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암 이현보의 「어부장가」
이원걸(문학박사)
1. 「어부장가」의 풍류한적미
이미 위의 「어부단가」에서 「어부가」 계통의 작품을 언급했다. 「어부장가」 9장은 「어부사」라고 칭해진 것이다. 원래의 「어부사」 12장은 오늘날의 악장가사에 수록되어 전한다. 농암의 「어부장가」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하고 있지만 어부의 경제활동은 거세되고 심미활동이 주조를 이룬다. 전체 작품 소개 및 간략한 분석을 하기로 한다.
갯가에 사는 백발 늙은 어부가 스스로 말하기를
물에 사는 것이 산에 사는 것보다 낫다 하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침 밀물 다 빠지면 저녁 밀물 올라오누나.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배에 기댄 어부의 한쪽 어깨가 올라 가누나.
雪鬢漁翁이 往浦間 自言居水이 勝居山이라놋다.
라라 早潮 纔落晩潮來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倚船漁父이 一肩이 高로다.(1수)
농암은 1-2행에서 눈처럼 흰 수염의 늙은 어부가 물가를 왕래하면서 강에 사는 것이 산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3행은 후렴구이다. 4행은 갯가에 조수가 밀려 왔다가 밀려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시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5행은 후렴구이다. 6행에서는 뱃전에 비스듬히 앉은 어옹의 어깨가 절로 흥에 겨워 올라가는 것을 노래하였다. 어옹은 자연과 일체감을 이루어 세속의 물욕을 벗어난 상태에서 흥을 누리는 것이다.
푸른 줄 잎 위에 시원한 바람이 일어나고
붉은 여귀 꽆잎 가엔 해오라기 한가롭다.
닻 올려라, 닻 올려! 산들바람 타고 아름다운 호수로 돌아가리.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돛대가 앞산을 빠르게 지나니 벌써 뒷 산이로구나.
靑菰葉上애 凉風起 紅蓼花邊白鷺閒이라.
닫드러라 닫드러라 洞庭湖裏駕歸風호리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帆急前山 忽後山이로다.(2수)
1-2행은 배가 닻을 올려 항해하면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를 묘사한 것이다. 푸른 줄 풀 잎 위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붉은 여뀌 곁에는 백로가 한가히 놀고 있다. 이 부분에는 푸르고 붉으며 흰 색감이 돋보인다. 3행은 후렴구이다.
4행에서는 동정호 저편에 부는 돌아가는 바람을 몰아가리라고 하였다. 5행 역시 후렴구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히 전개된 시상은 6행에 이르러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배가 갑자기 속도를 내어 달리니 앞에 있던 산이 금방 뒤에서 보이게 된다고 하였다. 어부의 서정이 동적 이미지로 확대되면서 시를 생동감 있게 하였다.
종일토록 배를 띄워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가
때때로 상앗대를 저어 달밤에 돌아오도다.
져어라, 져어! 내 마음은 가는 데 따라 모든 일을 잊었도다.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돛대를 두들기며 흐름 타고 정처 없이 흘러가노라.
盡日泛舟煙裏去 有時搖棹月中還이라.
이어라 이어라 我心隨處自忘機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鼓枻 乘舟無定期라.(3수)
1-2행에서는 어옹의 하루 일과를 소개하였다.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안개 속을 저어 다니다가 때로는 달밤에 배를 저어 돌아올 때도 있다는 것이다. 3행의 후렴구를 거쳐 4행에서는 어부의 마음이 세상과 대립됨이 없이 평정된 상태가 된다고 하였다. 이는 5행의 후렴구를 지나 6행에서 정처 없이 노를 저어 간다고 하였다. 아무런 제약과 구속을 받지 않은 자유의 공간에서 어부는 물아일체를 이루었다.
만사에 무심하고 오직 낚싯대에 뜻을 두니
삼공 자리와도 이 강산을 바꾸지 않으리.
돛 내려라, 돛 내려! 산과 시내에 비바람 치니 낚싯줄을 거두리라.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평생의 자취가 푸른 물결에 있도다.
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라.
