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면화(綿花)
면화는 우리의 일상 입는 의복의 원료이다. 이 귀한 면화가 어느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가. 지금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에 있는 문익겸(文益慊) 선새의 사당이 있으니 곧 우리 의복감 면화를 가져온 선생이다. 면화는 근본 인도(印度)의 산물로서 차차 지라에 유입되어 강남등지에 재식되었고 지라 송(宋)의 말년과 원이 처음 일어날 때에 면화가 조선에 들어왔는데 그 들어 온 경력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익겸 선생이 서장관으로 원에 들어갔다가 돌아올 때 면화 씨 10여개를 가지고 왔다.
들으니 그 나라에서 면화씨 외국 수출을 절대 금함으로 선생이 붓두껑에다 10여개를 넣어 비밀히 가져왔다. 고향에 돌아와 선생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에게 주어 재배케 하였더니 재배하는 법을 몰라 공을 이루지 못하였다가 그 후에 호승(胡僧) 홍원(弘願)이 지나가다 면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되 오래 간만에 고향 볼 곳을 본다 하거늘 천이 집으로 영접하여 면화 재배하는 법을 자세히 물어 그 기구를 만들어 달라하여 휼륭한 성적을 얻었다. 그 후에 그 집으로부터 동리에 동리로부터 전국에 보급되어 지금까지 우리가 의복을 만들어 입게 되었다.
이 공로로 인하여 나라에서 문선생에게 벼슬을 주고 상도 주었다. 오늘 우리 몸에 의복을 걸치고 추위를 ㅁ변하게 됨이 다 면화의 공덕이고 동시에 문선생의 공덕이 가장 크도다. 그리하여 사당까지 지어 놓고 그를 제사한다. 지금도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는 면화 소산지라. 그 곳이 나서 전국이 입고도 오히려 남았는데 하고로 외국문건만 쓰고 본 국산을 쓰지 않으니 가석한 일이다. 면회는 열대식물인 고로 북선에서는 잘되지 않코 순전히 남조선 것을 쓰고 있다. 우리의 자작 자급할 물건이 곧 면화이다. 남선 우리 동포는 집집마다 재배하여 전국이 나누어 입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