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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나님은 톨게이트, 뜻은 고속도로>의 줄거리:
우리 삶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은 형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내 생의 단 하루도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경우는 없으므로, 그 계획과 뜻을 따라가는 것이 곧 형통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렇게 간단한 일이 왜 실제로는 그토록 이루어지기가 어려워서, 나는 형통 속에서 평강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 대답 역시 간단합니다. 하나님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톨게이트, 뜻은 고속도로
(사무엘하 2:8~32)
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12.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고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앉으니 이는 못 이쪽이요 그는 못 저쪽이라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청년들에게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 요압이 이르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15. 그들이 일어나 그 수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두 명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두 명이라
16. 각기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헬갓 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17. 그 날에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은 톨게이트, 뜻은 고속도로>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톨게이트, 뜻은 고속도로’
제가 독일에 머물고 있을 당시에 독일의 아우토반은 통행료가 무료였습니다. 이전부터 도로보수유지 차원에서 트럭들에 대해서는 통행료를 받았었는데, 2016년부터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서 모든 외국차량에 대해서는 통행료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26년 전에 제가 12년 된 폭스바겐의 파사트를 우리나라 돈으로 150만원에 사서 타고 다녔는데, 아무리 자동차의 나라 독일이지만 지금의 기술로 만든 차들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은 10년 된 차도 그렇게 고장이 잦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 차는 고장이 너무 잦았기 때문에, 매번 정비소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직접 폐차장에서 부품을 구해서 고쳤습니다. 독일은 톨게이트가 없기 때문에 시험주행을 위해 괴팅겐에서 아우토반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쪽 끝의 밴쿠버와 동쪽 끝의 몬트리올을 잇는 도로가 1번 고속도로인데, 이 1번 고속도로에는 톨게이트가 없어서 어느 곳에서나 진입이 가능합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바로 눈앞에 고속도로가 보여도 멀리 돌아서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선민에게도 삶의 고속도로는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삶에서 행하게 되는 모든 방면의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내가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가족에 대해서, 내 몸에 대해서, 건강에 대해서, 직장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이 모든 삶의 방면에서 하나님의 뜻은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형통 형통하지만 참 형통의 오리지널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있고, 또한 마귀의 역사조차도 하나님의 가장 큰 섭리의 경계 안에서 허락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 안에서 하나님을 모르고도 부자나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이것들은 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음녀 바벨론의 영광입니다.
창조 전에 하나님께서 나의 하루하루를 계획해 놓으신 그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 인생의 고속도로입니다. 많은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에 궁금해 하고 목말라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때처럼 우리에게 그 뜻을 명확하게 밝히시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우리가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반드시 알려지게 되어 있는데 비밀로 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독일의 아우토반이나 캐나다의 1번 고속도로처럼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형통의 도로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한국의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반드시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진입할 수 있는 도로인데 하나님께서 톨게이트가 되십니다.
우리가 톨게이트를 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행료를 내야만 하나님의 뜻인 인생의 고속도로에서 참 형통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데 우리가 지불해야 될 통행료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중대한 사안이든 사소한 사안이든 하나님의 뜻이 없을 수는 없는데 그 하나님 뜻의 고속도로를 통행하려면 우리 마음 전부를 통행료로 지불할 때에 길은 저절로 열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재정문제로 곤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할 때, 하나님의 분명한 뜻은 있는데 형통한 고속도로이고 재정문제의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돈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지만, 우리 마음이 돈을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뜻의 고속도로를 달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돈 문제를 붙잡은 상태에서 먼저 하나님을 붙잡은 상태로 바뀌어야만 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붙잡은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다른 것을 붙잡고 생각하고 다른 것에 빠진 상태가 바로 죄악이기 때문이고 죄악 된 상태로는 하나님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에게 어려운 일이 개업예배입니다. 개업하는 성도님들이 기대하는 것은 잘 되는 축복의 말씀과 축복의 기도이지만, 목사로서는 신앙적 양심 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이 사업이 하나님의 톨게이트를 지나 하나님 뜻의 고속도로에 진입했느냐는 문제인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으로 하나님보다도 사람들 말을 듣고 사업 아이템을 붙잡고, 경제상황을 분석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좋다고 여기는 사업 아이템을 붙잡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가게를 열고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님보다도 다른 것을 붙잡고서 형통을 위해 개업예배를 드리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것이므로 불가한 일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원인(돈, 건강, 자식, 취직, 결혼 등)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 관심사에 대해서 마음이 죽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할지 알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해서 죽고 결혼에 붙잡힌 마음을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업 문제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사업에 매달린 마음 상태를 죽이고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것을 바라고 계시는데 답답하고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다윗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획표가 나의 체크리스트가 될 수 있고, 이렇게 될 때에 나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과정을 체크만 하면 됩니다. 다윗이 유다 땅으로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을 체크했고, 또 헤브론에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울 왕이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유다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4~5년 지나는 동안에 사울의 사촌인 아브넬이 블레셋에 빼앗겼던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을 되찾는 전쟁을 치르고 사울 왕의 넷째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중심축인 아브넬은 요압하게 암살당하고, 이스보셋은 왕이 된지 2년 후에 또한 암살을 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상합니다.
