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윤학은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청소부」 「제비
집」 「달팽이의 꿈」이 당선해 등단하여 <시힘>
동인으로 활동 했다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나를 울렸
다』 『짙은 백야』, 장편동화 『왕따』 『샘 괴롭
히기 프로젝트』 『나는 말더듬이예요』 『나 엄마
딸 맞아?』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의 말
부리와 발톱들을 쭉 뻗은 자세로
최후를 맞이한 새를 보았다 새는 멈춤 자세로
최대의 길이를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엔 나머지
체중을 비우지 못해 바닥에 의지한 자세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 눈을 감고 말았다
최대한 부리와 발톱들을 떼어놓으려는
의지의 마침표였다 그것은 새가 자신과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정신의 길이었다
차례
시인의 말
1부
별들의 시간 11
보풀들 12
부레옥잠, 꽃피다 14
도라지꽃밭 15
저물녘 16
아궁이 18
폐등대 20
수레국화 22
디스크 24
저녁뜸 25
대파 술잔 26
눈보라 28
돌 의자 29
덧니 30
우리들이 잠든 자크 속 32
소파베드와 함께 밤을 34
파라핀 오일램프 36
2부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41
우리는 봄 상추밭으로 걸었지 42
옛날 북문시장에 갔다 44
나리와 백합 46
때꼴 47
고야 48
마사토 50
층층나무 단풍들다 52
천변 54
불광동 56
진눈깨비 58
뜬눈으로 나를 기다리는 쪽창에 대하여 60
억새가 피어 62
쭈그려 앉은 그림자 63
쭈그려 앉은 그림자 2 64
3부
벼꽃이 피어 69
율피 70
소나무재선충(材線蟲) 감염지역 72
가는잎오이풀꽃 74
우산이끼 75
밤의 밀레 76
백합(百合)과 백합(白蛤)의 해변 78
영산홍 80
도전(盜電) 82
말코지집 84
캠핑 86
강변의 별장 88
힘줄이 드러난 전기장판 90
맹매기집 91
흙탕물 웅덩이 92
노적가리 93
들국화 94
4부
꽃샘추위 97
제라늄 98
마루기둥 100
송덕리(松德里) 102
메꽃들의 낮 104
첫말 막힘 106
휘파람 소리 108
목공방집 109
첨밀밀(甛蜜蜜) 110
컨베이어벨트 112
도꼬마리 114
가로림만(加露林灣) 116
안경을 쓰자 세 개로 흩어진 반달이 뭉쳤다 118
골목 끝 창 120
시한부 122
에필로그ㅣ 간드레 123
해설 ㅣ오래된 시간 의식과 구원의 언어 - 홍용희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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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간드레
아버지가 금광(金鑛)에 다닐 때 사용한 간드레가 내
방에 걸렸다. 면벽(面壁)을 할 때마다 간드레가 유년
의 시간들을 밝혀주었다. 어느 순간 방안은 금광의
갱도로 변하고 나는 희뿌연 돌가루 속에서 금맥을
찾는 광부가 되었다. 아버지는 열두 살 때부터 금광
에 다녔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방에 걸린 간드레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버지 손을 탄 것이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줄담배를 피우던 아버지는 요
강을 비워 방안에 밀어 넣고 쇠죽을 쑤기 시작했다.
생솔가지 타들어가는 소리와 매운 연기가 방으로 스
며들었다.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오가는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
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
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
이 멥니다.’ 간드레 불을 흔들며 광산에서 돌아오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만날 수 있었다. 주먹 하나로
입을 틀어막고 다른 주먹을 움켜쥔 아버지가 마른기
침을 쏟아내고 있었다. 질끈 감은 눈 속에서 금가루
가 흩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진폐증을 앓았다. 마른기침을 할 때마
다 아버지의 얼굴은 짓무른 홍시 같았다. 마른기침
이 잦아들면 아버지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담뱃불이
필터에서 똑 떨어질 때까지 피우고 그 불똥으로 담
뱃불을 이어 붙였다. 부엌에는 훈제가 되어가는 돼
지비계가 걸려 있었다. 쇠죽을 쑨 불씨를 긁어낸 아
버지는 프라이팬에 돼지비계 고추장구이를 볶고 있
었다. 등을 돌리고 돼지비계 고추장구이를 집어먹
는 아버지의 깡마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궁이로
다가가 ‘아버지 뭐 하세요?’라고 묻고 싶었다. 돼지
비계 한 점 얻어먹고 싶었다. 하지만 입맛을 다시면
서 말을 삼켜야 했다. 아버지는 대를 물려 진폐증을
앓고 있었다. 돼지비계 한 점 받아먹으면 나도 광산
에 다녀야 하고 진폐증을 물려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뜨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지지며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 작심하고 있었다.
밥 뜸을 들이고 들어온 어머니는 밥상에서 벌레
먹은 콩을 골라냈다. 겨울에는 고무 다라에 바지락
을 담아와 윗목에서 깠다. 엄마가 시집왔을 때 산이
란 산은 다 벌거숭이였지. 나무는 고사하고 솔걸(솔
잎) 몇 개 줍기 위해 온 산을 뒤지고 다녔지. 이불이
라도 제대로 있나 냉골에서 밤새 떨었지 뭐냐. 너는
한 번도 바닥에서 잔 적이 없을 겨. 할머니, 할아버
지, 막내 고모가 너를 돌아가면서 품 안에 품고 잤
으니께. 아버지, 엄마가 너를 빼앗긴 것 같아 얼마
나 서운했는지 모를 겨. 네 아버지는 광산에 일하러
갈 때, 그리고 캄캄한 밤중에 돌아와 네 눈을 들여
다봤다. 아버지에겐 네가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지. 네 눈이 아버지에게는 금광이었던 게지.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밖으로 나왔다.
으스스한 바깥마당 쪽마루에 앉아 13킬로미터
를 달려오는 기적소리를 들었다. 어서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떠날 궁리를 하고 살았다. 아래 사랑방 대
청마루 앞 사철나무에 올라가 가지 사이에 가랑이를
끼우고 앉아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여기가 아니라
면 어디라도 좋으니 나는 떠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광산에 다니기 시작한 열두 살 때, 나는 친구와 공
모해 무인도로 배를 저었다. 그다음은 서울 가는 기
차를 탔다. 아버지는 일주일을 못 버티고 돌아온 나
를 추궁하지 않았다. 헛간에 걸린 간드레를 가져오
는 날에도 아버지는 웃으면서 잘 다녀오라고만 말했
다.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며 사는 아들에게 아
버지는 네 집은 여기니, 언제든 돌아올 집이 있으니
갑갑하게 살지 말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그 옛날 아버지의 젊은 날과 함께한 간드레를 보
면서 나는 내가 아버지의 금광이었음을 되새긴다.
아버지가 내 눈을 들여다보았듯 나는 내 글을 들여
다보면서 한 사람의 독자를 상상한다. 이 금광은 내
가 죽어서도 얼마간 폐광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
음이다. 나는 간드레 불을 켜 들고 몸속의 금맥을
따라 나아간다.
첫댓글 기대합니다!!!!!
기다립니다!!
아버님께서 캐신 금이
방밖에까지
찬란히
빛나고 있었네.
저 하늘의 별빛처럼
수
억
광년을 넘어서
저 금빛나는
학별과
술
한 잔 하고 싶으다.
-안양에서 ~~
새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기대하고 고대합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시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사인한 시집 받아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