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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돌파구
전창수 지음
1. 그놈 어시스트
2. 13인의 사위들
3 달라진 돌파구
4. 이상한 탐정, 신통한 만남, 그 졸렬한 서막
그놈 어시스트
1.
그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놈은 나를 모른다. 내가 그 녀석의 돈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그 녀석은 분명 내가 목사인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을 속이는 것은 너무 쉬웠다. 나는 그 녀석에게 내게 돈을 바치면 영생을 주겠노라고 했다. 너무 쉬웠다. 그래서 그 영생을 얻겠다고 그놈은 내게 전 재산을 바쳤다. 이제 이놈에게 내가 만든 영생약을 주면 된다. 그놈과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2.
나는 하늘에 있다. 분명 그놈에게 영생약을 먹였는데, 내가 왜 하늘에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놈이 내게 물어본 딱 한 마디 한 것이 기억났다.
“나, 이 약 먹으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영생을 얻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놈은 그 말을 했고 약을 먹었다. 근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3.
눈앞에 그놈이 보인다. 그놈도 분명 영생약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영생약을 먹지 않았는데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그놈이 내게 말했다.
“덕분에 진짜 영생을 얻었네요!”
미칠 노릇이다. 나 때문에 영생을 얻다니.
“목사님, 그럼 목사님도 영생을 얻으신 건가요?”
“아, 네… 네, 그렇군요. 환영합니다. 하하하…”
4.
여기가 어디인가. 내 두 손이 뒤로 묶여 있고 눈은 가려져 있다.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은 어딨어?”
눈 가리개를 푼다.
“나 누군지 알지?”
“아니, 전도사님이?”
“내가 왜 네 전도사야? 나 전도사 아닌 거 알잖아!”
“아니, 그러니까 여기 왜?”
“왜는? 돈은 어딨어?”
“돈, 돈은… 근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
“내 친구야. 이분도 목사님이셔. 근데, 이분은 진짜 목사님이야.”
“네? 그게 무슨 소리?”
“알게 될 거야.”
5.
눈을 뜨니,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누워 있는 뭔가를 보았는데, 고양이다. 이놈은 왜 여기 있는 거지. 너무 평온하게 자고 있는 고양이. 나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너, 왜 여기있니?”
“야옹!”
“너, 왜 여기 있냐고?”
“야옹!”
“야, 너 왜 여기 있냐고!!!!!!!!”
“야옹!”
“야, 너 진짜 그럴래!!!!”
“야옹!”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6.
“목사님, 영생을 얻으니 어떠신가요?”
“영생을 얻으니 좋은데, 여기는…”
“목사님, 지금 어디 계신지는 알고 계신가요?”
“왜 벽이 온통 연두색이죠?”
“목사님,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게 무슨…”
“알게 될 거예요…”
7.
하늘이 온통 푸른색이다. 그놈은 내게 여전히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놈에게 말했다.
“내게 전 재산을 바쳤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영생을 얻을 걸 믿겠느냐?”
“목사님,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고 계시는 건가요?”
“그게 무슨 말이느냐?”
“저, 지금 갖고 있는 돈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집에 두고 왔어요. 돈이요.”
“음… 그… 그러하냐?”
“목사님께서 돈 없어도 재산을 바치면 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러하냐?”
“네, 그래서 저의 전 재산인 영생을 바쳤잖아요!”
“그… 그러하냐?”
“네, 그러한대요?”
“그, 그럼 돈은 어디 있느냐?”
“저 집에 있어요. 돈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좀 드릴 수 있는데요?”
“그…그러하느냐?”
하늘에 있는 파란색이 갑자기 맑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영생을 바라는 그놈의 목소리가 맑은 구름 사이로 덮쳐왔다.
13인의 사위들
1.
"저 놈만 잘 잡으면 돈 벌이 될 수 있다니까. 잡아다가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잘 활용만 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거야”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냐고? 저 놈이 우리 말을 곧이 들어야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걸 쓰자고.”
"주사기”
"이게 바로, 최면 주사기라는 건데, 이거만 엉덩이에 콕 박으면 우리 말을 저절로 듣게 되는 거지.”
"꼭 엉덩이에 박아야 돼?”
"다른 곳은 치사 위험이 있어서 안돼. 저놈을 죽여서는 아무런 득이 없잖아”
"그럼 어떻게 저놈의 엉덩이에…?”
"그러니까, 잘 감시해, 기회를 잡아 보자고”
2.
한참 만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가. 내 양손이 허리 뒤로 묶여 있다. 그리고 저벅저벅저벅. 살기가 느껴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굵은 음성을 가진 남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저 녀석인가?. 네, 분명 맞습니다. 저 녀석이 바로, 그 악마의 반지를 낀 녀석입니다. 여기서 탈출할 수는 없겠지.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절대 탈출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저기서 탈출한다면, 그건 시간이동이나 공간이동이 가능한 초인이라는 얘기입니다. 저 녀석은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악마의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마가 저 녀석을 잡아놓기 위해서 끼운 것 같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저 녀석이 우리의 정체는 알고 있나? 아마, 모를 겁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악마의 반지는 어떻게 했나?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도무지 빠지지를 않습니다. 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빠진단 말이지? 흠… 아직은 좀 기다려. 저 녀석에겐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는 건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도망을 치지 못한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저 녀석이 우리 애들을 죽인 거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였는지는 모릅니다. 우리 애들이 죽어갈 때, 저한테 확실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녀석, 무섭다고요. 저 녀석 때문에 우리 다 죽었다, 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총이나 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한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도 사실은 저 녀석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반지를 빼는 것도 허락을 구한 것입니다. 그래? 흠…그렇다면,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겠군. “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지? 그때, “나”의 머릿속에서 어떤 울림이 나에게 속삭였다. 생각하지 마. 그리고 입을 조금만 벌려. 그리고 너의 몸을 흐르는 대로 맡겨. “나”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치키치키 축축 치치치치 추추추추 축추축. 그리고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면서, 맨 땅을 차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확인해 봐. 네, 대장님. 발자국 소리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나의 발차기는 더욱 빨라졌고, 이상한 신음소리는 더욱 더 속도를 더해졌다. 대장님, 저놈이 뭔가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와 보십쇼.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빨라졌다. 안 돼! 저놈 잡아. 저놈 뭔가 분명 있어. 도망치지 못하게 꽉 잡아. 그게, 칼이었는지 총이었는지 모르겠다. 뭔가가 나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대로 기절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참 후 나는 잔디가 만발한 어느 공터에 누워 있었고, 묶여 있던 손이 풀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주변 사람들이 누워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별 관심 없다는 듯 이내 제 갈 길을 갔다. 여기는 대체 몇 년도의 어디란 말인가? 나는 또 무슨 주문을 했던 것인가. 나는 언제쯤 나의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죽은 것인가, 죽지 않은 것인가. 나는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나의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살아있기에 또 다시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돈 한 푼 없지만, 길을 계속 걷다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내 두 손이 멀쩡하고, 아직까지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나는 일어나서 바지를 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에게 씌워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3.
