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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 이와타 사와 (마쓰야마지부 초대부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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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지부 결성 18주년 기념근행회가 시작되었다. 근행과 간부지도가 있은 뒤, 사회자가 “마쓰야마지부 초창기 공로자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겠습니다.”하고 알렸다.
야마모토 신이치가 꽃다발을 손에 들었다. 맨 먼저 받은 사람은 초대 지부부인부장을 지낸 이와타 사와였다. 푸근하고 상냥한 용모의 이면에 의연하고 강인함을 지닌 여성이었다.
마쓰야마지부는 신이치가 제3대 회장에 취임함 1960년 5월 3일에 열린 본부총회에서 결성되었다. 신이치는 도쿄 로쿠로에 있는 니치다이 강당 단상에서 마쓰야마지부가 대전진하고 지부장과 지부부인부장이 된 다케다 유조와 이와타가 인생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며 축복의 박수를 보내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일찍이 이와타는 ‘자신의 인생이 마치 불행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지만 남편은 전쟁에 나가 병으로 사망했다. 이전에 간호부(현재 간호사)로 일한 이와타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마쓰야마에 있는 의원에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년 뒤, 다소 돈도 모여 딸 기미코와 마쓰야마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집은 아는 사람이 살던 집을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빌릴 수 있었다.
양재 기술도 있던 이와타는 집에서 양재 일을 시작했다. 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그러나 모녀 두 사람이 먹고 살기에는 쉽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 일했다.
1953년 연말, 이와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기침과 고열이 이어졌다. 병원에 가니 중증 속립성 결핵이 라고 진단했다. 당시 결핵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었다.
입원치료가 필요했지만 결핵병동은 빈자리가 없었다. 또 입원하면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더욱이 딸 곁에 있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에 결국 집에서 요양하게 되었다.
인생은 사정없이 밀려오는 숙명의 폭풍과 싸우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 폭풍을 이겨내는 정신을 강하게 길러야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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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가 속립성 결핵으로 집에서 요양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모아둔 돈이 차츰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병상에 누워 ‘불안’의 어둠에 떨며 자신의 불운을 원망했다. ‘불안’은 머지않아 이와타를 ‘절망’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병원에서 약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선로 위에 멈춰 섰다. 곧 저 쪽에서 열차가 보였다.
‘편해 질 수 있어…… ’ 그런데 그 순간 딸 기미코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딸은 어떻게 되지……’
선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죽지 못했다. 선로 옆에 털썩 주저앉은 그 옆을 열차가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연신 기침을 하고 울면서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희망을 잃는 일은 인생의 빛을 잃는 일이다. 신앙은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피우고 환희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한다.
이타와가 속립성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듬해인 1954년 봄, 기미코가 중학교에 들어갔다. 교복도 못 사서 이와타가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집에는 같은 천이 없어 세일러복에 들어가는 선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천으로 만들어야 했다.
쌀도 살 수 없어 기미코의 도시락은 밥도 반찬도 모두 감자였다. 기미코는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늘 감자네”라는 마을 듣기 전에 “나는 감자가 제일 좋아” 하고 선수를 치며 밝게 웃었다.
이와타는 극빈이라는 말이 마치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말인 듯이 느껴졌다.
이해 6월, 간호부양성소 시절 친구가 오사카에서 찾아왔다. 이 친구는 예전에는 병약해서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져 생기발랄해 보였다.
친구는 학회원이었다. 자신이 건강해진 근본적인 힘이 신심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이와타와 함께 간호의 길을 걸었던 사이다. 그런 친구가 의학이 아니라 종교를 힘주어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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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원인 친구는 병을 이겨내는 근원의 힘이 인간의 생명력이라고 말하고 불법(佛法)이 그것을 끌어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숙명에 이르렀다.
이와타는 솔깃했다. 왜냐하면 가장 궁금한 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자각하든 못하든 과거세부터 이어지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어, 이와타 씨가 남편을 여윈 것도 병으로 쓰러진 것도 숙명이지,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금세에 그 숙명을 전환하고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 니치렌대성인불법(日蓮大聖人佛法)이 그것을 설하고 있지”
친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넘쳤다. 이와타는 그 목소리에 압도되어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는 3일 동안 이와타의 집에 머물렀다. 머무르는 동안에 때로는 체험을 통해 또 어서를 펼쳐가며 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했다.
그리고 “절대로 인생을 포기하면 안돼, 네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어” 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와타의 가슴에 친구의 진심이 뜨겁게 스며들었다.
벗의 행복을 바라는 지극한 정성은 저절로 홍교로 귀결된다. 절복은 자비의 발로다.
