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서 조덕린, 조지훈의 주실마을을 향하다 선바위 관광지에 들렀다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바위를 깎아 세운 듯하나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촛대를 세워 놓은 것 같은 바위가 선바위이고,
석벽과 절벽을 끼고 흐르는 두 물줄기가 합류하여 큰 강을 이루는 강을 남이포라 부른다.
일월산 북쪽에서 발원한 장군천이 장파천과 합류하고 반변천의 본류를 이루면서 남류한다.
또한 일월산 서부에서 발원한 동천은 남쪽으로 흘러 입암면 연당리에서 반변천에 유입한다.
선바위와 남이포는 조선 세조때 남이장군이 역모자들을 평정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국민관광지로 현재는 선바위 지구에 자연생태마을, 농특산물직판장, 수변휴게공간, 산촌박물관, 보트장 등을 설치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개발 중에 있다.
차로 2~3km 돌아 서석지로 향했다 트래킹을 좋아하는 사람은 석문교를 건너 일월산 자락 남이정을 통하는 데크길로 걸어서 가도 좋을 것 같다
정영방(鄭榮邦, 1577년 ~ 165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경보(慶輔), 호는 석문(石門)이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고 중용(中庸), 대학(大學), 심경(心經)을 배웠다. 29세가 되던 해인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되었는데, 벼슬에 나가려 하지 않고 진성(眞城) 임천동(臨川洞)에 은퇴하여 학문으로 일생을 보냈다. 스승 정경세가 이조판서로 있을 때 벼슬을 다시 권장하였으나 고사하였다.
먼저 동래정씨의 집성촌인 영양 연당마을에서 석문 정영방 선생의 9대손인 동파 정익세가 1800년대 세운 태화당 고택을 들렀다
정영방이 벼슬을 고사할 때 "저는 성품이 졸렬하여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한 번 벼슬에 나가면 학업과 명예를 모두 잃을까 두렵습니다."라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진성(眞城) 임천(臨川)(현 영양군 입압면 연당리)으로 들어갔다. 훗날 이곳에 연못을 파 서석지(瑞石池)라 이름 짓고 그위에 경정(敬亭)을 지었으며, 주일재(主一齋)를 축조하였다.
경인년(1650년)에 이르러 안동 송천으로 돌아와 선어대(仙漁臺) 위에 띠 집을 얽고 '읍취정(揖翠亭)'이라 편액을 달았다. 읍취정(揖翠亭)에서 주자와 퇴계를 읽으며 유유자적 하던 그는, 경인년 7월 7일 운명하였다.
태화당고택 앞쪽에는 석불좌상이 계곡을 앞에 두고 있다
청기계라 이름한 이 계곡은 이곳 연당마을을 휘돌아 남이포로 합류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마을 가운데 임시로 지어놓은 건물 안에 모셔져 있는 약사불좌상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삼부작(三部作)이다.
육계 일부와 양쪽 눈이 깨져 있고 광배가 세 조각으로 절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비록 당대의 대표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지방색이 현저할 뿐만 아니라, 등 쪽에 새겨져 있는 “市元年乙酉八月佛成之 所屯沙干卽中成之 金獻長戌像師(시원년을유8월불성지 소둔사간즉중성지 김헌장술상사)”라는 명문으로 미루어 제작 연대가 889년으로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불상으로서 주목되고 있다.
석불좌상을 둘러보고 서석지로 들어갔다
서석지는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연못은 수려한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였으며, 방지(方池)의 북단에 있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는 마루 안쪽에 ‘棲霞軒(서하헌)’이라 편액하였다.
서단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이 있는 규모가 큰 정자인 경정(敬亭)을 세우고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어 연못을 중심으로 한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북단의 서재 앞에는 못 안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四友壇)을 축성하여 송ㆍ죽ㆍ매ㆍ국을 심었다.
연못은 동서로 길며, 가운데에 돌출한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연못의 석벽은 그 구축법이 매우 가지런하고 깔끔하다. 동북 귀퉁이에는 산쪽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내었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마련하였다.
이 연못의 이름은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서석군은 연못바닥을 형성하는 크고 작은 암반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는 것으로 그 돌 하나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 있다.
돌들의 이름은 선유석(仙遊石)ㆍ통진교(通眞橋)ㆍ희접암(戱蝶巖)ㆍ어상석(魚狀石)ㆍ옥성대(玉成臺)ㆍ조천촉(調天燭)ㆍ낙성석(落星石) 등이며 20여개에 이른다. 이러한 명칭은 정영방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석지를 나와 주실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