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뜻 이루리, 보람차게 이루리.
달님도 알아주네. 태양도 힘을 주네.
떨치자 그 이름, 방송 통신 고교생.
갸륵하게 나섰다. 이 맘을 잠재우랴.
일요일도 공휴일도 닦아 가는 인격
어려움 속 다진 정열 배움으로 불태운다.
기어이 뜻 이루리, 슬기롭게 이루리.
별님도 알아주네, 태양도 힘을 주네.
떨치자 그 이름, 방송 통신 고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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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통신고등학교 개설 때: 1974년 4월
* 허만길 시인(문학박사)은 서울 경복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재직 중 1978년 5월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를 작사하고, 무학여자고등학교 화성태 음악과 교사에게 작곡을 의뢰하였으며, 1978년 6월 25일 방송통신고등학교 서울 지구 동문회 주최 ‘제1회 방송통신고등학교 웅변대회’에서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를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로 채택하고서,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일명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 선포를 하였다. 이것이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의 유래이며, 한동안 이 노래를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라고도 한 까닭이다.
* 허만길 시인은 교육 전문 월간지 ‘교육평론’ 1978년 9월호(통권 제239호 38-43쪽. 발행 교육평론사, 서울)에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육의 첫 논문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가운데 이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실었고, 그의 시집 ‘열다섯 살 푸른 맹세’ 126-127쪽 (발행 푸른사상사, 서울. 2004년)에도 이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실었다. 2016년 현재 한국교육개발원 방송통신고등학교 운영센터에서 운영하는 ‘방송통신고등학교’ 인터넷 홈페이지(http://cyber.hs.kr)에는 '방송고 언내'의 '교가' 항목에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의 가사와 악보가 올려 있다.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 제정 과정
시인 / 문학박사 허만길
우리나라에 방송통신고등학교가 처음 개교한 때는 1974년 4월이었다. 나 (허만길)는 방송통신고등학교 개설 처음부터 서울 경복고등학교 국어과 교사로서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방송통신고등학교 첫 졸업생이 나온 이듬해 1978년 5월 7일 나는 전국의 방송통신고교생들의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기 위하여 '방송 통신 고교생'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작사하여 무학여자고등학교 화성태 음악과 교사에게 작곡을 의뢰하였다.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가 작곡되자 1978년 6월 17일 서울 지구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생 남녀 10여 명이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작곡자 화성태 교사의 지도로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 녹음테이프를 만들었다. 그 다음날 6월 18일(일요일) 오후에는 경복고등학교 너른 운동장에서 서울 지구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체육회가 열렸는데, 이 체육회에서 녹음한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가 계속 울려 퍼졌다.
서울 지구 방송통신고등학교 동문회 양경석 회장이 6월 19일(월요일) ‘방송 통신 고교생’ 가사와 악보와 녹음테이프를 한국교육개발원에 가지고 갔을 때, 원장과 실장의 격려가 대단했고, 방송 실무진은 1978학년도 2학기부터 교과 방송이 시작될 때 이 노래를 서곡으로 방송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1978년 6월 25일에 방송통신고등학교 서울 지구 동문회 주최 ‘제1회 방송통신고등학교 웅변대회’가 서울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목 왼쪽에 있는 여성회관에서 열렸는데, 나는 웅변대회 심사 위원장을 맡았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여성회관 안팎은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무척 붐볐다.
웅변대회 시상식이 있기 직전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 선포가 있었다. 문교부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육 관계자, 전국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육을 총괄 운영하는 한국교육개발원 원장과 담당 실장, 여러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각계 축하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이미 유인물로 나누어 준 ‘방송 통신 고교생’ 악보를 보며, 녹음테이프로 노래를 들었다. 곧이어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를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로 채택하고, 노래 선포를 하였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던 박임전(뒷날 이탈리아에서 유명 합창단 단원 활동 및 대학 성악학 강사) 님이 독창을 하고, 졸업생과 재학생이 한데 어울려 노래를 한 소절씩 익혀 나갔다. 작곡자 화성태 교사도 등단하여 노래를 부르고 2부 합창 지도를 했다. 모두들 열창을 거듭했다. 이런 사연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는 한동안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라고도 했다.
그 뒤로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전국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 대상으로 방송 강의를 시작할 때면 이 노래를 방송으로 내보내곤 했다. 2016년 현재 한국교육개발원 방송통신고등학교 운영 센터에서 운영하는 ‘방송통신고등학교’ 인터넷 홈페이지(http://cyber.hs.kr)에는 '방송고 안내'의 ‘교가’ 항목에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의 가사와 악보를 올려 두었다.
웅변대회 엿새 뒤 1978년 7월 1일에는 서울 지구 방송통신고등학교 동문회 임원들이 명동 한일관(큰 음식점)에서 나와 작곡자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일명 '방송 통신 고교생' 노래) 녹음테이프를 많이 만들어 전국 방송통신고교에 보급하기로 결의했다. 이리하여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는 빠른 속도로 전국의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의 친근한 벗이 되었다.
웅변대회 2개월 뒤 나는 교육 전문 월간지 ‘교육평론’ 1978년 9월호(통권 제239호 38-43쪽. 발행 교육평론사, 서울)에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육의 첫 논문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가운데 이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싣고, 나의 시집 ‘열다섯 살 푸른 맹세’ 126-127쪽 (발행 푸른사상사, 서울. 2004년)에도 이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실었다.
서울 지구 방송통신고등학교 동문회 창립과 그 첫 행사로서 제1회 방송통신고등학교 웅변대회 개최 및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 보급에 크게 애를 쓴 방송통신고등학교 제1회 졸업생 양경석(경복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김구해(서울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김금영(경동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김장진(경기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손효일(용산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송구일(창덕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양경남(경기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오영미(수도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장만용(경동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 황명기(경동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님을 비롯해 많은 졸업생들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첫댓글 모교 1회 때 부터 국어 담당하시고 2학년1반 담임선생님으로 은퇴후에도 왕성한 활동과 방통고에 각한 애정으로 50주년 역사를 준비하시며 제자들과 40여년을 교류하시니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하지요. 주간 재학생들과 섞여 체력검정과 예비고사를 함께해 진학 했던 추억이 아른거립니다. 모교와 은사님께 감사드리며 삶고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이 경복고[1921년 5월 2일] 개교 95주년으로 뜻 깊은 날이네요
강희석 님, 어렵고 행복했던 시절이 생생합니다. 졸업생들 얼굴이 눈앞을 가립니다.
강혜지 회장님, 회장님의 시 창작 활동과 문단 활동을 알고 있었는데, 바로 경복 방송고교 출신임을 알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에 관한 자료들을 챙기시어, 인터넷 카페에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자한 마음으로 선후배 동문들을 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