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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누가복음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오늘은 2025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희망찬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제단에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올려드리고,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는 지극히 복된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해 2024년도에는 우리가 시편 46편 10절을 가지고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라는 교회 표어를 가지고 한 해를 보내었는데, 새해에는 어떤 표어를 가지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기도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기도하라는 말씀이 수없이 많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기도 생활은 우리가 마땅히 실천해야 할 성도의 의무이며 우리의 특권입니다. 하지만 표어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에 새해 표어 제목을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로 정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피 땀 흘려 기도하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하라는 동일한 명령을 반복해 말씀해주신 것이 떠올랐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예수님께서 밤 늦게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감람산 한쪽에 있는 작은 동산 겟세마네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실 때에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는데, 그 때 예수님은 그와 함께 있었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기도하라는 뜻으로 세 번이나 찾아와 기도를 당부하신 바 있습니다. 맨 처음에 동산 깊이 들어갈 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시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될 정도로 십자가를 지시고자 힘을 구했다가 제자들에게 찾아와서 보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우시며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가셔서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한참을 기도하신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찾아와서 그들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또 다시 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자고 있던 제자들에게 또 다시 찾아오신 이유는 그들을 깨워서 “어서 일어나 기도하라”고 다시 한번 간절히 권면하려 하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가셔서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를 체포하러 칼과 몽치를 갖고 찾아온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의 종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마주 나아가셨습니다. 이렇듯 주님은 그 날 밤 엎드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으며, 자기의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세 번에 걸쳐서 말씀하사 기도할 것을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왜 그렇게 간절하게 반복하며 당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야말로 성도의 신앙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시편 91:14,15 말씀에서 이르기를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지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시편 145:18,1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시며 그의 모든 간구에 응답해주시고 그를 높여주시고 가까이 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도와주시곤 하셨습니다.
유다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이 다스릴 때에 모압 암몬 세일산 사람들이 함께 연합하여 무수한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에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금식하며 매달렸을 때에 선지자 야하시엘이 감동을 받고 예언하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 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역대하 20:15~17)
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이 예언을 믿고 그들이 그 다음날 군대 앞에 찬송대를 조직하여 찬양하면서 전쟁터에 나갔는데, 찬양대가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양을 시작하자, 적군들 간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더니 적군은 서로 칼로 치기 시작하더니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고서 찬양한 것 외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놀라운 도우심과 함께해주심과 큰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대신 싸워주시고 큰 승리를 주시기 위하여 올해 우리에게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권면하십니다. 할렐루야
또한 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 같은 말씀을 반복하면서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을까요? 그것은 기도는 인간의 기질상 실행하기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간절한 기도 권면을 받은 제자들이 자기들 앞에 돌 던질 만큼 떨어진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눈물과 땀과 피가 뒤섞인 기도를 드리는 것을 어렴풋이 보고 들으면서도 처음에 좀 기도하다가는 그냥 쿨쿨 쓰러져 자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다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이르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마음으로는 기도해야 함을 알고 원하지만 인간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안타까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도 주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에는 시간이 더디갑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은데 눈을 떠서 시계를 보면 15분, 20분, 30분 정도밖에 안 지났습니다. 다른 것들은 금새 시간이 지납니다.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하는 시간도 금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시간은 훌쩍 지납니다. 그러나 지루한 운동은 운동할 때 시간이 더디 갑니다.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도 다른 것들은 시간이 금새 갑니다. 책을 읽거나 심방하거나 전도하는 것들은 시간이 금방 지납니다. 그러나 기도 시간은 그것과 비교하면 시간이 더디갑니다. 기도하기보다는 다른 활동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도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늘어났을 때에 성도들의 구제 활동을 위하여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면서 시간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 곧 기도하는 일과 말씀 봉사 사역은 늘 시간이 부족하고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안에서 구제 문제 때문에 도리어 불평이 생기게 되었을 때에 사도들은 자기들이 정작 반드시 실천해야 할 기도하는 것과 말씀 연구와 말씀 증거 사역에 소홀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재정 출납은 교회의 충성된 일곱 명의 일꾼들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더 힘들지만 더 중요한 일인 기도하는 것과 말씀 봉사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힘든 일입니다. 기도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외로운 투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쳐서 영혼의 깊은 것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기도에 전심전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당장 어떤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무익한 수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기도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아무리 기도하고 싶지만 육신이 받쳐주지를 않습니다. 