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민요 「꼴베기꾼의 노래」, 꼴(풀)을 베거나 운반하면서 불렀던 노래>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시 「꼴베기꾼의 노래」 또는 「꼴 베는 소리(방호소리)」는 가축에게 먹일 꼴(풀)을 베거나 꼴을 집까지 운반하면서 불렀던 선후창의 노동요다. 보통 꼴을 짊어지고 돌아오면서(하산) 불렀다고 한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에서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 소에게 겨울 동안 먹일 풀인 ‘꼴’을 베려 가을철마다 산과 들로 다녀야만 했다. 가축에게 먹일 사료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겨울 동안 가축에게 먹일 풀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꼴베기꾼의 노래」는 바로 이러한 노동현장에서 낫으로 꼴을 베면서 부르거나, 꼴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동요였다.
「꼴베기꾼의 노래」는 「꼴베는 소리」라고도 하는데 거제도에서는 「방호소리」라고 한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김매기 소리」 등의 사설을 선소리로 사용하기도 했다. 꼴베기는 마을 사람들 몇몇이 꼴 베는 일을 하려고, 함께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꼴베기꾼의 노래」는 목청 좋은 소리꾼 한 사람이 [앞소리]를 먼저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간단한 후렴구를 받는 형태로 부른다. 거제시의 「꼴베기꾼의 노래」의 후렴구는 “어여루 방호야”이다. 여기서 ‘방호(方壺)’는 전설상 발해(渤海)의 동쪽에 있으며 신선(神仙)이 산다는 삼신산의 하나로, 고해(苦海)의 현실을 타개하고 신선의 내세를 꿈꾸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꼴베기꾼의 노래」는 꼴(풀)을 베는 노동 현장에서 혼자 부르기도 하고, 두 사람이 부르기도 하고, 세 사람 이상이 부르기도 한다. 혼자인 경우는 독창으로 부르지만 두 사람 이상인 경우는 선후창으로 부른다. 후렴구에는 “어여루 방호야” 등의 관용적 표현이 사용되며 주로 육자배기조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꼴베기꾼의 노래」에는 근면하고 검소한 서민들의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기억건대 어린 시절 농촌에는 학생들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산과 들에서 소를 먹이고 학교를 갔다 와서 또 소를 먹이려 다녔다. 또 시간나는 대로 꼴을 베려고 산과 들로 다녔다. 과거 농경사회의 시골에서 자라났던 아이들에겐, 모두가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일이었고 일상 그 자체였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인 경제적 ‘몫’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참고로 거제민요가 대부분 그렇듯,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79년 7월 30일부터 8월 7일 사이 조사원들이 직접 방문해 거제도에서 채록한 것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 8-2에 수록되어 전한다. 거제도 「방호소리(꼴베기꾼의 노래)」 구연자는 1979년 8월 6일,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망치 마을의 최태윤(남,63세), 김주수(남,59세) 외 2명이다.
*「꼴베기꾼의 노래」* 최태운, 김주수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동무는작아도 소리는크네 / 어여루 방호야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 어여루 방호야
월출동풍에 달솟는다 / 어여루 방호야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방호소리도 잘도한다 / 어여루 방호야
동해동천 돋은불이 / 어여루 방호야
이슬깰줄은 내몰랐네 / 어여루 방호야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우리동무들 잘도하요 / 어여루 방호야
방호소리도 잘도하요 / 어여루 방호야
오늘해가 다졌는가 / 골골마다 연기나네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우리각시는 어디가고 / 밥할줄을 모르는가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우리농부는 꼴을비고 / 방호소리도 잘도하네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 어여루 방호야”
● 꼴베기꾼은 소와 말 그리고 토끼 염소 등의 가축에게 먹일 풀 즉, ‘꼴’을 베려 다니는 농촌의 남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풀은 꼴망태나 발채(바지게)에 가득 실어 짐을 지고 집으로 운반했다. 예전에 소나 말을 키우는 농촌에는 봄이 한창일 때부터 가을까지는 소나 말을 산과 들에서 풀을 먹이며 키웠으나, 겨울에서 초봄까지는 흔히 소를 외양간에 가두고 집에서 여물을 만들어 먹이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겨울철을 대비해서 거제도에선, 대개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꼴을 베어 마른풀(건초)을 확보해야만 했다.[등겨(딩개), 쌀겨, 콩과 베의 마른 짚단도 함께]
꼴을 베는 일은 주로 남성들이 하는 일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하기도 했다. 이렇게 베어온 풀을 마당이나 길에서 며칠 말리고 압축시켜 건초 단을 만들어, 집안 한구석에 낟가리를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철에 마소(馬牛)에게 여물로 만들어 준다. 요즘도 사료 값이 폭등하면 꼴베기를 하여 건초를 확보하기도 한다. 여물로 먹이다 남는 마른풀은 퇴비로 사용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른 풀(건초)을 길에서 거두어 빼까리를 쌓을 때에는 온종일 구수한 마른 풀 냄새가 온몸에 파고들어 잠자리 이불 속까지 파고들기도 했다. 힘들고 고단한 시절이긴 했으나 아름답던 전원의 그리움은 지금껏 남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