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봉 암벽등반 하다 18m 아래로 추락했다. 갈비뼈가 7개 부러지고 골반도 부서졌다. 전치 24주(6개월 동안 치료받아야 완치됨)의 대형사고였다. 통증도 엄청났다. 하지만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머리 즉 뇌만 괜찮으면 다른 곳을 아무리 많이 다쳐도 현대 의학으로 대부분 고칠 수 있다(췌장암이나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등 아직까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질병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정초에 大母산을 함께 오른 선배가 들려준 자신의 경험담이다. ‘머리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은 ‘얼만 살아 있으면 나라가 망해도 다시 國權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비록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했어도 얼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아 3.1대한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세워 일제와 41~51년의 장기항전에 나섬으로써 마침내 광복을 맞이했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의의
황금돼지 해인 2019년, 기해년은 대한민국에 참으로 뜻 깊은 해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3.1운동은 배달민족의 얼이 죽지 않고 온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 획기적인 일이었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武斷통치에 굴하지 않고, 10년 동안 숨죽이며 지내온 온 국민이, 일제 사주를 받은 광무황제 毒弑의 울분을 한꺼번에 분출하며 떨쳐 일어났다(聳動, 용동). 질서정연하게 총, 칼질 해대는 일제에 맞서 평화적 만세운동을 벌여, 일제는 물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두 달 뒤인 1919년 5월4일, 중국에서 평화적 抗日투쟁인 「5.4운동」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간디를 중심으로 한 인도의 비폭력 抗英투쟁(아힘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나라가 망하는데도 신성하게 망하기도 하고 더럽게 망하기도 한다. 신성하게 망한다 함은 일반 인민이 義롭게 끝까지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이 망하는 것이요, 더럽게 망함은 일반 신민이 적에게 아부하다가 적의 술수에 떨어져 항복하고 망하는 것이다.(김구 주석이 『백범일지』에서 소개한 자신의 스승 後凋 고능선의 말). 대한제국은 비록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 정미7적 경술8적 같은 반민족 친일역적에 의해 ‘더럽게’ 망했지만, 수없이 많은 항일애국투사들의 얼이 살아있음으로써 ‘신성하게 망해’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40여일 만에 중국 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은 더욱 획기적인 일이었다. 상해임시정부는 서구제국주의와 일제에 의해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에 멸망한 20여개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 가운데 해외에 망명정부를 세워 장기투쟁을 한 유일무이한 사례다.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광복군이라고 하는 정식 군대를 만들어 연합군과 함께 무력투쟁한 단 하나의 사례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 앞으로 100년 어떻게 맞이할까
상해임시정부가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의 3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을 강탈당한 상황에서 해외에 세운 임시정부였던 까닭에 수립된 지 10여년은 강한 지도력이 확립되지 않아, 항일투쟁을 일사분란하게 하지 못했다. 소련에서 불어오는 공산주의 바람과 민주주의 진영 사이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분열된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와중에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과 의병장 출신의 김규식 장군, 백광운 정일우 장군 등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이 연출됐다. 김구 주석도 長沙에서 李雲寒의 흉탄을 맞고 한 달 이상 死境을 헤매다 극적으로 회생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김구 의경찰대장 겸 특무대장(당시) 주도로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반전을 모색했다. 이봉창 의사의 일왕 裕仁 저격(1932년 1월8일)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1932년 4월29일)로 임시정부가 기사회생했다. 해외동포들의 지원금이 늘었고, 蔣介石 중국 총통의 적극 지원을 이끌어 냈으며, 광복군을 창설했다. 마침내 1943년 12월1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확인한 카이로선언이 나왔다. 대한제국이 낳고 키운 ‘대한세대’가 대한민국 독립의 주춧돌을 닦은 것이다.
카이로 선언은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신탁통치 음모’로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라는 어구가 들어가 한반도 분단이란 불행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대한민국(Korea)만이 2번이나 거론됐다는 점에서, 태평양전쟁 종전 뒤의 국제질서를 논의한 카이로선언은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주요 의제로 다룬 아주 중요한 국제문서이다.
◆우물 안 개구리의 蝸角之爭에서 벗어나야
정부와 학계, 예술계와 재계 등 모든 분야에서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 풍성한 기념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진 덕분에 북한과 기념식을 함께 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기념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다. 자신들이 처해있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념식 성격을 달리하려는 움직임으로 갈등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자』에 나오는 蝸角之爭(와각지쟁,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의 오류를 벌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전국시대 魏 혜왕이 齊 위왕과 동맹을 맺었는데, 위왕이 동맹을 깨뜨리자 자객을 보내 위왕을 죽이려 했다. 공손연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파와 계자를 중심으로 한 전쟁불가론이 부딪치고, 화자의 양비론까지 겹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논쟁만 계속됐다.
논쟁을 종식시키고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戴晉人이라는 현인이 초청돼 왔다. 그는 “달팽이의 왼쪽 뿔에 觸씨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 蠻씨라는 나라가 있는데, 두 나라가 영토분쟁을 일으켜 보름 동안 싸워 전사자가 수만 명이나 됐다. 우주 단위로 볼 때 위와 제는 달팽이 뿔 위의 나라일 뿐인데 달팽이 뿔 위의 촉씨와 만씨가 싸우는 것과 다르겠는가”라고 했다. 혜왕은 제나라와 전쟁할 생각을 버렸다.
蠻觸之爭이라고도 하는 와각지쟁은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하다. 평생 한 우물 안에서만 산 개구리가 아는 세상이란 우물과 그 우물 위의 하늘뿐이다. 공자가 태산에 오른 뒤 魯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았듯이, 우물을 박차고 나와야 더 넓은 시각으로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다. 보다 높고 넓게 보는 것이 눈앞의 이익을 놓고 싸우는 달팽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
노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계는 온통 노란색이다. 세계를 바꾸는 것보다 내 색안경을 벗는 것이 훨씬 쉽고 훨씬 효과적이다. 얼이 살아있도록 해야 한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얼 살리기이다.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9011415178069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