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인도(印度)의 고아 탈환운동 4288년 8월 26일(1955년)
소서삼필(小鼠三匹)의 차 밖에 안 되는 협소한 세 개의 웅크라모로 되어진 인도(印度)를 가지고 태산명동(泰山鳴動)을 시키는 것이 떠들어대고 있는 인도 반포운동(反葡運動)은 자칫하면 아개(亞個) 민족운동문제가 *심삼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자주독립운동이 탄생하고 있는 일분파(一分派)로 착각되기 쉽다.
인도에서 현금(現今) 전개되고 있는 반포민중운동은 결코 인도의 완전자주독립 사취운동이 아니라 총인구 불과) 육십만여 밖에 안 되고 총면적이 불과 1537평방리 밖에 안 되는 고아, 다바오, 디유 등 도계호(島契胡) 삼개영역이 인도란 독립 국가를 위협하거나 침략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협이나 침략은 군사적인 의미만 제한하지 않고 널리 정치경제 문화의 분야로 호비(虎飛)하게 또 확대하게 고찰해도 마찬가지 결론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포령(葡領) 인도 3개의 도(島) 웅코라브는 이태리 서아(瑞亞) 부근 그렇지 않으면 불국경(佛國境)에 잇는 쌍마리노 모나코 리히핸 수타인 반도로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아야 타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정부는 동 문제점을 단지하고 대포(對葡) 외교단절을 선언하고 봄베이 마르다스 칼카다 등지에 포국(葡國) 영사관을 폐쇄해 버렸다.
인도정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니 될 비밀이유는 허다함을 생각지 못할 바 아니라 아시아 민족주의를 가장 정확하게 체득하고 현 국제 정치 이상을 가장 실질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네루수상이 이러한 극단적 방법을 취하게 된 것을 긍정하기 어렵다.
특히 네루 씨가 선두에 나서서 공존을 주창하였고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언행만이 양심과 양식에 힘찬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고 절규하고 있던 사실을 고찰할 때 이번 인도정부 처사는 자가당착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앞으로 표면화 될 뻔한 중공의 마카오 홍콩 공세는 예측하고 인도 고아문제를 검토해 보면 네루수상이 취한 처사는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할 것이라. 네루 씨의 이러한 처사는 심사숙고하여 보지 않을 리 없다. 그는 외교 관계단절 후에 무력침범만은 부인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네루수상이 그 지도역량을 십분 발휘해서 횡격(橫擊)한 민중을 진정시키고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평화적이요 합리적인 것으로 해결하려는 가가 의문이다. 네루씨는 또 양심 그 양식으로 공산당과 극우반동분자들이 연합해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허울 좋은 민중운동을 돌연 사주할 수가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봄베이 탁(倬)*노동총회이란 비정치 직업연맹까지 민중들과 합세하여 포령 인도에 기항한 선박을 기지어(基至於) 합수(佮水)만이 기항목적이라고 위협하고 있으니 역시 일종의 비합리적이요 몰상식한 국회 법침계(法侵界)이라 이 사건에 있어서 친공로선(親共路線) 일변도용(一邊倒用) 방책으로 실시해온 인도정부가 이번 민족주의 문제의 본태(本態)를 쓰고 고아 침범을 행한 소지를 마련하고 있음을 정시하여 민족주의문제와는 빙탄(氷炭)과 같이 상객(相客)치 못할 명확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