나의 머릿속의 이상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초록색 잔디가 아름다웠고 공기도 맑았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내가 찾던 세상이 여기인가? 하는 생각이 고개 들 때쯤, 갑자기 어디선가 복면을 낀 사람이 길가를 가고 있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는 것이 보였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공원을 가득 메웠다. 복면을 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아리송한 사람은 핸드백을 들고 열심히 뛰어가는 중이었다. 혹시 저것을 제지할 능력도 있을까?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길 기대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남자가 가는 방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기만 했다. 사람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는 복면 쓴 사람을 열심히 쫓아갔지만 그 사람의 달리는 모습은 너무나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사람의 달리기라고 믿기지 않았다. 순간 퍼뜩 저 녀석이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지옥에서 보낸 악마.
그런데 악마가 고작 하는 짓이 소매치기라? 어울리지 않았다. 악마라면 뭔가 더 큰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악마는 너야, 네가 악마야. 저 사람이 아니라 너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가 악마라고? 내가 왜 악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반지를 보고 악마의 반지라고 불렀던 생각이 났다. 이 반지가 악마인가? 왜 내 반지를 보고 악마의 반지라고 하는지 그리고 그 반지는 왜 다른 사람이 빼면 빠지지가 않는지 궁금했다. 궁금한 마음에 반지를 잡고 빼 보았다. 잘 빠진다. 다시 반지를 낀다. 잘 끼어진다. 내가 빼고 껴도 반지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냥 평범한 반지. 길 가다가 우연히 주운 반지가 아니다. 그녀와 약혼을 하던 그날에 그녀와 언약을 하며 끼운 약혼반지다.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혼을 하루 앞두고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내가 있는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 어느 세상에서인가 나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복면을 쓰고 소매치기를 한 사람이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렇게도 빨리 달리더니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경찰에 의해 잡힌 것이다. 미처 앞에서 경찰이 튀어나오리란 생각은 못한 것 같다. 뒤쫓아 왔던 미니스커트의 그녀가 복면을 한 사람에게 발길질을 해댄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워서 자기 짐만 챙겨가지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저 여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맞고 있던, 복면을 쓴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발길질을 하던 미니스커트의 그녀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그때서야 비로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한참 때릴 때는 전혀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 보았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처음 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또 다시 음성이 들렸다.
‘사라져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이 또 나타날까봐 두려워하는 거야’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공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좀 전까지 행복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무섭다는 것일까? 사라져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니?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무섭게 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한참 쳐다보더니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 바뀌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의 구세주이시군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더니 모두에게 크게 외쳤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언 속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제가 구세주라니요? 모두들 두려움에 떨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제가 구세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진짜 구세주 맞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나의 묻는 말에 대답은 없고 그 사람은 자꾸 내가 구세주라는 말만 반복했다. 궁금증은 더욱 더 증폭되었다.
“당신은 누군지 몰라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스스로 알아내세요. 우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궁금해 하세요. 길은 우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내 뒤로 그 공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온다.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 머릿속에서 또다시 속삭임이 들려온다.
‘따라갈까? 따라가지 말까? 따라가야 하나? 따라가지 말아야 하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머릿속이 갈등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길을 잘 안내해 주더니 이번에는 모호하게 질문만 하고 있었다. 따라갈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조금 망설이고 있자, 핸드백을 도난당했던 그 여인이 다가왔다.
“제 핸드백을 구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핸드백을 구했습니다. 아까 사라졌던 그 사람은 이제 다시 여기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내 도움이 컸다고?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런데 무슨 도움을 주었다는 것일까?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핸드백, 분명 도난당했을 것이고 우리들은 다시 불행해졌을 것입니다.”
“그 핸드백이 대체 무엇입니까?”
“이 핸드백은…”
4,
"드디어, 녀석을 소유했군. 이제 이 주사만 놓으면, 놈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돼.”
"그런데, 또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놈은 걸어갈 때만 사라져, 투명인간으로 되었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지. 그러니까, 두 손 두 발 다 묶여 있을 때는 사라지지 않아”
"그런데, 그렇게 잘 사라지던 놈이 왜 우리 손에 잡힌 거지? 이해가 안 가. 능력이 사라진 걸까?”
"무슨 헛소리야. 능력이 사라지면, 우리한테 아무 쓸모가 없잖아. 그럴 리 없을거야"
"그래서… 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 그토록 안 잡히던 녀석이 우리 손에 이렇게 쉽게 잡힐 리가 없잖아."
바람과 바다는 순간 뭔가를 놓쳤음을 감지한다.
"아차, 녀석을 혼자 뒀어. 이 주사기에 신경 쓰느라. 빨리 가보자.“
5.
