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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자기의 인식은 중요하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대한 호칭이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보낸 분이 있다. 보낸 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냐가 보냄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냐를 결정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보낸 사람이면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를 가진다. 바울은 자신과 함께 사도가 된 디도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는 사귈 가치가 없다.
신약 시대 사람들은 믿음, 소망, 사랑을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 같다. 여기서는 믿음과 지식과 소망이 나온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도 약간 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1.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고
2. 경건함에 속한 지식(종교적인 지식)을 전하고
3.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
[딛]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죽음은 누구나 거쳐야 되는 과정이지만 죽음보다 더 큰 말은 영생이다. 종교는 죽음을 논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 죽으면 사라지는데 무슨 종교가 필요한가? 죽음보다 더 큰 영생을 논하기 위해서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다.
영원 전부터라는 것은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실 때부터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전에 이미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 속에 내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곧 우리에게는 약속이 된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다.
[딛]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전도라는 것은 말이다. 당시 헬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말이란 단순히 소리가 아니었다.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발음되는데, 그들은 이 세상이 로고스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동물과 완전히 다른 점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말하지 못한다.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강아지 똘이를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 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는가? 새벽에 동네 시끄럽게 짖었기 때문이다. 변을 보고 싶다거나 고양이가 나타났다거나 이상한 사람이 왔다거나 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표현 방법이 하나였다. 왕왕 짖는 것이었다. 짖는 사유를 말 하지 않고 왕왕 짖기만 하니 동네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소리 지르는 이유를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말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린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신 후 아담이 어떤 말을 하는지 살펴보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담이 하는 말이 곧 이 세상에 의미를 주는 것이 되었다.
그러니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안 되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서는 안 되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 지도자로 세워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말로서 창조하신 것과 같이 이 세상을 전도의 말로써 구원하신다.
[딛]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참 아들이라는 표현은 전도해서 얻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디모데와 디도는 모두 바울에게 참 아들이었다. 진짜 형제는 믿음으로 맺어진 형제이다. 영원한 시간동안 함께 할 형제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형제는 약간의 유익이 되지만, 믿음의 형제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언제나 형제의 관게가 되기 때문이다.
은혜와 평강은 헬라인들의 인사에는 은혜가, 유대인의 인사에는 평강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을 합친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인사에는 좋다(good)는 말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사에는 안녕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이것을 합쳐서 좋은 안녕이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는 것이다. 디모데 전후서를 보면 디모데에게는 긍휼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그것은 디모데가 디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딛]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바울이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디도에게 부탁한다. 디도가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디도는 할례파를 대적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이 헬라인으로써 할례를 받지 않은 사도였기 때문이다. 할례를 받는 것을 구원을 받을만한 공로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디도 사도는 눈에 가시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디도는 고린도 교회를 평정한 이력도 있었다. 디모데와는 다르게 강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행정 능력이 뛰어나서 조직을 정비하는 데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어찌할 수 없을 때 디도가 가서 문제를 해결했다. 바울은 그런 디도를 그레데에 다시 남겨 두고 같은 일을 할 것을 지시했던 것이다.
[딛]1: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딛]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그레데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4배가 넘는 섬이다. 우리나라 제주도 사람들은 서로 너무나 잘 안다. 어떤 집 안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 까지 안다는 말이 있다.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지만 신비감이 떨어지고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많다. 책망할 것이 없는 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과거 전과가 없어야 된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성이 좋지 않고 과거 전과가 있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교회 밖 사람들은 교회를 비웃게 될 것이다.
[딛]1: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나그네, 특히 기독교인 형제들의 여정에 도움을 주는 것은 큰 선이었다. 예전에는 여관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도움을 받아야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돈이 있으면 어디를 가나 호텔에 들어가서 쉴 수 있고 먹을 것도 사먹을 수 있다. 그러나 고대에서 여행자는 항상 강도의 위협을 받았고, 지나가는 지역의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을에 속해 있었다. 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행에 속한다. 항상 받는 것만 좋아하고 주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레데 인들은 신중하지 못했다. 신중 하라는 말은 2장에 걸쳐 6번이나 나온다. 옛날 성경에는 근신하라고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왜 신중하지 못한 것일까? 오직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도 없고 조심할 필요도 없고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의 생각 안하고 자기에게 좋은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의 이익에 합하는 방향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의로움과 거룩함은 그 대상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의로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대할 때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축출하고,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신다.
[딛]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감독의 직무는 스스로 존경 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있지만, 잘못하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사명도 있다. 이 사명을 버릴 때 사람들에게 아부만 하는 아르바이트 목자가 된다. 아르바이트는 일정량의 일만 하고 돈만 받으면 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그 어떤 책임도 없다. 아르바이트 일꾼은 다른 사람에게 듣기 싫은 소리 할 필요도 없고 오버타임으로 일할 필요도 없다.
[딛]1:10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딛]1: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예전에는 교회가 가정에 있었다. 오늘날의 단어를 빌리자면 가정교회이다. 어떤 가정이 자기의 집을 모임의 장소로 제공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많아야 20명 혹은 30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교회였고 그런 교회들이 증평에 있으면 증평교회라고 불렀다. 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 등이 다 그런 명칭들이었다.
어떤 것에 대하여 불순종하는 사람들인가? 은혜이다.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은혜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헛된 말이 나오고 속이는 말이 나온다.
유대인 중에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중에 할례파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들의 몸과 행동의 자랑이었다. 할례를 받은 자신의 몸을 자랑하고 율법이 지시하는 것들을 행하는 것을 자랑했다.
오늘도 할례파 사람들과 닮은 사람들이 있다. 기도의 양을 자랑하고 교회 안에서의 직책을 자랑하고 자신이 이룬 모종의 공로를 자랑한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면 영생을 얻는가? 우리가 예배를 빠지지 않으면 영생을 얻는가? 우리가 무슨 선행의 공로에 대한 상으로 영생을 얻는가? 우리가 성경 공부를 많이 해서 얻는 오묘한 지식으로 영생을 얻는가?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었던 것이고, 태어나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죽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받았는데, 받지 않은 것처럼 자기의 무슨 공로나 능력을 자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할례파 외에 영지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슨 특별한 지식을 얻음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무슨 신비한 주문을 계속 외우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과 같은 가르침이었다. 불교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읊조리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허황한 말을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는 우리가 신비한 지식, 숨겨진 지식, 특별한 지식을 운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이고 공허한 행위이다.
[딛]1: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그레데인들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었을까? 제우스신의 무덤이 그들에게 있다고 했다고 한다는데... 우리도 부산에 하나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교회가 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를 따르는 교회도 있다.
악한 짐승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죽이거나 해를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레데 남자들은 다윗도 용병으로 사용했고 로마 황제도 용병으로 사용할 만큼 난폭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장사꾼들이었다. 장사의 기본은 주고받는 것이다. 주는 것이 있고 정당하게 받는 것이 있는 것이 좋은 장사이다. 그러나 받는 것만 바라고 그 대가를 치루지 않는 것은 나쁜 장사이다. 인생은 장사이다. 주고받는 것이 잘 되어 있으면 좋은 사람이다.
[딛]1:13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딛]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리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것을 가르치면서도 사람들을 이래라 저래라 명령한다.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예수님은 속을 먼저 깨끗하게 하면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할례파 사람들은 할례 받은 자신의 몸을 자랑하면서도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교회를 잘 다니는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증한 자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복종하지 않는 자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지 않은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