄(得罪)하고 당인(唐人)과 연결(聯結)하거늘 장수 장문휴(張文休)를 보내어 당(唐)(黨)의 등주(登州)를 쳐 빼앗고 자사위준명(刺史韋俊命)을 사로잡고 문왕(文王)은 무력(武力)을 쓰지 않고 당인(唐人)과 교호(交好)하며 신라(新羅)와 화친(和親)하고 일본(日本)에 사명(使命)을 보내며 북(北)으로 말갈(靺鞨) 돌궐(突厥) 계단(契丹) 등(等) 나라를 항복(降伏)받고 각종(各種) 서적(書籍)을 당(唐)으로부터 구입(購入)하여 백성(百姓)을 가르치고 유학생(留學生)을 지나(支那)에 파유(派遺) 하여 문화(文化)를 수입(輸入)하고 대흥(大興) 8년에 국도(國都)를 상경(上京)에 옮겼다가 48년에 또 동경(東京)으로 옮겨 국경(國境)이 넓고 문화(文化)가 멀리 미침에 이에 오경(五京) 15부(府) 62주(州)를 세우니 당인(唐人)이 와서 관제(官制)와 군제(軍制)를 모방하여가고 또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稱)하니라.
- 한글
발해는 무용에 뛰어나고 북방의 강인한 기질을 지닌 민족이었습니다. 무왕과 같은 영웅적인 지도자들은 태조의 업적을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렸고, 사방이 모두 발해를 두려워했습니다. 다만 흑수말갈족이 당나라와 교통하며 변경을 침범하자, 장수 일하를 보내 물리쳤습니다.
국왕의 아우 문예가 본국에서 죄를 지어 당나라와 연결되자, 장수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빼앗고 자사위준명을 사로잡았습니다. 문왕은 무력을 쓰지 않고 당나라와 교호하며, 신라와 화친하고 일본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북쪽으로는 말갈, 돌궐, 계단 등 나라들을 항복받았고, 당에서 각종 서적을 구입하여 백성을 가르치고 유학생을 파견하여 문화를 수입했습니다.
대흥 8년에 국도를 상경으로 옮겼다가 48년 후에 동경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국경이 넓어지고 문화가 크게 발달하여, 오경 15부 62주를 세웠습니다. 당나라 사람들이 와서 관제와 군제를 모방해갔고,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