나는 녀석들에게 잡혀 왔다. 눈이 가려져 있었고 두 손이 묶여 있고, 두 발도 묶여 있었다. 나는 왜 잡혀온 것일까.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돈도 없고, 이렇다하게 원한 질 일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단순 살인자들일까?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함. 어릴 때 미래가 두려워서, 그래서 시를 썼다.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그 두려운 미래가 지금 내 앞에 닥쳐왔나 보다. 그 녀석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들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리를 내어 본다. 아무 반응이 없다. 또 다시 큰 소리를 한번 질러 본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를 구원해줬던 소리들.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를 구원했던 소리들. 그 소리들은 나를 정신병원에 갇히게 했고, 그 정신병원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를 드나들곤 했다. 정신병원에선 아무도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현실에선 사라져도 화장실 갔다 온 줄 알고, 미래의 정신병원에 가도 내가 병이 있는 놈이니 그런가보다 한다. 시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전혀 다르지만, 나는 한 병원에서 시간을 초월하며 살았던 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과거와 미래, 현재를 오가는 나. 아, 이것을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연습했었다. 미래와 과거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방법을. 그렇다면, 혹시 그 녀석들이 나의 이런 상태를 아는 것일까. 만약 안다면 그 녀석들은 나를 잡으러 보낸 미래의 터미네이터 같은 것일까.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다행이다. 손가락은 묶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고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면 미래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래는 세 바퀴 반을 돌리면, 몸이 붕 뜨면서 미래로 가게 되는데, 이번엔 아니다. 다시, 네모를 그려보았다. 네모를 세 바퀴 반 돌리면 과거로 가게 되어 있다. 이번에도 되지 않는다. 아,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녀석에게 잡힌 채 이대로 지내야 하는 것일까. 그 순간, 내 입에서 저절로 어떤 말이 튀어나온다. "치치치치 차차차차차 쵸쵸쵸쵸춏 츠츷츠츠츷"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춰지지가 않았다. 나를 보고 있을 줄 알았던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린 건, 문이 딸깍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난 뒤였다. 이윽고,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녀석 어딨어? 또 사라진 거야?” "거봐,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잘 찾아봐. 그 녀석 투명인간이 되어서 이 방 어딘가에 있을거야. 문 못 나가게 막고” 그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또 어딘가로 소환되고 있었다. 묶여 있던 손이 풀리고 발도 풀렸다. 그리고 눈가리개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려 했으나, 따가운 햇살이 나를 막았다. 실눈을 뜨고 천천히 눈을 뜬다. 그 녀석들이 다시 보인다.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그런데 그 녀석들은 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자세히 얼굴을 본다. 분명, 그 녀석들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그 녀석들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녀석들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한다. 참, 알 수 없는 일이 내게 생긴 것이다.
달라진 돌파구
01.
“한희야!”
“왜 불러?”
“나랑 놀자!”
“엄마 왜 그래?”
“장난 한번 해 봤어!”
“근데, 뭐 먹는 중이야?”
“호빵”
“왜 이렇게 조금씩 먹어?”
“목 말라서”
“음료수에 마시게?”
“음료수가 참 맛있어. 최고급 과일로 갈아 만든 건데, 세 번씩이나 농축한 거래.”
“말이 돼?”
“뭐가?”
“과일을 세 번씩 농축하면, 그게 음료수야?”
“그게 음료수가 아니고 뭐야?”
“내가 보기엔 그건!”
“그건?”
“밥풀이야”
“한희야!”
“농담 같은 진담!”
02.
“엄마가 호빵 줄게!”
“엄마, 나도 호빵 있어.”
“그래도, 내가 주는 호빵은 달라”
“어떻게 다른데?”
“말을 해.”
“그게 무슨 소리야?”
“한번 시험해 볼까?”
“진짠지 한번 보고 싶네.”
나는 호빵을 한희에게 주고 호빵에게 말을 시켜보라고 했다.
“호빵, 너 진짜 말해?”
“빙그레.”
“뭐야 그게?”
“다시 한번 해봐.”
“호빵아, 웃지 마.”
“흑흑!”
“엄마, 진짜!”
“재밌잖아.”
“하나도 없어, 재미.”
“그럼 뭐 재밌는 거 없어?”
“엄마?”
“응?”
“내 호빵 어디 갔어?”
“안 속아!”
“아니, 진짜로 내 호빵 어디 갔어?”
“응?”
“나, 방금까지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장난치지 말고.”
“장난이 정말 아니고.”
“아니라고?”
“진짜로 사라졌어.”
“잠깐만.”
나는 한희와 함께 집안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호빵아, 호빵아.”
“엄마, 뭐하는 거야?”
“날아갔을지도 몰라서 찾고 있어.”
“그게 말이 돼?”
“호빵이 말하고 날아다닌다는 것을 믿으면.”
“믿으면?”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질 텐데.”
“엄마, 무슨 엉뚱한 소리야?”
“그걸 믿으면.”
“응.”
“호빵을 통째로 삼킬 수가 있어.”
“엄마, 무슨 헛소리야? 호빵을 어떻게 통째로 삼켜?”
“통째로 삼키면.”
“응.”
“아주 재미있는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거야.”
“엄마, 그 말 정말이지?”
“정말이야. 한번 믿어보지?”
“잠깐,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엄마가 여태까지 너를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아, 맞다.”
“그럼, 믿을 수 있지?”
“아, 믿을 수 있어. 엄마는 직업이 없지.”
“그래, 맞아. 아빠도 없고, 직업도 없는데, 널 어떻게 키웠겠어. 호빵 덕분이야.”
“아, 그럼?”
“그래. 너도 믿어 봐. 이제 나의 호빵을 너에게 물려줄 때가 됐어.”
“그래야겠네.”
“호빵아, 호빵아. 어디 있니?”
“엄마, 호빵이 대답 안해?”
“안 하네.”
“내가 불러볼게.”
“그래.”
“호빵아, 호빵아!”
“나, 여기 있어. 여기 너무 캄캄해.”
“어, 호빵이 드디어 대답했다.”
“엄마, 호빵 목소리가 원래 이래?”
“아니, 원래는 아주 어른스럽고 중후한 남자 목소리였는데, 갑자기 애기 목소리는 왜 나는 거지? 호빵아, 너 누구니?”
