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퍼하지 마렴. 난 네 곁에 있단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록산 마리 갈리에즈 글/ 에릭 퓌바레 그림/ 박정연 옮김
2025.03.19 12기 최혜린
나에게 표지와 면지부터 따뜻함으로 시작한 책이다. 그리움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까? 따뜻하고 포근한 색이 아닐까? 거기에 딱 맞는 색감과 글에서 할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면서도 바람 속에서 할아버지를 느끼는 아이의 모습이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증조할머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 역시 아직도 증조할머니의 거칠었지만 따뜻했던 손을 기억하고, 다른 손주들에게는 차갑지만 나한테는 한없이 부드러우셨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대가족이었던 시절 증조할머니의 시장길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할머니가 먼저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계시면 난 슬며시 나가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어린시절 구경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시장은 나에겐 행복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시장 가는 길이 즐거웠고, 할머니가 시장에 갈때마다 맛 보여주신 옷핀으로 콕 찍어 먹었던 꼬독꼬독한 해삼 맛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릴 적 기억은 항상 나를 풍부하게 한다. 우리 증조할머니는 항상 은빛머리를 정갈하게 쪽을 지고 비녀를 꽂고 곰방대를 물며 담배를 피셨다. 난 아직도 우리 증조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정하게 오래 사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진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난 중학생이었고 할머니의 장례를 집에서 치르느라 할머니 염하는 것까지 모두 보았다. 난 눈을 감은 할머니가 편안하게 미소 짓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나는 항상 이 책의 아이처럼 한동안은 할머니가 옆에 계시다고 느꼈다.
요즘은 물론 항상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재래시장을 갈 때면 할머니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우리에게 떠난 이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책에서는 알려주고 있다. 바람 속, 햇살 속, 우리가 함께 했던 기억 속에 그들은 남아 있다. 할아버지와 아이의 이야기가 나의 기억과 만나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떠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금 배운 느낌이다. 나중에 나도 나의 아이에게, 나의 손주에게 이런 따뜻함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첫댓글
😭감동^^
혜린님의 진솔한 후기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