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논문
동서로 문학이 창을 알고
민용태(고려대 명예교수. 스페인 왕립한림원 위원)
우물 안 개구리는 창이 있는 줄을 모른다. 우리 문학이 아직 우물 안에 있는 것은 창이 부족해서이다. 이제 “문학의 창”이 생긴 것은 우리 문학의 숨통을 트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동서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나 문예사조는 무작정 서양의 “문학비평사(History of Literary Criticism)를 모방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서양 중심적이었다. 구체적으로 문학 혹은 시를 이야기할 때 플라톤의 영감론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염두에 둔 것이었고, 공자의 시는 에 나오는 민요나 서정시를 생각하고 말한 것이었다. 당시 그리스에 사포(Sapho)와 같은 위대한 서정시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아리스토렐레스는 카타르시스를 말 하면서 희랍의 희극 비극의 효과를 모델로 삼고 한 이야기였던 것. 이렇게 서로 장르가 다른 시에 때한 이야기를 모든 문학에 상용하는 문학예술론으로 두루 뭉실 적용해온 것은 논리 상 모순이다.
서양의 문학론이 시나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수사법, 기법에 대한 설명이 많다면, 동양의 “시화”(詩話)는 대부분 공자로부터 시를 통한 인간 심성의 교육, 즉 “글로써 道를 가르치는”(文以載道) 내용이나 자연과 시에 대한 사설이 대부분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양 문학 이론을 중심으로 동양의 문학론을 보면, 이미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적 효과에 대한 이론 따위는 동양의 시교가 훨씬 다양하고 자상하다. 유교의 도덕론은 인간 감정과 심성의 교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아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공자는 “중용”적 인간을 가장 이상으로 삼는다. 그 “중”(中)의 설명은 “희로애락이 생기기 이전(喜怒哀樂 未發)”의 감정의 조화의 상태이다. 이런 감정은 문학에서, 즉 “시(詩)”에서 배울 수 있다.공자가 시경을 그의 도덕론의 성경으로 삼은 것도 시가 가다듬어진 감정과 뜻(詩言志)의 교과서이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시경의 첫 머리 노래를 보고 “즐거워도 음탕하지 않고 애처로우나 마음 상해하지 않는다(樂而不淫,哀而不傷)”이라고 감탄하며 군자의 사랑이 저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미 말했듯이 공자의 우리의 감정 중 도덕적 심성으로 이르는 느낌의 맥락을 가늠한다. 즉 사람을 오래 행복하게 하는 느낌의 파장은 뜨거운 것보다는 따스함(溫), 딱딱하거나 고지식한 것보다는 부드러움(柔), 겉치레보다는 돈돈함(頓), 얇은 정보다는 도타운(厚) 정이 오래 오래 행복할 수 있음을 시(詩經)가 가르치고 있다고 역설한다.
요즘 서양의 이성주의에서 나온 윤리나 도덕론보다는 훨씬 현대적인 설명이 공자의 생각이다. 요즘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도덕이란 “실천이성”(칸트)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야 오래 행복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서의 하나인 “에우데모니아(Eudaemonia)”, 번역하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가”를 강구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좋은 예는 바로 문학에서 구할 수 있다는 지론들이다.
플라톤의 영감론은 동양 무속과 그 아류의 예술의 신들림, 신바람에서 그와 비슷한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 식자 문학의 예술론으로 정착된 것들은 없다. 애초부터 신(神)과 하느님(天)에 대한 종교적 색체를 점차 벗고 태어난 유교 사상이었던 만큼 시가 뮤즈나 특정 예술신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다는 사고는 없다. 그런 좁은 견해보다는 문학이 우주의 도(道)와 합일된다는 사고가 노장으로부터 나온다. 장자는 시 쓰기의 입신(入神)의 경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너의 형태를 떨고 너의 총명을 토하고 사물 속에 있는 너를 잊으면 크게 영원한 자연의 기운에 합하게 되리라.