“나, 방금 태어났어.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캄캄해? ”
“아, 또 태어났구나. 캄캄해?”
“응, 여기 너무 캄캄해. 나 좀 꺼내줘.”
“얘!”
“응?”
“화장실 가서 꺼내야겠다.”
“아, 진짜!”
“빨리!”
“알았어!”
03.
“엄마, 얘야?”
“잘 씻었지?”
“호빵이 먹을 것처럼 안 생겼네?”
“얘!”
“응?”
“진짜 호빵이면 먹었지.”
“아, 이름이 그냥 호빵이야?”
“응. 내가 그냥 호빵이라고 부르는 거야.”
“아, 그런 거야?”
“응. 호빵처럼 즐거움을 주라고 호빵이라고 불러. 우리 호빵 먹으면 즐겁잖아.”
“아, 그런 거구나.”
“근데, 얘는 왜 내 뱃속에 들어가 있었지?”
“호빵아, 너 거기 왜 들어가 있었어?”
“어, 나 지금 태어난 거 아니야?”
“아, 그런 건가?”
“엄마, 호빵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어?”
“처음에?”
“응.”
“호빵아?”
“응?”
“너 아빠가 누군지는 아니?”
“내가 아빠도 있어?”
“있을 리가 없나?”
“없을 걸.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작아? 둘은 이렇게 큰데?”
“아, 그게 문제네.”
“잠깐만, 호빵, 너 남자야, 여자야?”
“그런 것도 있어?”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먹기도 해야 돼?”
“잠깐만, 얘 생식 기능이 아예 없네.”
“먹으면 안 되겠다.”
“호빵아, 너 왜 거기 있었는지 몰라?”
“응. 나 태어나보니 캄캄했고 밝은 데로 나오니까 둘이 있네. 나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빠는 갔나 보다, 한희야.”
“아, 그럼?”
“얘를 남겨 두고 갔나 봐.”
“엄마?”
“응?”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호빵을 처음 알게 된 건.”
“알게 된 건?”
“네 아빠를 알고 나서부터인데.”
“응.”
“호빵이 아빠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호빵이 데려갔어. 아빠를. 그래놓고.”
“그래놓고?”
“나한테 와서, 아빠를 살리고 싶으면 자기 말을 들으라고.”
“어?”
“호빵이 우리를 먹여 살린 거 아니야?”
“호빵이 아빠를 데려갔으니까, 자기가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고 자기가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어.”
“아, 그럼?”
“호빵이 없으면, 우리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어. 그런데, 이 애를 남겨놓았다는 건, 이애가 우리를 먹여살려야 하는데.”
“엄마, 나 직장 구하면 되는데.”
“스무 살인가?”
“응. 이제 나 직장 구할 수 있어.”
“그래?”
“내가 이 호빵 아이 먹여 살릴… 아니지. 얜 안 먹어도 되지.”
“얘가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살아야지.”
“그럼?”
“당장 직장 구할 수 있어?”
“얘는?”
“내가 데리고 있을게.”
“그래, 알았어. 당장 전화해 볼게.”
“선불 받아야 되는데.”
“가불해 주는 직장으로 알아볼게, 선불이 아니라.”
“알았어.”
04.
“직장은 구했어?”
“응.”
“가불은?”
“받았어, 3개월치 먼저 받았어. 중간에 그만두거나 하면, 두배로 변상해야 돼.”
“그럼, 이제부터.”
“나, 잠만 자고 바로 회사가야 돼.”
“이 애는 내가 데리고 자?”
“응.”
“알았어. 호빵아, 자자.”
“자는 게 뭐야?”
“잠도… 안 자는구나, 참…”
“엄마, 얘 안 자면 어떻게 해야 돼?”
“엄마도 못 자.”
“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호빵아빠가 있으면 해결되는데, 어디로 간 거지, 대체.”
“호빵아빠는 자?”
“자는 게 아니고, 호빵아빠는 내가 잘 때면 다른 데 어딘가로 갔다 와. 그런데, 이 애는 안 자면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 난 자야 되는데.”
“괜찮을 거야. 자고 회사 가.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알았어, 나 잘게”
호빵아이는 뭐가 좋은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호빵아이에게 대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라고 부르면 돼?”
“그래. 엄마라고 불러.”
“아니야, 내가 엄마야.”
“응?”
“내가 엄마고, 이 분은 할머니. 호칭 헷갈리지 마.”
“그래? 그럼, 이쪽은 엄마, 이쪽은 할머니?”
“한희야, 그냥 내가 엄마하면 안돼?”
“엄마, 나 잘게. 내일 아침에, 아니, 나중에 얘기해.”
“알았어.”
“엄마라고 불러, 할머니라고 불러?”
“호빵아.”
“응?”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 그럼 둘다 엄마라고 부를래.”
“응?”
“이쪽은 한희 엄마, 이쪽은 한 엄마.”
“아, 그래. 알았다.”
“그럼, 나 정말로 잘게”
“그래, 알았어.”
“호빵아?”
“응?”
“너는 정말로 왜 거기 있었는지 몰라?”
“응.”
“왜 거기에 있었을까.”
“근데, 한 엄마.”
“응?”
“엄마가 먹는 거 그거 나도 먹으면 안돼?”
“먹을 수 있어?”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그거 뭐야?”
“이거 빵이라는 건데?”
“무슨 빵?”
“찐빵.”
“나도 줘.”
“그래, 여기 조금 떼어줄게”
나는 호빵아이에게 찐빵의 한 부분을 살짝 떼어서 건넸다. 호빵아이는 그 빵을 맛있게 쩝쩝 먹었다.
“맛있어?”
“응.”
“더 줄까?”
“응.”
“그래, 더 줄게.”
“응.”
나는 찐빵의 부분을 조금 더 떼어서 호빵아이에게 건넸다. 호빵아이는 또 찐빵을 맛있게 먹었다.
“어때?”
“너무너무 맛있어. 더 줘.”