몸은 졸리고 정신도 기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에 마귀가 기도자의 생각을 분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도의 향이 하늘 보좌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니, 분주한 마음 중에 드리는 기도의 향기는 겨울의 시골 저녁 굴뚝 연기처럼 옆으로 슬슬 퍼지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기도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기도와 다른 것과 병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용사들은 기도를 위하여 많은 것들을 희생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단순화합니다. 사람들과 지나친 교제도 조심합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많은 모임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내면의 세계를 고요하게 합니다. 사람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삶은 육신을 거스릅니다. 세상의 많은 정보와 이런 저런 잡다한 것들로 자기 마음을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속적인 기도 생활은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 우리의 기도 생활은 일정 기간에 뜨겁다가도 곧 약화되곤 합니다. 그리고 한번 식어버린 기도는 다시 뜨거워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 생활에는 육신의 끈질긴 저항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날 제자들에게 “기도하라!” 말씀하시고 또 오셔서 “너희가 한 시간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하시고 또 다시 시간이 지난 후 찾아오셔서 그들이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또 확인하시고 다시금 기도하라고 무언의 당부 말씀, 기도하라는 ‘싸인(sign)’을 주시면서 기도하라고 계속 격려해주셨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편지를 보면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말씀을 자주 씁니다. 거기서 ‘항상 힘쓰다’는 헬라어 단어 ‘프로스카르테레오’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돌보다, 정선을 들이다, 계속 열중하다, 꾸준히 시중들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단어의 의미를 실감나게 하는 성경의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가르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서 밀 우려가 있어서 그것을 피하도록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에게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 때 배를 대기시킨다는 단어가 ‘프로스카르테레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이 언제라도 사람들을 피해 배에 올라가 거기서 설교할 수 있거나 아니면 배를 타고 그 장소를 떠날 수 있도록 그 배를 항상 기슭에 바짝 대어 있도록 항상 물결과 싸우면서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처럼 우리의 기도 역시 항상 기도를 중단시키려는 방해의 물결들과 맞서서 계속하여 쉬지 말고 힘써 기도의 노를 힘써 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쓰인 것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 12:12 말씀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에서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구절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6:4 말씀에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는 사도의 고백에서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힘쓰리라’는 구절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골로새서 4:2 말씀에서 “기도를 계속하며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구절에서 ‘기도를 계속하라’는 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사도들은 성도의 기도 생활에는 끊임없는 방해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것들과 계속하여 싸워 극복하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반복하여 당부하신 뜻에는 우리의 기도 생활이 많은 수고와 애씀이 따르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을 명심하라는 뜻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해는 막연하게 기도해야 하겠다는 마음의 소원만 갖는데 머물지 말고, 기도란 땀 흘리는 노동이고 피 흘리는 전투와 같음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수시로 다가오는 안팎의 지속적인 방해들을 힘써서 극복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하여서 마침내 기도가 우리의 온 몸에 배게 된 기도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까닭은 기도하지 않을 때 큰 손해와 실패가 다가올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날 기도의 권면을 듣고도 기도하지 못한 그 제자들의 경우를 봅시다. 그 날 밤에 제자들은 그들의 신앙의 여정에서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대적자들의 손에 체포될 때에 제자들은 모두 자기 목숨을 건지겠다고 어둠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는 뒤를 따라갔다가 대제사장 집의 바깥 뜰에서 세 번에 걸쳐서 그 집 종들 앞에서 자기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자기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며 저주를 걸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제자들은 마땅히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않아서 영적인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량없는 자비하심과 용서해주심과 붙들어주심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 큰 죄로 인하여 영원히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모든 도둑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과 다름 아니라고 어떤 사람이 말씀한 바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각종 시험들에 대하여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마치 군인이 무기도 없이 갑옷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당부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영육간의 모든 도둑들로부터 막아주시고 손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사랑의 당부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로 성도인 우리가 기도를 신실하게 하고 있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주의 백성인 우리가 신실하게 기도하는 중에 시험을 겪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도 그 시험 중에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해주십니다. 이사야 62:6,7 말씀에,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벽 위에 세워진 파수꾼은 깨어 있는 주의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들이 잠잠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기억하시도록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쉬지 않고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어려운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셔서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할 길을 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더 강한 신앙과 훌륭한 인품과 영적으로 강한 용사로 성장하도록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께서 우리 함께가는교회에 새해 2025년에 주신 표어대로 우리 모두 새해에 기도에 힘을 다합시다. 주님 명령에 순종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그것이 우리 영혼이 살고 시험들을 다 이기고 모든 문제를 밥으로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확실한 길인 줄 믿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려 기도로써 승리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늘 보좌 우편에 높이 올라 좌정하신 우리 주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2025년 새해 동안 특별히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는 이 표어 말씀을 따라 끈질기게 최선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함으로 새해에 우리의 삶에 놀라운 축복과 승리의 열매들이 많이 맺혀져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큰 기쁨이 되기를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