이들이 기브온 연못을 사이에 두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게 다 군대장관 아브넬에게서 나온 문제입니다. 아브넬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스보셋 왕은 아브넬의 꼭두각시였을 뿐입니다.
내일 보겠습니다마는 3장에서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아브넬이 선왕 사울 왕의 첩이었던 리스바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나라간의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특권이었기 때문에 신하였던 사람이 선왕의 첩을 취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이스보셋 왕이 나무라자 사이가 벌어지게 되는데 9절에 아브넬이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신대로 다윗에게 이루어지도록 아브넬이 협조하겠다.’라는 말입니다. 그 맹세의 내용이 10절에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팔레스타인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모든 지역의 왕으로 삼으시는 것을 여호와의 뜻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도 아브넬과 같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뜻대로 되는 것이 내 인생의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아내나 남편이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계획만이 고속도로가 될 수 있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믿는 사람 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사랑이시기 때문인데 그 뜻을 알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알려지더라도 행하지를 못합니다. 또한 이미 성경에는 우리가 따라야할 하나님의 뜻들이 나와 있지만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에게 벽에 손가락으로 써주셔도 행하질 못하고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필요도 없고 하지 말았어야 하고 의미도 없는 길을 돌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의 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스라엘이 다윗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넬은 혼자 난리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넬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그 밑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혼자 국도로 돌아다니다 구렁텅이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사업에 대해 하나님이 갖고 계신 뜻을 기록해줘도 우리는 따르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업에 대해 마음을 지불한 채로 하나님의 형통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써주셔도 그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고속도로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마음은 모든 분야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만이 내 마음의 유일한 존재가 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인생은 체크리스트가 되는 것이고 사는 것이 너무나 간단해집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이렇게 마음을 하나님께로 지불하게 하신 사건으로 다른 것에 붙들린 마음이 죽는 사건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고속도로에 올라타기 위해서 하나님께 내 마음을 다 지불함으로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수원에서 강남에 직장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톨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내 마음의 통행료를 다 지불하고 하나님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계획의 고속도로를 달리려면 내 마음은 내가 이루기 위한 목적에 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 것들에 대해 지불된 나의 마음이 죽고 하나님께 지불되는 것을 뜻하는 사건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에 대한 계획이 시작되는데, 체크리스트를 들고 다윗처럼 ‘하나님! 올라갈까요?’라고 물으면 ‘올라가라’라고 하시고 ‘어느 성읍으로 갈까요?’라고 하면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즉각적인 대답과 확신을 받으며 체크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톨게이트만 통과하면 인생은 저절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할 일은 날마다 하나님의 톨게이트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수원에서 강남으로 출근할 때 날마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처럼, 오늘의 번제가 매일 매일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이므로 하루 동안에 여러분을 향해서 갖고 계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참 형통의 오리지널한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형통이 저의 기쁨이고 저의 형통이 여러분의 기쁨이고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저와 여러분과 하나님과 주님 모두가 성령님의 교통하심 안에서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톨게이트 되시는 하나님을 통과하기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처럼 우리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지불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나의 삶의 모든 방면의 계획과 뜻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참 형통의 오리지널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