“응?”
“그거 그냥, 나 다 줘.”
“응.”
나는 찐빵을 통째로 호빵아이에게 건넸다.
“엄마도 먹어야 되는데?”
“엄마도 먹어야 돼?”
“응.”
“그럼, 잠깐만.”
호빵아이가 입 속에서 우물우물거리더니, 호빵의 일부를 입에서 뱉어내고는, 거기에다 바람을 훅 불었다. 조금 후, 호빵 세 개가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먹어 봐.”
“너도 할 줄 아는구나.”
“나도?”
“아빠도 그랬는데.”
“아, 그런 거였구나.”
“응!”
“호빵아.”
“응?”
“앞으로 우리 계속 먹여 줄래.”
“응. 그럴 수 있어. 근데, 꼭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
“아빠라고 했던 그 사람.”
“응.”
“그 사람을 찾아줘.”
“아, 그래야지.”
“그럼, 내가 먹여줄게.”
“그럼, 한희 직장은 어떡하지?”
한희의 잠꼬대가 무르익어갈 무렵, 호빵아이는 찐빵을 먹고 나랑 조금 얘기를 하더니 놀랍게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호빵아이도 꿈결에서 아빠를 찾고 있는지, 아빠, 아빠를 계속 외쳐대었다. 나는 꼭 호빵아이의 아빠를 찾아주리라 다짐했다. 한희는 직장을 계속 다녀야겠지. 한희의 인생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미더움으로 다가왔다. 한희의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떨었다. 호빵의 아빠가 없다는 사실은 내게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이상한 탐정, 신통한 만남, 그 졸렬한 서막
1. 만남
나는 영업부장 신통한
소수의 고객만을 책임진다
소수에게만 드리는 기쁨!
명함을 받아든 이상한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한이 제일 싫어하는 녀석들이 바로 영업을 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이상한의 눈에 영업을 하는 인간들은 모두 사기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들을 그럴 듯한 말발로 현혹시켜 일단 자신의 고객이 되면 마치 VIP처럼 모실 듯하지만,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기는커녕 마치 지나가는 개처럼 대하기도 하는 녀석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엔 순진하기만 했었다. 그가 친절한 영업사원에게 몇 번 사기를 당하면서부터는 그의 생각은 차츰 달라져갔고, 그는 그 영업사원들 때문에 경찰이란 직업까지 택했고 경찰 역시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체질에 안 맞아서 1년 만에 경찰 생활도 접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이상한 탐정 사무실'이란 허가도 되지 않은 '탐정'이란 이름을 붙여 신장개업을 한 것이다. 그 탐정 사무실이라는 것이 '사업자 등록'을 한 사무실이 아니라 이상한 스스로가 막노동하고 공장 일을 하면서 모은 재산으로 만든 개인사무실이다. 이름만 '탐정 사무실'이었지 아무도 의뢰를 하지 않는 철저하게 은둔하고 있는 이상한의 거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무실에 뜬금없이 신사복 차림의 정장을 한 '신통한'이라는 자가 나타나 그의 맘을 심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보십시오. 신통한씨, 차를 파실 생각이라면 다른 곳을 알아보십시오. 이따위 고급차를 살만큼의 여유가 제게는 없습니다.”
신통한은 움찔했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살펴보았다. 어디를 보아도 차를 판다는 내용은 없었다.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신통한은 일부러 단 세 줄의 홍보용 문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자. 미처, 말도 하기도 전에 고급차를 파는 영업사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 버렸다니. 또한, 이따위 고급차라니? 사무실은 겉보기에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신통한은 자신이 사무실로 들어올 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탐정 사무실? 특이하군. 한국에서도 사립탐정이 활동하고 있었다니.' 신통한은 이 정도의 탐정 사무실을 차릴 정도라면 적어도 고급차 한대 정도는 구입해야 할 듯싶었다. 안전도가 최우선인 고급차 말이다.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고급차를 경멸하며, 또한 그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가 그렇게 부유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통한씨,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영업경력 20년의 신통한이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될 문제는 아닐 성 싶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고급차를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군요. 신통한씨. 우선 당신의 옷차림을 보십시오. 당신은 고급 정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보십시오. 소수에게만 드리는 기쁨! 이라고 써 있군요. 과연, 이 좁은 한국에서 그렇게 고급정장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더구나 영업사원이?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이 왜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았는지가 더 궁금하군요. 돈 많은 사장님들을 접대하기도 바쁘실 텐데요. 하지만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정장은 부유한 사장님들이 있는 것보다는 약간 낮은 패션이군요. 사장님들이 당신보다는 높은 사람인 것을 인식해야 될 테니까요. 그래서 고급이라는 것은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것은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함부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거 같군요. 그리고 그것은 알고 보면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스스로 풀어보도록 하십시오.”
신통한은 이상한의 강렬한 눈빛에 빨려들었다. 그에게는 분명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신통한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상한의 말대로 신통한은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스스로 높으시다는 양반들만을 상대하는 고급인력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이상한 곳까지 끌려 들어오다니.
신통한은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이상한을 바라보았고 이상한도 신통한을 그냥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신통한의 머리에는 온갖 생각들이 춤을 추었다. 이대로 나갈 건가, 좀 더 있을 건가, 저 탐정이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데,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그냥 뚫어지게 보고만 있을까.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상한은 신통한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통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허리춤을 바라본다. 아니, 언제 이렇게. 그의 허리춤에는 몇 종류의 차키가 매달려 있었고 차량에 대한 설명이 가득한 서류가 그가 들고 온 가방 위로 삐죽이 드러났다.
"영업사원 맞습니까? 그렇게 서툴러서야 무슨 영업을 한다고…”
그것은 신통한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다. 아니, 겨우 이런 모습을 보고 나를 서툴게 평가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건가. 신통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상한을 바라보았다. 이상한은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신통한의 얼굴을 보더니,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놀란 표정이군요. 무엇 때문에 그리 놀라십니까? 나가지도 않고, 딴 사람처럼 멍하니. 매력 있네요.”
