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통곡할 만한 자리’[2014년 EBS수능완성 B형][실전 모의고사 1회].hwp
[44~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초팔일 갑신(甲申), 맑다.
정사 박명원(朴明源)과 같은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한 줄기 산기슭을 돌아 나서니 태복(泰卜)이 국궁(鞠躬)(1)을 하고 말 앞으로 달려 나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큰 소리로,
“백탑(白塔)이 현신함을 아뢰오.” / 한다.
태복이란 자는 정 진사(進士)의 말을 맡은 하인이다. 산기슭이 아직도 가리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
정 진사가,
“이 천지간에 이런 넓은 안계(眼界)(2)를 만나 홀연 울고 싶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하기에 나는,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만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그저 옷깃을 적셨을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하여 천지에 가득 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진 못했소이다.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를 겝니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愛]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여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 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소이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벽력에 비할 수 있는 게요. 복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오?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도 못한 채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 ‘슬픈 감정[哀]’에다 울음을 짜 맞춘 것이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를 때 이내 억지로라도 ‘아이고’, ‘어이’라고 부르짖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참다운 소리는 참고 억눌리어 천지 사이에 쌓이고 맺혀서 감히 터져 나올 수 없소이다. 저 한나라의 가의(賈誼)(3)는 자기의 울음터를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하여 필경은 선실(宣室)을 향하여 한번 큰 소리로 울부짖었으니, 어찌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요.”
“그래, 지금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바탕 통곡을 할 터인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을 골라 울어야 하겠소?”
“갓난아이에게 물어보게나. 아이가 처음 배 밖으로 나오며 느끼는 ‘정’이란 무엇이오? 처음에는 광명을 볼 것이요,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히 차 있음을 보리니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이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없을 일인데 슬프고 성이 날 까닭이 있으랴? 그 ‘정’인즉 응당 즐겁고 웃을 정이련만 도리어 분하고 서러운 생각에 복받쳐서 하염없이 울부짖는다. 혹 누가 말하기를 인생은 잘나나 못나나 죽기는 일반이요, 그 중간에 허물·환란·근심·걱정을 백방으로 겪을 터이니 갓난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제 조문(弔問)을 제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결코 갓난아이의 본정이 아닐 겝니다. 아이가 어미 태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는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나오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어 정신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한번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하리이다.
비로봉(毘盧峰) 꼭대기에서 동해 바다를 굽어보는 곳에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잡을 것이요,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金沙) 바닷가에 가면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얻으리니, 오늘 요동(4) 벌판에 이르러 이로부터 산해관(山海關)(5) 일천이백 리까지의 어간(6)은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고 간 비바람만이 이 속에서 창망할 뿐이니, 이 역시 한번 통곡할 만한 ‘자리’가 아니겠소.”
- 박지원, ‘통곡할 만한 자리’
(주) (1) 국궁: 윗사람이나 위패(位牌) 앞에서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힘.
(2) 안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
(3) 가의: 한(漢)나라의 문인.
(4) 요동: 중국 요하(遼河)의 동쪽 지방. 지금의 요령성 동남부 일대를 일컬음.
(5) 산해관: 중국 허베이 성 동북쪽 끝,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있는 관문.
(6) 어간: 시간이나 공간의 일정한 사이.
44.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현재와 비교하면서 과거에 대해 글쓴이가 반성하고 있다.
② 비유적 방법을 사용하여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시키고 있다.
③ 권위자의 견해를 인용하여 글쓴이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④ 글쓴이가 현재 경험한 사건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⑤ 의인화하는 방법을 통해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다.
45. 윗글을 (보기)처럼 나타냈을 때, ⓐ~(e)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글쓴이가 울고 싶다고 말함,…………………………………… ⓐ
↓
정 진사의 물음 ………………………………………………… ⓑ
↓
글쓴이의 대답 ………… ……………………………………… ⓒ
↓
정 진사의 물음 …………………………………………………… ⓓ
↓
글쓴이의 대답 ………………………………………………… ⓔ
① ⓐ는 글쓴이가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본 감동을 표현한 것이다.
② ⓑ는 ⓐ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③ ⓒ는 ⓑ에 대해 ‘칠정’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④ ⓓ는 ⓒ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⑤ ⓔ는 ⓓ에 대해 갓난아이가 태어날 때 느끼는 슬픈 감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B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B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1회
극/수필 44~45.
박지원, ‘통곡할 만한 자리’
지문 이해하기
(해제) 이 글은 박지원이 요동 벌판을 본 감회를 바탕으로 울음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통곡할 만한 자리’는 글쓴이가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을 기록한 “열하일기” 중 ‘도강록’에 실린 기행 수필이다. 박지원은 요동 벌판을 보고 좋은 울음터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자신의 독특한 시각과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주제) 울음이 갖는 의미
흐름 파악하기
* 기: 요동 벌판을 처음 본 반응
* 승: 요동 벌판을 보고 울고 싶은 이유
* 전: 갓난아이의 울음에 비유하여 설명
* 결: 요동 벌판이 좋은 울음터임을 다시 확인
44. 서술상 특징 파악
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비유적 방법
정 진사가 요동 벌판을 보고 한바탕 운다면 칠정 중에서 어느 정이냐고 묻는다. 글쓴이는 이런 정 진사의 물음에 대해 갓난아이가 태어날 때의 상황에 빗대어 이해시키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과거에 대해 글쓴이가 반성
글쓴이가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부분을 확인할 수 없다.
③ 확인: 권위자의 견해를 인용
글쓴이가 상대방을 설득하고는 있지만, 특별히 권위자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지는 않다.
④ 확인: 현실 정치를 비판
글쓴이의 경험이 드러나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⑤ 확인: 친밀감
‘백탑이 현신함을 아뢰오.’라고 하여 의인화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글쓴이가 한 말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대상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45. 감상의 적절성 평가
답: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확인: 갓난아이가 태어날 때 느끼는 슬픈 감정
글쓴이는 요동 벌판을 보고 울고 싶은 감정은, 갓난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올 때의 감정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갓난아이는 광명과 부모 친척들을 보기 때문에 기쁘고 즐거워서 울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요동 벌판을 보고 울고 싶은 감정이 갓난아이가 태어날 때 느끼는 슬픈 감정이라고 한 진술은 적절하지 않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요동 벌판을 본 감동
요동 벌판을 본 글쓴이는 감동하여 한바탕 울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② 확인: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기
정 진사는 요동 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고 싶다는 글쓴이의 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이 천지간에 이런 넓은 안계를 만나 홀연 울고 싶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라고 질문을 한다.
③ 확인: ‘칠정’을 바탕으로 설명
인간의 ‘칠정’이 극에 달하면 모두 울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④ 확인: 구체적인 설명을 추가적으로 요구
정 진사는 ‘그래, 지금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바탕 통곡을 할 터인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을 골라 울어야 하겠소?’라고 하여 ‘칠정’ 중에서 어느 ‘정’이 극에 달한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