사물을 잊고, 하늘을 잊는 것을 일러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는 사람을 일러서 하늘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도가의 사상을 본따 동양에는 대단히 다양한, 우주와 자연의 기에 합일하거나 심취한 상태(신들린 상태와 비슷한)에서 좋은 예술이 탄생한다는 설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소위 “시도”(詩道)나 “풍류”(風流)가 선비의 도로서 기림 받았던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나중에 플라톤이 그의 “공확국론”에서 신들림의 상태를 미친 상태, 이성이 없는 상태로 보아 “시인 추방론”을 편 것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자연스럽게 유가의 감성 순화 효용설과 합치되면서 시가 선비 수도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
다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모방설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는 노자의 “도는 자연에서 법을 본딴다”(道法自然)에서부터 동양의 모든 예술은 자연 그리기이다. “바람을 노래하고 달의 아름다움을 읊는 것(吟風呤月)”이 바로 시 쓰기이니 동양이 자연을 저버리고 어찌 예술을 말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본질)을 완전한” 방향으로 모방하라고 한 것에는 자연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의 차이가 있다.
자연을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은 분석적이다. 즉, 어떤 순간에 하나의 소나무나 한 사람을 보면 불완전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연극 속에 그릴 때는 그런 일시적 변화의 형태를 떠난 이상적, 이성적 형태로 그리라는 충고이다. 동양이 자연을 보는 시각은 보다 깊고 보다 먼 거리에 있다.
“보다 깊다”는 말은 외적인 구체적 형상보다는 그 “기(氣)”를 감지하고 형상화하는 인상주의적 기법이 특징이다. 그 가장 특징적인 예가 우리의 문인화(文人畵)이다. 하나의 댓가지나대 나무 몇 낱이 그 전부이다. 그러나 그 대나무 그림은 대밭도 참새도 나오지 않는다. 지극히 단편적인 한 순간의 한 가지,한 모습이 더러 선명하고 더러 흐릿하게 잡혀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나무의 구체적인 형상이나 분석적인 묘사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댓가지가 서 있는 풍경의 기운(氣運)을 감지할 수 있다.
“보다 멀다”는 말은 우리의 산수화가 그 예가 되겠다. 이 또한 산 전체의 기운이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연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전체적인 통일성이 안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분석적으로 보면 각각의 사물은 불완전하고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같은 풍경을 멀리서 보면 거기에는 전체 풍경의 기운과 통일성이 잡힌다. 동양인은 자연을 우주에서, 자연 전체를 성찰할 수 있는 거리에서 보고 있다. 따라서 동양 예술 속의 자연미의 극치는 조화와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교과서이다.
다음으로 호라티우스나 롱지누스의 고전 모방설은 공자로부터 시작된 “옛것을 생각하여 새것을 안다(溫故而知新)”는 이야기나 “고사를 들어”(用事) 이치를 논하던 우리 선비들의 습관으로 보아 동양의 시학에 일반화된 것들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한시에는 중국 고전 모방 습관이 지나쳐서, 고려의 최자(崔滋)같은 분은 “요즘 사대부들이 시를 짓는데 멀리 다른 나라의 인물과 지명에 의탈함으로서 우리나라의 사실로 삼아버리는 것은 우습다.”라고 꼬집는다. 실제 우리가 상식으로 알기로도 우리 한시나 시조는 지나치게 소동파, 두보, 이태백, 백낙천 등을 모방하여 참신성이 뒤떨어진 것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미 언급한 최자는 같은 글에서 “대개 시인이 말을 인용함에 있어서 반드시 그 근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물에 비유해서 은근히 나태내면 그 뿐인 것이다. 더구나 천하가 한 집안이며 붓과 먹은 글을 같이 하는데 어찌 피차에 간격이 있으랴.”한다. 롱지누스의 “패턴을 따오는” 고전 모방론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동양의 자연 모방설이나 고전 모방설은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일반적이며 시 예술뿐만 아니라 행위에까지 도덕법칙으로 작용하는 도(道), 즉 기본 원리였던 것을 발견한다. 서양의 문학론이 시 쓰기 기술에 기울었다면 동양의 예술은 총체적 도(道)와 인간 수련에 더 큰 무게를 두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