아니, 이런. 남자한테 이런 고백을 듣다니. 같은 남자면서. 당황하는 신통한의 표정을 보더니 이상한이 다시 말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전 저의 사랑스런 부인이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 그 뜻이 그 뜻이 아니었구나.
"서툰 게 매력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업사원을 하시는군요. 잘 하시겠네요”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자, 제 명함입니다. 나중에 제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저는 고급차를 살 여유는 없습니다.”
아까보다 한참 부드러운 말투로, 명함을 건네는 걸 보면, 이 사람, 잘 사귀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꼭, 차를 살 고객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나눌 친구로. 그런 사람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업사원이 된 뒤, 신통한에게서 멀어진 친한 친구도 있었다. 신통한은 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친구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이상한이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그런 친구가 되기 힘들긴 하지만, 신통한은 그런 고정관념이 깨지길 바랐다.
이상한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어려움이 없다면, 이상한 친구.
어려움이 있다면, 이상한 탐정.
신통한은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상한도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중에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을 한다. 이상한도 신통한도 그 무언의 약속이 그들 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들지 몰랐다. 이상한과 신통한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첫 의뢰
이상한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손님 없으면, 내일은 또 공사장에 나가봐야겠군.' 후…… 한숨을 쉬는 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법으로는 금지된 탐정사무소이지만, 그의 사무실에 들어와 불법이라며 사무실을 내리라는 경찰도, 그를 기소하는 검찰도 없었다. 이상한에게는 다소 도박일 수도 있는 사무소 개업이었는데, 나름 다행이다 싶긴 했지만, 이상한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리 열심히 생각을 해봐도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었다. 그가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눈을 감아줄 가능성도 있고, 앞으로 탐정이란 직업이 허가될 예정이기에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만큼 이상한의 존재가 작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데……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이상한이 한참 고뇌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 누구지…?'
이상한이 문을 열자, 조금은 엣 되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탐정 사무실이라고 해서요. 저, 고민 있어서 왔는데요?”
"고민?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 고등학생이요. 여기 가면, 고민 들어줄 거라, 누가 그래서.”
"누가 그런 말을? 그런데, 무슨 고민입니까?”
"어떤 검은 정장을 입으신 분이요. 제가 놀이터에서 울고 있으니까, 이리로 한 번 가보라고 했어요.”
"검은 정장?”
이상한은 짐작 가는 바가 있으나, 그 학생에게는 그 신사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 고민이 뭡니까?”
"어, 아저씨는 제가 학생이라고 밝혔는데, 반말을 안 하시네요?”
"어색합니까? 어색하면, 반말로 할까요?”
"아니요. 저를 무시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다른 애들은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면, 왠지 부담스럽다고 하는데, 저는 아니에요. 그렇게 대하실 때 저는 제가 존중받는다고 느껴요. 길에서 만나는 아저씨들도, 아주머니들도, 그리고 선생님도 제게 반말을 하는데, 저는 그게 친근감의 표현으로 안 느껴져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상한은 한동안 그 학생을 바라본다. 그 학생도 이상한을 말없이 바라본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상한은 학생에게 물어볼 말을 찾았다.
"고민이 뭡니까?”
"방금 말했어요.”
"그렇습니까?”
"네. 그것 때문에 많이 울어요. 아까도 그래서 울었어요. 아, 그런데, 아저씨, 상담료는 얼마에요? 저, 여기 자주 오고 싶은데.”
"주고 싶은 대로.”
"저, 돈 많이 드려도 돼요?”
"부자십니까?”
"네. 아버지는 JK 그룹 사장님이시구요. 어머니는 현장특별시 시장님이세요. 한번 올 때마다 50만원씩 드릴께요. 1주일에 한 번씩 올 거에요.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랑 같이 있어주세요. 매주 토요일마다 올 거에요. 해 주실 수 있죠?"
이상한은 한동안 그 학생을 쳐다보았고, 대답하는 대신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학생 이름이 뭡니까?”
"저, 이름 안 말하고 싶어요. 그냥, 샘물이라고 불러주시면 안돼요?”
"이름은 안 말하고 싶고. 샘물이라고 불리고 싶다. 그럽시다. 현금 결재입니까?”
지금까지 어둡기만 했던 학생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러더니 지갑에서 즉시 5만원권 10장을 꺼낸다.
"50만원이요! 아저씨 정말 좋아요. 아무것도 자세하게 묻지 않으시고, 화끈하시고. 그럼, 오늘부터 저, 아저씨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오늘 토요일인데!”
이상한은 오늘이 토요일이란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내일 공사판에 갔더라면 허탕치고 올 가능성이 많았겠군.' 그러면서, ‘이 학생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아직은 날이 좋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아저씨! 저랑 게임방 가요!”
이상한은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군, 하면서 샘물이라 불리고 싶어 하는 그 학생의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3. 미행
신통한은 학생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유 없이 울고 있던 한 학생. 이유 모를 만남. 학생을 이상한에게 안내하는 자신의 마음이 뭔가에 홀렸음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통한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신통한은 그 학생이 이상한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로 들어가네?' 어느 낯선 남자의 소개. 그 이상한 소개가 그 학생을 이상한에게로 이끌었다. 그 이상한 힘을 신통한은 알 수 없었다. 신통한은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 왜 울고 있어?”
"아니, 아저씨? 아저씨는 울고 있는 학생에게 일일이 신경 써요? 참 특이한 아저씨네?”
"일일이 신경 안 써. 오늘만 신경 쓰는 거야.”
"왜요?”
"이상한 탐정을 만났거든.”
"이상한 탐정?”
"이름이 이상한.”
"음……그게 이름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상한이 이름이라는 거예요?”
"이상한이 이름. 이름처럼 이상해.”
"어, 왠지 관심 간다. 어딨어요, 그 아저씨?”
울음을 뚝 그친 학생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이 상황은?'
"저기 저 건물 2층에.”
"어떻게 찾아요?”
