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와 우매자
(전도서 2:12-17)
20231030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61병동 603호로 찾아 들어갔다. 면회가 철저하게 통제되어 상주 보호자 이외에는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입구에 적혀 있기는 하나, 간병인의 안내를 받아 간호사실 앞을 통과하여 병실 유리창 앞에 놓여있는 병상으로 다가섰다. 지난 9월 27일 문막 롯데리아 앞 횡단보도에서 택시에 받히는 교통사고로 심정지 상태에서 긴급하게 호송된 뒤 의식을 회복하고 수술을 마쳤으나 아직도 콧줄로 식사하는 상태다. 지난번 방문 때는 눈은 뜨고 있으나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더니, 오늘은 일어나 병상에 앉아있다.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어보니 표정 변하지 않고 알아본다. 천만 다행이다. 이제 조금 시간을 갖고 치료하면 원래의 건강 상태를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 드리고 돌아왔다.
지난 토요일에는 가남 베스트병원 입원실을 다녀왔다. 9월 15일,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찾아가 가정예배를 드렸다. 대진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이효숙 권사가 추석을 맞아 집으로 외출을 했기에 온 가족과 함께 심방 예배를 드렸는데, 그날 밤 신성진 장로가 뇌출혈로 쓰러져 원주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긴급하게 수술을 해야만 했는데, 심장에 수술 후 복용하는 아스피린이 발목을 잡았다. 아스피린이 지혈을 방해하여 수술할 수 없단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쓰저진 이후 운 한 번 뜨지 못하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요양병원으로 옮겨 왔다. 부디 잘 견뎌내고 의식 회복하시기를 주님께 부탁하며 기도드리고 돌아왔다.
삶과 죽음이 한 발짝 사이를 두고 기찻길처럼 나란히 간다. 어제는 서울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꼭 두 해가 지난 날이다. 순간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은 159명의 엄마와 159명의 아버지가 아직도 그 자식들을 품에 안고 왜 죽었는지를 묻고 있다. 누가 죽였는지를 묻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물음에 대답은 없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는 소설에서 끊임없이 묻고 있다. 왜 총을 쏘았느냐고 묻고, 왜 죽였느냐고 묻는다. 여러 개의 발이 달린 벌레처럼 켜켜이 쌓인 죽음의 탑 아래 깔린 시신에서 분리되어 나온 영혼이 살아있는 이들에게 묻고 있다. 왜 총을 쏘았느냐고 묻고, 왜 죽였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산 사람들은 대답이 없다. 왜 죽였는지, 왜 총을 쏘았는지 아는 이가 없다.
지혜의 왕으로 소문 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을 따로 세워놓고 비교한다. 아무래도 미련한 사람은 미련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롭다. 그 생각과 하는 일이 다르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일생을 마치는 순간이 되면 미련한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스스로 지혜로운 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살고 나서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서야 안다. 뛰어온 사람과 걸어온 사람의 상이 다르지 않다면 쉼 없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 사람이 지혜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주님은 여러 개의 창고를 지어놓고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여 좋은 것들로 가득하게 채워 놓은 부자지만, 그날 밤 세상을 떠난다면 그 쌓아놓은 것은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묻는다(누가복음 12:20).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