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아웅관명년지국호(我熊觀明年之菊乎)
나는 진처사(晋處士) 도연명(陶淵明)같이 국화를 사랑한다 할 수는 없어도 일반 화랑(花廊)에 취(醉)하여 나도 국화를 사랑한다 할 수 있다. 이목은(李牧隱) 선생 말과 같이 우향동라전만향진모화대위연명(偶向東羅屇滿向眞莫花對僞淵明)이라 함과 같이 국화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항상 부끄럽다. 누하동교회(樓下洞敎會) 내 좁은 주택에 있을 때는 국화를 길러보면 하였으나 심을 곳이 없는 고로 간수치 못하다가 김남수(金南洙) 군의 소개로 신문로(新門路)로 반이(搬移)하였을 제 비록 세옥(貰屋)이라도 정원 내에 좋은 부지가 있어 숙자(淑子)가 소사(素沙)에 가서 국종(菊種)을 얻어 심었다.
국종(菊種)을 가져올 때 원예인(園藝人)의 과장(誇張)하는 말을 들으니 백대국(白大菊) 홍대국(紅大菊)이라 칭하여 그 말을 믿고 만심(滿心)의 희망을 가지고 가진 방법을 다하여 국화를 가꾸었다. 및 음(陰) 9월 국화 개시에 와서 보니 모두 야국(野菊)이요 자랑하던 국화는 한 송이도 보지 못하였다. 원예인의 말에 속은 것이 원망스러우나 권세가 다 그런고로 별 개의할 것 없다하고 다 뽑아 버리려 하다가 야국이라도 그냥 두고 보자하고 정등(庭磴)에 늘어놓았다.
마침 추양(秋陽)이 만옥(滿屋)하고 일기(日氣) 청화(晴和)스러울 제 의외 사랑하는 친구 이(李) 선생이 1) 내방(來訪)하였다. 어찌 기쁜지 도서(圖書)와 화분(花盆)의 이야기를 하는 중 고인(高人)이 아니고는 도서(圖書)와 화분(花盆)을 좋아하는 이가 없다. 글을 좋아하여 가상(架上) 탁상에 서책(書冊)을 버려 놓았으나 심심할 때면 책을 들고 읽다가 게으름이 나면 그만 던져두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좋아 하는 것 아니요 한 습관에 지나지 못하였고 화분도 역연(亦然)이라 봄이 오면 꽃장사가 화분을 짊어지고 외친다. 흔히는 창의문 밖 거씨(居氏)들이 영리로 파는 것들이다. 몇 분을 사서 정등(庭磴) 버려놓았으나 조금 있으면 간색시(艮索視)하고 주의가 없었다. 서책과 같은 습관에 지나지 않았고 좋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형을 보고 정원에 국화소식을 물었더니 홍대국(紅大菊) 백대국(白大菊)이 수두룩하다고 답한다. 나는 별안간 선모(羨慕)가 생겨 한번 가서 대국(大菊) 수종을 빼서 오겠다하였더니 서역수시(敘役數時) 후에 이형은 곧 일어서 갔다.
수일 후에 이형은 문생(門生)으로 하여금 홍국(紅菊), 백국(白菊) 수종(數種)을 자행차(自行車)에 실어 보내었다. 나는 기뻐서 받아 정상(庭上)에 버려놓고 겨울에도 실내에 들여 놓아 동사(凍死)치 않게 하고 명년에 이 대국(大菊)을 취종(取種)하여 잘 가꾸어 보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이 결심은 자기의 연고(年高)한 것을 모르고 하는 일이다. 이 자문자답하기를 그대가 나이 84(1956년)이요 명년이면 85인데 생명의 실이 끊어지면 그 결심은 수포가 되지 않는가. 나는 자답하기를 내가 무화과(無花果)를 기록할 제 내가 이 4호를 다 기록하기 전에 나의 숨이 멎어지면 하고 제5호의 기록을 주저하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숨이 멎어지기 전까지 기록하는 것이 나의 생명이라 하고 제5호를 간수하여 지금은 5호를 다 마치고 또 6호를 시작하여 기록하는 중이다.