돗디여라 돗디여라 山雨溪風捲釣絲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一生踪迹在滄浪라.(4수)
1-2행은 어옹이 만사에 대해 무심한 경지에 이르러 낚싯대를 드리우기 때문에 세속에서 군왕을 제외한 최고 지위라고 할 수 있는 삼정승 자리와도 그 즐거움을 바꿀 수 없다고 하였다. 3행에서는 돛을 내리고 있다. 4행에서는 산과 강에 비가 내려 어옹은 낚싯줄을 말라 올린다. 그 즐거움은 6행까지 이어져 일생 동안 푸른 강을 벗 삼아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어 5수를 보기로 한다.
봄바람 석양에 남녘 강물 깊은데
이끼 한 조각 낚시터엔 만가지 버들 그늘지었네.
읊어라, 읊어! 파란 부평초 신세 하얀 해오라기 마음이여.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언덕 건너 어촌엔 두어 서넛 집만 보이누나.
東風西日楚江深 一片苔磯萬柳陰라.
이퍼라 이퍼라 綠萍身世白鷗心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隔岸漁村三兩家라.(5수)
동풍이 불어오는 봄 날, 어옹은 해가 지도록 낚시를 드리우다 보니 흡사 초나라 굴원과 같다고 하였다. 낚시터에는 버들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1행의 지는 해와 초나라 굴원 및 강이 깊다는 하강 이미지는 동풍의 상승 이미지와 대를 이룬다. 3행에서는읊어라를 반복하였다. 이는 '노래를 부른다'라는 의미이다.
4행에서는 부평초 같은 신세가 어느덧 흰 갈매기와 같다고 하였다. 자신의 심정이 이미 무심한 갈매기와 동일시되었음을 의미한다. 세속적인 욕심이 제거된 순수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6행에서는 시선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건너편 언덕에 두세 채의 촌가가 어옹의 시야에 들어 왔다. 이는 곧 집으로 돌아갈 것임을 암시해 준다. 6수를 보기로 한다.
탁영가 노랫소리 그치고 모래톱 고요한대
대밭 오솔길엔 아직 사립문이 닫히지 않았구나.
배 세워라, 배 세워! 밤에 남쪽 포구에다 배를 대니 주막이 가까워서라.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배 바닥에서 질그릇 사발로 홀로 술을 마실 때로세.
濯纓歌罷汀洲靜 竹逕柴門을 猶未關라.
셔여라셔여라 夜泊秦淮近酒家로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瓦甌蓬底獨斟時라.(6수)
1행은 고기잡이가 종료된 물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며, 2행은 뭍의 세속적 공간을 묘사하였다. 「탁영가」를 마친 고요한 물가에 있는 주막집 사립문은 열려 있다. 주막의 사립문은 늘 열린 상태로 길손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어옹이 거주하는 공간은 세속처럼 닫히고 막혀 있지 않다. 가고 머무는 모든 것이 이렇듯 평온하고 느긋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통제가 없는 자유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3행은 배를 세우라는 표현이다.
4행은 배를 포구에 정박하니 주막이 가깝다. 그러나 어옹은 주막에 들르지 않았다. 6행에 의하면, 그는 비록 주막의 문이 열려 있어도 그곳을 피하여 호젓하게 배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옹이 음주를 하는 것은 민감한 향락이나 연희의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가동을 데리고 조용하게 술을 마시며 마음의 평정을 흐리게 하지 않는 가운데 흥과 풍류를 누리는 것이다. 7수를 보기로 하자.
취해서 잠이 들자 불러 주는 이 없어
앞 여울로 떠내려 흘러갔어도 알지 못했어라.
배 매어라, 배 매어! 흐르는 물에 복사꽃 떠오면 쏘가리가 살찔 때라.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온 강의 풍월이 고깃배에 붙었구나.
醉來睡著無人喚 流下前灘也不知로다.
여라여라 桃花流水鱖魚肥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滿江風月屬漁船라.(7수)
1-2행은 만취된 이후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어옹은 술을 마신 뒤에 취해 잠이 들었던 것이다. 누구도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그런데 배는 처음 출발하던 곳으로 떠내려 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달할 필요가 없다. 가고 오는 데에 미련이 없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 3행에서 우선 배를 매어 두라고 하였다. 거기에서 어옹은 복숭아꽃이 떠서 흘러오고 쏘가리가 살쪄 있음을 목격한다. 이는 시각적 심상을 통해 시인에게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풍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낚시할 고기가 살쪄 있고 복숭아꽃이 떠내려 오는 풍요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6행에서 더욱 확대된다. 풍월이 강에 가득하고 고깃배도 거기에 속해 있다고 함으로써 강과 풍월, 그리고 고깃배, 시인까지 물아일체를 이루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런 경우 자연물이 다른 대상에게 예속되지도 않고, 자신 역시 자연과 하나를 이룬 경지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미를 잊고 티끌세상 밖에서 노니는 멋인 진외지의塵外之意를 얻은 것이다. 8수를 검토하기로 한다.
