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신혼부부도 많이 찾지만, 호주에서 워낙 가깝기 때문에 호주인의 휴향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바다의 내음까지 함께 맡을 수 있으며 다양한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 물론, 요즘은 발리의 바가지 물가 때문에 발리 근처인 롬복을 추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발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한 관광도시이다. 도시의 모든 움직임이 관광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리에 대해 자세하게 바라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단지 아름다운 도시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곳은 때론 너무나 슬픈 추억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발리를 가기 위해서는 덴파사르 공항으로 가야한다. 대한항공으로 가든, 가루다를 타든 덴파사르 공항이다. 코타 덴파사르(Kota Denpasar)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귀족의 칭호인 덴 / 손 아랫사람을 호칭하는 덴 / 그리고 나 자신을 부르는 덴 이 모였지만 결국은 "덴(Den)이란 뜻은 경칭을 쓰긴 하지만 한 등급 아래를 의미하는 곳이다. 파사르(Pasar)는 시장이란 의미이니, 이미 단어에서도 무언가 잡동사니가 섞여있는 시장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쉬울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이다. 덴파사르는 발리 제 1의 무역 도시이며, 경제도시이다. 섬이긴 하나 이곳은 무역을 통해 다양한 것을 접했다. 그래서 이들은 끄부다야한 참푸르(Kebudayaan campur)라 이야기 한다. 참푸르? 어디서 들은 단어인데? 그렇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본어의 파생어로 시작된 음식 "짬뽕"과 같은 어원이다. 섞여있는 문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주류문화인 것과 다르게 발리는 힌두교가 대다수인 곳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돼지고기는 발리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발리에서 수하르토 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킬 시점. 그는 주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공산당"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학살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5년 발리에서는 힌두교도와 공산주의자(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10만명이나 학살되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던 그곳이었다. 우리가 기쁘게 밟고 돌아다니던 그 땅은 그 당시 학살된 10만명의 피가 스며들었을 수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없던 그곳에서 외지인들이 한명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곳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관광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10만명이 학살된 슬픔의 현장은 전부 사라졌다. 이제 그 역사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언급하는 사람도 없다. 최근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지만, 그 당시 학살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의 배우에 대해서는 이름이 없다. 아니 이야기 할 수 없엇따. 아직도 그 고통을 숨기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학살이 시작된건 너무나 사소한 것이었다. 단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다". 이 한마디에 피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시대를 과거로 돌려보자. 그 과거는 어디에서나 있기 마련이다. 흑사병을 퍼뜨린 유태인에 대한 비난, 마을의 재앙은 늙은 과부가 마녀였끼 때문이라는 말 한마디. 그리고 우물에 독을 탔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 물론, 실제 사망은 지진 때문이었지만 수 많은 재일 노동자들이 희생 당했다. 우리나라는 그런 역사가 없었을까? 쌀 몇되를 준다는 명목으로 명단에 올렸던 보도연맹. 그 후 몇 년뒤 그 명단은 독이 되어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수근대던 한마디. 그건 다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돌아오게 된다.
그 시작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 더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힐링을 안겨주는 제주도 역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가 땅 안에 스며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들 역시 자신이 빨갱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언어"의 의미 조차 모르고 죽임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참 아쉬운 현실이다.
아름다운 인도네시아의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그러한 모습이 있다. 때론 숨기고 싶은 과거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칼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수 많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처럼. 어쩌면 우리는 펜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게 아닐까?
첫댓글 문명의 시대에는 문명의 이름으로 또 다른 형태의 칼이 존재합니다.
백지 위에서, 사각의 원고지 안에서, 각종 사이트에서 문화와 문명의 이름뒤에 숨긴 수 많은 칼이 있지요
그 수많은 가상의 공간 안에서도 수많은 칼날에 베이고 피 흘리고 아파하고 중요한 나의 부분들을 내려놓고 포기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잃어버리게 되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명검은 명검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빛이 나지요
정재영님의 소중한 글과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이 자유와 정의, 사랑과 민주, 인애와 평등과 용서와 화합을 희망하는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예리한 생명의 '칼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가진 능력이 칼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공포가 재현된 것이겠지요~^^
전 항상 그래왔듯 늘 목표는 콕스바자르를 향해 있습니다~^^ 제가 찍는 사진 한장 / 제가 이야기 하는 말 한마디 / 글 한자는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가 되기 위해서이지요. 다행히 저의 와이프도 301 소속이다 보니, 저와 가족들은 항상 뜻이 맞습니다. 콕스바자르를 시작으로 동티모르까지의 여정을 통해서 소수자 중 소수자인 소수민족의 목소리를 함께 담자고 늘 이야기 하지요.
마침 와이프도, 큰 딸아이도 사진을 좋아해 가족이 함께 그 목소리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 모습은 누군가에겐 칼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방관자의 시선이나 사람을 후벼파는 칼을 가져본적이 없어, 새로운 캐릭터의 시선을 상상해 볼까 합니다.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