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82:1-8
제목: 하나님의 주권
오늘은 ‘하나님의 주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시작은 세상 창조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로 모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을 합니다.
‘공의’가 무엇입니까? 공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을 포함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공정하게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죄가 들어오면서 그 공의가 무너져버렸습니다. 공의가 무너졌다는 것은 약한 자와 강한 자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행한 자와 당한 자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을 보면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린 세상이 되었고, 빛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여 어두워진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82편은 다윗 시대에 다윗과 함께 살았던 아삽이 쓴 시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2절 상반 절에 나와 있는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라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삽은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재판관들의 불공평한 행동을 보고 이 시를 지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을 할 때에는 가장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재판관들이 악한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그 악한 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판결을 했습니다. 그것을 본 시인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시편 82:4). 이것은 단순히 그 때 그 당시에만 일어났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는 행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는 실현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로마서 5:17).
무슨 말씀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하느냐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의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27절과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인간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고, 자연재해로 인해서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가 무시된 채 인간 스스로 왕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고 자신의 삶을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는 이 불의한 재판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1. 하나님께서 최종 심판자임을 깨닫습니다.
(시편 82: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나 재판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의 대리자로서 다스리고 재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신격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모든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통치가, 그 재판이 공정했을까요? 모든 인간은 권력자로, 부유한 자로, 명예로운 자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보면 그 통치와 재판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기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유리한 통치, 유리한 판결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가난한 자와 고아가 생겨나고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시인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재판장이며 불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분, 강한 분’ 아닙니까? 그 하나님만이 유일한 통치자요 재판장이라는 것을 시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따라서 다스리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무능하고 유한한 우리 인생이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우리만의 유익을 위해서 세상살이를 하고 판단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은 소금이 맛을 내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길은 사망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서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만들며 가꾸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시편 82:3-4)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눈에 가난한 자와 고아 그리고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가 보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의 눈에는 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악한 자들의 눈에는 자기 자신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약한 자인 그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악인은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눈에 무엇이 보였길래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가난하고, 고아와 같은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아니 죄로 인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로 하나님의 마음속에 우리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의의 마음이고 선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의 마음에는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배만 채우려고 다스리고 재판을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그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립보서 3:19). 이들은 땅의 시민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소금은 맛을 내어야 하는 곳에 쓰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곳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땅의 시민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맛을 내야하는 곳, 빛을 필요로 하는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악한 존재이며 감각 없이 살아가고 어두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맛을 내고 빛을 비추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82: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만 백성은 당신의 것이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 지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악한 자들은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주권, 모든 통치, 모든 재판을 자기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다스리고 판결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가난한 자, 곤란한 자, 억울한 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소유로부터 인생을 출발하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도, 모든 것을 행하는 것도 자기가 주도권을 잡습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자신이 지금 사는 것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이것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차이입니다. 옛 사람은 자기 자신은 자기 소유, 새 사람은 자기 자신은 하나님 소유.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세상살이를 할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랑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로 인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쁘고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과 소유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최종 심판자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고백과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