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상장례에 크게 어긋나는 짓이 아닌가?
따라서 상례문답을 통해 “상장례를 거행할 때 읽거나 외는 기도만으로도 족한데, 하필이면 큰 소리로 노래하면서 기도하는가? 기쁘고 즐거워하는 데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슬픔을 함께 나누는 상장례에 크게 어긋나는 짓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葬喪場中念經足矣何必朗聲唱誦豈不屬於喜樂而與哀喪之禮大不宜乎)라는 질문에 “… 큰 소리로 부르는 기도는… 그 망자 구하기를 특별히 바라고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고… 이루고자 하는 바를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그에게 붙어 있는 마귀를 능히 쫓을 수 있으며… 우리의 근심은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희망이 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기 때문”(… 歌唱之音經… 特望切願救彼亡者… 爲虔心所擧卽能遂魔而 之… 吾憂不似無望之徒所發之憂也)이라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노래로 장례를 거행하는 이유를 밝혀 주어야 했다.
이처럼 중국과 조선교회가 장례 때 노래하는 이유는 밝혔지만, 악보나 문헌까지 전해 주지는 않았다.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부르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 중국 고유의 가락으로 변했다거나, 처음부터 고유의 가락으로 불렀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분명하고 객관적인 근거까지 제시한 것은 아니다. 악보나 문헌 자료가 전해지지 않은 것은 조선교회도 마찬가지였는데, 「텬쥬셩교례규」가 나온 지 100년도 더 지난 뒤에 자신이 들은 위령기도 소리로 가락의 기원을 제사의 축문 읽는 소리, 상가의 곡(哭) 소리, 불교의 독경(讀經)이나 범패(梵唄) 음률, 굿의 가락, 상엿소리, 시조·민요·가사(歌詞)의 가락 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 가설이다.
■ 「상장 예식」의 기도 가락
오늘날의 「상장 예식」은 장례 미사와 고별식이 중심이고, 이전에 금(禁)했던 만수향(萬壽香)을 피우거나, 상청(喪廳)에 음식을 차리는 것을 허용할 만큼 교회 밖의 문화에 관대하다. 한편 거의 모든 기도에 악보를 첨부하여 가락을 고정하였다. 위령기도를 강의하는 어떤 이는 ‘곡조를 듣고 그것을 악보로 만듦’이라는 의미의 ‘채보’(採譜)라는 말을 오용(誤用)하여 「상장 예식」의 가락들이 「텬쥬셩교례규」를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편 129편과 50편, 연옥도문, 축문들, 찬미경, 자가리아의 성가(즈카르야의 노래), 유동장사예절 외에는 「텬쥬셩교례규」에 없던 기도문들이고, 그 예식서에 있던 기도문들도 모두 현대어로 바뀌었으므로 지난날 연도에서 채보한 것과 똑같은 가락으로 노래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상장 예식」에 있는 기도 가락들이 「텬쥬셩교례규」와 유사한 정조(情調)를 유지하더라도 새로 작곡하거나 편곡한 것이지 결코 채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상장 예식」의 기도 가락은 쉽지 않고, 모든 성인들의 호칭기도는 악보 그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을 만큼 어렵다. 앞으로 「상장 예식」을 개편할 때는 “예규의 규범과 규정에 따라, 거룩한 신심 행사들에서 그리고 바로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전례 헌장, 118항)는 교회의 가르침을 숙고하여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위령기도를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