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식가로 살기
라떼 이영란
봄이다.
어제는 모처럼 봄비가 내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떨어지는 빗소리에 맞춰 탱고의 음률을 떠올린다.
이 지구별 마음의 대륙을 하늘과 바람과 별이 달리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햇살과 노을과 저녁 바람이 춤을 춘다.
“아이다호란 영화가 있지.
그 영화에
-나는 길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볼거야-
그런 기막힌 언어의, 독백의 길이 있지
길이 있는 영화는
끝없이 걸어가는 꿈이 있어
끝없이 젖어드는 길이 흐를 때
당신에 관한 한 건방질 것도 없이
나는 최고의 감식가지....“
박용하시인의 ‘광란의 사랑’ 이란 시중에서 일부를 옮겼다.
나는 통영 토박이다.
여행으로 잠시 떠나던 시간외에는 아주 오래, 영영 떠나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돌아올 일도 없었다.
어릴 적엔 아버지의 자수성가로 이루었던 재산의 힘으로 나름 풍족하게 살았었고, 엄마는 한국전래동화전집을 시작으로 세계명작전집, 과학전집, 위인전을 넘어서서 그시절에 무민시리즈까지 사서 책장에 가득 꽂아주셨으니 나의 유년은 거룩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이 몇 채나 돼서 아버지를 따라 월세를 받으러 다녔던 기억도 선명한데 우리집엔 지금처럼 그 흔한 자가용대신 아버지의 오래된 자전거가 있었다.
집 근처 골목어귀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따르릉 자전거 소리는 지금도 몹시 그립고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으로 꼽는다.
그런 아버지와 엄마의 과잉 사랑은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그 이후 나의 삶은 늘 억울하게 잃어버린 나의 자유를 그리워하며 몹시도 일탈을 꿈꾸게 되었다.
어느정도 나의 나머지 반쪽 생을 찾게되었을때, 그래서 나는 자꾸 도망치듯이 다른 나라로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떠나서 돌아오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되기를 꿈꾸었다.
평생 길을 맛보는 일.
그런 기막힌 언어의, 독백의 길을 영화처럼 끝없이 걸어가는 그런 감식가로 살고 싶었다.
누군가 등 떠밀어 만들어진 삶이 아니라, 나에게 최고의 수식어를 붙이며 나에 관한한 최고의 감식가로 살고 싶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좋은 건,
많은 욕심들을 내려놓게 되는 것.
지나간 시간들을 잘 잊게 되는 것.
더 이상 천사의 몫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
마음도 사람 사이도, 우리 곁을 지나가는 시간들도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꼭 뭔가를 이루어야만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
이제는 잘 웃을 수 있다는 것.
치열하게 살아내고 달려왔던 나는 이제 걷기로 한다.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들꽃들과 풀잎들과 바람과 햇살에게 살포시 눈인사하며 나풀나풀 꽃처럼 살고자한다.
내가 나고 자란 자그마하고 예쁜 도시 통영처럼 많이 가지지 않고 소박하고 자그마하고 예쁘게 살고 싶다.
겨울이(내사랑 반려견)와 눈 맟추며 천천히 오래오래 걷고 싶다.
하남 보호소에서 온 겨울이도 통영에 빠져들고 있다.
나를 따라 길의 감식가가 되어간다.
겨울아~ 통영에 오게 된 걸 환영해~
우리는 함께 감식가로 사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