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지통
강영식
없는 나뭇잎이 흔들렸다
없는 꽃이 피고 없는 새가 날아들었다
감을 수도 없는 눈眼이 되었다
힘
나비는 앉을 때
창날처럼 몸을 곧추세운다
척추가 없다
꿈
바람 불자
일제히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물고기떼
디카시 부문 당선소감
소통의 미학
강영식
20대 중반 이후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일을 멀리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이순이 다되어 생전 처음 페북이라는 sns를 접하게 되었고 모 시인의 페북에서 디카시라는 용어와 함께 간단한 정의를 읽게 되었다. 단박에 연애에 빠졌다.
나는 열일곱 살 때부터 시를 썼지만 서른도 되지 않아 시와 멀어졌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시의 역할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런 나에게 어쩌면 시가 구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낌새를 디카시가 보여줬다. 그 낌새의 바탕은 소통이다. 자연과 사물의 외적 영상과 그 이미지의 내면에 내포된 짧은 메시지(시적언술)야 말로 국적과 종교와 피부색과 언어의 다양성을 모두 아우르는 소통이 아니겠는가. 디카시는 나를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해준 단초다.
청년시절 문학동인 이었던 풍향계를 다시 결집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그 시절 함께 시의 길을 걸었던 시우들과 속속 소통이 이루어졌다. 늦었지만 다시 문학청년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번 ‘시와 경계’ 디카시 신인작품상 당선은 새롭게 마련한 시를 향한 첫걸음이다.
제1회 당선자 김영빈 시인의 당선소감처럼 디카시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최일선에서 디카시의 전파와 확장에 매진하시는 이상옥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디카시마니아 카페 회원님들 두루두루 고맙습니다. 저의 첫 번째 독자로서 매운 지적을 서슴지 않은 아내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 ‘시와 경계’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디카시 부문 심사평
디카시를 위해 준비된 시인
디카시는 2004년부터 경남 고성에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예운동으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6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디카시가 새로운 문학용어로 등재되고 한국을 넘어 해외로도 빠르게 소개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디카시가 수록되고 고등학교 국어 모의고사 시험에도 출제되었다. 각 지자체에서 디카시공모전이 열리고 문학관, 도서관 등지에서 디카시 강좌도 상설로 개설하고 있다. 근자에 디카시를 향유하는 수요도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디카시인협회도 2019년 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2020년 제1회 디카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본격 출범했다. 한국디카시인협회의 출범을 전후로 디카시인들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2018년 제1회 오장환디카시신인문학상 공모전은 본격 디카시인 등장의 신호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영식은 디카시 「망부석」으로 제1회 오장환디카시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역량 있는 시인이다. 그런 그에게 디카시 「환지통」, 「힘」, 「꿈」으로 계간 《시와 경계》 신인상 당선의 영예를 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환지통」은 부재 혹은 상실의 아픔을 처절하게 기술하고 있다. 한 몸통을 잃은 고목나무의 뻥 뚫려 있는 사진영상을 ‘환지통’으로 형상화한다. 없는 나뭇잎이 흔들리고 없는 꽃이 피고 없는 새가 날아다니는 환지통을 느끼면서 감을 수도 없는 눈, 그것은 죽어가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어머니를 환기하기도 한다. 환지통이 어찌 어머니만의 것이겠는가.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누구나 환지통이라는 부재의 아픔을 지니고 사는 것이 실존이다.
디카시는 극순간 멀티 언어 예술로 극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것이다. 고목나무에서 환지통을 순간 포착하고 짧은 언술을 통해 그 의미를 영원으로 끌어올리며 그 영원은 또한 순간의 영상으로 응축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자시와 다른 디카시의 미학이다. 강영식 시인은 디카시가 문자시와 다른 극순간 멀티 언어 예술임을 현실화시킨다. 창날처럼 몸을 곧추세운 척추 없는 나비가 환기하는 힘의 이데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디카시 「힘」도,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넘어 바람이 불자 일제히 허공을 날아오르는 물고기의 꿈, 그것은 시인의 것이고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인 바, 시각화한 물고기 형상의 잎새들로 극순간 표상화해 낸 디카시 「꿈」 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신생 장르인 디카시 앞에는 미답의 개척 길이 놓여 있다. 고교시절부터 시를 쓰고 계속 펜을 놓지 않았던 강영식은 마그마 같은 시의 에너지를 온몸에 가득 충전해 온, 디카시를 위해 준비된 시인으로 디카시 문예운동의 최전선에서 디카시를 견인하고 이끌어 나갈 것이다.
심사: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