"앞에 써 있어.”
"고마워요.”
이 대화가 끝이었다. 학생은 더 이상 신통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신통한은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다시 피게 되면 두 번 다시 못 끊을 것 같아 피우지 않았다. 끊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은 담배만이 아니었다. 이상한 탐정. 그가 건넨 명함에 새겨진 문구 "어려움이 없다면, 이상한 친구. 어려움이 있다면, 이상한 탐정.” 기가 막힌 문구였고, 기가 막힌 친구였다. 그 문구에 의지해서 한 학생을 발견했다. 학생은 울고 있었다. 그것도 소리 내어 펑펑. 마치 누군가 자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신통한은 자신이 지금 일하러 나왔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차피, 먹고 살 만큼 돈은 많이 벌었다. 이제, 외근은 그만해도 될 만한 위치다. 그럼에도 신통한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외근을 계속해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저 멀리 그 학생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것은, 학생의 표정이 너무 밝아졌다는 것이다. 너무 신나게 팔짝팔짝 뛰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뒤에는 이상한 탑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심각한 표정이 학생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학생이 이상한에게 빨리빨리 가자고 조르는 듯 했다. 이상한은 가끔 그 학생을 향해 살짝 미소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미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은 씁쓸해 보였다. 신통한은 이상한이 그 학생에게서 뭔가를 눈치 챘는데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는 무엇을 하는 학생일까. 그러고 보면, 신통한은 그 학생에게 정말로 학생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냥, 울고 있길래 무작정 이상한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신통한은 결정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기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판매보다 더 큰 건이 걸려있을 거란 본능적 느낌이 그를 휘감기 시작했다.
문득, 방문판매가 불법인 법안이 될 거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기억났다. 이제 시대는 바뀌고 있다. 더 이상 고객을 불쾌하게 하는 방문판매는 하지 못할 것이며, 이제 본격적인 온라인 네트워크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면, 신통한의 영업도 끝이 난다. 신통한은 지금 이상한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신이 일구어왔던 지금까지의 경험,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해질 것 같은 절박감이 몰려왔다. 이상한이 신통한을 봤는지 안 봤는지 신통한은 알지 못했다. 다만, 멀찌감치 서서 그들을 지켜보다, 그 학생과 이상한이 4차선 도로가 있는 길가가 있는 곳으로 가자 부리나케 따라잡았다. 거기엔 상점들이 일렬로 나열해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중 하나의 건물로 그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 건물은 5층짜리 건물로, 4, 5층은 대중목욕탕, 찜질방이 있었으면, 3층은 PC방, 2층은 당구장, 1층은 식당이 대형 평수로 있는 큼직한 건물이었다. 신통한은 그 중 어느 곳으로 그들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한이 무슨 생각에 그 건물로 따라 들어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 학생과 이상한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지, 더더욱 의문이 남았다. 신통한이 그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이 이미 보이지 않았기에, 신통한의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 갔다. 조금 고민하던 신통한은 이상한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가 돌아오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신통한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이상한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이상한에게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가 지금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부여잡을 수 있는 가치, 그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신통한은 이상한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신통한은 거기에 새로운 안내문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상한 탐정 사무소 - 지금은 아무도 없으나 그대가 원한다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그 "곧”이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으니, 기다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운명이니까요!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에 한하여 연락 주십시오. 연락처는! 꺼턱* 아이디 : 께림칙해.”
신통한은 그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이상한의 꺼턱으로 이상한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 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검색을 해 보았다. 역시 되지 않는다. 신통한은 할 수 없이, 그를 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의자가 없을까. 신통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기하다. 마치 그가 다시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쪽 편으로 조그만 의자가 하나가 놓여 있다. 낡고 낡아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신통한은 그 의자가 분명 이상한의 사무실에서 보았던 의자였음이 기억났다. 이상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신통한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록되었던 자신의 영업실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의자의 삐그덕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으니, 그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허름한 사무실이이서, 오직 이상한 탐정 사무소만이 유일하게 간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무실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다. 신통한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이상한과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냥 더디지만은 않았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면서도 신통한은 기꺼이 그의 반응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래도록 이상한과 만났던 첫 만남을 다시 되새겨보면서 말이다.
*꺼턱 : 카카오톡과 비슷한 어플. (기능은 카카오톡과 같으나 조금 다른 버전으로 실존하지 않습니다)
4. 조용한 만남
뻐끔뻐끔 담배를 피는 조용한의 눈에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유심히 누군가를 관찰하는 모습이 마치, 그를 납치라도 하려는 듯한 기세였다. 조금 후에 보니, 그는 저 멀리 사라져갔다. 그의 앞에 있던 누군가도 어느 덧 조용한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조용한은 피던 담배를 끄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담배 탓인 듯 했다. 그의 시야를 가린 뿌연 담배연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을 놓친 것 같다. 조용한은 공원을 가로질러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쫓고 있는 듯 했다. 그의 모습은 아무래도 뭔가 영 어색했다. 뒷모습에서 그의 불안이 느껴졌다. 조용한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가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조용한은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았다. 조용한이 주시하던 그가 조금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조용한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은 그가 들어간 건물로 들어가 1층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1층은 조그마한 헌책방이 있었다. 사람이 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그 책방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열 댓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사람이 열 명이 넘게 있어, 사람들이 아주 많은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 조용한이 찾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은 좁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조용한은 의자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불안해 보였다. 조용한은 한동안 그를 관찰하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조용한을 보더니,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용한은 그의 목소리가 꽤나 밝고 중후하다는 데에 놀랐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조용한에게 느껴졌다.
"실례지만,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예,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뭐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조용한이 말을 이어가기 전에 그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와 대화가 가능하신 분입니까?”
조용한은 뭔가에 찔린 듯, 뜨끔했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어.'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쫓던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할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쫓던 사람이라뇨? 그런 사람 없습니다.”