이와타는 친구의 열의에 감동해 신심을 해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내 결핵이 낫지 않으면 본전치기고 나으면 횡재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본존을 하부 받으려면 오사카까지 가야 했다. 이와타는 의사에게 오사카에 다녀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됩니다! 절대 안정을 위해야 합니다” 하고 했지만, 열심히 부탁하자 허락해 주었다. ‘회복될 기미가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 같다.
이와타는 친구와 배로 오사카에 갔다. 그곳에서 좌담회도 참석했다. 결핵 등의 병을 이겨낸 체험도 들었다. 그러나 이와타는 그대로 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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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는 불법은 믿을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신심을 알려준 친구의 진심과 정성을 다한 마음에는 감동했다. ‘이 사람을 믿고 따라가자!’고 정하고 오사카에서 마쓰야마로 돌아왔다.
신심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묘법(妙法)을 확신하는데 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깨닫고 사람을 따라오기 마련이다.
니치렌대성인은 “법은 스스로 홍통되지 않는다. 사람이 법을 홍통하는 고로 인법(人法)이 함께 존귀하니라”(어서 856쪽)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법을 넓히는 사람의 인격과 행동이 중요하다.
이와타에게 홍교한 친구는 매달 두 번은 오사카에서 지도하거나 격려하러 찾아와 근행과 교학을 가르쳐주었다. 또 그 친구는 마쓰야마에 아는 사람도 많아 올 때마다 홍교하러 다녔고 입회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 뒤, 이와타의 딸 기미코도 신심을 시작해 이와타가 아는 마쓰야마의 동지는 11세대가 되었다. 모두 모여 좌담회도 열기 시작했는데 오사카에서 보내오는 세이쿄신문이나 선배간부가 보내온 격려 편지 등을 함께 읽었다.
그 무렵, 이와타의 병상은 이미 회복을 보여 외출도 허락되었지만,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고열이 났다.
입회하고 이듬해인 1955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간부 몇 사람이 하계지방지도로 마쓰야마에 왔다. 그리고 이와타의 집에도 격려하러 찾아왔다.
도쿄에서 온 부인부 간부는 이와타가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정을 듣자 “함께 근행합시다” 하고 말하고 진지하고 낭랑하게 독경하고 창제했다. 그리고 나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확신이 중요합니다. ‘신심으로 반드시 병을 이겨내겠다!’고 맹세하고 사자가 부르짖듯이 제목을 불러야 합니다.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는 사자후와 같으니 어떠한 병인들 장애를 할 손가’(어서 112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으로 이겨야 합니다. 그런 확신이 있으면 복용하는 약도 최대로 효과를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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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온 부인부 간부는 이와타에게 더욱 힘주어 말했다.
“이와타 씨, 숙명을 타개하는 지름길은 절복입니다. 남의 행복을 바라며 법을 설하면, 자신에게 불보살의 위대한 생명이 용현합니다. 그 생명력으로 숙명도 전환하고 병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당신도 함께 절복과 홍교에 힘씁시다”
이와타는 확신에 넘친 부인부 간부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좋아, 그렇다면 이 신심에 걸어보자’ 하고 결심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홍교하러 다녔다. 오후가 되자 ‘열이 나겠군’ 하고 생각했지만, 열은 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발열은 없었고 그 뒤로 열은 사라졌다. 병원 의사도 “혹시 다른 약을 드셨나요” 하고 물을 정도였다.
그것이 이와타가 느낀 초신의 공덕이었다. 확신이 솟았다. ‘신심을 근본으로 하면 반드시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벗의 행복을 바라며 불법을 말하면 이렇게도 환희 차고 생명이 약동하는가 하고 실감했다. 자신이 병든 몸이라는 사실도 잊고 활동에 힘썼다. 실제로 발열뿐 아니라 기침과 가래 등의 증상도 사라졌다.
1956년 5월의 일이다. 이와타는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戶田城聖)가 고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도다는 “마쓰야마에서 잘 왔군” 하고 말하고 가만히 이와타에게 시선을 쏟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그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당신도 꼭 행복해져야 한다. 아니 반드시 될 수 있다! 어본존에게서, 학회에서 평생 떨어지면 안 된다.”
이와타는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도다의 자애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힘내자! 반드시 행복해지자!’ 하고 자신에게 말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고뇌하고 신음하는 서민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비출 것 인가. 용기의 불을 켤 것 인가. 창가학회가 그 사명을 떠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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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가 도다를 만나고 석 달 뒤인 1956년 8월, 오사카지부 마쓰야마지구가 결성되었다. 이와타는 지구담당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이와타는 속립성 결핵이 완쾌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그 기쁨은 광선유포를 향한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 法旗(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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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인간혁명 26권 법기 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