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쫄깃 사량도 옥녀봉 종주
-통영길문화연대 토요 걷기
송언수
4월 27일 토요일
통영길문화연대 토요 걷기
수우도 전망대에서 사량도 여객선터미널까지. 6.6킬로, 5시간 19분
(중간중간 사진 찍고 쉬는 시간, 점심 도시락 먹는 시간 다 포함. 통영길문화연대는 힘들게 걷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님 참고)
통영길문화연대는, 2010년 문화생태탐방로로 토영이야길 조성 이후, 길은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만든 단체이다. 2012년에 발족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늘 응원하고 함께해 주는 회원 덕분이다. 통영길문화연대에서는 매달 2회 함께 길을 걷는다. 해마다 한 번씩 사량도를 잡아 놓기는 하는데, 아무리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 통영이더라도, 배가 안 뜨면 섬에 들어갈 수 없다. 작년 봄에 가오치에 모인 회원들은 짙은 안개로 배가 결항이라 사량도에 들지 못했다. 올해도 그럴까 싶어 친구들과 하루 전에 미리 들어와 섬에 묵었다. 섬에서 밤을 보내는 일도 참 낭만적이다.
대항마을에 마침 등나무꽃이 흐드러졌다. 해수욕장 바로 앞 야영장에 등나무 벤치가 있다. 나무 그늘에 드니 등꽃 향기가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렸다. 이름도 모를 야생화 가득한 고동산 둘레길도 걸었다. 우리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지키는 이가 마침 친구와 지인인 우연 덕에, 가져간 와인을 맛있게 비우고도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의 이야기는 밤이 깊을수록 무르익는 법이다.
사량도에서 가장 신축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단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과 점심 장사만 하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점심 장사를 마치면 안주인은 그때그때 나는 나물을 채취하고, 바깥 사장은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한다. 그렇게 수고한 나물과 생선을 다음 날 아침과 점심상에 낸다.
먹는 이에 대한 배려로 음식 하나도 허투루 내지 않는 곳이다. 칼국수는 조개 듬뿍 들어간 육수와 칼국수 면을 따로 삶아 맑고 칼칼한 맛이 난다. 메뉴에도 없는 돼지국밥을 끓이는 날이면, 냉장고에 넣어 식히고 기름을 걷어내기를 반복하여 기름기 하나 없는 돼지국밥을 상에 올린다. 그런 부부의 정성 어린 밥상은 사량도 근무의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커피를 준다하여 식후에 한 잔씩 받아 들었다. 오늘 회원들이 타고 오는 배는 가오치에서 8시 출항이다. 40분 정도 걸리니 배가 오려면 아직 여유가 있다. 오늘은 안개도 없이 화창하여 배가 떴단다. 회원들이 상기된 얼굴로 배에서 내릴 것이다. 그때까지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봤다. 그리 오래 수다를 떤 것도 아닌데 벌써 배가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시간은 그리 훌쩍 흘러가기도 한다. 부랴부랴 문을 나서니 눈앞에 버스가 보인다. 회원들은 저 버스에 탔을 것이다. 서둘러 손을 흔들었다. 섬에 못 들어올까 싶어 전날 미리 들어와 놓고는 버스를 놓쳐 산에 못 갈 뻔하다니.
그리 크지 않은 버스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겨우 올라타고는 사람들과 뒤늦은 인사를 나누었다. 사량도 시내버스로 수우도 전망대까지 이동한다. 옥동과 사금마을을 거쳐 돈지마을까지 가는 길은 꼬불꼬불 구절양장이다. "지리산 올라가기 전에 여기서 힘 다 쓰겠네” 이리저리 치우치는 버스 안에서 힘을 주고 버텨야 했다. 우리나라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이다. 해안선에 바짝 붙은 길은 그 해안선을 따라 꼬불거릴 수밖에 없다. 팔에 힘 꽉 주고! 한 15분 정도 달리니 수우도 전망대다. 사량도 옥녀봉 종주 코스는 원래 돈지마을에서 진촌까지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시작점이 수우도 전망대로 바뀌었다.
사량도 지리산은 해발 397.8미터다. 해발이라는 건 바다에서 시작한다는 말이다. 돈지에서 올라가면 그 바다에서부터 시작인 거고, 수우도 전망대는 지리산의 7부 능선쯤까지 버스로 올라가니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거리가 훨씬 짧고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다. 돈지에서부터 치고 올라가면 경사가 꽤 급하고 길어 힘이 든다.
돈지마을(돈지리)과 내지마을(내지리) 사이의 산이라 ‘지리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항간에 지리산이 보인다고 지리산이라 한다는 설이 돌고 있고, 그래서 지리망산이라 한다고도 한다.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건 맞다. 작년 지리산 천왕봉 오를 때 분명 사량도를 보았다. 지리산에서 사량도를 보았으니, 사량도에서도 지리산이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수우도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등산 시작! 사량도 지리산으로 오른다. 지리산 옥녀봉 구간은 암릉이다. 흙길을 조금 걸으면 금세 바윗길이 나온다. 주상절리 형태의 돌이 켜켜이 쌓여 비스듬히 누워있다. 바위산이라 나무가 가리는 곳 없이 사방이 바다로 트여 있다. 통영과 고성의 올망졸망한 섬과 푸른 바다가 이루는 풍경이 장관이다.