조용한은 이상한 탐정 사무소라는 푯말을 뚜렷이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상한 탐정 -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 중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보다 당신 신분증 있습니까?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조용한은 조용히 검찰배지를 그에게 내밀고, 그의 신분증마저 내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갔음을 알게 되었고, 뭔가 거대한 파도가 그를 휩싸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조용한 검사님. 신통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외판원입니다. 저는 단지, 차를 팔기 위해서 잠깐 들렀을 뿐입니다.”
조용한 검사는 이 뻔한 거짓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고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신통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체포하거나, 이상한씨를 체포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과 얘기하셨던 그 학생, 그 학생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학생,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통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통한은 조용한에게 얼른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고, 조용한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그러면서 조용한은 한편으로 자신이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에게 접근하기 위해 조용한은 너무 심한 거짓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5. 샘물투어
이상한과 학생이 간 곳은 조금 오래된 건물이었다. 샘물이라 불리고 싶어 하는 그 학생은 애초에 PC방이던 행선지를 들어서면서부터 바꾸었다.
“아저씨, 우리 이 건물 투어해요!”
“투어라니요?”
“투어 모르세요? 이 건물에 음 보자… 1층에 식당이 있네… 우선 밥부터 먹어요!”
“그러고 싶으십니까?”
“네! 오늘 저한테 쓰기로 하셨잖아요!”
“네, 그렇게 합시다.”
“아 좋다! 식당에서 밥 먹고, 당구장에서 한 시간 당구치고, pc방에서 2시간 게임하고, 찜질방에서 남은 시간 보내면 되겠어요! 아저씨, 당구 칠 줄 아시죠?”
“30 칩니다”
“푸하하하하하… 진짜요?”
“딱 한번 쳐봤습니다.”
의외의 반전이라는 듯, 샘물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한은 살짝 겸연쩍은 미소만 띄운 채 그 학생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저씨, 뭐 먹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제가 골라야 됩니까?”
“네,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네 맘대로 골라, 내가 사 줄게! 이런 거요.”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식당 한번 둘러보면서 결정하겠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샘물은 1층의 식당을 쭈욱 둘러보다, 별을 봐 레스토랑이란 곳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별무늬가 아록다록 새겨진 정장을 입은 희한한 복장의 남자 웨이터가 그들을 맞이했다.
“저랑 이상한 아저씨, 두 명이요.”
“이상한 분이신가요?”
“아, 음… 네! 이상한 분이에요.”
그러면서 샘물은 또 까르르 웃었다.
“예, 이리로 오세요!”
이상한과 샘물은 역시 별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벽장식이 있는 곳을 지나, 별모양이 새겨진 나무탁자로 소개되었다.
“으와, 별천지다! 정말, 오늘 좋아요. 너무너무 행복해요.”
샘물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이상한은 샘물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말했다.
“행복하시다니, 저도 기쁩니다. 샘물님은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십니다.”
샘물의 눈에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입가엔 미소 같은 것이 아로새겨졌다. 그 미소는 정말로 행복할 때만 나올 수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얼마나 오래가게 될지, 이상한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 행복을 붙들고 있기를 이상한은 간절히 소망했다. 이 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오늘만은 이 학생의 소원을 마음껏 풀어주기로 했다. 어떤 사건이 이상한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한의 날카로운 눈은 샘물군의 내면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한이 알 수 있는 건, 샘물군을 좇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란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이상한은 주위를 경계했다. 그때,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이상한은 메뉴판을 보았다. 별봐 돈가스. 별봐 함박 스테이크. 별봐 무제한. 별 봐 무제한 메뉴엔 5만원이란 표시가 있었다. 돈가스와 스테이크메뉴 가격의 무려 다섯 배 차이였다.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별 봐 미니우동이란 글씨가 조그맣게 쓰여 있고 3000원이란 표시가 있었다. 이상한은 알 수 없었다. 5만원이나 내고 미니우동을 먹으려면 3000원을 또 내란 말인가? 그때, 샘물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거 다 주세요!”
“손님, 무제한 메뉴는 돈가스 스테이크 미니우동까지 포함한 가격입니다. 그걸로 드릴까요? 1인당 5만원입니다.”
“아니요, 무제한 메뉴 1인분 주시고, 돈가스 스테이크 미니우동 1인분씩이요. 아저씨, 장사하지 마시고요!”
“아, 손님 죄송합니다. 혼자 계신 줄 잠깐 착각했습니다. 앞에 있는 분이 잠시 잠깐 제 눈에는 안 보였습니다. 그렇게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샘물은 잠깐 앞의 이상한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외계인이거나 초능력을 가진 인간 같은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눈에도 잠깐 안 보였던 것 같은데요?”
“착각하신 걸 겁니다.”
“그렇겠죠?”
울음을 그친 샘물은 이제 조금 멍한 눈으로 이상한을 쳐다보았다. 별무늬로 새겨진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샘물의 눈으로 들어왔고, 이상한은 샘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예, 뭘요?”
“여기에 저를 데리고 온 이유 말입니다. 샘물님은 애초부터 이 식당으로 저를 끌고 올 계획이 아니었습니까?”
“아… 그, 그게…”
당황하던 샘물의 눈에 놀라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상한은 진지한 눈빛으로 샘물을 바라보았다. 샘물과 이상한은 그렇게 오래도록 눈빛을 교환하고, 샘물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한은 샘물의 얘기를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경청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상한은 120킬로는 됨직한 거구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샘물은 그 여인을 바라보며 이상한에게 소개시켜 주었다.“아저씨, 저희 이모님이세요. 이 식당의 주인이기도 하구요.”
6. 이상한
조용한과 신통한은 이상한과 이상한이 데리고 있는 학생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상한은 샘물이 말한 이모님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이모님. 정말 이모님이신가요?”
“글쎄요!”
“그렇다면, 여기서 협상을 종료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그렇습니까? 샘물님, 그럼 이만…”
이상한은 조용한을 바라보았고, 신통한을 바라보았다. 샘물과 샘물이 말한 그 이모님이란 분은 이상한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용한은 이상한이 지나가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신통한은 이상한을 바라보는 조용한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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