밤 고요하고 물결 차가우니 고기가 물리지 않아
부질없이 온 배 가득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오네.
닻 내려라, 닻 내려! 낚시를 끝내고 돌아와 작은 다북쑥에 배를 매어 두자꾸나.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풍류놀이엔 서시 같은 미인을 태우지 않아도 좋을 씨고.
夜靜水寒魚不食거늘 滿船空載月明歸라.
닫디여라 닫디여라 罷釣歸來繫短蓬호리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風流未必載西施라.(8수)
밤낚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물이 차가워 고기가 낚시를 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옹은 달빛만 가득 배에 실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멋스러움이 한 폭의 그림처럼 전개된다. 어옹의 애당초 낚시하는 목적이 고기를 낚는데 있지 않고 한적을 누리는 데에 있기 때문에 도리어 달빛을 싣고 오는 것 역시 풍류와 흥취가 넘친다. 이어 닻을 내리고 배를 정박시켰다.
농암은 6행에서 풍류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의 풍류는 서시 같은 미인을 동반한 세속적인 유흥의 풍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과 벗 삼고 한적한 가운데 누리는 고상한 풍류야말로 참된 풍류며 멋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수를 보기로 하자.
한번 낚싯대를 들고 배에 오르고 나면
세상의 명에와 이익은 아득히 멀어지나니
배 붙여라, 빼 붙여! 배를 매고 보니 지난 해 흔적 여전히 남아 있구나.
찌그렁, 찌그렁, 어기야! 어기여차! 소리에 강산은 더욱 푸르러만 가는 것을.
一自持竿上釣舟 世間名利盡悠悠라.
브텨라브텨라 繫舟猶有去年痕이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欸乃一聲山水綠라.(9수)
낚시 대를 가지고 배에 오르니 세상의 명리가 일체 사라지게 된다. 농암은 어옹을 가탁하여 낚시를 함으로써 어부들의 생업과는 다른 풍류와 한적을 낚았던 것이다. 이런 일상적 생활을 통해 물외한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배를 붙이고 이어 배를 매어 두었다. 6행의 어부가 노 젖는 소리에 산과 물이 푸르다는 표현은 농암에게 어옹의 생활이 염증이 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청아하게 다가온다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적미와 풍류, 그리고 멋을 더욱 누리게 된다는 확신이다.
3. 마무리
이상에서 살펴본 농암의 「어부장가」 9편은 전체의 내용이 낚시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농암이 굳이 낚시한 것은 고기를 낚자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낚시를 통해 물외物外와 망기忘機를 바탕으로 하여 진외지의塵外之意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진외지의는 자연으로 침잠하여 들어감으로써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잊고자 하는 노력을 말한다. 그리고 「어부장가」에는 9편 전체 구조와 밀접한 후렴구를 의도적으로 배치하였다.
배어 두었던 배 띄우기 → 닻올리기 → 배젓기 → 읊기 → 배 세우기 → 배 매기 → 닻 내리기 → 배붙이기 순으로 진행된다. 이는 다시 준비․ 출발과정 → 행주行舟 과정 → 남경覽景 과정 → 회귀 과정으로 요약된다. 이로써 「어부장가」는 배를 띄워 고기잡이를 거쳐 회귀까지의 순서가 일치되게 배치되어 전체를 하나의 완결 구조로 만든다.
농암의 「어부장가」는 고산 윤선도에게 계승된다. 윤선도는 어부장가」를 새롭게 개작하여 춘하추동 4계절에 따른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편을 창작하였던 것이다. 윤선도는 자연을 그리되 상상적이며 허구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을 배경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흥취를 누리는데 있어서 도학적 성향은 비치지 않았다. 윤선도는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이 아닌, 실재하는 자연으로서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이 농암의 자연관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농암의 「어부가」는 한국문학사에서 소중한 업적으로 평가된다.