그러니 나의 국종(菊種) 재배도 나의 숨이 머지기 전까지 산 사람의 일을 하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예전 왕원지죽루(王元之竹樓) 외에 명년에 또 어느 곳에 가 있을지 모르니 어찌 죽루(竹樓)의 썩기 쉬운 것을 두려워하리오 하였으니 이 말은 불가하다. 자기 숨이 머지기까지 산 사람의 일할 것을 모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형의 준 국분(菊盆)을 정내(庭內)에 들여 놓고 가끔 물도 주고 가꾸어 보리라 결심하고 명년 다시 대국(大菊)을 보려고 결심하여 숨이 머지기 전까지 해보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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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득년(애국지사, YMCA 총무)
<현대 한국어로 편집>
172. 내가 내년의 국화를 바라보며
나는 진나라의 은사 도연명처럼 국화를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나도 국화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이목은 선생님 말씀처럼 "우연히 동쪽 누각으로 향하여 참된 도연명을 대하니 부끄럽다"라는 말씀과 같이 국화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항상 부끄럽다. 누하동교회 근처의 좁은 집에 있을 때는 국화를 기르고 싶었으나 심을 곳이 없어서 키우지 못하다가, 김남수 군의 소개로 신문로로 이사했을 때 비록 세를 든 집이지만 정원에 좋은 땅이 있어서 숙자가 소사에 가서 국화 모종을 얻어와 심었다.
국화 모종을 가져올 때 원예인의 과장된 말을 들으니, 큰 흰 국화와 큰 붉은 국화라고 하여 그 말을 믿고 큰 희망을 품고 온갖 방법을 다해 국화를 가꾸었다. 음력 9월 국화가 필 때가 되어 보니 모두 들국화였고, 자랑하던 국화는 한 송이도 보지 못했다. 원예인의 말에 속은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모두 뽑아버리려다가 들국화라도 그대로 두고 보자며 정원 계단에 늘어놓았다.
마침 가을 햇살이 집안 가득하고 날씨가 맑고 화창할 때 뜻밖에 사랑하는 친구 이 선생이 방문하셨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책과 화분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달은 것이, 고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책과 화분을 좋아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글을 좋아해서 책장과 책상에 책을 놓아두었지만, 심심할 때 책을 읽다가 게을러지면 그만 던져두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습관일 뿐이었고, 화분도 마찬가지였다. 봄이 오면 꽃장수가 화분을 짊어지고 외치는데, 주로 창의문 밖 거씨네들이 장사로 파는 것들이다. 몇 개를 사서 정원 계단에 놓아두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 보고 신경 쓰지 않았다. 책과 마찬가지로 습관일 뿐이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 선생을 보고 정원의 국화 소식을 물었더니 큰 붉은 국화와 큰 흰 국화가 많다고 답했다. 나는 갑자기 부러운 마음이 들어 한번 가서 큰 국화 몇 종류를 가져오겠다고 했더니, 얼마간 이야기를 나눈 후에 이 선생은 곧 일어나 갔다.
며칠 후에 이 선생은 제자를 시켜 붉은 국화, 흰 국화 몇 종류를 자전거에 실어 보내주었다. 나는 기뻐하며 받아서 정원에 두고 겨울에는 실내에 들여놓아 얼어 죽지 않게 하고, 내년에는 이 큰 국화의 씨앗을 받아 잘 가꾸어 보리라 결심했다.
이 결심은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잊고 하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당신의 나이가 84세(1956년)이고 내년이면 85세인데, 생명이 다하면 그 결심은 헛된 것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스스로 답하기를, 내가 무화과를 기록할 때 4호를 다 쓰기 전에 숨이 멎을까 봐 5호 기록을 주저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숨이 멎기 전까지 기록하는 것이 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5호를 마저 써서 지금은 5호를 다 마치고 6호를 시작하여 기록하는 중이다.
그러니 나의 국화 재배도 내 숨이 멎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사람의 일을 하리라 결심했다. 옛날 왕원지가 "대나무 누각 밖에 내년에 또 어느 곳에 가 있을지 모르니 어찌 누각이 썩기 쉬운 것을 두려워하리오"라고 했지만, 이 말은 옳지 않다. 자신의 숨이 멎기까지 살아있는 사람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말이다. 그래서 이 선생이 준 국화 화분을 정원에 들여놓고 가끔 물도 주고 가꾸어 보려고 결심했고, 내년에 다시 큰 국화를 보려는 결심으로 숨이 멎기 전까지 해보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