수우도는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수우도라 부른단다. 수우도는 배가 하루 2번 들고 나는데, 삼천포에서 배가 있다. 수우도는 두 번 가봤는데, 우리나라 같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거기 눈웃음이 선한 청년이 산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섬에 들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아직 섬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사람이라곤 없는 그 섬에는 어머니 같은 마을 어르신들만 계시기 때문이다. 올가을에는 사람들과 수우도에 갈 계획을 세워 두었다.
오래전부터 사량도 옥녀봉 종주는 꽤 험난한 여정이었다. 인사 사고가 한 해 한 건 이상은 나던 곳인데, 데크로 정비를 하고 우회로를 만들면서 좀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마음을 놓으면 안 되는 곳이다. 암석 구간이 가팔라서 발을 헛디디면 굴러떨어지기 십상이다. 절대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중간중간 쉬엄쉬엄 강제 휴식을 취하고 간식도 나누며 천천히 간다.
통영에 처음 이사 와서 몇 년 안 지나, 사량도에 한 번 가볼까 싶었던 적이 있다. 설거지 청소 등의 아침 일정을 마치고 뭘 할까 생각하다가 사량도라는 이름이 떠올라 내린 결정이었다. 가오치에서 11시 배를 타고 진촌에 내렸다. 배에서 뵌 할머니께 점심을 어디서 먹으면 좋을지 물었고, 그 할머니 손에 이끌려 식당에 들어갔다. 김치찌개를 시키니, 매일 먹는 김치찌개를 뭐 하러 섬에까지 와서 먹냐며, 된장을 먹으라 한다. “된장도 매일 먹는데요?” 했으나 내 상에 된장찌개가 올라왔다. 해물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내가 끓인 것보다 맛있었다. 주신 반찬과 된장찌개에 밥까지 싹 다, 깨끗하게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옥녀봉은 어떻게 가느냐 물었더니, 혼자 가냐 되묻는다. “같이 가줄까요” 한다. 혼자 가면 위험하다나. 학교 옆으로 난 길을 알려준다. 가는 길에 사우나가 있는 것을 보고 여기가 섬이 맞나 싶었는데 더 놀라운 건 눈앞에서 마주한 90도 각도 사다리였다. 내려오는 사람들 모두 벌벌 떨면서 내려왔다. 이건 차라리 올라가는 게 낫지 싶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헛웃음만 났다. 밧줄을 잡고 바위를 타고 오르면 또다시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여길 혼자 왔냐는 걱정을 들었다. “이런 덴 줄 몰랐어요” 그러면서 또 멋쩍게 웃었다. 얼마쯤 가니 아이스 바를 파는 분이 계신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복색을 살피던 아저씨는 오늘 섬에서 잘 건지 나갈 건지 물었다. 당연히 “나가야죠” 했더니 “그럼, 이리로 내려가라”고 했다. 거기가 성자암이다.
내려가면서 암자를 지나는데 대청마루에 앉아계시던 스님이 손짓해 부르신다. 혼자 왔느냐 묻고는 먹을 것을 내주셨다. 여럿이 와도 위험한 곳에 혼자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마침 절에 와 있던 KT직원들에게 나를 태워 가라 하셨다. 트럭을 같이 타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배 나갈 시간이었다. 멋모르고 와서 섬에 발이 묶일 뻔했던 그날이 사량도에 대한 첫 기억이다. 사량도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친절했고, 덕분에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성자암 내려가는 갈림길에 아이스 바를 파는 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천 원도 안 하는 아이스 바를 2,500원에 판다. 섬인 데다, 산꼭대기이니 프리미엄이 붙는 건 당연지사다. 이런 곳에서 이걸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회원들 모두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샀다. 일찌감치 더워진 날씨에 모두 땀범벅이다. 직접 담근 막걸리도 파는데, 이런 데서 술 마시면 안 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맨정신으로도 위험한 곳에 술을 마시고 간다고? 그러지 맙시다. 아니지, 술은 팔지 맙시다. 인간적으로.
지리산을 지나 달바위와 볼모봉 종주를 하는 동안에도 절경은 계속 이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꺼냈다. 통영 사람들은 어딜 가나 진수성찬을 포기하지 않는다. 전을 부치고, 생선을 찌고, 갖가지 나물까지 싸 들고 온 통영 아지매가 있다. 같이 온 일행들까지 생각한 넉넉한 도시락이다. 괜히 ‘통영’이 아니다. 그래도 "멍게가 없네" 한다. 마침 멍게 철인데, 귀선언니가 오늘 사정상 못 와서 그렇다. 그 언니가 왔으면, 산에서는 상상도 못 할 먹거리가 펼쳐졌을 것이다. 밥을 다 먹고도 오래 앉아 노닥거렸다. 어디서든 반갑고 즐거운 회원들이다.
다시 가마봉으로. 예전에 밧줄만 덩그러니 있던 곳이었는데, 데크가 잘 깔려 있다. 지나서 내려가는 계단이 거의 직각이라서 후덜덜한 구간이 나오는데, 우회로가 있어도 다들 심장 쫄깃거리는 계단을 탄다. 조심조심. 무서워서 지르는 비명이 몇 차례 들리긴 하였으나 모두 무사히 하산했다. 다들 내려와서 시원한 맥주와 커피로 뜨거워진 마음과 몸을 식혔다. 아침 8시 배로 들어와서 오후 4시 배로 나가는 일정으로 잡는다면 그리 힘들지 않게 쉬엄쉬엄 종주 가능하다. 통영 8대 경관이라는 사량도다. 한 번쯤 와볼 만하지 않은가.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