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사랑이 정해진 운명이라고?
맛깔나는 영화여행/2009 건방떨기
2009-03-31 15:16:25
<2009년 3월 19일 개봉작 / 15세 관람가 / 120분>
<대니 보일 감독 / 출연 : 데브파텔, 프리다 핀토, 아닐 카푸르>
1. 정해진 운명이라고?
<정답 : 정해진 운명이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사랑이 정해진 운명이라고? 그럼 나는? 나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차일 줄밖에 모르는 바보같은 녀석은 사랑도 하진 말란 말이야! 영화가 끝나자, 나는 투덜이가 되었다. 이런 뻔한 결론을 위해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니! 으흠. 그래, 영화는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결론이 이렇게 진부한 거냐! 그래, 그렇담 좋다. 내가 양보하여 한번 심도있게 파헤쳐주지. 한참을 되뇌어본다. 정해진 운명이었다. 정해진 운명이었다. 한참을 그렇데 되뇌이다 보니, 한가지 해답이 보인다! 아하! 정해진 운명의 전제조건은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랑할 경우! 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서 우연히 만나 사랑한다든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가 드디어 마음에 들어서 만나는 우리가 흔히 겪는 이와 같은 상황은 이 영화의 "정해진 운명"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냥 평범하게 말하면 모든 경우가 "정해진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인생에 변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쨌든, 운명을 만들어갈 수는 있는 거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영화의 진짜 정답은 "정해진 운명이었다"가 아니라, "운명은 만드는 것이다" 가 되겠군. 이런 교활환 사기꾼 같으니라구! 누굴 속이려 들어?
2. 위대한 도전
백만장자 퀴즈쇼에 자말이 출연한다. 출연이유는 그가 사랑하는 라띠까가 그 프로를 즐겨보기 때문에, 꼭 볼 것이라는 희망에서였고, 그녀가 그를 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돈보다는 TV에 한번 더 자신의 얼굴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퀴즈를 풀어간다.
그러면서, 자말의 어린 시절이 교차한다. 회교도이기 때문에 엄마를 잃고 난 후, 형 살림과 함께 떠돌던 그는 라띠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살림과 자말과 라띠끄는 같이 떠돌아다니다가, 마만을 만나게 되어 거렁뱅이 생활을 시작하지만 결국 그의 잔인성에 도망을 계획하게 된다. 하지만, 마만에게 라띠끄만을 놔둔 채 도주를 한 그들 형제는 훗날 다시 라띠끄를 찾았고, 그리고 살림은 결국 마만을 죽이고 자베드의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살림과 자말의 관계는 더 멀어지게 되고 자말은 홀로 세상으로 나와 형 살림과는 다른 인생으로 살아간다.
텔레마케터 보조. 프렘은 그를 차심부름꾼이라 놀리면서 방청객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정작 창피를 당한 자말은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갈 뿐이다.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영화는 자말의 인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와 얽힌 실타래도 하나씩 풀어낸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도전한 그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성공하면 돈도 벌 수 있고, 라띠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라띠끄가 그를 찾아올 수 있을지언정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도전한다. 돈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그와 함께 그를 함정에 빠뜨려 웃음거리로 만들려던 프렘의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자말은 영리하지 않지만, 그는 최소한 누군가의 놀림거리로만 전락되지 않는 비장한 마음을 지녔다. 순수한 듯 보이면서도, 결코 포기를 모르는 그의 집념은 결국은 "정해진 운명" 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3. 모두가 동참하는 자말의 운명
그래, 그러니까. 정해진 운명이었다는 거야, 운명은 만들어간다는 거야? 어느 쪽인지 선택하라구! 하지만! 선택할 수 없다. 운명을 만들기 위해 자말은 수많은 난관을 거쳐 왔다. 퀴즈쇼에서 여러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재치와 운, 그리고 농락당하지 않는 곧은 심정으로 그 위기를 견뎌왔다. 그리고 , 그 위기는 마치 그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구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극복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형, 엄마, 라띠끄. 그리고 눈이 멀어야만 했던 친구 등. 심지어 그를 위기로 빠뜨리려 했던 프렘조차 그에겐 구세주였다. 그렇다.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은 자말의 운명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라띠끄와 자말은 결국엔 만난다. 백만장자가 된 자말을 라띠끄는 만나는 것이다. 결말만 놓고 보면,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전혀 해피엔딩같지 않다. 그들은 운명처럼 만나서 결국 정해진 운명으로 다시 만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말의 어머니는 회교도란 이유로 죽었고, 형 살림은 라띠까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살림의 보스 자베드는 살림이 죽였고, 마만도 살림이 죽였다. 형 살림은 자말과 라띠끄를 위해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별로 슬프지가 않다. 살림은 라띠끄를 괴롭히던 죄책감을 씻기 위해 그 길을 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갱들끼리의 죽음이라는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전혀 슬픔에 대한 코드를 심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죽음으로 인해 라띠끄와 자말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인과관계를 형성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정해진 운명이라면 자말과 라띠끄까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한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한다면 자말이 생각보다 현명하고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운명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자말을 보면서 엉뚱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일확천금의 꿈이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그의 인생과 고문을 지켜보면서 그것은 정말 엉뚱한 희망임을 알게 된다. 자말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봤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그렇게 부러워할게 못되는게 그는 퀴즈쇼 덕분에 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미 받은 상처가 많아서 그런지, 영화는 덤덤하게 그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묘사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시련과 아픔이 그 속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라띠끄와의 만남. 바로 사랑의 힘이다. 그렇다. 자말의 운명에 동참한 마지막 인물은 바로 라띠끄였고, 그것이 정해진 운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말은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갔지만, 라띠끄가 아니었다면 정해진 운명은 답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 라띠끄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어쨌든 자말은 백만장자니까. 그러니까, 뭐야? 사랑은 운명이란 거야? 그렇다,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지만, 사랑은 운명이란 것이다. 사랑뿐 아니다. 모든 사람과의 만남은 운명인 것이다.
<정답 : 정해진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