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속의 과거 the past in the present
당신이 기억하는 것, 믿고 있는 것의 한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면, 그것이 당신을 위한 진실이 될 것이다. If you accept a limiting belief, then it will become a truth for you
by Louise Hay
잠잠이
잠잠이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 기억하는 삶의 조각, 그리고 믿게 된 것은 ‘나도 알아 나도 알고 있어!!’ 라고 주먹 불끈 쥐고 외치는 나다. 잠잠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나에게 ‘그래 넌 잘하고 있어. 그 정도면 잘하고 있었어’ 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던, 위로해 주는 나를 보았다. 그림책심리학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잠잠이의 마지막 바로 전 장면에서 나의 ‘칼의 순간’을 만났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긴 일본 무사칼이 보였고, 대각선으로 베이는 장면이 보이고 배가 얼얼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나의 발을 보았다. 밑이 없는 느낌...아주아주 깊은 동굴 속 낭떠러지, 끝없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있는 몸에서, 나에게 있는 깊은 오래된 무력감을 알아챘다.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주어진 운명의 ‘네 철’을 맞닥뜨렸다. ‘한 해가 네 철이니 좋지 않아요?’ 세 철...다섯 철 아유 안돼요.‘라고 쓰여진 그 잠잠이의 그 텍스트에서 뭔지도 모르겠는 몸의 반응 뿐.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알았지만 말 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했던 순간...
기가 막히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낫노잉
그때 내가 몰랐던 건 뭘까? 지금도 거기서 모르고 있는 걸 뭘까?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나. 나의 오래된 선택적(?) 함묵증이 떠오른다. 아니 그건 선택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말하지 않는 입이 되어버린 거다. 나의 베프 J가 떠오른다. J는 묻지 않는 친구였다. 나도 J에게 굳이 묻지 않는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안다고 달라질까? 그렇지 않았다. 모른다고 달라질까? 그렇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그때 거기에, 그때의 만남에, 현재에 온전히 충실한 시간들이었다. 돌아보니 더 그렇다.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편했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지금도 웬만하면 묻지 않는다. 오래된 나의 몸의 습관, 묻지 않음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물어 보아야 할 순간도 있는데..
아, 떡볶이 먹으러 갈까? 이게 좋아? 저게 좋아? 뭘 원해? 이런 종류는 당근 물었고 또 묻는다.
왜냐하면 중요한 지점들은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그랬고, 내 앞에서 물음을 받고있는 사람들이 그랬다. 무언가 궁금한 일이 생겨도, 얼마간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에 대해 답하려고 할 때, 인간은 하는 수 없이 지금 자기가 아는 것들을 가져다가 말할 수 밖에 없다. 얼른 답하려고 할 수록 그랬다. 몸은 허둥지둥, 머리는 어리둥절, 그런데 입은 말하는 그런 순간들이 나는 이상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바로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엄청 멀리 갔다오곤 했다.
지금도 종종 그런다. 아, 그럴땐 내가 뭔가 딴짓을 하거나 일어났다 앉았다 뭘 왔다갔다 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최소한의 예의? 아니 그거 예의 아닌데... 이제부터는 이렇게 이렇게 말해 달라고 요청해 보려고 한다. 내가 잘 못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뭐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와도 연결되어 있다.
첫댓글 아...이제서야 뚜쎼쌤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쌤에 대한 생경함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어렴풋이 알겠어요.
그래서 뜬금없이
쌤..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네요~~다시^^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